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기 헌재는 10개의 디딤돌을 밟고 10개의 걸림돌을 넘어서야
인권신장, 민주주의 확장,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 등의 측면에서 각각 선정
일부 긍정적 결정들도 있으나, 사상과 양심의 자유, 평화권,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에 있어 걸림돌 결정 양산
사법의 정치화를 보여준 결정들도 있어
1. ‘디딤돌과 걸림돌 결정’ 선정 취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 9명중 5명이 대거 교체되는 2006년 9월을 앞두고, 지난 6년동안 헌법재판소가 선고한 결정중 인권신장과 민주주의 확장,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 등에 기여한 결정과 그에 반하는 결정을 선별하였다.
통상 헌법재판소장의 교체와 함께 헌법재판관의 다수가 교체되는 것을 기점으로 하여 헌법재판소를 시기적으로 구분하는 관행에 따라, 2000년 9월부터 올해 9월까지는 이른바 ‘제3기 헌법재판소’로 분류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 다수를 선임해야 하는 시기를 맞아, 지금까지의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헌법재판관의 구성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토론은 필수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헌재가 내린 결정사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같은 선정결과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제3기 헌법재판소를 평가하는데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물론 10개의 디딤돌과 10개의 걸림돌로 뽑히지 않은 결정들 중에서도 제3기 헌법재판소를 평가하는데 근거가 될 수 있는 의미있는 결정들이 다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디딤돌과 걸림돌로 선정된 것들은 결정내용과 근거의 중요성, 유사한 사례와 비교했을 경우의 대표성과 상징성 등의 측면에서 반드시 지목 또는 기억되어야 할 것들이라고 판단하였다.
2. 10개의 디딤돌 결정과 10개의 걸림돌 결정
2.1 디딤돌 결정 10개와 각 결정별 퇴임 예정 재판관 5명 윤영철(재판소장), 권성, 김효종, 김경일, 송인준의 의견분포
2.2 걸림돌 결정 10개와 각 결정별 퇴임 예정 재판관 5명의 의견분포
3. 각 디딤돌/걸림돌 결정 약평
3-1. 디딤돌 결정
① 알몸수색 등 유치장 수용과정에서의 신체과잉수색 위헌결정(2002. 7. 18. 2000헌마327)
: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권을 해치는 행위를 금지
[쟁점과 헌재의 판단]
경찰이 피의자 등을 유치장에 수용하면서 흉기 등의 위험물을 휴대하지 못하도록 신체수색을 할 필요성은 인정되나, 그러한 위험이 없거나 그 위험예방을 위한 다른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몸수색을 하는 등 신체에 대하여 과도한 수색을 하는 것이 경찰의 관행이었다. 이에 헌재는 그 신체검사가 단순히 피의자유치및호송규칙에 따랐다고 해서 당연히 적법한 것은 아니며, 위험예방과 유치장의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 또한 수용자의 명예나 수치심을 포함한 기본권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충분히 배려한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알몸수색은 위헌이라 결정하였다.
[약평]
교도소, 유치장 등의 수용자는 사회적 일탈자로 낙인찍히면서 그 인권에 대한 관심 또한 낮아지게 된다. 그래서 이런 수용자가 가지는 인신의 자유, 인격권과 같은 인권들이 얼마나 보장되는가는 그 국가의 인권실현정도를 나타내는 바로미터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결정은 유치장에 수용된 자로 하여금 칸막이등 차폐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은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한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 2001. 7. 19. 선고, 2000헌마546 결정: 유치장내 화장실 설치 및 관리행위 위헌확인: 인용(위헌확인)
과 더불어 피의자 혹은 미결수용자의 인격권 역시 무엇보다 소중한 인권적 가치를 가짐을 선언함으로써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 잡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계구의 과도한 사용을 위헌선언한 결정들 (2005. 5. 26. 선고, 2004헌마49 결정: 계호근무준칙 제298조 등 위헌확인: 인용(위헌확인); 2005. 5. 26. 선고, 2001헌마728 결정: 수갑 및 포승 시용 위헌확인: 인용(위헌확인); 2003. 12. 18. 선고, 2001헌마163 결정: 계구사용행위 위헌확인: 인용(위헌))도 눈에 띄는 사례라 할 것이다.
② 수사과정에 변호인참관을 허용치 않은 검찰 처분 위헌결정(2004. 9. 23. 2000헌마138)
: 피의자는 심문을 받을 때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확인
[쟁점과 헌재의 판단]
형사절차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은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게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도록 방어할 수 있는 권리는 법치국가의 핵심에 해당하는 기본권이다. 하지만, 불구속된 피의자가 수사기관에 출석하여 신문을 받을 때에도 피의자가 변호인을 입회시켜 그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경우 그동안 수사기관에서는 수사상의 편의를 이유로 이를 거부해 왔다. 이에 헌재는, 언제든지 조언과 상담을 통하여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헌법상의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수사기관의 관행을 위헌이라 선언하였다.
