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3 2013-03-15   3068

[동향3] ICF,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대안이 될 수 있는가?

ICF,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김태현 l (前)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사무처장 

들어가며

요즘 우리나라의 장애계에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보수적 장애단체건 진보적 장애단체건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후로는 처음으로 하나의 의견으로 뜻이 모아진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는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간 장애인들에게 제공되었던 복지전달체계에 대한 불만이 아닌가 싶다.

본론

한국의 장애인복지전달체계에 있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던 문제로 의료적 기준 중심의 장애판정과 장애판정 등급이 복지서비스 수급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장애인복지서비스는 장애연금과 같은 공적급여와 활동보조지원과 같은 사회서비스로 이루어져있다. 이러한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수급자격은 의학적 판단기준에 의해 15개 장애유형을 1~6등급으로 나누는 장애등급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 더욱이 장애인복지서비스를 결정하는 절대적기준이 되는 장애인복지법상에 장애등급은 의학적 기준에만 결정된다.

의학적 측면에 치우친 장애등급을 기계적으로 공적급여와 사회서비스 수급기준으로 적용한다면 장애인복지지원의 사각지대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노동능력과 같은 활동상의 제한이나 소득과 주변 환경과 같은 사회경제적인 요인들에 대한 고려 없이 전적으로 의학적 손상의 정도에 따라 장애등급을 매기고 이러한 장애등급을 기준으로 기계적으로 서비스를 지원하면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을 배제시키거나 필요한 서비스를 적절히 제공하지 못하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이에 장애인복지지원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장애인 개별 욕구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위해서는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진입단계인 장애판정단계에서부터 포괄적인 욕구사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판정체계에서 의학적 기준중심의 장애등급을 극복하고 포괄적인 욕구사정을 위한 대안으로 많은 학자들은 물론이고 장애인 당사자들도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 ; ICF)를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ICF는 2001년 WHO에서 승인한 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로서 장애를 보편적 건강의 측면에서 해석하고 있다. 즉 장애는 누구든 장기적이던 일시적이던 한번쯤은 경험하는 보편적 건강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이에 ICF는 보편적으로 건강한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신체적•개인적•사회환경적 요인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ICF에서의 장애는 의학적 측면에서 신체적 손상과 개인 기능적 측면에서 활동의 제한과 사회 환경적 측면에서 사회적 참여 제약 및 환경적 저해가 상호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또한 ICF는 의료적•개인 기능적•사회 환경적으로 각 요인들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각 요인들마다 평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장애인의 욕구를 포괄적으로 사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또한 WHO는 각 나라의 장애관련 정책에 있어 ICF를 활용하고 반영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바 몇몇 나라의 경우 이를 장애판정, 장애통계, 특수교육대상자 선정 및 개별화 교육계획 수립시 활용하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도 장애계의 요구를 수용하여 장애판정체계를 바꾸기 위한 사정도구연구가 이루어졌고, 이 작업에 ICF의 적용이 일정정도 반영되어졌다고 알고 있다. 또한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에서도 장애재판정에서 많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뇌병변장애인들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 사업으로 ICF를 기반으로 하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복지전달체계 연구’ 부제로 ‘장애인복지지원을 위한 사정도구로서 ICF 활용가능성’ 연구 결과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면 ICF가 발달적 양상이 다른 생애주기별로 장애인의 욕구를 사정하는 도구로서 유용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ICF가 포괄적·보편적 항목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환경요인에 관한 사정이 가능하다는 점, 장애유형별 욕구에 부합한다는 점, 장애여성의 욕구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사정도구인 ICF를 활용하여 복지지원이 이루어질 때 복지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더불어 ICF 항목의 포괄성과 보편성은 사례관리와 개별화된 복지지원을 위한 사정과 지원의 준거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제안되었다. 또한, ICF의 항목들이 장애인의 지원 욕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항목들로 구성되어져 있다는 점에서 지원에 근거한 사정이 가능하고 이러한 욕구사정의 데이터들을 통해 복지 예산을 예측할 수 있으며, 필요한 곳에 필요한 예산이 투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장애인 복지 행정에 이바지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어졌다. 마지막으로 장애판정 단계에서부터 장애에 대한 환경의 제약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애인의 장애에 대한 긍정적 수용과 더불어 환경적 개선을 통한 장애인의 사회참여 확대는 장애에 대한 사회 전반적 긍정적 수용에도 이바지 할 수 있다는 점도 제시되었다.

