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빛나는 광장의 말을 기록합니다 – 이지완 ‘말빛’ 활동가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은 다소 추상적이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각종 매체와 단체들은 앞다퉈 ‘위대한 시민의 승리’로 칭하며 12.3 비상계엄 이후 열린 탄핵 집회 참가자들을 치켜 세웠다. 그런데 이들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수많은 시민 중 몇이나 진정한 승자로 기록될 수 있을까. 그들의 외침 중 어떤 발언들이 역사에 남을까.
이미 발언권이 있는 권력자나 언론의 선택을 받은 몇몇 이들의 발언만 역사가 되진 않았을까. 2024년 12월부터 2025년 4월의 일들은 누가 기록했으며, 기록자들은 무엇을 기록했을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기록된 자가 승자로 남는 쪽에 가깝다. 그렇다면 광장을 지킨 더 많은 이들의 더 많은 발언이 기록됐어야 한다.
자신을 ‘평범한 직장인’으로 소개한 이지완 ‘말빛’ 활동가는 2025년 1월 3일부터 광장의 목소리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번 내란 국면의 광장이 언어를 빼앗긴 소수자들에게 언어를 돌려준 공간이었다고 전했다. 발언대 위에 울려 퍼진 여러 삶의 이야기는 저마다 다른 색으로 빛나는 응원봉과 닮았다고 했다. 그는 광장에 흩어졌던 시민들의 발언을 책으로 묶어낼 예정이다.
활동명이 ‘말빛’이다. 의미를 설명해달라.
비상계엄·탄핵 국면에서 응원봉이 주목을 받았다. 발언대 위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삶의 이야기가 저마다 다른 빛으로 빛나는 응원봉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말에도 빛이 있다는 뜻으로 ‘말빛’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윤석열의 불법 계엄선포 이후 한 달이 지난 1월 3일부터 ‘말빛’ 활동을 시작했다. 어쩌다 활동을 시작하게 됐나?
비상계엄 터지고 나서는 나도 응원봉 시민으로 참여했다. 그러다 1월 3일 한남동 철야 집회에 참여했다. 그때 3박 4일 동안 철야를 하면서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때 한강진에서 ‘이거는 흘려보낼 게 아니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역사를 전공했는데 논문을 쓰면서 느낀 게 있다. 정치 지도자나 학자와 같은 엘리트들의 말들은 정부 자료나 언론 보도 등 공적인 기록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민중들의 말이나 삶은 사료로 남아있지 않아 알기 어렵다.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후대에서 알고 싶은 요구가 있을 거다. 역사 연구자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어서 작업을 시작했다.
집회에 참여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그중에서도 ‘광장의 말’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에 대해 더 듣고 싶다. 한두 번은 할 수 있지만 날씨도 추운데 꾸준히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전공자로서 사료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기록을 결심하게 한 발언이 있다. 1월 3일 한강진에서 어떤 청년의 발언이었다. 자신을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밝힌 그분은 본인이 살면서 겪은 억압에 대해 얘기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성소수자였고 장애인이기도 했고 어느 순간에는 이주노동자와 비슷하기도 했고 학교 밖 청소년이었다면서 피해자성에 갇혀 무기력하게 지냈는데, 광장에 참여하며 활력을 얻고 함께할 동지를 찾아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분의 발언이 내게 큰 울림이었다. 나도 광장 이전에는 무기력한 삶을 살았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고는 싶은데 방향이나 역할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광장을 계기로 삶의 활력을 얻었다. 그냥 흘려보낼 게 아니라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결심했고, 지금 청년들의 망탈리테1에 대해 연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기록에 두 가지 원칙이 있다고 들었다. 무엇인지 궁금하다.
첫째는 현장에서 발언을 수집하기다. 생중계 영상 대신 현장에서 직접 녹음한다. 두 번째는 AI(인공지능)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AI를 활용하면 빠르고 신속하게 기록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신속하게 전하는 건 언론의 몫이고 난 한 명의 기록자로서 광장의 말들을 스스로 체득하고 싶었다. 내가 말을 경청하고 그 말들로부터 문제의식을 배우고 새로운 사안을 알고 싶어 하나하나 기록하는 방식을 택했다. 용기 내서 발언대 위에 서주신 분들에 대한 존중으로 그 정도의 수고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광장 안에서 발언 장소가 여러 곳일 때는 어떤 발언을 기록했나?
