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호] [권두언]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공화국의 새로운 시민을 위하여

헌법 제1조가 명백히 선언하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바로 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우리 국가의 정체성을 잃고 살아왔다. 자유가 아니라 생존의 명령이, 시민적인 ‘평등ㆍ자유’(gali- bert)와 연대, 공존이나 평화가 아니라 단지 적을 이기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지상명령이 식민지 민족억압상태를 벗어난 20세기 후반 50년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했다. 시민이 부재한 공화국에서 오직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야 유지될 수 있었던 냉전국가주의가 둥지를 틀고 앉아 공화국의 이름을 빈 껍데기로 만들었다.

1987년 6월.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원년이라는 데 누구나 동의하는 그해의 항쟁 이래 15년, 우리 공화국은 과연 명실상부한 시민적 내용을 가지게 되었는가. 사라져야 할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잊어버려도 될 만큼 없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개발독재국가의 ‘반공 자유민주주의’는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을 내세워 시민적 자율성을 억압하는 국가지상주의 이데올로기 장치였다. 국가권력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기하는 권력분립제도와 선거가 민주주의의 절차적 골격이라고 한다면, 시민적 자율성은 그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영혼에 해당한다. 그러나 ‘반공 자유민주주의’는 점차 우리와 멀어지는 바깥의 적으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보다, 우리 안에서 국가의 적을 대량으로 만들어 정권의 안전을 지키는 권력의 성곽이었다. 온당한 현대화였다면 자신의 능력을 자각한 시민의 계몽을 통해 국가와 시민사회가 분리되고, 그 시민사회를 발판으로 국가가 현대화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한의 국가는 안보제일주의와 성장제일주의를 지배이념으로 하는 냉전국가주의 개발독재체제를 통해 국민을 국가의 부속품으로 전락시켰다. 한국시민사회는 자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역동적 자율성이 아니라, 개발독재국가의 내부식민지로 출발하여 ‘배신당한 노예들’의 저항성 반란으로 그 윤곽이 갖추어졌다. ‘반공 자유민주주의’라는 어색한 어휘는 박정희체제에 의해 시민적 계몽 없이 18년간이나 진행된 ‘반동적 현대화 작업’의 정치적 빈곤을 여실하게 드러낸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반공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반공 자유민주주의의 성채 아래서 강권과 이권에 대한 천민적 탐욕을 마음껏 충족시켰던 지배블록은 없어졌는가? 박정희와 전두환의 강고한 엄호 아래 서식한 극우지배블록은 보수세력을 자임하면서 민주화과정에 적응하는 데 상당 정도 성공해 왔다. 따라서 불행하게도 이 『시민과 세계』에 참여한 이들은, 우리 국가와 사회의 민주주의가 무늬만 있을 뿐 내실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반공국가주의 독재의 허구성 하나를 치우는 데만도 5월 광주항쟁에서 수많은 시민들을 거쳐 박종철에 이르는 ‘자기희생의 제방’을 쌓아올려야 했다. 그리고 87년 6월의 광장에, 지상과 지하의 용광로에서 달구어진 자유와 해방을 향한 모든 혁명적 에너지들이 민주대연합의 깃발 아래 총집결했다. 독재 대 민주주의의 대격전에서 시대의 여신은 민주주의 쪽으로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6월 민주항쟁만큼 큰 정치적 역설도 그리 많지는 않아 보인다. 민주화의 뚜껑은 열렸으나 그것은 아주 통제된 형태로 열렸다. 6월 시민혁명은 절반의 성공, 아니 ‘실패한 성공’으로 끝이 났다.

