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의 소재
80년대에 한국의 사회과학논단을 장식했던 노동해방파(PD)와 민족해방파(NL) 사이의 논쟁이 요즈음 다시 부활하고 있는 느낌이다. 민주노동당 안에서는 PD파와 NL파 사이의 노선대립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PD파 중 백기완계의 주도로 조직된 것으로 알려진 사회당과 PD-NL연합이라고 할 수 있는 민노당의 진보세력 대연합을 위한 합당교섭과정에서 가장 큰 암초로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노선조율의 어려움이라고 한다.
사회당 쪽은 현단계 한국사회는 노자대립이 주요모순이므로 노동계급 주도에 의한 자본주의 사회 타도, 즉 노동계급혁명을 필요로 하는 사회라고 본다. 이 견해는 북한사회도 북한노동당 간부가 자본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있는 사회이므로 자본가가 지배하는 남한사회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으며, 노동계급혁명에 의해 타도되어야 할 체제라고 본다. 실제로 이 분파의 이론가의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개혁주의적 시민운동세력만이 아니라 민중운동 내의 개량주의 및 현재 민간통일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민족주의적 통일운동세력의 많은 부분들도 김대중정부의 대북정책 추진 및 남한자본의 북한진출을 뒷받침하는, 정권과 자본의 제2중대로 점차 편입되고 있다. 그리고 수구와 개혁의 대립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국제여건의 변화에 따른 자본가 내부의 헤게모니 게임일 뿐이기에, 대립의 기본 구도는 현정권의 시장주의적 북한 흡수통일노선과 계급적ㆍ민중적 통일노선 간의 대립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민중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신자유주의를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남북한의 노동자ㆍ민중의 이익에 진정으로 합치하는 새로운 사회체제의 건설을 지향해 나갈 것인가이다.”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를 기준으로 전선을 분명히 가르자는 이런 주장은 노자의 대립을 기준으로 하고 노동자주도의 사회주의 혁명을 지지할 것인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전선을 갈라놓아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근본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이런 입장은 매우 명쾌하고 용맹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또한 이런 노동자계급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 주장이 현재의 국가보안법체제 아래서 버젓이 주장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기이하게 보이는 면도 있다. 그것은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정권을 타도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이 이론이 “적의 적은 우리의 우군이다”라는 관점에서 포섭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보이는 면마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치적 또는 정략적 의미부여는 좀 지나친 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런 주장이 운동권 안의 유력한 분파들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눈여겨볼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이상과 같은 상황에 유념하면서 이들 근본주의자들의 이론의 문제점들을 검토하고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론을 제공하고자 한다. 논의의 순서는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제1절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제국주의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를 고찰할 것이다. 특히 필자가 일찍이 한국학계에 소개한 바 있는 ‘자유무역제국주의론’과의 관련성을 살펴봄으로써 신자유주의의 제국주의적 본질, 따라서 민족자주성 수호 문제와의 상호관련성을 분명히 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제2절에서는 ‘모순론’의 관점에서 오늘날 한국사회의 ‘주요모순’ 내지 ‘주요변수’가 민족모순=민족통일 문제임을 밝혀내고 그 밖의 모순들, 즉 노동자ㆍ농민ㆍ서민 등에 관련되는 모든 사회적 모순과 문제들은 민족통일문제의 실마리가 풀림에 따라 자연적으로 풀어질 수 있는 ‘종속모순’ 내지 ‘종속변수’들임을 밝히고 모든 사회개혁운동이 대중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민족통일문제를 근간으로 해야 하는 이유를 밝힐 것이다. 제3절에서는 남한사회 내에 대북 인식과 대처방안을 둘러싸고 ①호전적 북진통일론 ②개방촉구에 의한 흡수통일론 ③무조건적 교류협력론 등 세 갈래의 견해가 맞서 있음을 분석하고, 이와 같은 상황 아래서 민족통일운동의 당면한 목표가 한반도 평화수호운동과 평화적 대북 교류ㆍ협력이어야 함을 밝힐 것이다. 끝으로 제4절 결론에서는 이상과 같은 견해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일부 논자들의 논리적 허구성을 밝히면서, 한국의 현단계 과제가 노동자계급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운동ㆍ시민사회운동ㆍ민중운동 그리고 종교운동 등이 노동자와 농민이 주도하는 광범한 한반도평화수호 범국민운동으로 승화되고 그것이 자주적ㆍ민주적 영세중립적 복지국가 수립운동을 중심으로 국민대중 속에 뿌리내리지 않고서는 결코 어떠한 가시적 성과도 얻어내기 어렵다는 점을 밝힐 것이다.
