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5 2015-12-10   5210

[복지칼럼] 대한민국의 복지 : 중복? 누락? 절대량 부족이 문제다

대한민국의 복지 : 중복? 누락? 절대량 부족이 문제다

남기철ㅣ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2015년 10월~12월까지 남기철 교수의 칼럼이 연재됩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유사중복사업 정비와 관련한 큰 사회적 논란을 이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유사중복사업 정비사태라고 할만큼 난리를 겪고 있다. 얼마전 중앙정부의 사회보장 유사중복사업 정비 계획에 따른 지침이 각 지자체에 시달되었다. 여기에서는 사회보장위원회 논의의 결과로 지자체의 복지사업 중 1,496개의 단위사업이 중앙정부 정책과 중복 혹은 유사한 것이니 이를 정비하라는 것이었다. 예산금액 규모로는 약 1조 원 정도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되는 흐름은 성남시의 공공산후조리원, 성남시와 서울시의 청년수당에 대한 논란과도 맥락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보장기본법 개정 이후 현 정부는 지자체가 새로운 사회보장제도를 만드는 경우 중앙정부와 협의를 해야 한다고 하며 지자체가 지역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제약하고 있다. 이번 유사중복사업 정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기존의 지자체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폐지를 종용하고 있다. 물론 논란이 커지자 복지부는 지자체에 대한 컨설팅 과정을 통해 절감예산을 사회복지에 재투자하거나 반드시 필요한 사업은 폐지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다며 이번 조치가 복지사업의 축소가 아니라고 발뺌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복지학계나 현장은 잘못된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이에 대해서는 야당이나 시민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지자체 일부는 권한쟁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각 정비대상사업 선정에 대한 개별적 조치도 부당하지만 지방자치에 대한 전면적 부정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대통령은 사회보장위원회에서의 발언을 통해 이번 사회보장 유사중복사업 정비의 타당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 논란은 서울시와 성남시 등에서 준비하고 있는 소위 청년수당에 대한 논란으로 연결되었다. 중앙정부는 서울시에게 신설되는 사회보장제도에 해당하므로 협의하여야 한다고 통보하고 있다. 서울시는 자체 조례에 의거한 일자리 프로그램에 해당하므로 정부와 협의해야 할 사회보장제도가 아니라는 입장을 일차적으로 표명하였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논란이 번져가고 있어서 상황이 어떻게 귀결될지 예측하기 힘들다.

이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논란은 지방자치의 본질 문제도 안고 있지만 사회복지에 대한 기본적 인식의 차이를 나타낸다는 점도 중요하다. 대통령과 사회보장위원회의 인식은 중앙정부가 여러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왜 중복이거나 비슷한 사업을 진행해서 예산을 낭비하느냐고 역설한다. 유사중복사업 정비지침에 반대하는 지자체나 시민단체의 입장은 중앙정부의 사회보장제도 급여만으로는 욕구충족에 턱없이 모자라고 복지사각지대는 계속 나타나고 있어서 자체예산으로 별도의 프로그램을 편성한 것에 대해 왜 왈가왈부하느냐고 반발한다. 중복에 초점을 두는 인식과 누락에 초점을 두는 인식 사이의 차이라 할 수도 있다. 누락이라는 단어가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전혀 못 받는 것만이 아니라 모자라게 받고 있는 것도 필수적 복지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사회복지의 누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욕구란 단지 개인적으로 원하는 수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 판단이나 사회적 합의를 반영하는 것이다.
OECD,2011

사회복지역사의 초기부터 중복과 누락은 중요한 주제이었다. 서구국가 사회복지 역사의 초기에 자선조직화협회로 불리우는 COS(charity organization society)의 기본적 관점이나 아이디어에서도 중복과 누락을 막아 효율성과 효과성을 증진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후 자선조직화 활동이 전문직업적 활동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경제의 논리나 영역으로 귀결되지 않고 사회복지라는 영역으로 연결된 것은 기본원칙이 사회적 욕구라는 부분으로 초점이 부여되었던 것이라 하겠다.

