멋진 복지국가를 위한 핵심 조건 추측하기
최영준|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현실
한국 복지정책의 발전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새로운 복지정책이 도입되고, 복지지출의 규모가 증가하면서 복지 관련 논의는 시민단체와 보건복지부에서 기획재정부로, 복지전문가에서 경제전문가로 그 담론의 장을 넓히고 있다. Therborn(1982)이 논의한 바와 같이 국가의 일상적 활동이 경제나 국방 혹은 일반 행정과 같은 영역보다 사회적 영역이 더 핵심이 되는 복지국가로 이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복지의 장이 확대되고 그 논의가 풍부해지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며, 안정된 복지국가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복지 담론의 장으로 들어오면 올수록 그리고 경제학적 담론을 가진 이들이 진입할수록 논의의 수준이 심각하게 ‘단순’해지는 현재의 상황은 한편으로는 매우 흥미롭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스럽다. 몇 가지 논의의 예를 들면, ‘복지확대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혹은 ‘몇 % 정도의 복지비 지출이 적정한가?’, ‘복지를 위한 세입확충이 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인가?’ 등이다.
이러한 논의들에 대한 해답을 저자가 가지고 있어서 논의가 단순하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멋진 답을 내놓고 싶어 했으며, 실제로도 많은 연구들이 행해졌다. 하지만, 연구의 대상국가나 년도, 변수선정, 연구방법론에 따라서 결과는 너무도 다양하며, 결과적으로 하나의 동의할 수 있는 해답에 갖기는 너무도 어렵다고 판단된다(Gough 2000). 그 질문들이 단순한 이유는 복지의 규모와 경제 성장 혹은 국가 경쟁력 사이에는 몇 가지 중요한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원리와 원칙으로 복지국가를 구성하였는가, 어떠한 형태와 구조를 가진 정책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어떠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 등의 차이에 따라서 질문에 대한 답은 매우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복지국가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Esping-Andersen(1990)은 복지국가의 지출이 아닌 탈상품화 수준과 계층화 방식, 그리고 복지혼합의 다양성을 중심으로 복지국가를 분류한 바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 고에서는 단순한 복지지출의 증가가 경제발전을 악화시킨다거나 복지지출이 높은 소득 재분배를 달성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 벗어나 소득 재분배나 공공성이 강한 정책이 더 좋은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몇 가지 파편화된 증거들과 이에 대한 해석이 제시될 것이다.
증거1
복지지출에 대한 몇 가지 증거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복지지출을 어떻게 증가해야할까, 그리고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까에 대한 논의의 이면에는 높은 복지지출이 좋은 복지국가라는 논리를 가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연구들에서 부분적으로 지적된 바와 같이 그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다음의 두 표는 복지국가에서 가장 큰 지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연금과 보건의 사례를 통해서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그림은 총연금지출과 노인빈곤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남부유럽이 상당히 높은 연금지출을 하고 있음이 보여지지만(OECD 평균 8.4%), 흥미롭게 노인빈곤 역시 높게 나타남을 볼 수 있다(OECD 평균 13.5%). 최근 재정위기를 맞고 있는 그리스의 경우 2007년 GDP 대비 약 13%를 연금에 지출하고 있지만, 노인빈곤율은 20%가 넘고 있으며, 이태리의 경우도 연금만으로 15% 이상을 지출하고 있지만, 노인빈곤율은 12%가 넘고 있다. 일본 역시 12% 가량을 연금에 지출하고 있지만, 빈곤율이 22%로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뉴질랜드는 단지 4.3%를 연금으로 지출하고 있지만, 빈곤율은 1.2%에 지나지 않고, 연금지출이 10% 넘지 않는 국가에서 빈곤율이 10% 미만인 사례는 다수 발견되고 있다.
두 번째 그림에서도 지출과 복지성과로 바로 이어지고 있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주지된 바와 같이 가장 높은 보건지출을 하는 곳은 미국으로 2005년 현재 총보건지출 GDP 대비 약 16%에 이르고 있다. 2005년 미국의 총 공공복지지출이 약 17%인 것을 감안할 때 그리고 미국이 별도의 보편적 의료보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매우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세제를 기반으로 하는 전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를 실시하고 있는 영국의 경우 총 지출이 8% 대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평균수명을 비교해보면 미국이 77.4세, 영국이 79.2세로 약 2세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주의 경우도 약 8.4%를 지출하지만, 평균수명은 80세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서 보면 보건지출과 평균수명 간에는 뚜렷한 관계가 있다고 판단하기가 어렵다.