[약평]
이 사건은 소위 낙선운동에 대한 선거법 위반등의 혐의로 수사하는 과정에 변호인을 참여시켜달라는 피의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조치를 위헌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동안 법률규정이 없다거나 혹은 증거인멸·수사방해 등의 이유를 들면서 변호인의 수사참여를 거부하여 법률적 도움이 필요한 피의자 등이 실질적인 방어권을 행사하기 어렵게 하여 왔으나, 이 결정은 이러한 관행을 일거에 해소하였다. 즉 변호인의 수사참여를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적 기본권의 핵심요소로 파악하고 그 보장을 선언함으로써 종래의 수사편의주의로부터 피의자 등의 인권을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③ 국회의원 선거 1인1표제의 한정위헌 결정(2001. 7. 19. 2000헌마91ㆍ112ㆍ134(병합))
: 선거의 민주적 정당성 증진과 정치적 의사표현의 왜곡현상 제거
[쟁점과 헌재의 판단]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구 국회의원선거와 병행하여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양자는 별도의 선거이므로 정당명부에 대한 별도의 투표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명부에 대한 투표가 따로 없어 정당의 명부작성행위가 최종적ㆍ결정적 의의를 지니게 되어 선거권자들의 투표행위는 일정한 제약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하여 헌재는 선거권자들이 투표행위로써 비례대표의원의 선출을 직접ㆍ결정적으로 좌우할 수 없어 직접선거의 원칙에 반하며, 무소속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유권자들은 비례대표 의원의 선출에 기여하지 못하므로 평등선거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하였다.
[약평]
선거는 국민주권원리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고 대의제민주주의를 실현함에 있어 핵심적인 제도이다. 따라서 선거에서는 국민의 다양한 민주적 의사가 최대한 수렴되어 반영되어야 한다. 비례대표제는 “거대정당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다양해진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며 사표를 양산하는 다수대표제의 문제점에 대한 보완책”으로서 존재의의를 가진다. 아울러 “사회세력에 상응한 대표를 형성하고, 정당정치를 활성화하며, 정당간의 경쟁을 촉진하여 정치적 독점을 배제하는 장점을 가질 수 있다.”
헌재의 이 결정을 계기로 선거법의 개정이 이루어져 유권자가 지역구 국회의원후보와 각 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후보명부에 투표하는 1인2표제가 도입됨으로써 1인1표제방식이 갖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왜곡을 제거하고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④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분류보류제도 위헌결정(2001. 8. 30. 2000헌가9)
: 검열의 요건을 실질적으로 파악하여 표현의 자유를 보호
[쟁점과 헌재의 판단]
영화진흥법 제21조 제4항이 규정하고 있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의한 등급분류보류제도가 헌법 제21조가 금지하고 있는 ‘검열’에 해당하는 것인가가 주된 쟁점이었다. 헌법재판소는 (1)허가를 받기 위한 표현물의 제출의무가 있고, (2)행정권이 주체가 된 사전심사절차(事前審査節次)가 있으며, (3)허가를 받지 아니한 의사표시의 금지 및 심사절차를 관철할 수 있는 강제수단이 있으면 명칭 유무에 관계없이 검열로 보는 종래의 입장을 이 결정에서도 유지했다.
이러한 검열의 요건을 적용해봤을 때, 사실상 행정권의 영향이 미칠 수 밖에 없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영화의 상영에 앞서 영화를 제출받아 그 심의 및 상영등급분류를 하되, 등급분류를 받지 아니한 영화는 상영이 금지되고 만약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채 영화를 상영한 경우 과태료, 상영금지명령에 이어 형벌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하며, 등급분류보류의 횟수제한이 없어 실질적으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허가를 받지 않는 한 영화를 통한 의사표현이 무한정 금지될 수 있으므로 검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약평]
헌법 제21조가 언론ㆍ출판에 대한 사전 검열을 명문규정을 통해 금지하고 있는 취지를 잘 살려서 검열의 요건을 이미 3가지 기준을 갖추어 자세히 정해놓고 이를 적극적으로 잘 활용한 결정이다. 특히,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민간인 전문가의 위원 참여가 있지만, 그 인선에는 행정부의 입김이 강력하게 미친다고 볼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사실상 행정권이라 판단하고, ”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제2항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통신의 대상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포괄위임입법금지원칙에 위배된다. “공공의 안녕질서”나 “미풍양속”의 개념은 대단히 추상적이고 불명확하여, 수범자인 국민으로 하여금 어떤 내용들이 대통령령에 정하여질지 그 기준과 대강을 예측할 수도 없게 되어 있고, 행정입법자에게도 적정한 지침을 제공하지 못함으로써 그로 인한 행정입법을 제대로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온통신의 취급거부, 정지, 제한에 관한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제3항 및 불온통신의 개념을 정하고 있는 같은 법 시행령 제16조는 위헌인 같은 조 제1항, 제2항을 전제로 하고 있어서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각 위헌이다.
