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5 2015-11-10   2257

[복지톡]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살아가는 삶을 살 권리가 있다.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인터뷰, 정리 l 이경민(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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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화합을 중시하는 대한민국 사회 안에서도 장애인은 늘 춥다. 사회 안에서 장애인이 시민으로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정부의 일관된 시설 중심적 정책 때문이다. 여기 장애인의 권리를 회복하고 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 있다. 장애인 차별을 해소하는 관점을 전환하여 장애인이 진정으로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사회로 발돋움하기 위해 이들의 역할은 무척이나 크고 중요하다.

한 해의 결실을 거두는 손길이 바빠지는 완연한 가을의 어느 날,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여준민 활동가를 참여연대 카페통인에서 만났다. 성우를 해도 될 것 같은 낮은 저음과 올곧은 목소리는 그녀가 살아온 인생과 참 닮았다. 장애인운동을 시작한지 23년으로 접어든 그녀의 인생스토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잘사는 사람들은 계속 잘사는데, 못사는 사람들은 왜 저리 처절하게 사는 것일까? 알고 싶었다. 그래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러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대학원을 준비하던 즈음,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에 취업도 하였다. 3년 정도 일을 했을까? 지속적으로 장애인 차별에 대한 경험을 접하게 되면서 뭔가를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당시에는 장애인복지법만 있었고 대부분 서비스 확대에 대한 내용뿐이었기 때문에 장애인의 인권을 도모하기 위한 법적 안전망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경험들의 내용을 정리하고 알리고 싶어 ‘함께 걸음’이라는 잡지사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경험(?)을 하고 결국 장애인인권발바닥행동을 창립하고 현재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인인권발바닥행동 창립 계기가 무엇인가?

몸과 마음이 힘든 시기가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생태문제에 관심을 갖고 농사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연찮게 현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일하고 있는 박옥순 언니와 당시 함께 일을 그만두었던 사람들이 모여 앞으로의 개인 전망을 나누었었다. 그런데 다들 그동안 해왔던 일과는 별개의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박옥순 언니가 불같이 화를 내며 그동안 장애문제를 가지고 활동했던 활동가가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활동의 노하우를 가지고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장애인운동을 제안했다. 우리는 그 결의를 ‘술집결의’라고 한다. 다들 결의하고 모임 추진을 위해 정기적으로 만났다.

술집결의의 추진 과정에 대해 더 듣고 싶다.

당시 우리는 돈도 없고 사무실도 없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우선 종자돈을 모으자고 해서 각자 일을 그만두고 받았던 퇴직금 500만 원을 각출했다. 그러던 중에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우리 얘기를 듣고 사무실 한켠을 내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책상 4개를 들고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발바닥을 어떤 단체로 만들고 싶었나?

조직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서로가 공감했었고 민주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대화를 많이 했다. 그리고 활동가 개개인의 책임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활동가 조직으로만 남아야하기 때문에 위계가 없는 수평적 구조를 갖추고 독립성을 가지기 위해 재정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친인척, 지인들을 후원자로 만들었고 다음에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의 활동을 지지하는 분들을 만나 현재까지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리고 연구프로젝트 용역을 받아 재정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처음 국가인권위원회 용역을 받았는데, 발바닥 활동가, 박래군, 박경석 등이 함께 연구를 진행했었다. 그 당시 그 연구는 전례 없는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인권상도 받았다.

발바닥은 탈시설자립생활운동을 중점 사업으로 하고 있다.

인권위에서 위탁한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전국 30개 시설 600여명 정도를 만나러 다녔다. 1:1상담을 하고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직원조사, 환경조사 등을 실시했었다. 그 당시 시설이 무엇인가에 대한 종합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시설이 필요한가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된 것이다. 장애인은 시설에 가야한다는 것이 한국사회의 상식이 되었다. 장애인은 관리의 대상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닌, 살아지는 삶, 배제와 감금의 대상으로 살아야 했다. 이전의 장애인 운동은 이동권, 교육권 등 영역별 투쟁을 하고 있었는데, 발바닥은 어떤 영역을 두고 운동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때에 시설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회에 전달하자고 하여 탈시설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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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21

시설 실태조사 나갔을 때 시설은 어떠했나?

미신고 시설이 2000년대 초반에 1,000개가 넘었다. 미신고다 보니 국가지원을 받지 않고 입소자들의 수급비를 받아 운영하는 곳이다. 예전에 수많은 미신고 시설을 다녔을 때의 그 처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부분 창고나 컨테이너, 축사 등을 개조해 운영하고 있었고, 어떤 곳은 감옥과 같은 구조에 이중 철창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변기는 재래식인 곳이 대부분이고, 어떤 곳은 칸막이도 없었다. 똑같은 옷에 모두 삭발을 하고 정신과 약을 복용해서 초점 없는 눈으로 있던 그 사람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대부분 시설에 있는 사람들은 수급자인 경우가 많았고, 운영자는 그들의 수급비를 받아 시설을 운영했다. 그리고 당시 이런 미신고 시설 조사에 대한 법적권한이 없어 국회의원, 기자, 공무원, 보건복지부 등 20-30명이 들어가서 조사해야만 했다.