분명 이러한 증거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으며, 더 엄밀한 양적연구나 질적비교연구들이 필요하다. 당연히, 노인빈곤과 평균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단순히 연금이나 보건정책 뿐 아니라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고 있음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주목할 만한 지점이 발견된다. 연금의 경우 두 가지 경우에서 빈곤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민간지출의 비중이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경우이다. 민간지출은 기업연금이나 세제적격 개인연금이 이에 해당된다. 미국의 경우 2007년 총 10.3%의 지출 중 4.3%가 민간지출이며, 빈곤율은 22.4%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스위스의 경우도 전체 연금지출 12.4% 중 6%가 민간지출이며, 빈곤율이 17.6%로 평균 약 13%를 훨씬 상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재분배가 없는 사회보험식 연금을 가진 국가일수록 높은 지출에 높은 빈곤율을 보이고 있다. 소득비례형 사회보험의 경우 소득보장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소득이 높을수록 높은 급여를 제공하게 되어 있으며, 결과적으로 모든 소득계층에게 정액으로 기초보장을 제공하는 뉴질랜드와 같은 국가에 비해서 높은 지출을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그리스의 경우 소득대체율(생애소득 대비 연금급여 비중)이 경제위기 이전 생애소득이 약 110%로서 평균소득의 1/2배 계층이나 1.5배 계층 모두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 이러한 모습은 스페인이나 이태리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된다. 이는 정액형을 실시하는 뉴질랜드의 연금급여가 평균소득 1/2배 계층 소득대체율 약 70%인 반면 1.5배 계층에게는 소득대체율이 약 30%로서 상당한 재분배 효과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OECD Pensions at a Glance 참조).
연금에서의 경험은 보건에서도 일부분 발견된다. 대체로 민간의 역할이나 전달체계에서 영리/비영리단체의 역할이 클수록 지출이 높은 것이 발견되며, 조세방식을 채택하고 전달체계가 보다 강력한 국가의 통제를 받고 있는 NHS방식 혹은 강력한 총액예산제나 포괄수가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에서 더 낮은 지출을 보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연금과 보건과 지출에 대한 관계를 시론적으로 검토해본 결과 1) 높은 지출이 반드시 높은 복지성과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며, 2) 민간의 역할이 강하고 재분배가 약한 구조를 가진 정책이 더 낮은 복지성과와 더 높은 복지지출을 생산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가설적 결과가 한국 복지발전에 주는 함의는 무조건적인 복지팽창보다는 1) 재분배적 함의를 가지고 2) 공공의 역할이 강한 구조를 가진 정책을 발전시키는 것이 지속가능성 높은 복지국가를 위해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번 제도가 도입되면 쉽게 변화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감안할 때 복지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현재 어떠한 구조를 가진 제도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얼마나 큰 제도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증거2
복지국가에서 연금과 보건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지만, 복지국가 유형에 따라서 차이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서 미국의 경우 두 영역의 공공지출을 합할 경우 전체 공공지출에서 약 80%를 차지하게 된다. 반면에 대륙유럽의 경우 가족이나 실업 그리고 적극적노동시장정책 등에 지출이 낮지 않기 때문에 이 두 지출에 대한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그렇다면, 이 두 영역을 넘어서 전체 복지국가 공공지출과 민간지출 및 세제효과를 감안한 순사회지출(net social expenditure), 그리고 복지성과나 재정 지속가능성과는 어떠한 관계가 존재할까? 이 질문 역시 짧은 지면에 구체적인 분석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의 상관관계 표를 통해서 복지지출과 주요 변수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 가설적인 관계 및 간략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다음의 표는 2006년부터 2010년 사이의 주요 변수들의 평균값 혹은 수치를 얻을 수 있는 값을 중심으로 분석되었다. 