[약평]
요즈음은 정보기술의 발달로 통신매체를 통해서도 많은 표현행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본 결정은 표현의 자유 규제 입법에서 명확성의 원칙의 중요성에 주목하면서 과잉금지의 원칙과 포괄위임입법금지원칙도 철저하게 적용하여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기능 훼손을 확실히 배격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통신과 같은 현대적 표현매체를 통한 표현행위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 규제 입법 합헌성 판단에 적용되는 여러 원칙들을 철저하게 적용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의 보장 확대에 기여한 결정으로 평가된다.
⑦ 대학교육기관 교원에 대한 기간임용제의 헌법불합치 결정(2003. 2. 27. 2000헌바26)
: 사학재단의 횡포로부터 교원의 지위를 보호
[쟁점과 헌재의 판단]
구 사립학교법 제53조의2 제3항은 대학교육기관 교원의 기간임용제를 규정하면서 “임용기간이 만료되는 교원을 별다른 하자가 없는 한 다시 임용하여야 하는지의 여부 및 재임용대상으로부터 배제하는 기준이나 요건 및 그 사유의 사전통지 절차에 관하여 아무런 지침을 포함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당한 재임용거부의 구제에 관한 절차에 대해서도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로 인하여 “사학재단에 비판적인 교원을 배제하거나 기타 임면권자 개인의 주관적 목적을 위하여 악용될 위험성이 다분히 존재한다.”
헌재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현대사회에서 대학교육이 갖는 중요한 기능과 그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교원의 신분의 부당한 박탈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요청에 비추어 볼 때 헌법 제31조 제6항에서 정하고 있는 교원지위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다.
[약평]
대학교육기관 교원의 재임용제는 주관적 평가의 개입 여지가 많을 뿐 아니라 사전 및 사후 구제절차가 없는 경우 임면권자가 교원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전락하여 자유로운 학문에 필요한 독립성을 침해했던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었다. 따라서 헌재의 이 결정은 사학재단의 횡포로부터 대학 교원의 지위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케 하는 계기가 된 긍정적 결정이었다.
헌재는 그 이후 ‘2003. 12. 18. 선고, 2002헌바14ㆍ32(병합)(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 제9조 제1항 등 위헌소원) 결정에서도 이를 유지하였으며, 더 나아가 임기만료 대학교원의 재임용 거부를 교육인적자원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의 재심사유로 명시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⑧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2005. 2. 3. 2001헌가9ㆍ10ㆍ11ㆍ12ㆍ13ㆍ14ㆍ15, 2004헌가5(병합))
: 전통이라는 이름의 가부장적인 가족제도가 가해온 여성 차별을 금지
[쟁점과 헌재의 판단]
호주제도는 남자가 우선적인 승계권을 가지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생활이나, 혼인이나 자녀관계 등을 구성하는 가족제도이다. 이는 가족내에서 남자에게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는 한편, 남녀차별적인 가부장의식을 조성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반면, 전통과 문화적 맥락에서 형성되어 온 가족제도를 도식적인 평등의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호주제도가 여성에 대한 실질적 차별이라 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에 헌재는 전통이라 하더라도 헌법이념에 합치되어야 하며 우리 헌법은 처음부터 남녀동권을 선언하면서 가부장적 폐습을 거부해 왔음을 지적하면서, 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이며, 또한 개인을 존엄한 인격체가 아니라 가(家)의 유지와 계승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위헌으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약평]
오늘날 가족은 가부장적 가장이 지배권을 행사하는 전통적인 모습과는 상당히 달라지고 있다. 그것은 모든 가족들이 스스로의 인격과 정체성을 가지고 상호 보살핌과 배려의 윤리로써 형성되는 생활공동체로서의 성격을 띠게 된다. 또한 가족의 유형 또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헌재는 부계혈통에 입각한 가족제도를 강제하는 호주제도는 남녀평등의 원칙에 위반될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각자가 가지는 인격적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선언하였다.
