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촌공동체의 ‘마을’이야기
정석구 ㅣ 사단법인 일촌공동체 상임이사
먹은 게 얹힌 듯한, 마음 속 체기가 가시질 않습니다. ‘세월호 사태’ 이후 다섯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제 세월호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항간의 말들처럼, 진상규명을 둘러싼 답답함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새삼 우리사회가 아직 이런 정도였구나 싶고, 제 자신이나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 역시 우리사회의 이런 현실과 스스로의 삶에 대해 자괴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사무실 동료가 건네준『복지동향』의 원고청탁서를 보니 “[동서남북] 코너는 복지단체 및 기타 NGO 등의 최근 동향, 활동내용 등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제가 참여하는 일촌공동체에서 요즘 추진하고 있는 활동이나 하반기 계획 등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관심 또는 협력을 구하는 글을 써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정도의 일반적인 글쓰기조차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지금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아무래도 ‘세월호 의제’를 저희 단체 내에서 더 논의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사정으로 해서 청탁받은 글을 새로 쓰지 못하고, 얼마 전 써두었던 저희 단체 관련 글 한 편을 대신 보냅니다. 같은 제목으로 격월간『자치와 협동』최근호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참여정부시대가 저물던 시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행사장에서 “무엇보다도 복지를 위해 5년 내내 노력했다”고 했다. 집권 직전인 2002년 정부예산 중 사회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였는데 2006년에는 27.9%로 대폭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들이 체감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겠지만 그나마 야당이나 경제관료들을 비롯한 많은 집단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이룬 성과”라고도 했다.
그 수치의 사실관계를 포함하여 참여정부의 복지확대정책 전반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엇갈렸다. 복지예산 확대에도 불구하고 IMF 관리체제 이후 가속화된 사회양극화 현상을 정책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구체적인 사건들도 잇따랐다. 30대 주부가 지독한 생활고를 견디기 힘들어 세 자녀와 함께 고층아파트에서 동반투신한 일이며 빈곤가정의 다섯 살 어린이가 장롱 안에서 혼자 굶어죽은 채로 발견된 사건 등이 연이어 발생했다.
난데없이 참여정부 시절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시 상황이 지금 이 지면에 소개하려는 사단법인 일촌공동체의 결성과 관계가 있어서다.
2006년 여름, 그러니까 8년 전 이맘때였다. 여러 분야에서 우리사회의 민주화, 인간화를 위해 나름 애써 온 사람들 몇이서 ‘현실상황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기엔 좀 그렇다’며 대화모임을 시작했다. 거창한 또는 헐렁한 대화가 반복되면서 이제 구체적인 이야기를 좀 해보자 했고, 결론은 ‘이 상황에서 우리 자신들부터 이웃들과 함께 좀 더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의 근거지를 스스로 만들자는 거였다. ‘칸막이 복지’나 ‘시혜적 복지’ 서비스를 넘어 ‘함께 함의 관계’를 우선하는 공동체적 복지운동을 실천하자고 했다.
우리와 뜻을 함께 하는 지역복지활동가들과 함께 ‘복지아카데미’라는 강좌를 곧이어 열었고, 서울 도봉구와 광주 등 몇 개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하는 활동조직을 결성했다. 그리고 그런 활동들을 함께 뒷받침하기 위한 회원단체로 사단법인 인가도 받았다. 지금 일촌공동체가 표방하고 있는 ‘사람중심·지역중심·관계중심 사회적가족운동’의 시작이었다.
사회적가족 – 일상의 나눔과 소통이 있는 소공동체
사회적가족운동이라는 말이 좀 생소할 수 있겠다. 사회적경제, 사회적기업 등은 최근 몇 년새 익숙하게 쓰인다. 경제라는 말 속에 이미 경세제민이라는 사회적 성격이 들어가 있지만 현실에서 경제는 시장경제나 돈벌이경제의 줄임말처럼 통용되기 때문에 사회적 목적을 우선하는 경제활동주체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사회적경제로 별도 명명한 것 같다.
그와는 좀 다르게, 가족을 포함한 혈연적·지역적 공동체의 기반이 급속히 와해된 우리 시대에, 사회적가족운동은 사람들 사이의 공동체적 관계를 어떻게 다시 이어갈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종의 화두다. 사회적 관계, 공동체적 관계를 바라보며, 사회적경제가 ‘돈벌이경제’의 경계를 넘어서듯 사회적가족 또한 ‘피붙이가족’의 경계를 넘어서려 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상통하는 사회조직론이기도 하다.
