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3분기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명이다. 이대로 한 세대가 지나면 인구의 65%가 증발해 2750년이면 대한민국 인구가 사라지는 셈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간한 저출생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 세대는 결혼을 하지 않거나 자녀를 출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취업·생활안정·주거 등의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답변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울 만큼 삶이 무겁다는 얘기다.
어느새 한국은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주지 않는 사회가 됐다.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최근 출간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저자는 취약가정 청소년 8명을 10년 넘게 관찰해서 이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어른이 되는지를 담았다. 청소년과 가족, 가난과 성장, 재생산과 사회를 동시에 말한다. 실제 인터뷰에 기반한 만큼 내용이 생생하고 필체는 담담하다.
이 책의 저자는 참여연대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강지나 회원이다. 그는 1998년 참여연대 활동가로 일했고 이후 고등학교 교사가 되어 벌써 20년 넘게 학교 현장에서 다양한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다. 여러 참여연대 사업과 행사·캠페인에 참여해왔으며 2024년에는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역할도 맡았다. 강지나 회원을 만나 책 이야기, 참여연대 활동 이야기를 두루 들어보았다.
– 참여연대 활동가에서 교사를 거쳐 이제 빈곤 청소년 문제 전문가가 되셨습니다.(웃음) 어떻게 이렇게 여러 일을 하게 되었을까요.
원래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그때는 제 여건상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선배들이 대안적인 사회단체를 만들겠다면서 참여연대를 만들었거든요. 그때 저는 참여연대에 사람이 필요하면 가서 전단지 나눠주고 피켓 들면서 ‘몸빵’하는 대학생이었어요. 그 뒤에 졸업하고 자원활동을 하다가 1998년에 상근 활동가가 됐어요.
그런데 당시 학교 선생님들이 인권동아리를 만들고 싶다면서 참여사회아카데미(현 아카데미느티나무 전신)에 관련 교육 프로그램 진행을 요청했어요. 그런데 정작 학교에 갔더니 교장이 극구 반대하는 상황이더라고요.(웃음) 학생인권 같은 개념은 말도 못 꺼낼 때였어요. 그런데 결국 선생님들이 싸워서 프로그램을 하게 됐지요. 그 싸움이 인상 깊었어요. 맨땅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임용고시 준비를 하고 학교 선생님이 됐어요.
– 취약가정 청소년 8명을 무려 10년 넘게 관찰해서 지난해 말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출간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긴 시간을 계획하고 쓴 건 전혀 아니에요. 교사로 일하면서 청소년 빈곤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어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는데, 박사 논문을 위해 2011년부터 아이들 16명과 그 가족들을 만났고 2016년에 논문을 썼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이걸 대중적으로 풀어서 책으로 내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일인데 책을 빨리 못 쓰다 보니 10년이 넘게 걸린 거죠. 제가 게을러가지고.(웃음) ‘나는 왜 이렇게 글을 못 쓰나’ 좌절도 많이 했어요.
– 그런데도 끝까지 책을 쓰게 만든 동력은 무엇인가요?
인터뷰해준 아이들이죠. 저를 만나서 자기 삶을 얘기해 준 거잖아요. 아이들이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다른 친구가 어떻게 살았는지도 책에서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 약속을 지키려고 출간을 한 거죠.
– 서문에 “(빈곤 청소년에게는) 세상에서 흔히 통용되는 가난에 대한 인식이나 이미지와 다른,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있었다”는 구절이 있더라고요. 책을 쓰면서 어떤 지혜를 배웠나요?