2. 신자유주의의 제국주의적 본질과 민족자주운동의 중요성
근본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정책의 반노동자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정권이 남북한에 개혁주의적 시민운동세력만이 아니라 민중운동 내의 개량주의 및 현재 민간통일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민족주의적 통일운동세력의 많은 부분들도 김대중정부의 대북정책 추진 및 남한자본의 북한진출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정권과 자본의 제2중대로 점차 편입되고 있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이런 견해는 현존하는 한국사회의 모순과 대립을 노자간의 모순과 대립으로 단순화시키고 그 밖의 모든 사회모순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일주의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는 노자간의 대립과 모순 이외에도 수많은 모순과 대립이 존재한다. 남북문제를 둘러싼 평화세력 대 호전세력, 자주세력 대 사대주의세력의 대립, 독점자본 대 중소기업, 매판자본 대 민족자본, 제도권상인 대 노점상 등 시장의 분점을 둘러싼 대립, 언론시장에서의 독점언론과 비독점언론의 대립, 기득권세력과 개혁세력의 대립 등 모순과 갈등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러한 모순과 대립 속에 민족통일운동세력, 시민운동세력, 민주화운동세력이 각각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한국사회에는 여러 가지 모순과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모든 모순과 갈등을 무시하고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노자간의 대립만이 유일한 모순이라고 단정하면서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세력을 싸잡아 정권과 자본의 제2중대로 매도하는 태도가 과연 합리적인 견해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좀더 겸허하게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져보는 것이 보다 사회과학자다운 태도는 아니겠는가? 즉 신자유주의 반대운동과 제국주의 반대운동 내지 민족자주운동 간에 어떤 접점은 없는 것인지, 또 신자유주의 반대운동과 기업구조개혁운동 내지 독점재벌 비판운동과의 접점은 없는 것인지, 남북대결을 부추기고 대북 강경대응책만을 주장하면서 6ㆍ15남북공동선언과 포용정책의 파기를 요구하는 호전세력에 대항하여 민족끼리의 공조를 강조하는 반전평화운동과의 접점은 없는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운동이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반대운동과 맞닿는 접점은 없는 것인가? 등등 문제는 얼마든지 지적할 수 있다. 자기의 우군이 될 소지가 있는 운동을 모조리 ‘정권과 자본의 제2중대’로 몰아붙여 적대시하고 노동계급혁명에 찬동하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세력만이 진정한 개혁세력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극좌모험주의, 독선주의 더 나아가서는 개혁세력의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정권과 자본의 진정한 의미의 제2중대’가 될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정책은 이를 위한 구조조정정책의 수행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될 노동자해고 등 때문에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반노동자적 성격을 갖는다고 비판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반노동자적일 뿐 아니라 그 제국주의적 속성 때문에, 특히 제국주의 지배체제로부터 압박과 수탈의 대상이 되어온 피지배국가 전체 민중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로서 범민족적 대결을 요구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원래 영국이 채택한 자유무역주의를 근간으로 한 자유주의는 언뜻 보기에 평화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것 같지만, 기실 본질적으로는 제국주의적인 것이었으며 제국주의의 변형된 형태에 불과했다는 지적은 중국을 상대로 한 ‘아편전쟁’, 우리나라의 강화조약 체결과정 등으로 여실히 증명된 바 있다. 그리고 이것을 역사학적으로 밝혀냈던 것이 바로 갈라거와 로빈슨이 공동발표한 『자유무역제국주의론』이다. 필자는 일찍이 이 논문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경제학연구』(한국경제학회, 1982)에 이 논문을 둘러싼 국제적 논쟁과 더불어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였고 필자의 저서 등에 이 논문을 전재한 바도 있었으므로, 상론을 피하기로 한다. 