사단법인 일촌공동체의 초기 사무처장이었던, 지금은 고인이 된 최홍순님은 일촌공동체 회원들이 토론하며 이름붙인 사회적가족운동의 내용을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사회적가족운동은 삶의 방식을 기본으로 하는 운동이다. 개별화된 삶의 방식을 극복하고 지역에서 상부상조·협동·연대하는 삶의 방식을 복원함으로써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공동체 관계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사회적가족운동은 무엇보다도 지역에서 주민들 상호간에 얼굴을 아는 가운데 신뢰관계를 만들며 이를 확장해 가는 운동이다. 옛날 우리 농촌마을에서 두레·품앗이·계 등이 가능하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도울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서로 잘 알고 신뢰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지역의 공동체적 삶의 관계 복원을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 사이에 ‘얼굴을 아는 신뢰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사실 지역공동체 운동의 핵심은 이것이라 말할 수 있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 서로 잘 알고 신뢰관계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상부상조·협동·연대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 질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가족운동은 지역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가능한 실천을 강조한다. 이는 한사람의 열걸음보다는 열사람의 한걸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이다. 테레사 수녀님의 삶과 실천은 참으로 위대하고 보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가능한 삶의 방식과 형태를 찾고 제시해야 한다.”
그가 법인 사무처장 역할을 하면서 한편으로 자신의 거주지역에서 이웃들과 함께 일궈온 일촌공동체 도봉센터는 사무실과 상근자가 없다. 지역주민 몇 사람의 대화모임으로 시작, 현재 이백 여 명의 회원들이 열 몇 개 팀을 꾸려 지역 내 독거노인, 시설장애인, 다문화가정 및 조손가정의 아이들과 사회적가족 관계를 맺고 일상적으로 나눔과 소통이 있는 소공동체로 살아간다. 팀 구성원들 간의 대화모임이나 팀장들 간의 회의, 전체회원모임 등을 통해 일상 활동의 내실을 점검하며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한다.
지역공동체 형성을 목표하는 기초단위로 나아가자는 일부 회원들의 ‘선진적인’ 의견도 간간이 나오지만, 그런 ‘큰’ 얘기가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에 자연스럽게 오르내릴 수 있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고 한다. 시간이 필요하면 시간을 더 들여야 하는 법. 안으로 일상적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관계의 질과 밖으로 사회현실에 대한 공감능력을 성장시켜 가는 시간들을 통해 사회적가족운동의 무게중심을 잡아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봄직 하다.
일촌공동체 회원조직으로서 사회적가족운동을 추구하는 지역주민활동은 현재 전국 여덟 개 지역에서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로 진행되고 있고, 사단법인 일촌공동체가 수탁운영하는 복지관, 자활센터, 영유아통합지원센터 세 곳 역시 제도나 위탁관청의 지침을 준수하는 수준을 넘어 ‘사람중심·지역중심·관계중심’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가족운동의 좋은 동반자들로 함께 손잡고 가고 있다.
사회적가족운동 – 소공동체 안과 밖의 접속을 지향하며
지역현장에서의 활동 외에 일촌공동체가 주력하고 있는 지역복지활동가 양성 활동에 대해서도 좀 더 소개한다. 앞서 언급한 사회적가족운동이 사람(당사자)중심의 사회적 관계성을 이어냄으로써 복지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라 할 때, 이것은 일촌공동체라는 한 단체를 넘어 확장되고 일반화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공부를 함께 해보자고 복지기관이나 시민단체의 활동가들을 공개모집, 2007년부터 매년 한두 차례씩 ‘복지아카데미’라는 시리즈 강좌를 열어왔다. 또 사회적가족운동의 취지에 내용적으로 부합하는 활동들을 지지하고 뒷받침하기 위해 활동계획 공모를 통한 지원활동을 병행했고 사회복지활동가들의 네트워킹과 지역복지실천사례 학습 및 연구활동 지원사업 등을 계속해왔다.
제도적 복지기관이나 자선단체 등의 일정한 복지서비스 제공(전달)기능을 넘어, ‘더불어 삶’의 장을 넓혀가고자 하는 복지운동의 주체들을 일으켜 세우려 함이다.
‘마을이 세계다’라는 주제 하에 보자면 현재 일촌공동체에서는 사람(당사자)을 중심으로 형성한 사회적가족 하나하나가 다 마을이고 세계다. 마을의 물리적 범위가 문제되지는 않는다. 한 마을은 다른 마을과 만나 좀 더 큰 마을을 이루기도 한다. 그 마을들의 연방이 일촌공동체 산하의 지역조직이고 또 사단법인 일촌공동체인 셈이다. 마을 차원의 삶에서는 주민들 스스로의 자치(상부상조)가 중요하고 마을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협동과 연대가 중요할 것이다. 사람(당사자)의 삶의 문제가 제도나 정책 또는 당대의 지배적 질서와 대립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지점에서 우리는 당연히 협동과 연대의 가치를 좇을 것이다. 그렇게 협동하고 연대할 수 있는 ‘소공동체 마을자치’의 힘을 키우고 성숙시켜가는 것, 이것이 주민과 함께 하는 사회적가족운동의 일상이라 할 수 있겠다.
월간 <복지동향> 2014년 09월호(제1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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