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4 2014-08-10   1198

[동향2] 공공기관 노조가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려면

공공기관 노조가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려면

박태주 l 고용노동연수원 교수

 

‘개혁’의 단골메뉴, 공공기관 개혁

 

김영삼 정권 때부터 그랬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집권만하면 공공기관 개혁을 내세웠고 그 칼끝은 노조를 향했다. 국민의 정부시절에는 민영화가 봇물을 이뤘다면 참여정부는 공공기관의 지배(통제)구조를 정비했다.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정책으로 이어받았고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밀어 부치는 중이다.

 

공공기관은 규모가 크고 역할이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싫어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공공기관은 방만경영이 낳은 신의 직장이며 고용은 철밥통이다. 민영화와 경영효율화가 답이다.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심지어 공공기관의 빚은 왜 생겼는지 모르겠지만(방만경영의 탓이다?), 니네들이 갚으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공공기관들은 한 마디로 복마전이고 노조는 그들과 한통속인가. 노조는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동네북이 되고만 걸까?

 

 

이 글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공공기관 노조가 실리추구에 매달린 나머지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잃어왔던 것은 아닌가. 그래서 공공기관 노동운동이 사회적으로 승인받지 못하면서 정당성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진행 중인 공공부문 정상화대책만 하더라도 노조가 내세울 수 있는 대항담론은 무엇인가.

이 글은 정부의 공공개혁 정책에 대한 노조의 대응은 공공성을 축으로 하는 담론, 즉 공공서비스 노조주의를 기반으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한다. “공공기관 노동운동이 어떻게 공공성을 대표하는 사회운동으로 전환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공서비스 노조주의란

 

성공회대의 신정완 교수는 공공성이란 용어는 신자유주의 개혁에 저항하는 사회세력을 묶는 공통화두가 됐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공공성의 정의는 다양하고 모호하다. 일반적으로 공공성이란 사적인 영역에 대비되는 공적인 영역으로 전체 사회구성원의 이익을 실현시키는 것을 말한다. 기본적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평등한 접근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에너지 공공성’, ‘교육의 공공성’ 등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민영화 반대투쟁도 기본적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공공성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회환경과 권력관계의 틀 내에서 구성원이 어떻게 결정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공공성을 무엇이라고 선험적으로 규정짓는 것이 니라 일정한 절차를 통해 형성되는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지배구조, 나아가 민주주의의 개념과 연결된다. 밀실에서 소수가 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결정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이해당사자들이 죄다 개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공공서비스 노조주의(public service trade unionism)란 한 마디로 공공기관의 공공성, 즉 공공서비스의 질의 제고를 노동운동의 주요한 지향으로 삼는 노동운동을 말한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 노조들은 다른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공공서비스의 결정과정에 개입하고 참여하려고 애쓴다. 

 

공공기관에서 공공서비스의 질은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공공기관에서는 “실리조차 정치적이다”. 공공기관의 지배구조는 물론 운영이나 인사, 예산 어느 것도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노동운동은 본질이 정치다. 공공부문 노조는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작업장을 넘어 시민사회단체나 지역공동체와 연대한다. 연대의 고리는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의제를 포함한다.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업장 내부의 개혁을 간과할 수 없다.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공공개혁, 즉 신공공경영(new public management)을 추진하여 왔다. 경영효율화를 위한 내부경쟁의 도입과 상시적인 구조조정, 민영화·외주화의 추진은 그 대표적인 수단이었다. 

 

이런 사실은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내부개혁의 문제를 제기한다. 신공공경영 대신 신공공서비스(new public service)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사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 그것이다. 노조가 공공서비스 담론을 수용한다면 이는 노사가 공동의 목표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사 쌍방이 주체가 되면서 파트너십을 맺을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공공서비스 노조주의는 내부적인 혁신과 정치적ㆍ사회적 연대를 통해 자신의 요구뿐 아니라 공공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노조의 지향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는 정치적 노조주의, 사회운동 노조주의는 물론 사회적 대화나 노사 파트너십까지 포괄하는 공공기관 노동운동의 종합적인 지향으로 봐야한다.