다만 이 기회에 강조해 둘 것은 지금 우리가 대결을 요구받고 있는 전세계적 규모의 자유무역체제=WTO체제=신자유주의 체제 역시 저 옛날 영국의 자유무역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역시 제국주의적 지배와 예속의 본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의 보루를 찾으려고 하는 일부의 논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반노동자적 성격만 강조한 나머지 신자유주의의 제국주의적 본질에 대해서는 눈을 감거나 아예 무시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 중 일부의 논자들은 6ㆍ15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하는 민족통일운동세력을 북한에까지 신자유주의를 전파시키려고 하는 ‘정권과 자본의 제2중대’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민족경제의 자주성을 지켜내려고 하는 것이 이들 민족주의 운동의 주요한 목적으로 되어 있음을 인정한다면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에서 이들과의 연대를 거부하고 이들을 ‘정권과 자본의 제2중대’라고 매도하면서 적대시한다는 것은 바로 이들 논자들이 신자유주의의 한쪽 면, 즉 그 반노동자적 측면만을 보고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제국주의적 본질――그런 의미에서 민족문제의 측면――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자대립을 강조하면서 남북한에 걸친 노동자계급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만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막아낼 수 있다고 보고 있지만, 구소련의 사회주의 혁명조차도 노동자계급만의 힘으로 실현된 것이 아니라 노동자ㆍ농민ㆍ병사ㆍ지식인ㆍ서민 등 광범한 계급과 계층 간의 연대에 의해서 비로소 성취된 혁명이었음을 볼 때, 노동자계급만의 힘으로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다고 보는 견해의 허구성은 너무나도 분명해 보인다. 더욱이 미국이라는 막강한 국가의 군사적ㆍ정치적 지배 아래 놓여 있고 국가보안법 하나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과 같은 냉전 수구적 지배체제 아래서 노동자계급의 힘만으로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다고 보는 견해는, 지극히 비현실적 견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일부 논자들은 사회주의 체제 아래 있는 북한이 비록 전체주의적 성격으로 비판받고 있다 하더라도 사회주의적 체제임에는 틀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것 역시 타도의 대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이 지향하고자 하는 노동계급혁명은 어떤 점에서 북한의 그것과 차별되는 것이 될 수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이들의 일부는 혹시 의회민주주의를 통한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정권들이 거의 모조리 신자유주의 체제의 하부구조로 편입됨으로써, 복지국가적 각색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본질을 나타내고, 최근의 몇 차례에 걸친 국제분쟁에서 신제국주의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남한에서의 노동계급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만도 엄청난 난제일 터인데 북한까지 포함하여 남북한 전체에 걸친 노동계급혁명을 운운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힘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채 분수도 모르고 남의 문제에까지 끼여들려고 한다는 점에서, 풍차를 공격하기 위해 달려가는 돈키호테와 같은 언동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다. 이런 환상적 이론을 전개하는 지식인은 자기 주장이 실현되건 말건 자기의 일상적 생계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릇된 이론을 신봉하여 열심히 운동하는 사회운동가들에게 주는 해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또 그것말고도 이 땅의 민족자주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운동대열을 분열시킴으로써 힘의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그러한 그릇된 이론을 섣불리 주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깊은 성찰을 요하는 대목이다.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을 통하여 노동자계급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 가운데 일부는 계급대립이 가장 큰 문제이고 민족문제는 ‘허깨비’에 불과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 독일의 히틀러는 각기 다른 인종들 사이의 대립감정을 부풀려 이것을 발판으로 정권을 잡은 후, 노동자계급을 탄압함으로써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런 쓰라린 역사적 경험은 광란적 민족지상주의에 대한 경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민족의 실체적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견해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도 결코 타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거쳐 오늘날 세계는 독립된 민족국가를 당위로 한 국제연합을 탄생시켰지만, 민족국가간의 이해대립이 급기야는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다. 특히 우리 민족은 2차대전 후 강대국에 의해 타율적으로 남북으로 허리가 잘린 채 57년간이나 기나긴 세월 남북의 군사적 대결로 민족의 역량을 허비해 왔다.
