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호] 북리뷰 4_전투적 규범주의자의 비전

박원순, 『한국의 시민운동 :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 책의 저자인 박원순 변호사는 시민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문제의식과 행동은 글쓰기를 통해서도 오랫동안 표출되어 왔다. 그의 기록벽, 자료수집벽, 집필벽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그가 얼마나 지독한 공부벌레인지는 그가 저술한 국가보안법 3부작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저서는 이 땅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공부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도 바이블과 같은 존재이다. 그뿐인가? 19세기의 드 토크빌이 미국을 잠시 둘러보고 불후의 명작 『미국의 민주주의』를 썼듯이 박원순 역시 미국을 몇 달 주유한 후 미국의 시민사회에 대한 최전방의 리포트를 냈고, 일본에 몇 달 체류한 후에는 일본 시민운동의 내밀한 관찰기를 한 권의 책으로 쑥 뽑아놓았다.

이번에 묶어낸 『한국의 시민운동』은 운동현장에서의 활동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성찰한 글이 많아 우리의 관심을 끈다. 결론부터 말해 그의 사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민주주의, 법의 지배, 시민사회의 건설, 이 세 마디로 압축된다. 그 목적을 위해 시민운동이 복무해야 하고 그 목적에 반하는 장애물은 가차없이 비판되고 공격당해야 한다. 그는 이 같은 논지를 제2장 “시민운동에 관한 12가지 오해와 편견”에서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그의 논리는 그지없이 명쾌하고 그의 수사는 양보 없는 칼날이다. 박원순에게는 머뭇거림이 없다. 그의 세계는 선명한 원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에게서 회색지대나 점이지대(漸移地帶)는 찾기 힘들다.

시민운동의 호교론적 글로서 이만큼 박진감 있는 문장을 또 찾기 힘들 것이다. 예컨대 시민단체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라는 비판에 대해 “시민단체가 언제 모든 시민을 대표한다고 했던가. …민주주의하에서는 시민단체를 만들고 활동하는 데 누구의 허가도 필요 없다”는 주장 앞에서 평자는 한 줄기 소나기와 같은 후련함을 맛보았다. 또는 “법은 생겨날 때부터 불구의 운명을 타고 태어난다.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진지하게 법을 만든 적이 있던가. …그런데도 그 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무조건 그 법을 지키라고?”라는 말 앞에서 우리는 법사회학의 정수를 발견한다.

만일 시민압력단체의 정책과정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낙선운동을 참여관찰자적으로 기록한 제3장을 반드시 읽을 것이다. 예를 들어 명동성당에서 벌인 정치개혁국민광장이 명동성당 사상 최초의 허가받은 농성이었다는 기록은 하나의 진귀한 낙수와도 같다. 한국의 정책결정의 특징으로 지적되는 강한 도덕적 압력과 벼랑 끝 전술이 눈앞에 보듯이 펼쳐진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공들인 부분은 어디일까? 아마 제4장 “한국 시민운동의 미래를 위한 고민과 대안”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는 시민운동가 박원순이 꿈꾸는 한국 시민사회의 이상향과 대안이 녹아 있다. 저자가 최근 개척중인 새로운 운동영역을 알고 싶으면 바로 이 글을 보면 된다. 시민단체를 억압하는 법제로부터의 해방, 인적 측면의 과제, 활동적 측면의 과제에 대한 경륜을 풀어놓았다. 학술적으로 보자면 시민사회의 공간(space), 가치(value), 영향력(impact)에 대한 체험적 고찰인 셈이다.

평자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유엔개발계획의 『인간개발보고서 2002』가 발간되었다. 이번 보고서는 특히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강화를 강조하고 있어서 박변호사의 글과 함께 병행독서의 기회가 생겼다. 다음 두 글을 비교해 보라.

시민사회단체들의 정책제안 기능이… 기존의 정치체제 혹은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보완하고 혁신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박원순)

시민운동은 공식적 정책결정구조에서 민주적 원칙의 궁극적인 대체물이 아니다. [그러나] 지구시민사회는 지난 10년간 지구적 정책변화의 가장 심대한 원동력이었다. (사키코 후쿠다-파르, 인간개발보고서 대표저자)

전세계적 민주개혁을 강조하는 지구적 공치(global governance)의 주장과 우리 사회가 배출한 대표적인 시민운동가의 개혁주의적 주장이 거의 중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성급하게 저자를 단순한 개혁주의자로 보지는 마라. 그의 열정과 확신의 깊이를 오해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변호사의 개혁주의는 개혁주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넓은 텃자리, 가장 급진적인 실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급진적 개혁주의자, 전투적 규범주의자 박원순의 진면목을 포착하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조효제 /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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