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문 : 왜 평화국가인가?
‘평화국가’를 주장하면 이상주의적인 발상으로나 추상적인 정언명령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의 국제사회 흐름과 한반도가 처해 있는 조건에서는 확고한 평화국가 비전과 그 정체성이야말로 매우 중요하고도 실천적인 의미가 있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다양한 표현으로 정의할 수 있겠으나 최근 수년 간 국제사회에 일어난 일들을 염두에 둘 때, 지금의 시대를 냉전시대와 대비하여 ‘대(對)테러전쟁’의 시대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냉전 이후의 시대가 평화의 시대가 아닌 새로운 안보의 시대, 국경없는 전쟁의 시대라는 점은 인류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테러전쟁이라는 새로운 무장갈등의 시대는 우리가 아닌 초강대국 미국의 선포로 시작된 것이다. 대테러전쟁이 조지 부시라는 예외적 인물의 실패와 실수로 선포된 우연한 사건만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냉전시대의 해체 이후에 새로운 세계질서를 고민하던 미국 내 여러 분파의 전략구상들 중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실행단계에 들어선 하나의 ‘지배 패러다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탈냉전 이후의 모색을 거쳐 비로소 ‘테러분자들’ 과 ‘불량국가들’을 새로운 ‘위협’으로 선포하고 이에 대한 경찰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세계를 유리하게 재편하려는, 장기지속적인 패권구상의 일환인 것이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이를 한 시대의 개막에 비유한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닌 듯하다.
냉전시대와 마찬가지로 그 위협이라는 것이 완전히 허구인 것만도 아니다. 어쨌든 9.11사건은 실재했던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갈등의 원인 규명과 위협 해석, 그 해결 방식을 미국의 백악관과 펜타곤, 그리고 여기에 영향을 받는 세계의 소수 안보엘리트들이 독점하고 자국 국민과 인류에게 이를 강요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이들은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시작함으로써 인류 전체로 하여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도록 강요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지난 수십 년간 공고히 유지되어온 대결적 ‘안보’ 패러다임을 새롭게 변형·강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2000년 6.15 선언 이후 DJ 집권 막바지까지 잠시 찾아온 해빙의 시기는 네오콘에게는 절대로 반복되어서는 안 될 매우 위험한 순간으로 규정되었다. 이 해빙의 순간에 어떤 위협이 실존했는지는 이라크 전쟁이 과연 불가피했는지에 대한 논쟁과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지난 수년 간 역 내의 군사주의와 적대관계는 작용과 반작용의 연쇄효과를 통해 명백히 강화되어 왔다는 점이다. 대신 역사적 갈등관계들을 평화적으로 해소할 가능성과 과거에 대한 성찰적 접근을 추구할 기회 혹은 선택폭은 축소되어 왔다. 9.11 이후 군사주의와 패권주의를 더욱 노골화하고 있는 미국, 미국의 지역패권에 편승하여 미일 지역동맹 하의 군사대국화를 지향하는 ‘말’ 뿐인 전수방위국가 일본, 빠른 경제적 성장(군사적 성장도 포함된다)과 더불어 권위주의적 개발독재를 추구하고 있는 불확실성의 거대 중국, 생존의 방식으로 가장 극단적이고 뒤틀린 군사주의를 채택한 북한 등 동북아시아 주변 각국의 상황은 ‘국가안보’의 논리와 담론들이 강화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군사주의와 안보담론의 확대는 냉전시대와 유사한 그러나 변형된 선택들을 강요하고 있다. 예컨대, 한·미·일 지역동맹을 바탕으로 지역패권의 야심을 가진 중국과 대항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그것이다. 그와 반대의 편에서 장기적으로는 중국에 편승해야 한다거나 북한과의 민족 공조 혹은 자주노선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주냐 편승이냐”, “누구에게 편승할 것이냐” 는 식의 선택의 강박은 냉전시대의 국가주의적 혹은 세력균형론의 상상력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논의 구도 속에서는 설사 자주를 강조하더라도 부국강병이나 자강론처럼 갈등지향적이고 군사주의적인 선택지만 제시되고 종국에는 가장 힘 있는 자에게 편승하지 않을 수 없다는 숙명론이 강요되기 십상이다. 제국주의시대와 냉전시대의 담론인 자주 대 동맹, 친중 대 친미의 이분법 속에서는 한반도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의 길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낡은 구도의 결과로 주어지는 분단극복 역시 냉전시대의 질곡을 새롭게 전가하거나 유사한 다른 고통으로 전화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 자주냐 혹은 편승이냐는 선택 외에는 없는 것일까. 동북아의 불확실성 앞에서 ‘실용주의’ 혹은 ‘전략적 모호성’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다. 노무현 정부가 밝힌 ‘균형적 실용외교’도 그런 선택의 하나일 수 있다. 현실의 복잡성 앞에서 이익의 균형을 취해 나가는 현실적 접근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용외교’로 표현되는 노무현 정부식의 현실주의는 실패했다. 노무현 정부가 ‘균형’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각각의 선택은 ‘자주파’라는 보수적 비난에 직면하면서도 결과에서는 미국 주도의 군사 패권질서로의 환원이라는 편향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실용 외의 좌표를 제시하지 못했다. 협력적 자주국방이나 동북아균형자론 같은 담론은 국가중심의 역학관계에 대한 인식 외의 어떤 통찰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라크 참전, 전략적 유연성의 수용, 한미동맹의 재편, 북핵갈등 등에서 노무현 정부의 선택에 일관성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노무현 정부는 실용이 어떤 좌표와 비전을 향한 것인지 인식시키고 합의해 내는 데 실패했다. 누구를 위한 어떤 이익의 균형인지를 판단하기에 있어 민주국가다운 기준과 절차를 세우는 데도 실패했다. 좌표 없는 실용주의는 도리어 현실의 바다 위를 표류하고 결국 스스로의 낡은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혀 좌초할 수밖에 없음을 노무현 정부의 실용외교는 보여주고 있다.
사실 좌표의 부재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이면서 1945년 이후 분단된 대한민국 정부에서의 전반적 실패, 나아가 한국시민사회의 실패라고도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와 한국사회는 자주냐 동맹이냐는 낡은 잣대를 초월할 수 있는 어떤 보편적 가치나 정책적 유산도 한국의 현대사로부터 물려받지 못한 상태였다.
다만, 한국 국가와 시민사회가 탈냉전 시기를 관통하는 좌표로 합의한 것이 있다면 이는 이른바 ‘대북포용정책’ 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이래 김대중 정부에 와서 본격화되고 노무현 정부에 의해 계승된 대북포용정책은 ‘peaceful engagement’로 번역될 수 있는, 보편적인 갈등해결 원리의 하나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법에 관심을 갖는 정치세력이라면 채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생존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북포용정책’은 담론의 주된 성격이 남북관계에 맞추어져 있는 만큼, 민족주의·예외주의와 보편주의·민주주의 간의 긴장, 한반도 평화 정책과 국제 평화 정책, 그리고 한미동맹 간의 조화의 문제가 숙제로 남아 있는 제한적인 좌표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이러한 긴장이 표면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테러 전쟁의 시대에 와서 북미 간 정치군사적 갈등이 심화되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불화가 고조되면서 짧은 해빙기간 동안 한국정부와 시민사회가 유보해두었던 갈등의 요인들은 다시금 격렬하게 충돌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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