현재는 어떠한가?

반인권적인 시설의 문제가 언론에서 보도된 후, 보건복지부는 미신고시설을 조사하고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조건부 양성화정책을 만들어 3년 동안의 유예기간을 주고 시설이 일정 조건을 갖추도록 했다. 대부분의 시설은 법인을 만들 형편이 되지 않아 개인운영시설도 가능하도록 보건복지부가 허락했다. 그리고 2014년 말 기준 미신고시설은 5개 밖에 남지 않은 반면, 법인시설 같은 경우는 약 1,700여개로 점점 증가하였다. 보건복지부는 시설의 양성화 정책을 폈지만 표면적인 양성화만 되어 실질적으로 더 어려운 싸움이 되었다. 왜냐면 시설이 법적 기준 권한을 갖게 됨으로 조사를 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 시설의 폐쇄도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탈시설화 왜 어려울까?

우리나라는 여전히 장애인을 보호, 관리해야 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이웃과 가족에 전가하고 있는데 의료비 및 돌봄의 부담이 막중하다. 결국, 가족의 구성원 중 장애인이 있는 가족은 시설에 의지하게 된다. 악순환이다. 반면 외국과 같은 경우,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을 돕는 사회적 인프라가 상당한 경우를 볼 수 있다. 정부의 시설 중심적 정책에서 방향을 전환하여 지역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될까?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 안에서 거주하는 것에 대해 가족들의 반대가 큰 편이다. 그러나 우려와 반대로 혼자 자립하여 적응하는 모습을 가족들이 경험하게 되었을 때, 가족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당사자나 가족들이 품위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대화가 없다. 즉 인생의 스토리가 없다. 단지 시설 안에서 차별당한 기억밖에 없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다보면 그분들에게 날짜 감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입소날만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인생에 스토리가 될 만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삶이 퇴행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분들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 안에서 어울리고 자극을 받으면서 ‘예’, ‘아니오’라고 대답했던 사람들이 농담 따먹기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게 변화다. 탈시설화를 해야만 하는 이유다. 궁극적으로 시민적 권리를 회복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다.

사회복지 안에서의 장애인권운동은?

여전히 한국의 사회복지 안에서 장애인에 대해서는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시설서비스로 되어 있다. 당사자의 관점이 아니다. 따라서 사회복지에서 인권, 권리에 대한 얘기가 적극적으로 거론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복지계가 좀 더 적극적으로 결합해 주면 좋겠다. 현재 발바닥은 사회복지계보다 법률가 및 법학자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있다. 사회복지가 실천 학문이다 보니 현장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고, 그 가운데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사회복지계와 함께 하는 인권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운동은 어떻게 되고 있나?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 제정운동을 하고 있지만 현재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에는 과거사를 다루지 않겠다고 하는 기본방침이 있다고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남은 2년 동안 통과가 어려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 이 운동을 할 것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시설정책이 과거 수용소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잘못된 것을 제대로 짚어야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존자들과 접촉하면서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다.

현재 우리에게 연락을 준 생존자는 250여명이 된다. 이 분들 중 활동하는 사람은 20-30여명이다. 많은 분들이 직업이 없거나 수급자이다. 생존자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렵게 살고 있다. 이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만나면 눈물부터 흘린다. 한참 시간이 지나 하는 말이 형제복지원 이야기를 처음 한다고 했다. 가족들에게도 못하고…부랑이라는 낙인 때문에, 그리고 자신들이 형제복지원에 들어간 것은 자기책임인 줄 알았단다…우리는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국가가 배제하고 어떻게 대우했는지 그 내용들을 밝히고 바로잡기 위한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부담감과 감정적으로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내무부 훈령 410호는 무엇인가?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이다. 부랑인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존재로 보지 않고, 군사정권은 거리의 쓰레기라고 판단하고 청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더럽고 불편하다고 비국민 취급하여 그림자인간을 만들었다. 이런 국가의 정책에 의해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은 4,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로 확장하고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운영할 수 있었다. 형제복지원 뿐 아니라 대규모 시설이 등장하고 도가니(광주 인화원), 인강원 등의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우선은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이 우선이고 이후 진상규명이 철저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철저히 모니터링을 할 것이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향후계획은 어떻게 되나?

그냥 사는 거다(웃음). 발바닥은 6년을 일하면 1년의 안식년이 생긴다. 지금 안식년을 가야할 시간을 놓쳤다. 내년 5월에 꼭 갈 생각이다. 스페인을 가고 싶다. 그리고 예전에 목수가 꿈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목공일을 배웠는데 목공도 하고 농사도 지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에게 효도도 할 생각이다. 이렇게 돌아다니면 우리 야옹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5년 11월호(제2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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