막대한 군사비부담만 대폭 감축되면 노동자, 농민 등 민중의 생활향상에도 크나큰 보탬이 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일이다. 더욱이 한반도가 또다시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면 핵무기 사용이 불가피한 상황하에서 민족의 생존권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주변 강대국들은 우리 민족의 분단에서 자국의 이익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실정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가장 큰 문제는 물자와 자본 등 노동력을 제외한 생산요소 이동의 자유에 휩쓸려 민족국가의 장벽마저 허물어져 감으로써 약소민족의 국가이익이 국제금융 독점자본과 이에 군림하는 몇몇 강대국들의 공세 앞에 점차 침식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소개한 바 있는 『자유무역제국주의론』은 이미 1953년에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데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 지금 우리 앞에 다가서 있는 신자유주의 역시 단순한 노자대립의 문제로 국한해서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적 본질에 대한 민족이익 수호의 문제와 관련시켜 보아야만 정당한 대처방안이 나올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일부 논자들이 6ㆍ15남북공동선언마저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전략에 따른 초국적자본의 북한진출전략이란 측면만을 각별히 부각시킴으로써 21세기의 새로운 제국주의 전략에 맞서기 위한 한민족의 힘의 결집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측면을 무시하려는 태도는 좌익소아병적인 교조주의적 언동이란 평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지난번 월드컵 때의 ‘붉은악마’를 중심으로 한 민족적 결집력의 분출현상은 민족이라는 명제가 사회운동에서 그 밖의 어떤 명제보다도 절대적으로 크나큰 폭발적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민족은 허깨비다”라는 주장이 얼마나 허황한 논리인가를 알 수 있다. 또한 오늘날 많은 민간사회운동단체들이 목전의 운동에만 매달린 채 민족이라는 보다 큰 문제에는 애써 눈을 감아온 이제까지의 운동방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3. 현단계 한국사회의 성격과 주요모순
필자는 『현단계 한국사회의 성격과 사회운동의 과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필자는 1988년에 당시의 한국자본주의의 성격을 ‘종속적 주변부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라고 규정한 바 있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전근대성을 고려한다면 ‘전근대성에 깊숙이 발목잡혀 있는 종속적 주변부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고쳐서 규정하여야 한다고 본다. …운동론과의 관련 아래서 보면 위의 규정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이 사회의 전근대성을 극복하는 운동이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점이다. 둘째로, 종속성에 대한 인식은 민족자주성의 확보와 남북분단문제의 자주적 해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게 된다. 주변부성에 대한 인식 역시 강대국에 의한 패권적 지배의 배제가 중요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규정은 앞의 전근대성과 맞물리는 가운데 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혈족재벌과 국가권력의 유착에 기인하는 부패의 만연과 이들 기득권세력들에 의한 권위주의적 지배체제를 배제해야 한다는 과제와 민주주의적 제반 권리와 제도를 확립하는 과제가 시급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또한 국가독점자본주의로서의 규정성은 그러한 역사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도세력이 옛날 자본주의 발전 초기에서와 같이 유산자계급이 아니라 기득권세력에 의해 피해를 입고 탄압받아 온 광범한 근로인민대중과 지식인ㆍ민족자본가의 연합체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유도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동시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전근대성에 발목잡혀 있는 종속적 주변부 독점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자본가계급을 비롯한 유산자계급은 사회개혁을 주도할 입장에 있지도 않고 그럴 생각조차 없다. 오히려 이들은 기득권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 모든 사회개혁에 있어 그 주력부대의 역할은 이들과 일상적으로 대결하고 있는 노동자계급이 떠맡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자계급 단독의 힘만으로는 어느 나라에서건 사회개혁에 성공한 예가 없다. 이들이 사회개혁에 성공하려면 반드시 다른 계급ㆍ계층과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미완의 장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그러한 예를 우리는 1987년의 6월항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필자의 주장은 현재도 유효하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덧붙여두고 싶은 것은 ‘모순론’의 입장에서 보아 민족모순, 계급모순, 지역모순, 자본간 모순, 권위주의 대 민주주의의 모순 등 여러 모순 가운데 어느 것이 ‘주요모순’ 내지 ‘주요변수’인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서 주요모순이란 그 밖의 다른 여러 가지 모순들과 얽히고 설킨 상황 아래서 그것만 풀면 다른 모든 모순들이 쉽사리 풀어질 수 있는 그런 모순을 가리키는 말이다.
