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2 2012-09-15   1267

[동향4] 서울 공공의료마스터플랜 평가와 진단

서울 공공의료마스터플랜 평가와 진단

 

김명희ㅣ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상임연구원

 

 

1. 들어가는 말

지난 7월, 서울시는 “건강서울 36.5”라는 서울시 건강전략 (이하 ‘건강전략’)을 발표했다. 이는 시민들과 전문가 등 1천여 명이 참여하여 총 1백회가 넘는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고, 보건소와 시립병원, 보건의료 단체들과의 청책은 물론 정부 부처 내외의 협의 끝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 없는, 모두가 건강을 누리는 서울을 만들겠습니다”는 야심찬 인사말과 함께 “건강수명은 늘리고! 건강격차는 줄이고” 라는 핵심 슬로건이 제시되었다.

 

기존의 보건정책이 대개 “보건의료서비스” 제공 확대에 치중했던 것에 비해, ‘건강전략’은 진일보한 면을 보이고 있다. 시장의 정책적 의지가 반영된 종합적인 건강전략을 마련했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이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행위자들과 상당한 정도로 소통했음은 괄목할 만하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건강 수준의 전반적 향상 뿐 아니라 건강불평등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또한 건강이 ‘권리’임을 명시적으로 표명하면서 의료서비스 이외에 건강을 지원하는 환경에 대한 고려는 물론, 저개발 국가에 대한 지원과 시민참여 등 인권과 연대, 민주주의 가치까지 포괄하려 했다는 점은 매우 높이 살 만하다. ‘건강전략’은 사망률이 줄고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자치구별 건강격차가 심화되고 의료취약계층은 늘어났다는 진단, 건강관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커졌지만 서울의 공공보건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진단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건강수명의 연장과 더불어 건강격차를 감소시키기 위해 ① 질병예방/건강관리, ② 질 높은 공공보건의료 제공, ③ 건강을 지원하는 환경조성을 주요 과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모습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몇 가지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과 절차는 조율 과정에서 바뀔 것이고, 예산과 관련해서도 세부적인 고려사항들이 더해질 것이기에 항목 하나하나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취하고 있는 건강전략의 프레임, 그리고 전략 달성을 위한 접근법과 정책수단과 관련해서는 문제점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이로부터 논쟁이 촉발되고, 더 큰 그림 속에서 서울시 건강전략의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길 기대한다.

 

 

2. 진정 ‘보건의료서비스’를 넘어섰는가?

우선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서울시의 ‘건강전략’이 기존의 보건의료 프레임을 얼마나 넘어섰는가 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건강격차, 권리로서의 건강을 이야기하고, 공공보건의료 뿐 아니라 건강을 지원하는 환경 조성을 명시적으로 밝혔지만, 수사적인 표현을 넘어 실제로 광범위한 건강결정요인 개념을 채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세계보건기구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위원회’가 분명히 밝혔듯, 사람들의 건강 수준은 보건의료체계나 생물학적 요인 뿐 아니라 태어나고 성장하고 살아가며 일하고 나이 들어가는 일상생활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건강불평등은 이러한 일상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건강을 증진시키고 건강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폭넓은 사회적 결정요인 관점을 채택하고 이에 대한 중재를 병행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의 ‘건강전략’은 대부분 개인에게 제공되는 보건의료 및 공중보건 서비스, 행태변화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 역량강화라는 측면에서 개인들이 스스로 건강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문제는 건강에 영향을 주는 일상적인 사회적․경제적․문화적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생활습관의 교정, 개별적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적절한 건강관리를 하지 못하는 가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개인별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고, ‘토요 어린이 건강클럽’을 운영하고, ‘절주운동’을 벌이는 것이 기존의 건강증진사업과 얼마나 다른 것인가?

 

생각해보자. 이를테면 어린이 건강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환경은 무엇인가? 두 말 할 것 없이 가정, 그리고 보육 혹은 학교 환경이다. 그렇다면 아동빈곤, 부적절한 양육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부모의 소득보장, 양육 관련 휴가, 건강한 학교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서울시가 하려고 하는 산모-영아 방문간호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전혀 충분치 않다. 아마도 서울시는 해명할 것이다. 이런 일들은 보건 부처의 소관이 아니라고. 혹은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최저임금이나 소득보장 같은 것은 서울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성인기 건강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성인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환경은 무엇인가? 바로 일터이다. 일터는 물리적․화학적 유해인자와 장시간 노동, 교대근무, 직무스트레스와 감정노동 같은 건강위험요인들을 직접 경험하는 장소이자, 생계의 토대가 되는 곳이다. 서울시는 고용노동부가 아니기에 고용과 근로환경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영향력 있는 구매자이자 대기업에 맞먹는 고용주이면서 규제기관이기도 하다. 직간접적으로 어린이들의 건강,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환경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상당하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스스로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면서 ‘건강’과 ‘보건’의 이름표가 달리지 않은 업무에 대해서는 손을 내젓고 있다.

 

건강정책 혹은 건강불평등 완화 정책의 기본 원칙은 보건관련 부처들이 성실하게 자신의 업무를 잘 하는 것에 있지 않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정책에 건강의 관점이 녹아들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Health in All Policies”). 서울시 보건정책팀이 보건의료 부문만의 노력으로 서울시민의 건강을 개선하고 건강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2010년에 제출된 런던시의 건강불평등 완화 전략은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과 관련한 포괄적 접근전략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① 개인과 지역사회의 역량 강화 (바람직한 건강생활습관에 우호적인 환경 조성 포함), ② 양질의 보건 및 사회서비스에 대한 공평한 접근, ③ 소득 불평등과 건강, ④ 일과 건강, ⑤ 건강한 지역” 이라는 5대 전략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부문 간 협력 (정부 부처 간, 정부와 민간 사이)과 런던시의 리더십을 주요 접근법으로 삼고 있다.