일단 정세가 급박하게 변했기 때문에 정세 관련한 중요 발언을 먼저 수집했다. 예를 들어 3월 27일 민주노총에서 총파업을 한다고 하면 그것과 관련된 발언을 택했다. 두 번째로는 광장 안에서도 소외되는 말들, 작은 광장을 찾아가려고 했다.
비상행동(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집회는 라이브 영상으로 기록이 남지만 그 외 오픈마이크 행사가 열리거나 투쟁사업장 집회 발언도 있다. 그 집회들도 비상계엄 국면 속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기록할 가치가 크다고 생각했고, 영상 기록이나 언론 보도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그곳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지완 활동가도 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 3일 밤, 국회로 향했다. 그곳에서 한 문예창작학과 대학생이 낭독한 존 던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한 구절이 인상 깊었다고 소개했다.
“그 누구도 스스로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 모든 인류는 대륙의 한 조각이고 / 태양의 한 부분이다. (중략) 그 누구의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 나란 인류 전체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발언에 대해 “너와 나, 모두가 사회적 존재로 연결돼 있고 우리 모두의 억압과 죽음이 연결돼 있다는 연대의 감각이 죽음의 공포를 딛고 그날 밤 사람들을 국회 앞으로 이끈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며 “남태령과 한강진과 같은 광장을 이끈 연대의 정신을 예언해주는 발언이 아니었나 싶어 강력하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많은 현장을 다녔을 텐데 기억이 남는 곳이 어딘지, 그 이유는?
3월 16일 세계인종차별철폐의날 서울역 광장 집회가 기억에 남는다. 이주노동자들이 다양한 의제를 가지고 참가해 내가 몰랐던 삶들을 많이 만났다. 고용허가제하에서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잘 모르고 있었는데 사업주 허가 없이는 사업장 변경도 어렵고 특히 여성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성폭력을 경험해도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일해야 하더라. 가해자의 아이를 출산했는데도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고 공론화도 어려운 충격적인 현실을 들었다. 서울시에서는 저출생 문제 해결방안으로 이주민을 가사노동자로 값싸게 부려 먹을 수 있도록 해서 비판을 받았다. 故 강태완 님의 어머니는 아들이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살며 겪었던 억압에 대해 발언했다. 핸드폰도 없고 건강보험도 없이 살았고 대학 진학이 어려웠는데 비자를 준다는 말에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다 산재로 돌아가신 것이다. 자식의 영정사진을 들고 올라와 발언하는 분의 모습을 보며 한국 사회에 이주민이 정말 살기 어렵겠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번 광장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평소였다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을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정체성을 밝히고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모습이었다.
정체성은 소수자의 언어다. 다수자는 사실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로 여겨지는데 소수자들은 끊임없이 증명을 요구받는다. 어쩌면 소수자들에게 언어마저도 뺏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정체성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으니까. 이번 광장이 그 빼앗긴 언어를 돌려주는 공간이었고, 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하나의 투쟁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광장의 말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나 정서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비상계엄 이후 여러 국면 변화가 있었다. 12월에는 계엄 자체에 대한 충격과 공포가 컸고, 12월 21일 남태령 집회를 기점으로 1월까지 한강진에서 윤석열 정권하에서 억압당해온 삶에 대한 고백, 억압된 서사를 폭발적으로 드러냈다. 2월부터 모든 억압이 연결돼 있기에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는 시민이 많이 탄생했던 것 같다. 한강진의 에너지가 각 투쟁사업장에 이어지고 말벌 시민(연대가 필요한 곳에 달려가는 시민)들이 생겨났다. 3월 8일 윤석열이 구속취소돼 이 문제의식이 커져 파면 광장으로 수렴된 것 같다.