이 결정은, 입양이나 재혼 등에서도 자녀의 성은 절대 바꿀 수 없도록 한 민법규정을 위헌이라 선언한 결정 (2005. 12. 22. 선고, 2003헌가5ㆍ6(병합) 결정: 민법 제781조 제1항(“자(子)는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르고”) 위헌제청: 헌법불합치)과 더불어, 가부장제를 혁파하고 남녀평등의 이념에 합치되는 가족제도가 마련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을 뿐 아니라, 전통과 관습의 이름으로 사회내에 통용되어 왔던 각종의 차별적 편견들로부터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헌법적 지표를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 ‘디딤돌 결정’중 교도소 수용자에 대한 과도한 수갑 등 계구사용 위헌결정(2001헌마163)과 자녀의 성은 아버지의 것만을 따르도록 한 민법 헌법불합치 결정(2003헌가5,6(병합))에 대한 약평은 각각 관련 결정인 알몸수색 등 유치장 수용과정에서의 신체과잉수색 위헌결정과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 약평으로 대체함
3-2. 걸림돌 결정
① 낙선운동 등 유권자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조항 합헌결정(2001. 8. 30. 2000헌마121ㆍ202(병합))
: 정치활동 자유를 협소하게 만든 결정
[쟁점과 헌재의 판단]
공선법 제58조 제1항은 선거운동을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로 정의하여 부적격후보자의 당선을 막고자 하는 낙선운동도 선거운동에 포함시켜 사전선거운동의 금지를 비롯한 여러 가지 규제를 가하고 있다. 특히 경쟁 후보자의 낙선을 위한 후보자편의 낙선운동과 달리 제3자의 낙선운동은 시민단체가 객관적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유권자의 대표자 선택을 도와주는 공익적 행위임에도 이를 금지하여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청구인은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헌재는 후보자편의 낙선운동과 제3자의 낙선운동이 그 운동의 방법이나 형식에서 다를 바가 없고, 제3자의 낙선운동의 효과가 경쟁하는 다른 후보자의 당선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양자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울러 양자를 구별하는 당선의 목적유무에 따른 주관적 사유는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판단하기 어려워 선거의 공정을 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낙선운동 금지를 헌법적으로 정당화하였다.
[약평]
헌법상 민주주의의 구현이 대의제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유권자와 대표자의 민주적 통제는 선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대의제민주주의의 한계가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이 선거에 임하면서 후보자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의 확보는 알 권리 차원에서 중요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과거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부정과 과열의 위험을 이유로 과도하게 선거참여활동을 제약하는 것은 대표자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의제민주주의의 올바른 구현을 위해서 단순히 선거권 행사를 넘어서는 정치활동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 국민의 정치적 성숙성이 상당한 정도에 이르렀음을 감안한다면, 시민단체가 객관적 자료의 제공을 통하여 유권자에게 정치적 판단의 기회를 주는 것은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② 국가보안법상 찬양ㆍ고무, 이적표현물 소지죄 합헌결정(2004. 8. 26. 2003헌바85ㆍ102(병합))
: 표현자유의 본질침해와 과잉처벌을 용인한 결정
[쟁점과 헌재의 판단]
1) 민주적 헌법국가에서 표현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의 위헌성을 심사하는 기준은 ‘명백ㆍ현존위험 원칙(rule of clear and present danger)’이다. 그것은 자유로운 표현 행위로 말미암아 중대한 해악이 발생할 개연성이 있고, 표현 행위와 해악의 발생 사이에 밀접한 인과관계가 존재하며, 또 해악의 발생이 목전에 절박한 경우에 다른 수단으로는 이를 방지할 수 없으면 표현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 정당화된다는 이론이다. 그에 따라 미국에서는 폭력행위의 이론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물론 설령 그러한 주장이 궁극적으로 폭력혁명으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행동과는 시간적으로 너무 거리가 멀어 처벌할 수 없다고 본다.
2) 헌법재판소는 찬양ㆍ고무 등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에 대하여 1990. 4. 2. 89헌가113호 헌법재판소 결정과 1991. 5. 31. 법률 제4373호 법 개정을 통해 주관적 요건으로 추가된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문구로 인하여 확대해석의 위험성이 “거의” 제거되었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른바 ‘이적표현물’의 소지행위를 처벌하는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에 대하여 “전파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소지행위 자체도 …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약평]
1)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주관적 구성요건은 입증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어렵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은 객관적 위험성이 명백ㆍ현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상 보장되어야 할 표현행위를 처벌하는 점에서 위헌이다.