복지국가의 성과를 나타내는 주요지표로는 평등(GINI 계수), 고용율, 그리고 정부재정적자를 넣었으며, 복지국가의 양(quantity)를 나타내는 지표로는 공공사회지출, 그리고 질(quality)을 나타내는 지표로는 탈상품화지수(2000년대 초반 자료, Comparative Welfare State Entitlement Dataset)가 사용되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민간 및 재분배 역할을 보기 위해서 민간사회지출과 세제효과(복지 관련 세제혜택-급여에 대한 세제)를 합한 값이 사용되었다. 세제효과가 높을수록 재분배효과가 낮다고 할 수 있다. 간략한 결과를 보면 앞서 언급한 바와 유사한 결론들을 얻을 수 있다. 평등과 공공사회지출 그리고 평등과 탈상품화지수 사이에는 매우 높은 상관관계가 발견되었다. 반면에, 민간지출 및 세제효과(자유주의 모형일수록 높음)의 경우 평등과 부적인 상관관계를 보였으며, 또한 민간지출 및 세제효과는 공공사회지출이나 탈상품화에 매우 높은 부적 상관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반해서 높은 공공사회지출이나 탈상품화가 정부재정적자나 고용율에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갖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전체 지출 수준보다는 어떤 형태의 지출인가가 더욱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한 예로 공공사회지출로는 덴마크가 미국보다 약 두 배 가까이 높지만, 민간지출과 세제효과를 더하게 되면 미국이 덴마크보다 더 지출하는 것을 볼 수 있다(최영준 2011). 사회의 다양한 복지지출을 합하게 되면 국가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떤 복지조합이 더 좋은 결과를 산출하는가가 중요한 답변일 것이며, 그 답변은 경험적으로 일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연금이나 보건 그리고 사회복지서비스에서 민간의 역할이 증대되고, 과감한 세제를 통한 재분배보다는 세제혜택을 중심으로 복지국가가 형성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한국에서는 이러한 결과를 보다 주의 깊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복지지출을 통한 소득재분배를 도모하기 이전에 공공의 역할이 강한 사회정책을 바탕으로 복지지출 증가를 도모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이상
최근에 읽은 Steinmo(2011:81) 책에서 한 구절을 소개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Steinmo는 스웨덴의 국가발전을 일본과 미국과 비교하면서, 제도의 진화가 가져온 다른 모습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한 부분에서는 다음과 같이 스웨덴 부자들의 인식을 잘 엿볼 수 있는 부분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 부분은 바로 앞선 증거들을 생활의 언어로 통역한 것이다.
“스웨덴의 고소득자들은 이러한 선택을 잘 알고 있다. ”왜 스웨덴을 떠나지 않는가? 확실히 네가 미국에 간다면 더 높은 소득을 벌 수 있고, 더 낮은 세금을 낼 수 있을텐데.“와 같은 질문에 볼보의 한 간부는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확실히, 너는 미국에서 더 낮은 세금과 더 높은 소득을 벌게 될테지. 하지만, 아마도 나는 7시 전에는 절대 집에 들어올 수 없을 것이며, 나는 여기서 모두가 누리고 있는 휴가도 갖지 못할지 몰라. 그리고 너 또 아니? 나는 민간보험이나 내 아이들의 대학비용, 그리고 가족들을 만나러 (스웨덴에) 오가는 비용 등에 더 많은 돈을 써야할지 모른다구. 나는 미국에 있는게 정말 더 나은지 모르겠어.“
참고문헌
Esping-Andersen, Gösta 1990. The Three Worlds of Welfare Capitalism.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Gough, Ian 2000. “Social welfare and competitiveness.” In Global Capital, Human Needs and Social Policies: Selected Essays 1994-1999, ed. Ian, Gough. London: Palgrave, pp. 177-202.
Steinmo, Sven 2011. The evolution of modern stat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Therborn, Goran 1983. “When, How and Why Does A State Become A Welfare State?.” Paper presented at the ECPR Joint Workshops, 20-25 March 1983, Germany: Freiburg.
최영준. (2011). 한국 복지정책과 복지정치의 발전: 생산주의 복지체제의 진화. <아세아연구>, 54(2):7-41.
월간 <복지동향> 2012년 4월호(제1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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