결론을 먼저 말한다면, 한국의 과거 100여 년에 걸친 외세지배하의 민족수난사에 비추어볼 때 한국사회의 주요모순은 민족문제와 민족통일문제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한국상황 아래서 민족문제와 관련된 6ㆍ15남북공동선언만 제대로 실현되면 여러 가지 문제들의 해결 실마리가 풀린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의 자주권을 결정적으로 제약하면서 그 종속성을 심화시키고 있는 주한미군문제도 6ㆍ15남북공동선언이 제대로 실현되면 자연스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문제이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에 뒤이은 한반도 영세중립화에 대한 국제적 보장이 확실하게 되면 남한에 대한 미군의 주둔명분이 사라지고 궁극적으로는 철군이 실현되거나 미군이 UN평화유지군 같은 것으로 형태를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사회에서 민주화를 결정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것이 국가보안법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법은 남북간의 첨예한 대립을 구실로 하여 존치되고 있는 법률이다. 궤변자들은 이 법이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자유민주주의에 결정적으로 위배되는 법을 가지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상 자기모순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주장이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그 유일한 근거라는 것은 북한에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적대적인 정권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남북한의 정상끼리 6ㆍ15남북공동선언에 합의한 이상 이제는 그 근거를 상실하고 말았다. 한국의 민주화를 가로막고 있는 국가보안법문제도 민족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6ㆍ15공동선언의 확실한 실현 여부에 달려 있음이 이로써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초국적자본이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침범함에서 비롯되는 모순대립의 문제도 6ㆍ15공동선언의 원칙에 따라 민족자주의 입장을 견지하여 대처한다면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6ㆍ15공동선언에 따라 남북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으로 군사비가 대폭 삭감되고 한국경제에 새로운 장이 열린다면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여러 민중의 각종 생활상의 요구들이 실현될 가능성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로 자리잡은 지역간 대립의 문제도 정치적 쟁점을 6ㆍ15공동선언과 관련시켜 이에 대한 지지세력과 이에 대한 반대세력 그리고 남북간 화해협력세력과 대북 적대세력, 평화세력 대 호전세력 등으로 단순화시키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 밖의 여러 가지 모순들과 민족문제와의 관련성 그리고 민족문제가 주요모순 내지 주요변수임을 입증할 수 있겠지만, 이상과 같은 논리적 맥락에서 볼 때 한국사회의 주요모순이 민족문제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노동운동ㆍ농민운동ㆍ시민운동 등 한국사회의 개혁을 지향하는 모든 사회운동은 민족문제 내지 민족통일문제와 연결되었을 때만이 그 대중적 기반을 확충할 수 있고 성공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요모순의 고리를 외면한 채 종속모순의 언저리에만 머물게 되면 대중적 기반을 상실하고 운동의 탄력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붉은악마’ 현상은 이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한국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민족문제, 따라서 민족통일문제야말로 모든 사회개혁운동의 근간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4. 민족통일운동노선의 분파와 한반도 평화수호운동
2002년 6ㆍ19서해교전사태는 한반도의 민족통일운동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왜냐하면 이 시점을 분수령으로 해서 그 동안 6ㆍ15남북공동선언에 반대하는 속마음을 숨기면서 일방적 퍼주기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대북 교류ㆍ협력에 반대해 온 세력들이 본색을 드러내어, 6ㆍ15공동선언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전반적인 반대의사를 노골적으로 표명하고 대북 호전적인 전쟁불사론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남한 내의 세력판도가 대북 인식과 정책을 둘러싸고 호전세력과 평화옹호세력이라는 두 개의 진영으로 확실하게 갈라서게 되었으며, 남한의 사회운동권도 싫든 곱든 간에 이 두 개 진영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남한의 냉전수구적 호전세력들은 6ㆍ15공동선언에 대한 열렬한 국민적 지지 앞에, 그 대세에 밀려 이에 대한 노골적 반대가 국민의 지탄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줄곧 이에 대한 반대의 속내를 내비치지 않는 가운데 표면상 ‘상호주의 원칙’과 ‘검증의 필요성’을 내걸면서 사사건건 6ㆍ15공동선언 실현에 제동을 걸어왔다. 그러나 6ㆍ29서해교전사태로 대북 국민감정이 극도로 악화되자 이에 편승하여 공공연히 6ㆍ15공동선언의 파기를 주장하고 대북 군사대결정책을 촉구하면서 금강산관광사업 등 대북 교류ㆍ협력 사업의 전면 중단을 주장하고 나섰다. 대북 군사적 긴장의 강화만이 냉전수구세력의 정치적 기반 강화에 보탬이 된다고 보는 이들은 이제 국민의 대북 적대감정을 자극하면서 대북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6ㆍ15선언에 대한 ‘은밀한 반대’로부터 ‘공공연한 반대’로 전술을 바꿈으로써 완전히 자신들의 호전적 본색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 아래서 한반도 평화유지에 사활이 달려 있는 사회운동세력들은 6ㆍ29서해교전사태에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제때에 효과적인 대응조차 못하는 가운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의 힘의 한계가 이번 사태로 분명히 노출된 것이다. 그러나 ‘위기’는 또한 ‘기회’이기도 하다. 이제 전선이 호전세력과 평화세력으로 확연히 갈라진 이상, 누가 우군이고 누가 적군인가를 손쉽게 가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평화세력의 힘의 결집에는 매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그 동안 한국의 냉전수구세력들은 똘똘 뭉쳐서 재기의 기회를 노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처해야 할 평화옹호세력들은 사분오열된 속에서 여당과 야당 사이의 당파적 대립에 눈이 팔려 정차싸움에서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데만 몰두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호전세력과 평화세력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제3의 입장을 취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도 한국의 시민사회운동 역시 6ㆍ29서해교전사태가 커다란 분수령을 이루게 될 전망이다. 