2) 법원은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의 주관적 요건인 ‘이적 목적’에 대해서 적극적 의욕이나 확정적 인식까지는 필요 없고 이적행위가 될 지도 모른다는 미필적 인식만으로도 족하다는 전제 아래 이적표현물을 취득ㆍ소지 또는 제작ㆍ반포하는 행위가 있으면 이적표현물 소지 등의 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은 단순한 표현물 소지만으로 ‘전파가능성’을 우려하여 형사처벌하므로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
3) 남북관계의 변화와 발전 그리고 국가체제를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서 형법만으로도 충분히 과잉규율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국가보안법 전체에 대하여 위헌판단을 했어야 했다. 따라서 ‘2002. 4. 25. 선고, 99헌바27ㆍ51(병합)(국가보안법 위헌소원) 결정’에서 “목적수행”에 대한 한정합헌, 잠입ㆍ탈출, 찬양ㆍ고무 등, 회합ㆍ통신 등에 대한 합헌 결정 그리고 ‘2003. 5. 15. 선고, 2000헌바66(국가보안법 제8조 제1항 등 위헌소원) 결정’에서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문구와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ㆍ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한 자”라는 문구에 대한 합헌 결정 역시 인권 보장의 걸림돌로 평가할 수 있다.
③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부인한 병역법 합헌결정(2004. 8. 26. 2002헌가1)
: 양심의 자유를 유명무실하게 한 결정
[쟁점과 헌재의 판단]
현행 병역법은 양심상의 결정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 예외 없이 형사처벌을 하고 있어 국제적 인권보장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헌재는 양심의 자유를 “단지 국가에 대하여 가능하면 개인의 양심을 고려하고 보호할 것을 요구하는 권리”로 인정하여 대체의무의 제공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닌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국가안보라는 중대한 헌법적 법익에 손상이 없으리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는 이유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있지 않은 입법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약평]
재판관 김경일과 전효숙의 반대의견이 설시하듯이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류의 평화적 공존에 대한 간절한 희망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의 자유를 심대하게 제약하고 있으며 국방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뿐 아니라 대체복무를 통하여 국방의무이행의 형평성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헌재의 판단은 양심자유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이해하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렇게 양심자유를 위축시키는 헌재 결정은 또 다른 걸림돌 결정인 ‘2002. 4. 25. 선고, 98헌마425, 99헌마170ㆍ498(병합)(준법서약제등 위헌확인, 가석방심사등에관한규칙 제14조 제2항 위헌확인) 결정’에서 ‘과거 사상전향서제도와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준법서약제’(재판관 김효종과 주선회의 위헌의견)를 합헌으로 판단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 결과 양심자유는 ‘내심의 자유’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짐은 물론 국가안보지상주의 아래에서 유명무실하게 될 위험성에 빠졌다.
④ 소위 공안사범에 대한 준법서약제 합헌결정(2002. 4. 25. 98헌마425, 99헌마170ㆍ498(병합))
: 죽음보다 무서운 전향제도를 반복재생산한 결정
[쟁점과 헌재의 판단]
국가보안법이나 집시법 위반 등의 소위 공안사범들이 사면이나 가석방되기 위해서는 준법서약을 하여야 한다. 이는 종래 공안사범에게 강요되면서 사상전향제가 1998년 변형된 것으로 그 효과의 여하는 불문하더라도 양심의 자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이 제도가 단순한 준법의 확인에 그치며 남북분단이라는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공안사범에 국법준수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위헌적이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약평]
이 결정은 종래의 결정과는 달리 세계관이나 신조·신념을 양심의 범위에서 제외하면서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는 이런 내면의 영역에까지 국가권력이 행사될 수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지난 날 사상전향공작이 가혹행위와 그에 이은 의문사의 결과들을 야기하였음을 감안할 때 개인의 신념에까지 국가가 관여하고 그 변경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야만적 행위이다. 하지만 헌재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까지 그 폐지가 권고되었던 준법서약제를 양심의 자유에 관한 법리까지 변용하면서 그 존재를 승인하였다. 실제 이 준법서약제는 그 후 폐지되기는 하였지만 이 결정에서 드러나듯, 가공의 안보위협을 빌미로 한 헌재의 반인권적 결정은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부인 등의 결정에서 반복되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⑤ 이라크 파병결정 등 헌법소원 각하결정(2003. 12. 18. 2003헌마255ㆍ256(병합))
: 위헌성 심사를 포기함으로써 국제평화주의와 평화적 생존권 그리고 국방ㆍ외교사안의 민주적 통제를 외면한 결정
[쟁점과 헌재의 판단]
2003. 3. 20.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에 대해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였다. 다음 날 대통령은 임시국회에서 파병결정을 하였고(대통령의 파견결정), 2003. 4. 2. 국회는 이에 동의하였다(국회의 파견동의). 2003. 10. 18. 대통령은 이라크에 국군의 추가파견을 결정하였다(대통령의 추가파견결정).