한국의 신생민주주의는 정치엘리트들간의 거래를 통해 대통령직선제 민주주의에 갇힌 채 구체제와 고도의 연속성을 지닌 수구적 상태에서 민중을 배제한 외형만의 민주주의로 태어났다. 보수적 ‘정초 이행’의 기본 틀에 의거하여 지배블록은 구체제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새로이 시장독재를 끌어들임으로써 ‘지배체제의 변형주의적 재편’을 기도하였다. 민주화 10년 동안 시대의 흐름은 군부독재를 역사의 저편으로 몰아냈지만, 국가와 사회 관계의 보수적 철벽, 냉전적 남북대결 관계 그리고 ‘오만한 제국의 한계선’에 갇힌 종속국 신민의 처지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민주화 10년을 책임진 권위주의적 자유주의 정권은 새로운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데 실패하고 지리멸렬한 천민권력으로 전락했다. 1997년의 위기는 민주화 10년 동안 민선정부들이 수행한 변형주의적 수동혁명의 실패를 결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실패에는 원인이 있었다. 만약 이 국가와 사회가 진정 민주국가와 자유시민사회로서 부여잡고[保] 지킬[守] 것이 있다면, 국가의 민주주의를 오용하고 시민의 자유를 저해하는 사회권력들을 정당하게 제어할 기백을 발휘해야 했다. 그러나 민주화과정 중에 정권을 운영한 역대 정권들은 전횡을 일삼는 사회권력들의 포로가 되거나 그들에 포위되었다. 그것이 수동혁명 형태로 진행된 민주화가 항상 약체정권의 상태로 몰린 첫번째 원인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민선정부의 거의 대부분의 정책이 ‘지배체제의 변형주의적 재편’ 기도의 성격을 띠면서 6월 시민혁명을 계기로 발본적 민주대개혁을 바라는 국민대중의 열망과 욕구불만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당성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문민정부의 임기 종반기를 전후하여 뜻밖에 불어닥쳤던 ‘박정희신드롬’이 한국판 고이즈미를 얻을 수 있었다면 극우 회귀적인 반동개혁의 길이 열렸을지도 모른다. 민주화 10년의 진행중에 봉착한 국가적 위기를 배경으로 그나마 또 하나의 민주화세력으로 꼽히던 김대중정권이 소수파정권의 형태로나마 국가운영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그래도 불행 중 다행한 일이었다.

김대중정권의 집권으로 대한민국은 일본 고이즈미식 신극우개혁의 길에서 벗어났다. 아니 그 반대로 8ㆍ15 이후 처음으로 탈극우ㆍ탈냉전 개혁의 길로 들어섰다. 햇볕정책의 일관된 기조와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는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 평화와 안정, 남한 내부민주주의 그리고 대미 민족자존의 물길을 열 수 있는 획기적 디딤돌을 만들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문민정부 시기의 탈군부의 세력재편에 이어 탈냉전ㆍ탈분단과 국가민주화를 향해 큰 발길을 내딛게 되었다. 또한 재벌개혁을 비롯한 경제개혁이 비켜갈 수 없는 의제가 된 가운데 국가행정과 사회정책 분야에서 민주주의적이고 복지 지향적인 정책의 도입이 시도되었다. 무엇보다 노동계를 비롯한 사회 각 분야에서 시민적 역동성이 활성화됨으로써 국가구성원들의 사회적 활동 폭이 대폭 확대되었다. 시민적 의사표현의 빈도와 강도 그리고 참여폭은 5ㆍ16쿠데타 당시 기준으로 보자면 군부가 인내했을 수준을 일찌감치 넘어섰다. 이러한 것들은 앞선 민주화 10년의 냉전 ‘연성시장권력’ 시기에 비해 분명 전향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국민정부’의 부패자유주의는 ‘문민정부’의 부패자유주의와 그 핵심에서 닮았다. 이 정부 역시 국가권력을 사물화하여 대한민국을 게이트공화국으로 전락시켰다. 부패비리 게이트공화국으로의 추락과 반노동 친재벌로의 보수적 퇴행 경향은 앞선 정권과 너무나 닮았다. 뿐만 아니라 현정부의 경제개혁은 본질적으로 87년 이래 지배세력이 추구해 온 재산권의 승리―‘근대화된 자본의 독재’ 노선과 미국패권하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에의 편승전략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민주주의를 놓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어떤 위기도 그렇듯이 진정한 위기는 결코 밖에서 닥치지 않는다. 1997년 외환난리의 형태로 이 국가에 닥친 위기는, 당시까지 진행되었던 민주화과정 10년 동안 일단 시야에서 사라졌던 반공 자유민주주의와 개발독재의 핵심 세력들이 숨을 고른 후 그나마 시도된 개혁들을 원점으로 되돌리기 위해 재차 내부반란을 감행하기 시작한 시기와 우연찮게 일치한다. 동시에 이 시기는 민주화를 정치적으로 주도한 정당세력들의 정치적 허약성과 퇴행성이 대통령 아들과 측근들의 부정과 비리라는 형태로 첨예하게 노출되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안으로부터의 위기는 밖으로부터의 위기에 의해 간신히 중화되었던 것이다.