 

 

3. 실행의 문제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의 목록은 매우 길다. 앞서 제기한 건강결정요인에 대한 근본적 중재는 차치하더라도, 제시된 보건사업들이 일관된 흐름 속에서 제대로 작동할 것인지도 우려스럽다. 이를테면 24시간 전문가 건강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건강콜 서비스’, 건강검진 후 사후건강관리체계인 ‘건강주치의 서비스’가 있다. 마을 주민의 건강을 돌보는 ‘서울형 보건지소’ 확충 사업에, 약국에서 건강관리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건강증진협력약국’ 사업도 있다. 고령사회를 대비한다는 ‘어르신 건강돌봄체계’는 물론 별도이다. 이렇게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개별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상호 보완하면서 시민들의 일상적인 욕구를 채워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평소에 먹던 고혈압 약과 관련한 궁금증이 생기면 서울 건강콜에 전화해야 할까, 아니면 건강주치의한테 물어볼까? 보건지소를 찾아갈까, 아님 약국에 갈까? 65세가 넘었으니 노인건강증진센터를 가야할까, 아니면 그냥 동네 보건지소를 가도 될까? 공급자 입장에서는 전문성과 포괄범위에 따라 세심하게 서비스 제공을 구분한 것이겠지만, 이건 그야말로 공급자 마인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전체적인 틀이 없이 기존의 사업들을 배치하고 부서별로 업무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러한 결과가 생겼으리라.

 

실제로 다른 부처에서 시행하던 관련 사업들과의 조정이 충분한지도 의심스럽다. 이를테면 ‘환자권리 옴부즈만’ 제도를 운영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기존의 의료분쟁조정위원회와 어떻게 연계되고 업무가 나누어질지 불분명하다. 시민단체가 서울시 차원에서 의료이용 관련된 민원상담을 하고 권리침해 모니터링, 심층조사, 피해예방지침을 제공하고 매뉴얼을 개발하는 것이 적절할지도 의문이다. ‘마인드 SOS 센터’를 통해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신건강증진사업을 한다는데, 이것이 고용노동부 주도의 영세사업장 보건관리 프로그램이나 일터 기반 건강증진 사업들과 어떻게 연계되는지 알 수가 없다. 산발적이고 조정되지 않은 사업과 프로그램들은 예산낭비와 비효율성, 그리고 비효과성으로 귀결될 수 있다.

 

더욱이 행정부처인 서울시가 서울시의회, 다양한 시민사회와 어떻게 협력하면서 조정과 연계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건강전략’에는 잘 드러나 있지 않다. ‘시민참여에 의한 지역건강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서울시민건강회의’를 조직하는 것은 참여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해보인다. 하지만 시민 개개인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 ‘제도화된 대의기구’인 시 의회와 긴밀한 협조 혹은 긴장관계를 잘 유지해나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전략과 접근방법에 대한 논의를 일단 접고 사업 실행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실행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과 인력이다. 사실 서울시의 ‘건강전략’ 문서에는 구체적인 실행예산이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적절성 여부를 판단할 길이 없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큰 문제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제시한 야심찬 기획들의 실천을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서울 서북부/동남부 지역 공공병원 설립과 관련된 예산이 2015년 이후에야 집중 배치되어 있다는 점은 이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또한 인력과 관련한 설명도 불충분하다. ‘공공의료인력 확보와 역량강화’를 한다고 했지만, 현재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방문간호사의 고용안정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에서도 간병 노동자의 일자리와 근로환경에 대한 계획 대신 “간병인은 자원봉사 등 민간자원을 최대로 활용”이라고만 설명되어 있다. 자칫, 공공서비스 공급 확대가 노동자와 소비자로서의 시민 사이의 갈등으로 점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대인 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인력 확보와 건강한 노동환경 보장이 전제되지 않는 공공 서비스 확대는 그저 레토릭이거나 혹은 노동착취로 귀결될 수 있음을 서울시는 깨달아야 한다.

 

 

4. 결론

서울시의 ‘건강전략’은 사업의 실행수단들이 확정되지 않았기에, 향후 우선순위 설정이나 구체적인 실행 과정에서 변화의 여지가 클 수 있다. 이는 어쩌면 긍정적인 신호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전체적인 방향과 사업의 우선순위를 전환하기 위한 시민사회진영의 노력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시민사회운동 진영은 ‘보건의료’ 영역 너머로 건강문제의 지평을 확대하고, 서울시가 ‘건강결정요인’, ‘노동과 인권’, ‘민주적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건강 전략을 기획하고 사업을 실행해나갈 수 있도록 한편으로는 협력과 다른 한편으로는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는 개별 사업들의 완결성도 중요하지만, 앞서 지적했듯 건강문제를 이해하는 전체적인 프레임과 접근방식에서 급진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건강 수준의 향상과 건강 불평등의 완화는 보건서비스의 제공만으로 결코 달성할 수 없다. 건강 결정요인을 둘러 싼 부처 간, 부문 간, 다양한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협력과 조정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서울시의 민주적 건강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서울시는 시민의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스스로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월간 <복지동향> 2012년 09월호(제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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