이에 청구인들은 이라크전쟁이 국제법적으로 침략전쟁이므로 대통령의 (추가)파견결정과 국회의 파견동의는 헌법 전문 및 제5조(침략전쟁 부인)에 위반되며,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고 주장하였다.
정부가 국군의 외국파견을 결정하고 국회가 동의하는 경우, 그 실체적인 헌법적 판단의 기준으로서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있는 헌법 제5조의 의미를 밝히고, 그 절차적인 통제수단으로서 국회의 동의권 행사 여하에 대한 헌법적 판단기준을 해명하는 것이 핵심적 쟁점이었다.
헌재는 첫 번째 결정에서는 시민단체 간부와 일반국민인 청구인들의 자기관련성이 없다고 각하하였다. 두 번째 결정에서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대통령과 국회의 판단을 존중해야 하므로 사법적 판단을 자제해야 한다고 각하하였다.
[약평]
헌법 제5조는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원칙을 정립함으로써 자위를 위한 전쟁만을 허용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결정이 자위전쟁이 아님은 분명하다. 청구인들은 국제연합헌장에 위반되는 침략전쟁이라고 주장하고, 대통령은 이라크가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서 요구한 의무를 위반한 것에 대해 취해진 적법한 조치라고 답변하였다. 이라크에 국군을 파견하는 것이 헌법 제5조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판단해야 할 몫이었다.
한편 헌재는 미군기지 이전에 관한 협정에 대하여도 각하결정을 내렸다. (2006. 2. 23. 선고, 2005헌마268(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미합중국군대의 서울지역으로부터의 이전에 관한 협정 등 위헌확인) 결정)
헌재는 평화적 생존권이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과 가치)와 제37조 제1항(열거되지 않은 기본권 보장)에 근거하여 ‘침략전쟁에 강제되지 않고 평화적 생존을 할 수 있도록 국가에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그 내용으로 하는 기본권임을 인정하기는 하였지만, 미군기지의 이전만으로 장차 우리나라가 침략적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을 인정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평화적 생존권의 침해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일단 침략적 전쟁에 관여되면 평화적 생존권은 더 이상 사법적 구제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 결정이었다.
아울러 한ㆍ미FTA 협상이 진행되는 현 상황에서 헌법 제60조의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등 조약의 체결ㆍ비준에 대한 국회동의권(헌법 제60조)의 행사와 관련하여 협상과정에서 정부의 대국회 보고의무 등 관련한 헌법적 쟁점이 명확해지지 않으면 이에 대한 헌법적 통제는 유명무실해진다. 그런 점에서 헌법재판소가 이라크 파병결정, 미군기지 이전 협정 등에 대한 적절한 본안판단 없이 기술적으로 손쉽게 각하결정을 선택한 것은 헌법재판소의 존재의의를 무색케 하는 일이었다.
⑥ 열 손가락 지문 채취와 그 원본의 경찰청 보관관련 주민등록법 및 시행령 합헌결정(2005. 5. 26. 99헌마513, 2004헌마190(병합))
: 전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한 결정
[쟁점과 헌재의 판단]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려면 열 손가락 지문을 찍어 제출하여야 한다. 또한 이 열 손가락 지문의 원본은 경찰청이 보관하면서 수사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청구인들은 이런 조치들이 아무런 법률적 근거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자신들을 잠재적 범죄인으로 취급하는 한편 생체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 처리함으로써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헌재는 주민등록증발급신청서의 서식등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고, 또 치안유지나 국가안보를 위해 지문의 채취, 보관은 필요한 것이라고 보아 합헌이라 선언하였다.
[약평]
오늘날 정보화시대가 도래하면서 개인정보의 보호는 무엇보다 중요한 인권항목이 되었다. 특히 지문과 같은 생체정보는 한번 수집하면 영원히 사용가능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엄격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헌재는 주민관리라는 주민등록제도의 본연의 목적과는 상관없는 범죄수사등의 치안유지목적뿐 아니라, 남북분단을 빌미로 한 국가안보의 요청까지 거론하면서 국가가 자의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관리, 처리하는 행위를 옹호하고 있다. 결국 개인의 사생활의 자유나 프라이버시의 권리보다는 국가의 행정상의 편의를 우선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개인정보에 대한 헌재의 무감각함은 교육정보시스템(NEIS)의 도입과 관련하여 서울시 교육감등이 졸업생에 관한 정보를 보유하는 행위도 합헌이라 선언한 바 2005. 7. 21. 선고, 2003헌마282ㆍ425(병합) 결정: 개인정보수집 등 위헌확인: 기각, 각하에서도 드러난다.