원래 사회적 기반이 없었던 군부세력만 제외하고 개발독재 아래서 미래의 잠재적 시민사회를 직접 장악한 경험이 있던 관료와 재벌 그리고 안보상업주의, 정치적 선정주의, 지역감정의 충동으로 다져진 족벌언론은 이제 일단 시야에서 멀어진 반공 자유민주주의의 단순한 ‘잔재’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엄연한 ‘현재’이다. IMF사태의 핵심적 원인제공자였으면서도 그 강대한 사회권력 덕분에 결코 척결되지 않았던 이 지배블록은 위기상황의 다급함 때문에 선거에 의한 최초의 정권교체를 감수할 정도로 밀렸다. 하지만 이들은 시장에서 여전히 압도적 우세를 견지하는 가운데 소수파정권이 시행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일차적 수혜자로 다시 그 기반을 다졌으며, 변화의 급격함과 정치권력의 부패상 안에서 방향감각을 잃은 시민들의 냉소주의를 틈타 정치적 결집력을 강화시켰다. 이 수구지배블록의 입장에서 볼 때 민주화 15년은 ‘민주화 안에 자신들의 반민주화의 리듬을 장착시키는 과정’이었다.

돌이켜볼 때 우리는 민주화 15년의 대한민국에서 탈군부독재와 탈냉전ㆍ탈분단의 길을 향한 진전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15년의 역사를 통해 판명 난 것은 여전히 구체제의 탯줄을 끊지 않은 1987년 보수적ㆍ배제적 민주화체제의 허약함, 그리하여 이 체제를 책임진 한국의 보수적 지배블록의 무능과 무책임이다.

분명히 대한민국 국가의 위기는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위기를 전면에 부각시켜도 될 징후적 상황은 아주 조심스럽게 짚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위와 같이 민주화과정 안에 반민주화의 지배리듬을 장착시키는 데 일정 정도 성공한 수구세력의 결집력이 강화되는 경향과 동시에, 이에 맞서 부단한 개혁을 통해 자율적 시민생활의 실현가능성이 높아지는 추세가 서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에서, 그 긴장을 감내해야 할 시민사회 안에 거대한 의식공백과 그에 따른 활동성의 부진이 확연하게 목격되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 엄청난 월드컵 열풍이 불었고, 그에 앞서서는 ‘노풍’도 불었다. 그렇지만 이들 유례없이 시원했던 신바람 속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대한민국의 척추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내부의 뿌리깊은 보수성과 불안정한 남북 긴장관계 그리고 미국제국의 신민국으로서의 처지다. 두 차례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압승, 서해교전사태와 냉전수구세력의 발호 그리고 미국 장갑차 여중생 압살사건과 재판권 양도를 거부하는 오만한 미국의 태도 및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굴종적 자세가 바로 이를 웅변해 주고 있다.