필자는 이러한 변화야말로 한국의 민족통일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의 대동단결을 촉구하는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남한의 민족운동세력과 시민운동세력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중심으로 대동단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다만 이러한 대동단결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각 세력 사이에 존재하는 북한에 대한 시각차이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시각차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북한정권을 궁극적으로 소멸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고 평화적 상호 공존ㆍ공영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에 관한 견해와 입장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전자, 즉 북한정권을 궁극적으로 소멸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면서도 교류와 협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보는 견해는 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붕괴할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교류ㆍ협력을 통한 북한체제의 개방추진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대북 군사적 대결정책에 반대하고 한반도 평화수호를 위해 6ㆍ15공동선언을 지켜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이 바로 햇볕정책론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서 후자, 즉 북한을 평화적 공존ㆍ공영의 대상으로 보는 견해는 북한정권체제의 선택은 북한인민들이 선택할 문제임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시비를 접어두려고 한다는 점에서 전자와 차별성을 나타내고 있다. 즉 이 견해는 북한정권을 교류ㆍ협력을 통한 개방촉구를 지렛대로 하여 소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북한체제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민족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공존ㆍ공영을 이룩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그런 의미에서 후자는 ‘공존공영론’이라고 할 수 있다.
양자간에 이 같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남북간의 평화유지가 모든 것의 선행요건이라고 보면서 군사적 대북 적대정책을 주장하고 있는 냉전수구세력들에 반대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유지가 모든 것에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현재 담보하고 있는 것은 6ㆍ15남북공동선언이므로, 이 기본 틀만은 계속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이 두 견해의 공통된 점이다. 이 점에서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결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보면서 6ㆍ15선언의 폐기와 남북간 교류ㆍ협력을 당장 집어치우라고 주장하는 냉전수구세력들의 견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편 햇볕정책론자 내지 대북 포옹정책론자들의 일부는 북한체제를 넘어뜨리기 위해 대북 교류ㆍ협력을 이용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 점이 북한체제를 인정하고 같은 민족끼리 무조건 도와야 한다고 보는 ‘공존공영파’와는 상반된다. 그렇지만 이 두 개 견해 사이에 존재하는 그러한 견해차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평화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한다고 보는 점에서, 이들 두 견해는 6ㆍ15공동선언을 고리로 하여 하나로 합쳐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 두 견해는 하나로 뭉쳐질 수 있고, 대북 군사적 대결을 부채질하고 있는 냉전수구세력들의 견해에 대한 공동의 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을 슬기롭게 살려나갈 수만 있다면 냉전수구세력들의 호전적인 대북 대결정책을 물리치고 6ㆍ15공동선언을 지켜나갈 가능성이 열리게 될 것이다.
주요한 점은 이 두 견해가 세를 합치면 6ㆍ15공동선언을 확실하게 지켜낼 수 있는 정권의 창출도 가능해짐이 보인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남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한반도의 평화가 파괴되었을 때 살아남을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비록 국민의 적지 않은 부분이 6ㆍ29서해교전사태에 자극받아 일시적으로 냉전수구세력들의 호전적인 선동에 현혹되어 대북 군사적 대결정책을 지지하는 쪽에 기우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이 정상을 되찾으면 쉽사리 평화수호세력들의 합리적 목소리에 따라나설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한의 평화애호세력들이 구동존이(求同存異, 각기 다른 것 중에서 같은 점을 구하는 일)의 원칙을 존중하는 가운데 효과적인 대동단결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5. 맺음말: 한반도평화를 위한 범국민운동의 시급성
이 글의 앞부분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학계의 일각에서는 현단계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노자대립이 주요모순이므로 노동계급주도에 의한 자본주의 사회 타도, 즉 노동혁명이 필요한 사회라고 본다. 이 견해는 북한사회도 북한노동당 간부가 자본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있는 사회이므로, 자본가가 지배하는 남한사회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으며 노동혁명에 의해 타도되어야 할 체제라고 보면서 남북간의 화해협력을 주장하거나 민족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견해를 정권과 자본의 제2중대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이 견해는 6ㆍ15공동선언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북한체제의 전복의 필요성을 제창하고 있다는 점에서, 냉전수구세력들의 대북 적대정책과 일맥상통하는 면을 지니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마르크스주의라는 진보적 좌파이론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좌파 안의 6ㆍ15공동선언 반대세력에게 이론적 발판역할을 하고 있는 점일 것이다.