⑦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결정(2005. 5. 26. 2003헌가7)
: 형사소송제도의 발전에 역행한 결정
[쟁점과 헌재의 판단]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공판정에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을 부인하더라도 그것이 피의자의 진술이 임의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소위 특신상태)가 인정되는 이상 그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법정에서 한 피고인의 진술보다 수사단계에서 검사가 작성한 신문조서가 우선하여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특신상태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법원의 심사과정에서 판단될 수 있으므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해한다고 볼 수 없으며, 이런 제도는 실체적 진실발견 및 신속한 재판을 위하여 합리적이라는 합헌결정을 내렸다.
[약평]
첫째, 위 조항은 피고인에게 불이익하게 작용할 수 있는 만큼 법률의 명확성의 원칙이 한층 더 요구된다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라는 모호한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 둘째, 우리 대법원은 ‘특신상태가 없다고 볼 사정이 없는 한 증거능력이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형사재판 실무상 이 특신상태가 사실상 추정되다시피 인정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 셋째, 위 조항은 피고인이 공판정에서 한 진술보다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를 유죄의 증거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직접주의, 공판중심주의의 요청에 위배되는 재판을 하게 한다는 점, 넷째, 위 조항은 검사가 져야 할 유죄의 입증책임을 지나치게 경감시키는 반면 정작 무죄의 추정을 받는 피고인에게는 불리하게 함으로써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결정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라 할 수 없다. 특히 이 결정은 사법개혁의 중심과제로서 공판중심주의의 도입이 추진되는 과정에 나온 것으로 우리 형사소송제도의 발전과 인권의 신장에 역행하고 있다.
⑧ 시각장애인의 안마사 독점을 규정한 안마사규칙 위헌결정(2006. 5. 25. 2003헌마715, 2006헌마368(병합))
: 비시각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만 보고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은 ‘보지 못한’ 결정
[쟁점과 헌재의 판단]
안마사의 자격요건 등을 위임한 의료법의 위임에 의해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인정하고 있는 안마사 규칙 규정은 비시각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법률이 아니라 보건복지부령의 수준에서 제한하려 했으므로 법률유보의 원칙에 위배되고, 비시각장애인은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원천적으로 안마사가 될 수 없게 했으므로 비시각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게 침해했다.
[약평]
법률유보원칙 위배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은 헌법재판소 스스로가 밝힌 바와 같이 ‘법률의 규정으로부터 하위규범에 규정될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느냐’이다. 이 점에서 봤을 때, 시각장애인만 안마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1914년 이래로 우리 사회의 오랜 관행이었으며 국민들의 일반적 인식도 그러했고 시각장애인들도 이러한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를 쌓아왔으므로, 의료법에 이미 이러한 사실이 암시되어 있는 것이고 안마사 규칙은 단지 이를 확인한 규정이어서 법률유보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또한, 비시각장애인도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물리치료사가 되어 안마행위를 할 수 있으므로 비시각장애인의 안마업 진출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고 보기도 힘들어 김효종 재판관의 반대의견처럼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안마사 규칙은 시각장애인의 생존권(헌법 제34조 제5항)과 비시각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헌법 제17조)의 기본권 충돌의 문제로서, 시각장애인에게 안마사업은 거의 유일한 생업이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법익형량의 원칙의 한 세부원칙인 ‘생존권 우선의 원칙’에 따라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비시각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보다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우선 시킨 안마사 규칙 규정이 기본권의 충돌을 조화롭게 해결한 합헌규정이라고 보아야 했다.
또한, 이 위헌결정은 ‘소수자 및 약자의 인권 보호’를 핵심가치로 삼는 헌법의 정신이나 헌법재판소의 존립 이유에 비추어보아도 문제가 많은 결정이다.
⑨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결정(2004. 10. 21. 2004헌마554ㆍ566(병합))
: 관습헌법에만 기대 논리적 무모함을 드러낸 결정
[쟁점과 헌재의 판단]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수도이다’라는 것은 성문헌법에 명문규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법적 확신에 의한 지지를 받으며 관습헌법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봐야한다면서, 수도를 서울 이외의 지역으로 옮기려면 수도에 관한 헌법규정을 헌법개정을 통해 헌법에 규정하고 나서 옳겨야 하는데 법률 제정으로 수도를 옮기려 했기 때문에, 이것은 헌법 제130조에 규정된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권을 침해하고 있어 위헌이라고 보았다.