이런 악조건 아래 2002년 6월에도 시민사회운동의 약동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새로운 6월을 시작할 수 있는 공화국의 희망을 본다. 어떻게 광장 없는 대한민국을 광장 있는 대한민국으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시민 속에, 피플 속에 뿌리내려 광범한 풀뿌리참여를 이끌어낼 것인가. 어떻게 ‘연대 속의 차이’와 더불어 ‘차이 속의 연대’를 구현하는 다중심의, 다층적인 열린 시민 진보정치를 발전시킬 것인가. 어떻게 세계화된 시장의 지상명령에 대항하여, 자본운동을 국민적ㆍ지방적 공간에 다시 묶는 대안적 발전모델을 발전시킬 것인가. 어떻게 보수자유주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시민민주적인, 민족-민중적인 집단의지와 역사적 블록을 발전시킬 것인가. 지금은 다시 공화국의 새로운 6월의 시작을 위하여 보다 치열한 고민과 분투가 요구되는 때이다.

이제 겨우 시작된 『시민과 세계』의 일차적 탐구현장이 한국시민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시민의 삶이라고 했을 때, 그것에 영향을 미칠 하루하루의 ‘시사적’(時事的) 요인들을 예민하게 감지하여 반년의 호흡 속에서 ‘시대적’(時代的)으로 인지하려고 하는 것은 이 잡지의 기본 과제다.

이번 2호에서 그 과제를 구현하는 주제기획 “민주화 15년: 자각되는 위기와 자생하는 희망”은 정치와 사회경제적 변동을 중심으로 우리 민주화 안의 위기요인과 그것을 넘어서는 희망요인들이 혼돈스럽게 뒤얽히는 현재의 국면을 조망하면서 각각의 사태들을 다방면에서 분석하려고 시도하였다. 국가주의가 새로운 모습으로 부상하는 가운데서도, 월드컵에서 분출된 다양한 욕구들과 허상들에서 예감되듯이 다양하게 분화된 아비투스와 모든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공감하는 에토스의 추구를 시민정치의 시각으로 설정하는 가운데(홍윤기) 민주적 헌정질서의 원칙적 측면이 토론 가능한 수준에서 논의되도록 하였다(정태욱). 하지만 이런 이론 유토피아적인 구상의 토대가 되어야 할 정치적ㆍ경제적 현실 안에는 기대의 좌절을 가져올 구조적 요인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이병천ㆍ조희연).

긴장이 고조될 때 생각하기를 그치고 의식을 놓는다는 것은 곧 기절한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현대사 50년에는, 사회의 이면에서만 잠복해 있던 변화의 요인들이 집중적으로 용출(湧出)하면서 엄청난 결단의 압박을 가할 때 판단의 착오로 사회와 민족에게 엄청난 재앙을 안겨준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분단의 공고화를 가져온 건국 이전의 신탁통치 찬반투쟁이 아마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를 사는 한국의 젊은 시민 지식인들은 극점들이 첨예하게 분출하는 이 순간에 과연 예전보다 더 나은 예지력을 발휘하는가. 한 시대의 단면 전체를 두고 우리의 지성을 시험하고자 한 것이 이번호 좌담의 근본 의도였다.

당연히 2002년 전반기를 반조할 때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실시된 각종 선거와 5개월 앞둔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투표율이 급감하고 후보들에 대한 판단을 유권자 시민들이 대거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특별기획 “선거, 새로운 선택의 계절”에서는 민주당(윤상철)과 한나라당(홍세화)의 대선후보들에게 개인적인 서신형식을 통해서 시민의 입장에서 비판점들을 개진하고, 정치권의 역학관계를 변화시킨 지방선거의 의미와 더불어 향후 대선의 향방(정대화, 이재영)을 짚어본다.