적의 적은 우군이라는 말에 따라 남한의 호전적 냉전수구세력들로서는 유력한 우군을 자기와는 전적으로 상반된 입장에 있는 좌파진영 안에 확보하게 된 셈이다. 그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과 사회주의 체제의 수립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에 의한 탄압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이유도 이런 점에 있지 않은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사회의 주요모순 내지 주요변수는 민족모순이므로 민족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민족대단결을 통한 평화적 통일로의 수순과 방법을 명시한 6ㆍ15남북공동선언을 실현하는 것이 모든 문제에 앞선 과제가 되지 않을 수 없고 또 그래야만 한다. 계급모순이나 그 밖의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 모순들은 민족문제라는 주요모순 내지 주요변수에 대한 부차적 모순으로서, 6ㆍ15공동선언으로 남북간의 민족문제에 실마리가 풀리면 자연스럽게 덩달아 풀어질 수 있는 부차적 ‘종속모순’ 내지 ‘종속변수’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6ㆍ29서해교전사태 이후 분명해진 사실은, 남북정상이 민족 앞에 맹세한 6ㆍ15공동선언의 성실한 이행만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민족공멸의 위험성을 내포하는 핵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는 사실이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자본가건 노동자건 농민이건 모조리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남북간의 대결을 부추기고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호전적 냉전수구세력들의 호들갑이 얼마나 허황한 것이며 반민족적인 것인가는 일목요연하다. 그리고 이들의 견해에 실질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는 좌파모험주의자들은 그 의도야 어떻든간에 실로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6ㆍ15남북공동선언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로운 교류ㆍ협력을 통해 민족의 자주역량을 결집하여 점진적으로 평화로운 통일을 지향해 나가자는 데 합의했다. 이로써 남북의 군사적 대결이 해소되면 민중의 생활은 획기적으로 향상될 수 있을 것이며 민족경제의 융성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과 한반도의 영세중립화에 대한 국제적 합의 도출 그리고 유엔평화군의 한반도주둔과 주한미군의 철수 등 일련의 바람직한 한반도 평화보장을 위한 장치와 과정들도 6ㆍ15선언이 실현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있을 것이다. 민중의 생존권 수호를 위한 요구도 6ㆍ15선언이 실현되면 자연스럽게 풀릴 계기가 마련될 것이므로 노동자, 농민, 서민 등 민중의 생활상의 요구 관철을 위해서도 6ㆍ15공동선언의 실현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남한의 국가보안법문제는 물론 인권문제, 전근대적 지역대립의 문제 그리고 전근대적 정치제도와 정치부패의 문제 등도 6ㆍ15선언의 실현을 통해 민족적 에너지를 결집할 수만 있다면 쉽사리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논자들은 민족주의가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중대한 장애물이 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민족주의가 독일 히틀러시대에 볼 수 있었던 바와 같이 배타적 인종지상주의 또는 광란적인 국수주의에 빠짐으로써 반역사적이고 반인간적인 폭압을 결과했던 과거의 쓰라린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본다면 그러한 우려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번 월드컵 때 나타났던 ‘붉은악마’ 응원단의 행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국제감각을 지닌 건전한 민족주의의 가능성이 열려 있으며, 광란적 민족주의에 대한 우려가 한낱 불필요한 기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것은 민족주의를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면 사회개혁을 위한 훌륭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었다.
또한 일부의 논자들은 북한체제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지적하고 그것은 반드시 없어져야 할 체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견해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현재… 극소수의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지배를 장기화시키기 위해 다수의 인민을 인질로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햇볕정책을 지지하거나 북한을 지원한다는 것은 누구를 돕자는 것인가. …지금의 통일운동은 매우 무책임하다. …지금 통일하면 혼란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막연히 북한을 지원하라고 얘기한다. 독재자를 지원하라는 것인가. 현재의 햇볕정책 지지는 진보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의식ㆍ무의식으로 죄악을 저지르는 행위다. …굶어죽는 인민을 지원하려면 분배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그 사람들이 개혁ㆍ개방만 채택한다면 현재 북한체제가 나쁘다고 해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원조해 줄 필요 없다. 조금도 개선될 전망이 없다. 이런 지배체제에 대해 원조하는 것은 죄악이다.”
