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근로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을 거절하고 자유롭게 이직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사용자로서는 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원활한 사업장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노동자에게 계약기간 동안 사직을 못하도록 하고, 사직했을 때 재취업 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위와 같이 설명하는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위의 설명은 다름 아닌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이다. 정확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 “외국인 근로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을 거절하고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면, 사용자로서는 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원활한 사업장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서 취업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근로계약 해지와 이직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외국인고용법의 규정이 “외국인 근로자의 자유로운 사업장 변경을 억제함으로써 고용허가를 받은 사용자가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므로 외국인고용법의 목적 달성에 기여하고 따라서 합헌이라는 것이다. 노동자가 사용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외국인 노동자의 국내 취업을 허용한 이유가 사용자의 인력난 해소에 있기 때문에 외국인의 (국내) 존재 자체가 사용자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인 것 같다. 그러나 특정 업종이라면 몰라도 특정 사용자를 위해 법까지 제정하면서 국가재정을 들여 외국인의 모집과 국내 취업 알선을 위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면 법의 목적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존재 이유를 오로지 다른 사람의 편익에서 찾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현실의 수많은 모순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향하고 나아간다고 믿는 세상인 것일까. 문제는 이러한 관념이 국내 이민정책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육아와 가사부담 때문에 출산을 꺼려 하는 내국인 여성들을 위해 외국인 여성들을 최저임금보다 저임금으로 가사도우미로 고용할 수 있게 하자”라는 어떤 의원의 발상이 기존 이민정책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 가사노동자들의 상당수는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과 2021년 국회에서 통과된 가사근로자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다만 노동시장에 의해 형성된 실제 임금은 적어도 최저임금보다는 높다. 따라서 가사노동자에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훨씬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헌법의 평등원칙에 근거를 둔 노동법의 기본원 칙인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1)에 위배되고, 현재 임금이 저하되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해당 법안은 게다가 가사근로자법을 개정하는 안으로서, 가사근로자법에 따라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받는 가사노동자2) 중, 외국인고용법에 따른 외국인 근로자3)를 다시 최저임금법의 적용에서 제외시키겠다는 내용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만, 로마가 스스로 로 마법을 버리겠다는 꼴이다. 아니면 노동법은 법이 아니라는 것이라거나.
법안은 결국 외국인 여성을 ‘저렴한 특가’에 가사노동자로 공급함으로써 한국인 여성이 안심하고 출산 할 수 있게 하여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앞날이 심히 암울한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사노동자로 일을 해온 중장년 여성들이 밀려나거나 임금이 줄어들게 되는 것에 대해 외국인과 차별화된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한다4). 어쨌든 간에 이미 출산이 가능한 연령에서 멀어진 중장년 여성들의 경력단절은 부차적 문제일 테니 굳이 자세히 따져볼 필요가 있겠는가. 다만 법안 중 그 어떤 부분도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어떤 이들에게 ‘인력’으로만 취급되는 외국인이 있는 세상이 참 편리하고도 유토피아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사람이 오면 그 사람과의 공존을 배워야 하는데, 사람이기 전에 ‘인력’에 불과한 이들과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노동력은 사람에게서 떼어낼 수 없고, 유럽의 어느 작가가 이미 오래전 지적한 것처럼 사람이 딸려오지 않는 노동력만 부를 수도 없다. 레미제라블의 민중이 모두 외국 국적이었다면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우리가 근현대사에서 배운 교훈인 걸까.
1) 대법원2019.3.14.선고2015두46321,헌법재판소2007.8.30.선고2004헌마670
2) 인증을받은가사서비스제공기관과근로계약을체결하고,이용자에게가사서비스를제공하는사람(가사근로자법제2조제4호)
3) 가사노동자는 현재 외국인고용법에 따른 고용이 가능한 대상이 아니지만, 정부는 올해 상반기 시범사업을 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https://www.newsis.com/view/?id=NISX20221229_0002141267
4) http://www.nwt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4606
월간 <복지동향> 2023년 5월호(제2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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