 

공공서비스 노조주의의 실현을 향하여

 

 공공서비스 담론에 입각한 공세적인 담론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은 공공기관은 부채감축이 필요하며 그것은 기능조정이나 자산 매각, 방만경영의 해소 등을 통해 달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관의 자율적인 부채감축을 내세우며 은근슬쩍 자신의 책임까지 기관에게 돌려버린다. 그러면서 방만경영이라는 핑계로 노조에 화살을 돌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능조정이나 자신매각을 통해 우회적 민영화를 달성하려 든다.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서 내세우는 ‘부채담론’은 자신들이 설정한 의제다. 그만큼 정부에 유리한 의제라는 의미다. 부채담론은 도덕적 해이나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을 고유하게 내포하고 있다. 노조로서는 그만큼 수세적이 될 수밖에 없다. 공공서비스 담론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 있다.

 

부채담론이 노조에 대해 방만경영의 책임을 묻는다면 공공서비스 담론은 공공성 훼손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는다. 또한 전자가 효율성이나 경쟁을 앞세운다면 후자는 공공성이나 복지, 사회적 연대를 중시한다. 공공기관 노조가 공공서비스 담론을 전면에 내건다는 사실은 이제 노조가 개혁의 주체로 나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어적인 지키기가 아니라 공세적인 문제제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공공서비스 담론을 공세적으로 내세운다면 부채의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은 직접적이고도 우선적인 작업에 속한다. 지금 정부가 하듯이 부채의 원인 진단도 없이 처방전을 발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채의 대표적인 원인은 ‘정부의 방만경영’이다. 정부가 정권의 브랜드 사업을 공기업에 떠넘겨온 것이다. 4대강 사업과 아라뱃길(경인운하)은 책임자 처벌까지 필요한 대표적인 사례다. 책임자 처벌에는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자는 물론 기관의 경영진이나 이사까지 포함돼야 한다. 구상권의 행사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거 부실에 대한 책임자 처벌은 미래의 부실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산업용 전기요금에서 보듯 낮은 공공요금이 원인이라면 요금인상이나 세금투입이 불가피할 것이다.

 

공공기관의 지배구조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그간 지배구조의 역할이란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듣기는커녕 정부의 정책을 뒷북치듯 합리화시켜주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공공기관의 전략적 의사결정과 경영활동이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지도록 내부 및 외부의 이해관계자들이 견제하고 감시하는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지배구조의 개선을 말할 때 그 중심에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가 자리를 잡고 있다. 공운위의 위상과 구성, 그리고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가 논란이 된다. 그 가운데서 노조의 참여는 핵심적인 의제다. 그런데 이 경우 “시민들이 노동운동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노조의 공운위 참가는 승인하겠는가”는 아픈 질문에 속한다.

 

낙하산 인사의 근절도 중요하다. 공공기관 과다부채와 방만경영만 하더라도 전문성과 조직 장악력이 떨어지는 낙하산 인사와 무관하지 않다. 도덕적 해이의 대표적인 형태가 방만경영이라면 정부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의 이익과 상충되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방만경영에 해당된다,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가 낙하산 인사다. 제 눈의 들보인 셈이다. 정부가 방만경영을 잡는다며 다른 방만경영을 지속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정부는 정상화 대책을 추진하면서 공공서비스는 외면한 채 지엽적인 현상을 ‘정상화’시키려드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과연 방만경영이 공공기관 비정상의 대표적인 사례고 최우선 해결과제인가.

