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정신보건 민간 활동의 성과와 과제;서울역 거리노숙인 상담활동을 중심으로
서정화 | 열린여성센터 소장
밤 11시, 실무자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큰일 났어요! 000씨가 한강에 있다며 전화를 했어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동안 모았던 돈은 장롱 안에 적어둔 엄마연락처로 연락해서 전해주래요. 20여분 간 통화했는데… 사고가 생기면 어떡하죠?? 느낌이 안 좋아요!!”
혹시나 일이 생길까 걱정되어 부랴부랴 경찰과 119에 신고하여 핸드폰 위치 추적으로 찾아봐 달라고 하고,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다행이 한 시간 반 동안 통화하면서 속상했던 마음들을 다 털어놓은 후에 안정되어 새벽 2시경에야 상황이 종료되었다. 그날 실무자는 불안한 마음에 거의 밤을 새웠다. 직장도 다니면서 저축도 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어서 마음을 놓았던 식구였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시설에서 일을 하다보면 식구들의 안색을 살피는 일이 습관이 된다. 몇 년 전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던 식구가 한강에서 뛰어내려 놀란 이후로 식구들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무슨 일이 있는지 꼭 확인을 한다. 모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머물며 함께 생활해야 하는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좌절스러운 현실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이 없겠지만, 그래도 실무자가 걱정하는 마음을 전달이라도 하고자 묻곤 한다. 이젠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의 위로라도 되고파서이다.
노숙인에게 있어서 정신건강 문제는 단시일 내에 해결하기 힘든 가장 큰 어려움이며 탈노숙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노숙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기도 하다. 집도 잃고 가족도 잃고, 직장과 사회적 관계를 모두 잃고 고립된 거리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과정에서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겪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노숙의 과정에서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좌절감, 절망감이다. 오늘밤 당장 갈 곳이 없고, 오늘 하루 세끼 식사를 걱정하며, 혹시라도 거리에서 아는 사람들을 만날까 전전긍긍하는 삶의 상황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자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피해를 줬던 사람들에 대한 상처를 달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술에 몸을 맡기고 지금 마주한 현실을 잊으려하거나 혹은 지금 마주한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는 부정을 통해서 견뎌내려 한다. 물론 노숙을 하는 사람들에게 알코올 의존이나 정신질환 유병률이 높게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 노숙화 과정에서 갖게 된 어려움보다는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질환 등 개인적 취약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나 서비스에서 배제된 결과로 보는 연구들도 있다(신원우, 2003). 노숙화 과정에서 알코올 의존 등 정신건강이 악화 되었거나 혹은 알코올 의존, 정신질환 등으로 인해 노숙을 하게 되었거나 현재 나타나는 노숙인들의 정신건강은 일반인에 비하여 매우 나쁜 상황이다.
노숙인의 정신건강을 연구한 보고서들에 의하면 노숙인의 알코올의존 유병률은 29.62%~62.6%로 조사되어 일반인의 알코올 의존율보다 3배 이상 많게는 8배이상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알코올 문제를 가지고 있는 노숙인들은 다른 정신장애의 유병률이 높고 사회적 기능과 직업적 기능면에서 손상이 더 심하다(Koegel&Burnam, 1987). 특히 간질환, 신경장애, 경련발작, 고혈압, 폐결핵, 소화기장애 등을 가지는 것으로 보고되어 다른 신체적 건강문제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Wright, 1990). 정신질환 유병률의 경우에도 일반인은 평생유병률이 27.6%인 것에 비해 노숙인은 평생유병률은 73.6%로 2배 이상 높다.