지금 우리나라의 복지 상황에서 급여의 중복이 문제일까? 아니면 누락이 문제일까? 사실 누락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복지급여나 서비스의 절대부족은 심각한 상황이다. OECD나 UN 등 여러 국제적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 주체들의 통계자료 중 가장 간단히 빈곤율에 대한 자료만 살펴보아도 이는 명백하게 드러난다. 중위소득 50%를 기준으로 판단하는(국제적으로 일반 기준으로 통용되는) 빈곤율에서 우리나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시장소득 기준일 때와 가처분소득 기준일 때 빈곤율의 격차가 매우 작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약 3% 포인트 정도만 빈곤율이 줄어드는데, 예를 들어 유럽의 복지국가는 20% 포인트 정도 빈곤율이 줄어들고, OECD 평균도 10% 이상의 빈곤율 감소를 나타낸다. 가처분소득 빈곤율 대비 시장소득 빈곤율을 통해 빈곤개선율을 산출해보면 우리나라는 약 13.9% 정도이다. 스웨덴은 약 400% , 프랑스는 300% 이상, OECD 평균은 약 150%이다. 이 수치들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나라는 정부가 사회복지체계를 통해서 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서구국가들은 국가가 개입하기 전의 빈곤율과 격차는 우리나라보다 더 크다. 하지만 국가의 개입 이후 빈곤율과 격차 정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작아진다. 청년들에게서 헬조선 론(?)이 비등한 것은 경제가 나빠서라기보다 국가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에 대한 질타의 부분이 더 크다. 우리나라의 사회지출이나 복지급여의 양은 절대적으로 작다. 이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려면 복잡하고 구구절절한 왜곡논리를 펴야만 한다. 경제수준을 따진다고 해서 경제수준이 비슷한 시점으로 비교해 보아도 우리나라 복지의 절대량은 작다. 중앙정부 복지제도나 프로그램에서 실제 주어지는 급여의 양은 기본 생존권을 ‘전혀’ 달성할 수 없는 명목적, 형식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중앙정부는 유사중복사업 정비의 논리로 유사중복사업의 예산을 절감하여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것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대통령과 사회보장위원회, 보건복지부 등을 통해 누누이 강조되고 있다. 물론 중복도 없고 누락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절대량의 부족, 굳이 어울리지 않는 단어로 연결해 비유한다면 누락에 사회적 초점이 두어져야 한다. 중복을 막아 그 재원으로 누락에 대응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절대량의 문제가 해결된 다음의 이야기이다. 절대량이 작은데 중복의 문제를 우선시하는 것은 복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현 정부가 최근 사회복지 영역에서 보이는 정책적 자세는 분명히 국민의 복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이다. 맞춤형, 생애주기별 등등의 수사로 절대량 부족을 감추는 것은 곤란하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나 프로그램에 대해 협의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아니 중요하다. 하지만 경남도의 공공의료, 학교급식(그리고 엉뚱한 그리고 중복사업의 대표상징인 대체적 교육지원 프로그램 내용)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전국적으로 진행하던 사회보장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와의 협의를 작동하지 않고 지자체가 신설하거나 진행해오는 복지프로그램을 막는 것에 대해서만 정비의 칼날을 들이대는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중복을 막아 복지를 증진하겠다는 정부의 말에서 누가 진정성을 신뢰하겠는가?

서구 복지국가의 역사에서 몇 백년 전에 주요 화두이었던 사회통제적 복지, 열등처우의 원칙에만 충실한 복지, 통제적 구빈법이나 공장법 등의 기제로 최소근무시간과 최대급여를 규정하던 복지의 인식이 21세기 한국의 맞춤형 복지 근간을 이루고 있다. 서구국가들도 과잉복지의 폐해를 수정하려 한다는 어울리지 않는 말로 우리나라의 복지빈약성을 합리화하려는 억지를 쓰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제대로 진행해보지도 못한 복지국가로부터의 철수를 감행하는 세계적인 선두주자가 되려 하고 있다. 어떻게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중앙정부 부처가 복지급여 신청도 부정수급 신고도 OOO이라는 식의 현수막을 붙일 수 있을까? 답답하다.

위안부 할머니에게 제공되는 생활지원금, 80대 노인의 몇만원짜리 장수수당, 지방이양된 사업이라 지자체가 진행하고 있는 노숙인 지원사업, 일자리를 못찾는데도 구직에 전념하기 어려운 청년에게 지급하자는 수당은 중복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것이 아니다. 중복이냐 아니냐를 개별사업마다 따질 일이 아니다. 중복이라도 적극적으로 해야 할 부분도 많다. 중앙정부는 차라리 지자체가 적절한 복지정책을 전개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협의의 자세를 우선적으로 발동해야 한다. 중복문제에 혈안이 되어있는 동안에는 절대 복지사각지대가 줄어들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올바른 국정 국사 교과서가 필요하지 않다. 정부의 올바른 복지인식이 필요하다.

월간 <복지동향> 2015년 12월호(제2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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