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배움의 권리는 인권이다, 비문해 여성들에게 풀뿌리운동의 가치를 배웠다.- 푸른시민연대와 20년을 함께 버텨온 문해교육운동-
배움의 권리는 인권이다, 비문해 여성들에게 풀뿌리운동의 가치를 배웠다.- 푸른시민연대와 20년을 함께 버텨온 문해교육운동-
문종석 ㅣ 푸른시민연대 대표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90년대 초반에 우리사회는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새로운 움직임이 꿈틀거리는 시기였던 것 같다. 그 1994년 가을에 푸른시민연대가 만들어졌다. 80년대를 지나온 고민 속에서 맞이한 90년대는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요구했고 그 대안으로 ‘지역’이라는 공간과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커다란 위로부터의 변화가 아닌 작지만 튼튼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꿈꾸는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아마도 같은 해 태어난 참여연대도 이러한 시대적 고민의 결과이자 새로운 시작의 움직임이라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될 듯하다.
운동의 거점은 지역에 두었지만 행동은 늘 시내 한 복판에서 중앙정부를 향해 싸움을 하던 것이 대부분이었던 상황에서 지역은 다른 측면에서 매우 낮선 공간이었다. 어디서부터 누구로부터 시작해야할까 고민하며 무식하지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주민들의 욕구와 문제를 파악하고자 지역조사를 벌여나갔다. 독재의 시기를 지나던 상황이라 여전히 억압당하던 철거민, 노점상, 영세 상인들로 대표되는 이슈와 주민들을 만났지만 이 분들은 사실 낯선 대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분들은 뜻을 같이하는 공간과 동료들도 있어서 싸움이라도 해볼 수 있었지만 철저히 홀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던 가난한 이웃들의 문제는 지역 안에서 우리가 풀어가야 할 매우 중요한 과제로 던져졌다.
그중에서도 우리를 당혹하게 만들었던 존재는 글을 모르는 여성들이었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하는 상황부터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 대상은 생각보다 많았고 이 분들의 사연은 우리사회의 산업화와 독재의 가장 뚜렷한 그늘이었다.
그 당시 학업의 기회를 놓친 젊은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은 많았지만 야학들조차도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여성들은 매우 낯선 존재였을 것이다. 의미 있게도 이러한 분들을 만나 ‘문해교육(literacy)’을 시작한 단체들이 생겨났는데 대부분이 지역운동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단체들이었고 그 시기 우리나라의 문해교육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역사를 가지게 된다. 지금은 문자를 읽고 쓰지 못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비문해자’라고 지칭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까막눈’ 또는 ‘문맹자’라는 글을 모르는 맹인으로 비하되는 상황이었다. 국가는 산업화과정에서 배움의 기회를 빼앗긴 여성들에게 다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는커녕 그 잘못을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놓은 상황에서 문해교육은 단순한 뒤늦은 학습이 아닌 배울 수 있는 권리, 하지만 빼앗긴 권리 인권과 교육권의 문제로 시작되었다.
이때까지 우리나라의 비문해율(문맹률)은 한자리 수라는 통계가 사회적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한글교실(문해교육)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때 시작한 비문해자를 위한 한글교실(현재는 푸른어머니학교)은 20년이 흐른 지금도 지속되고 있으며 푸른시민연대라는 지역풀뿌리시민단체의 역사를 같이하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자 가장 밑바탕이 되는 사업으로 존재하고 있다.
문해학교의 문을 연 초창기에 끊임없이 학교를 찾는 어머니(비문해 성인여성)들을 만나면서 우리나라의 비문해율은 제대로 된 조사를 한 바 없는 엉터리였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정확한 통계는 아니었지만 사업을 진행하는 체감형 통계로는 특정 연령, 특정 성별 그러니까 50대 이상의 여성인 경우 비문해율은 거의 50%를 넘고 60~70대(전쟁세대)로 넘어가면 그 연령대의 거의 80%는 비문해자일수 있음을 알게 된다.