[약평]
성문헌법이 존재하는 성문헌법국가에서 헌법재판은 기본적으로 이 성문헌법규정에 근거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수도이다.’라는 관습헌법 규정을 스스로 만들어내면서 사실상 이 관습헌법을 위헌판단의 유일한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성문헌법국가에서도 관습헌법이 예외적으로 위헌판단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지만 그것은 성문헌법 규정의 의미를 구체화하는 자료로서 성문헌법 규정과 함께 병렬적ㆍ보조적으로 사용되는 것이지, 이처럼 성문헌법 규정 없이 관습헌법이 유일한 위헌 판단의 근거로 사용된 예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관습헌법을 인식하고 확정해주는 주체는 헌법재판관이다. 따라서, 관습헌법 개념을 인정하면 헌법재판관이야말로 헌법제정권자이자 헌법개정권자가 될 수 있는 것이고 주권자 ‘국민’보다 위에 있게 될 수 있어 문제이다. 특히, 수도이전과 같은 민감한 정치적 사건에 필요 이상으로 개입해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그 근거로는 ‘관습헌법’이라는 문제 많고 빈약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지점이 많은 결정이다. 특히, 이러한 관습헌법의 논리가 이 사건 법률의 후속입법인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특별법에 대한 각하결정에서도 다수의견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 ‘걸림돌 결정’중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쟁의 노동위원회 위원장 직권중재회부 합헌결정(2001헌가31)에 대한 약평문은 사정상 게재하지 않음
4. 디딤돌, 걸림돌 결정으로 본 제3기 헌재 총평
헌법재판소는 인권과 자유, 민주와 평등의 헌법원리가 전 법질서에 관철될 것을 보장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국민 대다수의 민주적 의사를 존중하고 그것을 헌법의 틀로 수용하는 한편, 소수자의 인권에 대하여는 비록 다수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그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이 점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제3기 헌법재판소의 결정들은 비록 디딤돌과 걸림돌로 구분되고 각각 동수의 결정이 거론되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벗어날 수 없다.
대체로 유치장 등 수용자의 인격권이나 인신의 자유 등을 보장하고 수사과정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명확히 선언하는 등 기본적인 자유를 보장하고 있음은 한편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또한 사실상의 검열제도에 대하여 위헌선언을 하는 한편, ‘불온통신’ 조항을 위헌으로 선언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고 대학 교원에 대한 재임용제도를 위헌선언함으로써 대학과 학문의 자유에 대한 구시대적인 억압들을 걷어 낸 점 역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더불어 1인 1표제로 일관함으로써 비례대표제의 실질을 소거해 버린 선거법을 위헌 선언함으로써 우리 정치과정에서 소수의 정치세력들도 자신의 대표를 국회에 파견할 수 있도록 하고 정치적 의사표현 과정의 왜곡현상을 걷어낸 점은 커다란 업적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 결정들은 보기 나름으로는 너무도 미시적인 기본권항목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제3기 헌법재판소의 또 다른 한계를 노정한다.
제3기의 헌법재판소는 앞선 제1기와 제2기를 통하여 정착되어 온 헌법재판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헌법의 이념을 구체화하고, 헌법의 원칙들을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생활영역에서 구현해 낼 수 있는 결정들을 이루어내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북분단의 국가현실로부터 안보위기론을 도출하고 이로부터 안보지상주의, 공안제일주의의 편협한 시각을 반복함으로써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상·양심의 자유라든가 주한미군의 이전, 심지어 과거사 청산의 문제까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화권이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새로이 등장하는 인권항목들을 헌법적으로 적극 수용하여야 할 헌법재판소는 오히려 경직된 법리해석에만 매달려 도외시함으로써 오히려 인권실현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반면 제3기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혁신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오히려 사법적극주의를 발동하여 정치의 사법화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결정은 관습헌법이라는 무리한 논리를 적용하면서 헌법의 창조자로서 기능하기도 하였으며, 디딤돌, 걸림돌에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4.3사건 특별법 사건의 경우에는 역사적·정치적 평가까지도 서슴지 않음으로써 사법의 정치화가 야기할 수 있는 폐단의 절정을 보이기도 하였다.
‘디딤돌과 걸림돌 결정’을 통해 본 제3기 헌법재판소
전반적으로 보아 제3기 헌법재판소는 민주화가 본격화되는 87년 이래 사회내에서 인권과 자유, 민주 등을 향하여 다양하게 제기되는 헌법의지들을 헌법결정의 영역에까지 제대로 포섭하지 못하고 따라서 헌법의 이념을 올바르게 실천함에는 미흡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지나치게 법리에만 충실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정치적 판단에 치중함으로써 정작 인권의 보장과 소수자의 보호에는 크게 부족하였을 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에 걸쳐 발생하는 헌법적 분쟁과 갈등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조차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출범하게 되는 제4기 헌법재판소는 이와 같은 한계들을 직시하고 그 전철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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