광장의 말들을 기록하면서 새롭게 문제의식을 깨달은 부분도 있나?
광장에서 ‘헌정질서를 수호하자’는 구호가 많이 울려 퍼졌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정질서를 지켜야 하지만 헌정질서를 성역화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헌법재판소도 그렇고 헌법도 모두 역사적 투쟁의 결과물이다. 역사의 산물이라는 걸 인식하고 부족하면 보완해가야 한다. 이주민들이 참석한 모습을 많이 봤다. 이주노동자는 인구문제가 심각한 한국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 중의 하나인데 헌법상 주권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국민’이라는 틀에 갇혀선 안 된다는 생각, 헌법이 보장하지 못한 존재들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농민들도 농민기본권이 포함된 농민헌법을 얘기한다. 헌정질서를 수호하는 게 중요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성역화해선 안 된다.

말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집회의 발언들은 어조나 제스처, 청중의 반응까지도 모두 감명 깊어 글로 기록하는 작업 방식이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혹시 영상과 같이 다른 방식의 기록을 생각하진 않았는지 궁금하다.
그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생각하긴 했다. 다만 내가 욕심이 크지 않고, 텍스트 기록이 가진 고유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상이나 현장에서 직접 들을 때와 종이에 쓰여진 글로 읽을 때 다른 느낌을 준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현장의 여러 분위기를 덜어내고 텍스트로 종이 위에 얹혔을 때 주는 그 느낌 자체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작업이 가능했던 것 같다.
대통령 파면으로 일단 집회가 일단락됐다. ‘광장의 말’을 기록해온 사람으로서 아쉬운 점은 없나?
4월 4일 파면 당일 저녁 한화빌딩 앞에서 고공농성자 연합집회가 있었다. 이후 세종호텔까지 행진하면서 많은 분이 걱정하더라. 파면 전만큼 광장의 활기가 없을 텐데 어떻게 투쟁을 만들어갈까에 대한 우려다. 광장은 기존 투쟁 주체들이 있었고 거기에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더해져서 가능했다. 파면이 이루어지기까지 이들의 공로가 컸기에 정치권에서도 이들 목소리에 응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광장을 기록해 온 언론에도 바라는 점이 있나?
2030 여성이 응원봉을 들고 나온 모습이 크게 주목을 받았다. 자발적인 시민의 참여를 상징하는 이미지인데 언론은 새로운 현상을 찾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기존 광장을 지켜온 사람들, 조직된 힘이 있다. 국회 앞에 달려나간 민주노총 조합원도 많지 않나. 남태령도 기획되지 않은 공간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자유발언에 관심이 집중되지만, 그 판은 농사를 제쳐두고 온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이라는 조직의 헌신적 투쟁이 있어 가능했다. 이 상황을 언론이 균형 있게 다루고 있는지 모르겠다. 스펙터클, 기억의 편린에 의존하기보다는 정확하게 기록을 해나갔으면 좋겠다.

SNS에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모은 기록들을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개인 활동가로 기록을 했기 때문에 아카이빙 작업이 가져야 할 총체성이나 체계성의 측면에서 부족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소외된 말과 광장의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했고, 다양한 개인들의 생생한 말들이 기록에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체계적인 아카이빙 자료를 만드는 단초가 될 수 있게 인상 깊은 발언들을 뽑아서 책을 만들 예정이다.
책은 한 권 나올 예정인가? 책 이외의 다른 활용 방식도 계획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책은 한 권 계획하고 있다. 책에 모든 발언이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아 아쉽다. 그렇지만 책에 담지 못한 발언도 최대한 공개할 예정이다. 방식은 최대한 널리 공유될 수 있는 방식을 고민 중이다.
이후 활동 계획이 있다면?
우선 원고 작업을 끝낼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 광장에서 파면이 끝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곧 복직을 할 계획이지만, 기록 활동도 어느 정도 이어나갈 계획이다.
- mentalité. 정신상태, 정신구조, 사고방식 등을 의미한다. 해당 문장에서는 ‘심성’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
글 장슬기 미디어오늘 기자 / 사진 권동원 미디어홍보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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