글을 모르는 어머니들을 만나면서 단순하게 생각했던 한글교실은 단지 글자를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가장 힘없는 이들 중 하나인 노인여성, 비문해자(무학력자)의 인권을 찾는 일이자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기본적으로 받아야할 교육받을 권리를 다시 찾는 일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 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 권리를 당연히 그것도 당당하게 주장하여 받아야 하는 것인데도 그 책임을 자신의 잘못이자 수치로 생각하는 어머니들과 그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푸른시민연대가 풀뿌리운동으로 문해교육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인권의 문제와 이로 인한 공동체의 문제가 담겨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모르는 분들이기에 포스터나 현수막을 통한 홍보도 직접적인 효과를 얻기는 어려웠지만 주변사람들이 건네준 전화번호를 주머니에 넣고 6개월 이상을 고민한 끝에 조심스럽게 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학교에 도착해서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내내 눈물과 한을 쏟아내는 이분들의 이런 상황을 보면서 단지 읽고 쓰는 문제를 넘어 여성, 노인, 그것도 배우지 못한 이들의 삶이 얼마나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위축되게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학교의 교육철학은 당당한 삶, 즐거운 교육, 결국 배워서 이웃과 나눌 수 있고 세상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이 되기 위한 삶의 교육으로 잡았고 한결같이 이러한 가치를 늦깎이 학생들과 함께 실현해나가고 있다.
스스로 당당해지고 자신감을 찾을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시로 표현하거나 예를 들면 연극공연 같은 형태로 자신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세상에 이야기하도록 하였다. 기초문자 교육도 기능적인 읽고 쓰기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에 초점을 맞췄고, 경험이 배제된 학령기학생들과는 달리 이미 경험과 기억으로는 자리 잡고 있는 역사적 상황을 체험을 통해 새롭게 받아들이는 교육으로 역사에서 평화 찾기 수업을 진행하였다. 현대사의 아픔을 몸소 겪은 이분들은 서대문형무소, 광주 5.18묘역, 나눔의 집 등의 역사의 기억을 통해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지는 시간을 갖게 된다. 역사의 기억은 진실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현대사의 기억공간에서 함께 진행한 역사교육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푸른시민연대의 문해학습공동체 운영의 역사는 이렇게 민주시민교육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문화체험, 환경교육과 환경탐방 등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는 민주시민교육으로 까지 교육의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글을 배움으로써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학생들은 그 고마운 마음을 같은 동네에 사는 독거 어르신들의 생일상을 차리거나 장애아동 시설에 가서 요리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나눔의 직접행동을 통해 ‘배워서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문해학교의 학생들이 아닌 마을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학습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20년을 지내면서 이제부터 남은 과제는 100세 시대를 맞아 국민의 평생교육을 지원할 시스템을 갖춰나가는 것이 정책적 목표이다. 그 한편에서 20년 넘게 국민의 가장 기초교육인 문해교육을 마을 안에서 담당해왔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국민의 평생교육 터전, 마을 안에서 누구든지 배울 수 있는 권리를 실현한 풀뿌리운동이 존재한다. 이러한 평생교육, 교육복지의 실현은 누구나 배우고 또 배움을 통해 다른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데 나누고 돌보는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더불어 사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큰 기둥이 되고 있고 더 되어야한다. 더 나아가서 문해학습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마을의 또 다른 어려운 사연을 가지고 있는 독거어르신, 청소년, 이주여성, 이주노동자들을 돌보는 활동에도 참여하여, 배우고 나누는 학습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굳건히 자리 잡아가야할 것이다.
이분들과의 함께 지낸 20년의 시간은 지역풀뿌리운동, 마을공동체를 지향하며 활동한 우리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분들과의 소통하는 방법과 삶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이끌었다. 이분들은 문해교육(한글교육)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또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60평생 부끄럽기만 했던 못 배운 한을 자신의 책임을 넘어 이제는 국가의 책임과 공동체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잘못된 구조를 해결해나가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책임감으로 이제는 용기를 내어 자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마을에서 이분들과 함께한 교육은 공동체의 역할과 과제를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터전이 되었다.
20년의 생일을 맞는 동갑내기 참여연대의 고민과 푸른시민연대의 고민은 그 내용은 다르겠지만 지향점은 보다 나은 세상, 더불어살아 행복한 세상에 맞춰져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동안 잘 버텨왔듯이 앞으로의 행보에도 시민들과 이웃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행동해나가자고 20살 축하메세지를 전해본다.
월간 <복지동향> 2014년 8월호(제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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