이러한 노숙인의 정신건강의 심각성은 거리노숙인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노숙인 복지시설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노숙인들 중에는 노숙상황에 처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보를 모른 채 거리노숙 생활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신질환 및 알코올 문제에 대한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몇 년씩 장기간 거리 생활을 하고 있는 노숙인들도 있다. 이렇듯 몇 년씩 장기간 노숙생활을 하는 경우는 심리적,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 매우 악화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간의 노숙인 지원정책은 자립과 자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이들 정신건강의 고위험군은 거리에서 방치된 채, 장기간 노숙생활을 하는 노숙 만성화의 길을 걷고 있다. 특히 거리에서 생활하는 만성적인 거리노숙인은 자활관점의 대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현재의 상담보호센터와 시설지원체계 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
노숙인을 지원하는 시설 등 민간단체와 학계에서는 거리노숙인에 대한 효과적인 개입을 위해서는 거리노숙인의 심리적, 정신적 건강상태와 욕구를 파악하고 이에 따라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꾸준하게 밝혀왔다. 특히 알코올문제, 정신질환 등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숙인에 대해서는 치료와 재활, 경제적 활동을 연계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함을 제기했다. 또한 노숙인에 대한 정신보건서비스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 노숙인 복지서비스 체계와 지역사회정신보건 서비스 체계에 대해 추가적인 전문적 자원의 투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안했다(신원우, 2004, 남기철 2007). 노숙인 지원의 재활서비스 체계 구축과 더불어 거리노숙인의 알코올 문제 및 정신질환 문제에 대한 정신건강 사례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된 결과,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서울정신보건센터에서 모바일팀을 구성하여 거리노숙인의 정신건강 사례관리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시범적인 사업으로 2년여 만에 중단된 채 지속되지 못했고 이후부터 거리노숙인의 정신건강 문제는 정책지원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러한 거리노숙인의 정신건강 문제가 정책적 관심으로 다시 떠오른 것은 2011년 7월 코레일의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방침 이후였다. 서울역 거리노숙인이 이슈화 되면서 정신 질환이나 알코올 문제로 거리노숙을 벗어나고 있지 못한 노숙인에 대한 전문적 치료개입의 필요성이 현장으로부터 대두되었고, 이에 대한 정책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노숙인 정신보건 민간 활동팀의 구성
2011년 8월 22일 민간단체인 서울노숙인복지시설협회와 NCCK홈리스 대책위원회, 홈리스 연대는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정책담당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하여, 서울역 거리노숙인 중에서 알코올 및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노숙인에게는 정신보건의료전문가 개입이 필요함을 제기했다. 정신과의사가 사회복지사와 함께 거리현장에서 직접 상담을 하면서 정신건강 상태를 판단하여 치료가 필요한 경우 치료서비스체계로 옮겨갈 수 있도록 해야 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예산 등의 문제로 단시일 내에 사업으로 추진하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칫 치료연계 과정에서의 인권문제 발생 소지가 있고, 사업의 효과성 또한 담보되기 어려우므로 민간 차원에서의 활동이 선행된 후에 이를 토대로 정부정책화하자고 제안했다.
이 간담회를 통해 민간차원에서 정신의료 전문가와 사회복지사로 구성된 자원봉사팀을 꾸려서 활동하는 방안이 논의 되었다. 이후 보건복지부의 거리노숙인 대책의 민간활동영역으로 「위기관리팀」이라 명명된 거리노숙인 정신보건 상담활동은 노숙인 상담의 경력이 많은 중견사회복지사로 이루어진 현장대책팀과 정신보건 의료전문가와 내과전문의 등으로 이루어진 ACT팀으로 구성되어 활동했다.
우선 활동에 필요한 자원활동가 구성, 예산 마련 등을 각각 민간단체에 맞춰 역할을 분담했다. 의료진 구성과 현장사회복지사는 민간단체인 서울노숙인복지시설협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홈리스대책위원회가 담당했고 활동 시 시설입소를 원하는 노숙인의 입소지원을 위하여 한국부랑인시설협회에서 차량지원 및 인력지원을 하기로 했다. 또한 내과진료 등을 위해 사단법인 굿피플이 의료진과 함께 진료차량을 지원하기로 했다. 활동에 필요한 경비는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홈리스대책위원회의 기금으로 마련하기로 했다.
의료진과 사회복지사 등 민간의 자원봉사를 통하여 구성된 자원활동가팀은 2011년 11월부터 2012년 2월말까지 3개월여 기간 동안 매주 3회씩 서울역 인근의 만성적인 정신질환 및 알코올 문제를 가지고 있는 거리 노숙인에게 정신보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정신보건의사들이 직접 찾아가는 야간아웃리치상담을 실시했다.
이러한 모든 활동에 연인원 363명이 참여했고, 총514명을 상담하여 그중 53명이 시설 입소, 20명이 알코올 및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6명이 주거지원을 받아 거리를 이탈했다. 이중 입원치료를 받은 20명의 성별비중은 여성이 10%이며, 남성이 90%를 차지한다. 질환 유형은 알코올 의존 60%, 정신분열 25%, 치매 등 기타 15%를 차지했다. 굿피플 사랑의 의료봉사 차량이 함께 참여한 내과 등 기타 진료활동은 총 11회, 연인원 39명이 참여하여, 102명을 진료했고 655건의 약처방과 검사를 진행했다
거리노숙인 정신보건 개입의 가능성
그 동안 거리노숙인이 갖고 있는 어려움은 주로 알코올 중독과 정신질환 문제 등 만성질환이 주요한 문제이며, 이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시스템의 구축, 재활서비스 제공시설의 확충, 정신보건 전문요원의 현장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그러나 현장이나 학계의 메아리 없는 외침에 지나지 않았을 뿐 정부의 정책으로 자리매김 되지 못했다.