누구나 자기 안에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흔히 아이들은 수동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특히 집이 가난하거나 학교에서 차별받을 때 아이들이 그런 압력을 그냥 받기만 하는 상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압력에 반항하고 튕겨내는 힘이 있어요. 그 힘 안에 세상을 잘 살아가고자 하는 지혜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서 책에서 나오는 지현(가명)이는 성장 환경이 정말 드라마에나 나올 것처럼 절대 빈곤에 가까웠는데,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요. 예전에는 자기 빈곤을 글로 잘 표현해야 장학금을 줬거든요. 자존심이 상하고 자아가 훼손될 것 같은데, 지현이는 “글솜씨가 늘었다”고 하는 거예요. 어디 가서 자기가 글을 쓰면 너무너무 잘 쓴다고 칭찬받는다며.(웃음) 자기 지혜로 상황을 해석하고 반응하는 것이 그 아이의 주요한 생명력이거든요. ‘이런 생명력은 도대체 어떻게 나타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교사로 일하시는 20여 년 동안 사회가 많이 변했습니다. 청소년 빈곤 문제의 양상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가난한 아이들이 대체로 드러났어요. 옷이 허름하다든지 육성회비를 못 낸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요새는 가난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요. 학생에게 걷는 학교운영지원비는 다 없어졌고 반에서 단체 티셔츠를 맞출 때도 지원금이 나옵니다. 담임 교사도 어떤 학생이 교육 급여를 받는지 몰라요. 물론 우리 사회와 제도가 성숙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남아있고 한편으로는 더 교묘해졌어요. 예전에는 교육 제도가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매개체였다면 지금은 계층을 물려주는 통로이자 오히려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도구로 쓰이죠. 개인적으로는 지금이 더 문제가 많다고 봐요. 근본적으로 노동·사회구조가 바뀌고 경제민주화가 이뤄지는 등 사회 전체의 평등이 실현되지 않으면 변화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 회원님의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요즘 아이들이 출생률을 민감하게 생각해요. 저한테도 “선생님, 나라가 망하는 것 같아요” 하더라고요. 앞으로 저출생 문제는 한국 사회의 기본 전제를 많이 바꿀 거예요. 교육 문제를 포함해 사회 시스템을 새로 짜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제가 일하는 경기도 파주시에는 새로 지은 아파트가 엄청 많은데 저출생 상황을 생각하면 앞으로 공실이 될 가능성이 크죠. 그런데도 왜 계속 아파트를 짓는지 모르겠어요. 여전히 더 발전하고 더 생산하고 더 부유해져야 한다는 개발 논리에 빠져 있는데, 이제는 재화를 나누고 평화롭게 살면서 환경을 덜 파괴하도록 다른 패러다임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사고해야 하고요. 이런 게 요즘 제 관심사에요.
– 2016년부터 운영위원으로 활동을 하셨고 올해는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셨습니다.
제가 부채감이 있나 봐요. 참여연대는 제가 운동을 배운 곳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참여연대를 뛰쳐나가서 즐겁게 잘 놀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뭔가 도와주고 싶으니까 운영위원회도 하고 부위원장도 하는 거죠.
그리고 다른 분들에게도 세월호 참사가 충격이었겠지만, 저는 학교에 있기 때문에…. 한 교실에 30명 정도 아이들이 있잖아요. 아이들 306명이 사라지는 것은 교실 10개가 사라지는 거예요. 한번은 학교 복도에 서서 10개의 교실을 보는데 정말 끔찍한 거예요. ‘내가 너무 개인적인 삶만 챙겨서 결국 사회가 이 지경이 됐구나. 다시 뭔가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회원으로 활동가로 시민으로, 오랫동안 참여연대를 지켜보셨습니다. 참여연대의 좋은 변화와 나쁜 변화를 꼽아주신다면?
처음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 참여연대는 위상이 너무 커졌죠. 너무 많은 일을 하고요. 그게 좋은 변화인 것 같아요. 나쁜 변화는… 나쁘다기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지금 필요한 운동방식은 시민의 삶에 밀착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참여연대는 중앙정치에서의 영향력에 과몰입된 것 같아요. 한국이 너무 정치 중심적인 사회라서 그렇겠지만요.
저는 제도적인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시민들이 삶에서 느끼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정부가 들어서면 제도까지도 다 무력화되는 거잖아요. 기자회견하고 고발하고 낙선운동하는 것도 운동의 방법이지만, 시민들이 삶에서 원하는 바를 구체화하고 사회에서 요구할 수 있도록 운동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존의 운동과 다른 운동을 보여주자던 초심을 다시 떠올려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40~50대 회원은 머릿속에 80년대 민주화 경험이 남아있기 때문에 제도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20~30대는 다르거든요.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회원들을 여성 그룹, 40대 그룹, 지역 그룹 등으로 묶어서 소통하고 그에 맞게 활동 계획을 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참여연대가 계속 정치 중심적인 활동에만 몰입하면 회원이 늘지 않을 것 같아요.
– 회원님에게 참여연대란 무엇인가요?
‘삶을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지향점에 꽂힌 큰 깃발 같은 곳이에요. 그리고 고향과 같은 곳이죠. 주변 사람들이 참여연대에 대해서 저한테 물어보거든요. 그래서 저의 운명공동체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글 김동환 편집위원 사진 박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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