냉전수구적 극우파의 견해와 어쩌면 그렇게도 같을 수가 있는가. 이런 견해가 제1급의 지식인으로 공인받고 있는 사람에 의해 공공연히 주장되고 있다는 점에 서글픈 감마저 느낀다. 이러한 견해에는 6ㆍ15선언에 대한 심한 곡해가 내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 점만을 이 기회에 간략히 결론삼아 지적해 두고 싶다.
6ㆍ15선언은 지금 당장 통일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통일하면 혼란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쪽의 ‘국가연합’안과 북쪽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의 유사점을 인정하고 우선은 그 유사점을 존중하면서 서로 체제를 인정하는 가운데 평화적인 공존공영부터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체제가 다른 점은 서로 인정하고 흡수통일의 야욕을 버린 가운데 7ㆍ4공동성명에서 이미 합의한 대로 같은 민족끼리 자주ㆍ평화통일ㆍ민족대단결의 원칙 아래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자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 비추어보면 북한에 개방이나 개혁을 강요하는 것은 6ㆍ15선언에 위배된다. 또 북한에 개방ㆍ개혁의 가능성이 없으니 북한을 지원할 필요가 없다느니 지금 북한을 도와주면 독재자를 도와주니까 안 된다는 등의 주장도 북한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견해이기 때문에 6ㆍ15선언에 배치된다. 6ㆍ15선언의 본뜻은 민족끼리 핏줄이 같기 때문에 서로 돕자는 것이다. 분배과정이 투명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도 부당한 요구이다. 서로 믿고 도왔으면 상대방을 믿어주어야 한다. 일일이 간섭하면 그런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분배과정의 투명성 확보를 구실로 하여 교류ㆍ협력을 막고 과거와 같은 불신과 대결만을 일삼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그런 불신과 대결이 지속된다면 우리 민족은 영원히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다. 이것은 민족을 사랑하는 길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의 영구분단을 결과하는 견해이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의 김정일체제를 독재라고 비판하면서도 남한의 박정희독재에 대해서는 극구 찬양하는 이중적 잣대를 적용하는 것도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선 근대국가의 최대공신은 박정희다. …박정희가 주도한 군사독재가 아니면 근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양한 계층ㆍ계급의 이해를 독재가 아니고서는 통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군사독재체제가 아닌 다른 대안이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런 길은 없다고 답할 수 있다. …1987년 민주화가 되면서 한국사회는 발전방향을 상실했다. 그 사람들에게 국가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아무런 보장이 없다.” 그러면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지구상에 부르주아민주주의 이외에는 있어본 적이 없다. 그것이 성숙해서 대중민주주의로 발전했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부르주아민주주의 나아가서는 대중민주주의만이 참다운 민주주의라고 찬양하고 독재를 호되게 비판하면서, 곧 되돌아서서 독재를 찬양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일관된 논리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일관성 없는 잣대로 사태를 평가하면 결코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더욱이 “외부로부터 근대화의 동력이 들어온다”는 입장에서 외세에 의존했으니까 잘살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종속적 역사관만이 옳다고 보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할말을 잃는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현단계의 성격은 ‘전근대성에 심하게 발목잡혀 있는 종속적 주변부 국가독점자본주의’이다. 그리고 ‘주요모순’ 또는 ‘주요변수’는 민족모순이며 그 밖의 모순들은 ‘종속모순’ 또는 ‘종속변수’이다. 6ㆍ15남북공동선언의 역사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를 중심으로 모든 양심적 민족역량이 하나로 뭉쳐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남한에 6ㆍ15선언을 파괴하고 전쟁의 먹구름을 몰고 오는 데서 자기들의 기득권의 유지기반을 찾으려고 하는 유력한 세력이 엄존하는 상황 아래서는 우선 6ㆍ15선언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연대조직으로서 범국민운동체를 앞서 말한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원칙에 따라 형성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그것만이 3ㆍ1운동, 4ㆍ19혁명, 5ㆍ18, 6월항쟁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 온 민족민주민중운동에 신명을 바친 애국선열들에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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