이러한 만성화된 거리노숙인의 알코올 및 정신질환 문제에 대한 개입을 위해 정신보건의료전문가와 정신보건 전문요원, 사회복지사, 현장 상담활동가로 구성된 팀이 함께 현장상담을 했던 지난 동절기 3개월간의 민간활동은 그 동안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며 방치되어 오다시피 했던 거리노숙인의 알코올 문제와 심각한 정신질환에 대한 개입의 가능성을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
첫째, 그동안 거리노숙인의 정신건강문제에 대한 접근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강제입원에 대한 인권문제였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는 정신건강의 악화를 보면서도 치료연계를 하지 않고 거리에서의 생활을 지원하는 것이 인권을 보호하는 것인지, 본인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병원에 입원의뢰를 하는 것이 건강권, 인권을 보호하는 것인지가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 논쟁점이 되곤 했다. 정신보건 전문가들이 진단하여 전문가에 의한 입원조치를 할 경우에도 신중히 다뤄져야할 문제이기에 현장활동가들이 조치를 하기는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나 이번 동절기 활동 결과를 보면, 알코올 및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20명중 17명이 본인의 선택에 의한 자의입원이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알코올중독 문제를 갖고 있었다. 이를 맡았던 상담원은 정신보건 및 알코올 문제에 대한 개입경력을 바탕으로 노숙인에게 직접 다가가 알코올 중독으로 겪고 있는 다양한 증상을 설명하며 상담했고, 치료의 가능성과 입원 이후의 연계를 약속하며 치료설득을 했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는 현장상담을 진행하는 상담원들이 정신건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담 시 질환과 관련된 문제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적극적인 치료연계 상담을 할 경우, 치료설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전문가에 의한 입원설득은 오래된 관계형성을 통한 설득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치료설득의 효과성을 기대하게 한다.
둘째, 지속적인 사례관리를 통한 재노숙의 예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상담을 통하여 자의로 입원한 경우에는 사례관리자가 격주 1회 정도 병원을 방문했으며, 병원과의 네트워크 형성으로 수시로 필요한 사항들을 지원하면서 입원 후에도 사례관리를 지속했다. 그 결과 입원한 20명중 3명만이 일시적으로 병원 이용 후 퇴원했으며, 16명은 스스로 치료하겠다고 결정하고 3개월 이상 병원치료를 지속하고 있다
입원한 사람 중에는 거리에서 음주로 인해 병원에 실려 가서,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 후 다시 거리로 나온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동절기 활동에서는 현장상담원과 의료진이 함께 하면서 치료적 신뢰관계 형성을 바탕으로 자의에 의한 입원을 실시하고, 이후 사례관리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관계를 형성하도록 했다.
입원 이후에 대부분 주민등록 복원을 했고, 호적을 새로이 만든 경우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사망신고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복원하기도 했다. 알코올 중독인 경우 대부분 내과질환을 갖고 있어서 내과치료를 위한 병원비 지원 등 지원활동도 진행했다. 이러한 지속적인 사례관리는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노숙인들에게 병원에 가둬지는 것이 아니라 치료 후 연계라는 신뢰를 주게 되어 치료효과를 높이고 있다.
셋째, 정신보건 전문의의 사례에 대한 수퍼비전과 거리상담의 효과다. 정신보건의료진이 매일 거리상담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므로 촉탁의 제도 등을 통한 정기적 사례회의와 수퍼비전, 필요시 촉탁의의 거리 상담을 병행할 경우 개입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발견되었다. 거리아웃리치 상담원들이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문적 상담을 실시할 경우 거리노숙인의 정신건강 증진의 효과를 발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동절기 동안 알코올 및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갖고 있는 거리노숙인에 대한 민간 자원활동가들의 정신보건상담 활동은 성과도 있었고 몇 가지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동절기 3개월이라는 제한된 기간의 시범사업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활동시작 전부터 현장에서는 정신과 의료진이 거리를 직접 아웃리치 하면서 활동을 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거리노숙인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 최소한 1~2년의 장기적인 계획으로 사업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시범사업이 종료된 현재, 진료상담을 했지만 아직 치료연계가 되지 않았던 사례에 대한 추가개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팀이 해체된 후에는 입원상담을 진행했던 사회복지사의 열정에 의거한 사례관리에 의존하게 되는 등 활동의 성과가 이어지지 않고 단절되고 있는 것은 제한된 기간의 시범사업이 갖고 있는 한계다.
이번 민간 활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보건복지부에서는 거리노숙인의 정신건강 지원활동을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민간기금 지원을 받아 올 하반기부터 각 시도별 「위기관리팀」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위기관리팀이 노숙인의 정신건강 증진이라는 열매를 갖기 위해서는 정신보건전문요원의 상담, 정신보건 의료전문가의 결합, 경력있는 현장 상담가의 결합이 중요하다. 또한 지속적인 사례관리에 중점을 둬야 한다.
더불어 올 해는 민간기금으로 시작되더라도 2013년부터는 정부의 예산사업으로 추진되어 거리노숙인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전문적인 개입이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2년 6월호(제1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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