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재성 | 변호사,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기적같이 계엄·내란을 진압한 이후, ‘내란이 가능한 나라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정비하기 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군인의 ‘위법한 명령에 대한 거부권’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논의되어온 쟁점이지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군인의 본질’이라는 인식 속에 입법화되지 못했다. 지금은 다르다. 전 국민이 국회에서 주저하던 군인들의 모습을 봤고, 깨달았다. 저들의 주저함이, 저들의 거부가 진짜 공동체를 지켰다는 것을.
계엄·내란 직후부터 현재까지 10개가 넘는 군인의 명령 거부권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 역시 지난 8월 국정과제 주요 내용에 “위법·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도록 군인복무기본법 등 법령 정비”를 명시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8월25일 ‘위법한 명령에 대한 거부권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미치광이 지도자가 등장해 계엄을 선포한다고 하더라도, 잘 갖춰진 제도 속에서 군인들이 총 들길 거부할 수 있도록 안전판을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는 중이다.
필자는 이 입법 국면에서 두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하나는 ‘불행사의 의무’를 명문화하는 것, 다른 하나는 거부권의 실행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를 포함하는 것이다.
명령 거부권 형식은 크게 명령을 제한하는 것과 행위를 제한하는 것으로 나뉜다. 명령을 제한하는 것은 ‘군인은 적법한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정도로 복종의 대상이 되는 명령을 ‘적법한’, ‘정당한’으로 한정하는 것이다. 현행법은 ‘공관병 갑질 사건’에서 확인된 것과 같은 상관의 사적 요구를 제한한다는 취지로 복종 대상 명령을 ‘직무상 명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행위를 제한하는 것은 독일 군인법이 대표적인데, “범죄가 되는 명령은 따르지 않아야 한다”와 같이 복종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사실상 거부(불복종)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며, 법률적 측면을 넘어 수사적·사회적으로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한다.
필자는 전자의 방식으로 입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지난 20년 동안 명령 거부권 조항이 입법되지 않은 이유는 복종을 신성시하는 군의 반대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현행 복종 조항에 “적법한”, “정당한” 정도를 추가하고 ‘거부’와 같이 ‘불경한’ 표현은 명문화되지 않는 것으로 정리될 여지가 크다. 그래선 안 된다. 지금 논의는 내란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판으로서 명령 거부권이 다뤄지고 있다. 독일 제도를 참조해 ‘군인은 위법한 명령을 거부해야 하고, 범죄임을 명백히 알았음에도 따랐다면 죄책을 면할 수 없다’와 같이 서늘한 의무와 경고가 법에 담겨야 한다.
그런데 군인이 상관의 명령이 범죄가 되는지 아닌지를 긴박한 작전의 순간에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범죄가 된다고 판단한다고 해도 수직적 권력관계 속에서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고압적 질서가 상존하는 군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앞선 부분에 대한 고민 없이 ‘정당한’, ‘거부할 수 있다’와 같은 문구만 법에 넣는다면 그건 반쪽도 안 되는 입법이다. 거부권이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기 위한 제도도 담겨야 한다. 거부권 행사의 사전 단계로 이의제기권(정보요구권)을 두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국가정보원법에는 ‘정치 관여’ 명령에 대해 국정원 직원들이 거부할 수 있도록 꽤 꼼꼼한 제도 설계가 있다. 핵심은 이의제기권이다. 직원은 정치 관여 명령이라고 판단한다면 즉시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시정되지 않으면 해당 명령을 거부하거나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거부권을 행사하는 직원의 심적, 실무적 부담을 완화하고, 그 과정에서 판단의 시간과 정보가 확보될 수 있도록 한 방식이다.
국정원법을 참조해서 명령 거부권에 이의 절차를 넣자. 군인이 위법한 명령이라고 판단하면 먼저 상관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다. 이의 제기를 받은 상관은 즉시 명령의 적법성에 답변해야 한다. 이 사전 단계 속에서 하급자는 명령의 적법성, 거부권 행사 여부를 최종 판단할 수 있다. “우리 헬기가 왜 국회로 갑니까?” “국회 전기를 왜 차단합니까?”라는 질문에 상관이 제대로 된 답을 못 하면, 그 명령은 거부해야 하는 명령이 된다. 이 원칙과 절차를 제도화하자. 민주공화국은 판단하는 군인, 거부할 수 있는 군인으로 지켜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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