시민의 시선은 우리의 의식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친 쟁점들을 논쟁과 시민운동현장에서 부각시켰다. 『시민과 세계』는 창간호 권두언에서 보수주의만이 아니라 진보주의 또한 성찰적 자기계몽이 요구되며 열린 진보로 거듭나야 함을 주장한 바 있다. 최근 화제가 된 ‘일상적 파시즘’론은 진보의 자기계몽을 자극하는 긍정적 성찰의 요소를 담고 있다. 앞으로 이 같은 비판적 성찰은 더욱더 금기와 성역 없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판적 성찰이 보수주의의 확장으로 흐르지 않고 어디까지나 진보주의의 확장과 재생을 위하여, 열린 진보 연대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이번 호에 실린 ‘일상적 파시즘’론에 대한 비판(이광일)은 이 담론이 ‘지배체제로서의 파시즘’과 ‘일상의 파시즘’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있고 비판의 화살을 주로 대중과 진보운동권에 들이댐으로써, 진보진영의 퇴행성을 자기반성하는 차원을 넘어 보수담론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무척 논쟁적일 수밖에 없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진보의 재생을 위해 건설적인 논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한편 오랜 세월 민족의 불운한 운명과 동행하면서 그 모든 좋은 일이 민족 화해와 평화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아직도 정정한 논증적 기백으로 토로한 참여사회연구소 이사장 주종환 선생의 글은 후학들을 깨우치는 바 크다.

정치권의 부패(김민영)와 굴욕적인 군비사업(김종대)을 통해 우리 국가가 어느 점에서 주권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취약한지 들여다보았다. 2002년 6월의 한ㆍ일월드컵은 또 다른 방향에서 관찰의 현장이었다. 월드컵 열기에 대한 아주 엄정한 비판(권혁범)과 신중한 관망(조현연)이 붉은악마 현상의 향후 귀결을 주시하게 만든다. 2002년 전반기 우리 노동계의 가장 긴급한 의제 가운데 하나였던 발전노조 파업에 대해 전력산업구조개편을 거시적인 에너지 공급체계의 구상이라는 관점에서 논의한 것(이필렬)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부정성과 노동운동의 취약한 대응을 부각시키는 논의(노중기)가 같은 문제에 대해 상반된 결론에 도달한 것을 보는 것은 지적으로 일단 흥미롭다. 하지만 보다 거시적인 구조혁신을 기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 사회적으로 소외될 이들을 구원할 것인가와 같이 구체적 쟁점과 연관된 이견들은 대안적 미래질서의 추구에서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 적지 않은 실천적 고민과 긴장을 안겨줄 것이며, 또 그만큼 진보 내부에서 서로 차이를 존중하는 새로운 에토스를 요구한다.

이에 반해 빈곤의 문제는 동시대인으로서 반드시 가슴에 담아야 할 동료인간들의 비극이다. 과거 국가 자체가 빈곤했을 때와는 또 다른, 풍요 속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닥친 빈곤의 새로운 양상(노대명), 그리고 이 빈곤의 대열에 새로이 합류해 들어가는 여성(이숙진), 신빈곤층(김수현)과 외국인노동자(설동훈) 등에 대해 관심을 거둔다면, 우리는 스스로 책임있는 시민적 삶을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될 것이다.

바로 이 빈곤의 대척점에서 세계의 창은 세계화된 자본의 자유와 풍요 속에서도 부정과 부패를 범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경쟁에 내몰리는 자본세계와 미국식 시장자본주의의 모순을 조명한다. 시장과 자본의 환상 속에서 축적의 유실(셰네)과 시장의 실패(소비아)에 빠져드는 좌절자들의 얘기를 직접 원문에서 번역하여 실었다.

참여사회 구상에서 네덜란드 담론은 어느 면에서 히딩크 신드롬에 대한 우리의 심층적인 대응이다. 히딩크 개인을 우상화하기보다 그를 배출한 사회의 구조와 기풍을 천착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부정적 체질을 혁신할 어떤 지표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네덜란드 모델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고, 이번 호에 실린 글들간에도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네덜란드 모델 전반에 대한 평가는 보다 심층적인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토빈세에 대한 논의(박종현)도 보다 깊이 있는 참여사회 구상이라고 하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추가되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시험받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만이 아니다. 우리는 과연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생활의식과 사회관계에서 풍요로운 삶을 꾸려가고 있는가? 또 진정 그러기를 원하는가? 민주주의는 국가가 지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각성한 자율적 시민, 참여하는 시민의 힘이 민주공화국을 지키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2002년 8월

공동편집인 이병천ㆍ홍윤기

이병천,홍윤기 / 공동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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