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 북리뷰 4_허구를 대체하는 희망의 원리 찾기

피에르 부르디외 외, 『프리바토피아를 넘어서』

작년 9ㆍ11 세계무역센터 테러사태와 연이은 미국의 보복공격은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가공할만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아마 그것은 21세기 세계 최대의 비극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21세기 세계경제가 이런 비극을 더 조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연초 이런 우울한 전망을 불식시키고 일말의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어 그나마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프랑스 진보적 월간신문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세계보기’ 시리즈의 하나를 번역한 것이다. 책제목의 프리바토피아는 영어의 Private와 Utopia의 합성어로 사유화의 유토피아를 뜻한다. 필자로는 부르디외(P. Bourdieu), 가타리(P. Gattari) 등 당대 최고의 사회학자ㆍ철학자를 비롯하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주간 라모네(I. Ramonet), 제3세계외채탕감위원회의 의장인 투생(E. Toussaint), 그리고 최근 테러사태 이후 미국에 대한 비판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의 언어학자 촘스키(N. Chomsky) 등 이 시대 최고의 지성들이 포진해 있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공공영역의 축소, 시장영역의 확대, 사적 개인 영역의 확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비판, 둘째 시장경제질서와 사적 영역의 확대가 초래할 다차원적인 위험들――환경파괴, 생화학테러 위험, 유전정보해독에 따른 유전적 차별, 정보통신혁명의 가속화에 따른 사생활의 노출과 통제, 인터넷을 통한 통신과 경영의 결합이라는 미국식 패러다임의 전세계적 지배――등에 대한 경고, 셋째 프리바토피아의 허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희망의 원리, 그리고 실현 가능한 실천방향과 대안모색 등이다.

이 책의 전체적 기조를 한마디로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부르디외와 라모네 등에 의해 크게 규정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원칙에 기반하고 인간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경제의 강화는 금융권력을 무장해제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라든지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로부터 벗어나려면 금융시장에서 실현되는 이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고 특히 노동조합의 지원을 받아 공적 이익을 성취하고 수호함으로써 금융시장이 노동시장에서 행사하는 파괴작용을 막을 수 있는 국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이들의 문제의식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정치적 입장을 보면 이들이 한 가지 방향을 명시적으로 내걸기보다는 현재 유럽 중도좌파정권에 대해 일정한 비판을 가함으로써 현 집권 사민주의와의 차별화를 분명히 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예컨대 최근 영국 블레어의 제3의 길과 사회적 자유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한 대처리즘으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독일ㆍ프랑스 등 현 대륙유럽의 사민주의 세력들은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경시, 불철저한 금융통제, 유럽사회모델 추구의지의 박약성 등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다고 이들이 근거 없는 급진주의로 치닫지는 않는다. 이들은 급진적인 대안제출의 강박관념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경솔한 허무주의나 무책임한 대안부재론에 빠져들지 않고 있다. 또한 이들은 노동운동의 종언을 외치면서 시민운동 등 신사회운동만을 특권화하지도 않는다. 이런 측면들이 이 책의 최대 강점으로 생각된다.

이외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필자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낳고 있는 다차원적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연대의 틀을 유럽 차원(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 확장할 것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미국의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애국주의와 자국보호주의로 치닫고 있는 경향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방향이라고 여겨진다.

이 책이 이상과 같은 특징과 장점을 지닌 것은 분명하지만, 평자에게 특히 아쉽고 미진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필진구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21세기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를 낳은 물적 토대, 다시 말해 21세기 세계의 정치ㆍ경제적 토대에 대한 분석이 부재하거나 매우 취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치문화, 정치사회적 분석,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21세기의 다양한 위험요소들을 추출해 내고 있지만 이런 요소들 이면을 관통하는 정치경제학적 논리가 불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이 21세기 문명 내지 문화 비판을 지향하는 듯하고 또한 저널리스틱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이 책에 대한 평자의 지나친 기대나 욕심 때문인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이 책의 도전적인 제목에 비해 내용 면에서 다소 깊이가 떨어진다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 끝으로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Exchange Committee)를 안전 및 교환위원회로 잘못 번역한 것(164쪽)이 평자를 무척 실망시키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가지고 이 책의 메시지와 내용, 옮긴이의 번역의도와 실제 번역작업 모두를 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21세기 세계를 읽을 때 키워드는 어떻게 잡아야 할까? 일부에서는 정보통신혁명과 네트워크사회(정보사회)-세계화로 21세기를 접근하고자 하지만, 이보다는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금융 주도 자본주의-금융세계화-금융위기로 접근해보는 것이 어떨까? 이 책을 계기로 이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있기를 기대한다.

전창환 / 한신대학교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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