 

공공서비스 노조주의의 인프라 구축

 

노조가 내부적·자체적으로 개혁의 인프라(하부구조)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첫째는 산별조직체계를 구축하고 교섭체제를 중앙으로 집중화시키는 일이다. 공공기관 노조들은 정부라는 실질적인 사용자를 공유하고 있다. 정부는 일관된 지침을 통해 공공기관의 운영에 개입하는가 하면 노사관계를 통제해왔다. 공공기관 노조들이 연대는 물론 노정교섭을 추진하고 그 조직적 토대로 산별노조의 건설을 서두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공공서비스의 질이 정치적으로 결정된다면 산별체계는 공공성을 담는 그릇이다.

 

물론 정부가 교섭의 당사자로 참여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그러나 노정교섭의 길이 멀다는 것이 산별체제의 구축을 늦출 이유는 못된다. 교섭이 아니더라도 노조는 정치적 교섭력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 공공서비스의 질의 제고나 범위의 확대는 대부분 단체교섭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압력의 산물이다. 산별체제는 무엇보다 기관별로 흩어진 노조의 힘을 중앙으로 모아 정치적으로 집중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산별체계의 바깥에는 사회적 연대라는 동심원이 자리한다.

 

사회적 연대는 노조의 투쟁을 정치적으로 엄호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정부를 압박하는 정치적 효과를 지닌다. 노동조합이 사회개혁을 목표로 삼아 사회적 연대를 추진하는 것은 노동운동 재생(renewal)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노조가 실리주의의 포로라는 사회적 비판으로부터 벗어나고 사회단체와 연대를 통해 담론의 지평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과 시민은 신자유주의 공공개혁의 과정에서 공동의 희생양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연대의 고리가 형성된다.

 

공공성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는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을 막아야 한다. 특히 비핵심업무의 외주화라지만 실제로는 핵심업무(필수유지업무)까지 외주화되면서 민영화의 전단계를 형성하고 있다. 나아가 공공기관 비정규직에 대한 노조의 연대다.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은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고용유연화정책의 직접적인 산물이자 공공개혁의 희생자들이다. 공공서비스 담론이 사회정의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질의 제고를 목표로 한다면, 공공기관 노조들이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노조의 자기반성 역시 공공서비스 노조주의의 주요 인프라가 된다. 노조가 기관별로 나눠져 실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공공서비스는 낯선 언어가 되고 말았다. 또한 노조는 그간 정부의 정책사업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졌으며 무엇을 하였던가를 물어볼 수 있다. 노조가 공적인 내부감시자로서 정부의 부당한 외압에 저항한 적은 있는가. 오히려 정책사업에 편승하여 우수한 경영평가와 복리후생제도의 개선, 그리고 인원의 충원 등 잔치를 벌이지는 않았는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Ⅳ. 맺음말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은 공공부문 노사관계의 틀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할 만큼 노동조합을 겨냥하여 진행된다. 공공부문은 노동집약적인 분야인데다 높은 노조조직률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노조의 동의 없이, 더욱이 노조를 겨냥하여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갈등유발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역대 정부가 공공개혁정책에 실패한 주요한 이유인데 박근혜정부도 그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노동배제적 ‘정상화’를 고집하는 배경에는 여론이 공공기관 노조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사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노동조합은 방만경영의 주범이거나 집단이기주의의 대명사로 낙인찍혔다. 노조는 실리주의로 무장하면서 스스로를 무장해제시켰다. 노조의 실리추구도 노동운동이 사회적으로 승인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자신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승인된다는 게 실리일 수도 있다.

 

노조로서는 공공서비스 노조주의를 대항담론으로 삼아 공세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부채에 대한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 지배구조의 개선과 낙하산 인사의 근절 등은 대표적인 수단이다. 기업별 체계를 극복할 수 있는 노조의 조직체계 및 교섭구조, 그리고 정치사회적 연대는 그 인프라에 해당된다.

 

공공서비스 노조주의는 공공기관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공공서비스 노조주의의 세부적인 내용과 실천전략은 여전히 비어있다. 이 글이 묻는 질문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4년 8월호(제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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