이와 같이 복지 사정과 지원에서 활용성이 높은 ICF를 한국의 장애판정단계에서 활용을 위한 방안으로서 거시적으로는 정책적 수준에서 미시적으로는 사정도구 수준에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방안들을 모색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거시적인 차원인 정책에서는 먼저 장애판정체계 전반의 개편이 요구된다고 밝히고 있다. ① 장애인 당사자(혹은 대리임)와 의사에 의한 초기평가 → ② 장애인복지 담당자에 의한 실사 → ③ 개별 서비스 판정하는 장애판정위원회 라는 3단계 장애(서비스)판정체계 모형이 제안되었다. 첫 단계에서 ICF의 활동과 참여 및 환경요인은 장애인 당사자 혹은 대리인에 의한 자가평가로 신체기능과 구조는 의사에 의한 진단으로 초기평가가 이루어지고, 두 번째 단계에서 ICF 자가평가 결과는 다시금 시군구 단위의 장애인복지 담당자에 의해 재평가 단계로서 실사가 이루어져야 하며, 마지막 단계로, 의사 진단서, 자가평가 결과, 복지 담당자의 실사 결과들이 최종 시군구 단위의 장애판정위원회에서 합의를 통해 장애유무를 넘어 서비스 지원 유무를 판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또한, 정책적인 측면에서 장애판정체계 속에서 ICF를 활용한 사정과 지원이 연계되기 위해서는 ICF 현행법에 산재해 있는 지원의 내용과 ICF의 항목을 연결하여 평가-지원-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 조항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평가-지원-법이라는 체계도를 만들 때 일선 복지현장에서 서비스를 지원하는 담당자와 이용자의 서비스 제공과 수급의 명확성이 확보될 것이며, 장애인복지와 관련해 원스톱(One-Stop) 복지 서비스의 가능성이 구체화될 수 있다. 더불어 ICF가 쉽게 정착되기 위해서는 장애인복지법의 시행령에 ICF를 활용한 사정과 지원에 관한 내용이 기재될 필요가 있음도 제시되었다. 미시적 수준에서 사정도구로서 ICF가 실질적인 장애인의 욕구를 사정하기 위해서는 환경요인과 활동과 참여 항목들에 대한 평가 대안이 마련되어져야 함을 제안하였다. 환경요인이 무엇보다 장애인의 수행을 촉진하는데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에서 평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환경요인에 한해 질적 평가와 양적평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질적 평가에 대한 최종 서비스 판정은 장애판정위원회에서 주관적 합의를 통해 객관적인 서비스 지원계획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나타났다. 또한, 환경의 범주가 매우 넓다는 점에서 장애인이 하루 중 (평균 4시간 이상)상당 시간을 머무는 공간에 제한하여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정도구 개발 시 환경요인과 활동과 참여 항목들이 의도적으로 배제되거나 왜곡됨 없이 실질적으로 사정도구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근거로 ICF를 사정도구로서 장애판정체계 속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함께 진행되어져야 할 것들이 있는데, 먼저 전 장애유형에 걸친 생애주기별 부호집합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고, 둘째 ‘환경요인’에 있어 장애인당사자의 자가평가지 개발이 이루어져야 하고(이는 세계적으로 복지 서비스의 제공과정에서 공급자나 전문가가 중심이 되어 판단하고 지배하던 공급자 중심에서 서비스 이용자가 주체로서 참여하고 선택권을 부여하는 이용자 중심적(person centered) 전달체계로 복지전달체계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환경 요인’에 있어 장애인 당사자에 의한 자가 평가를 위한 자가 평가지 개발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ICF의 각 항목과 현행법의 연계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장애판정체계 속에서 ICF를 활용한 사정과 지원이 연계되기 위해서는 ICF 현행법에 산재해 있는 지원의 내용과 ICF의 항목을 연결하여 평가-지원-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 조항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평가-지원-법이라는 체계도를 만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넷째, 장애판정단계에서 ICF를 활용한 욕구사정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장애판정체계 전반의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ICF를 활용한 포괄적인 욕구사정과 장애인복지지원이 연계되기 위해서는 의학적 기준으로만 장애를 판정하고 등급을 매기는 지금의 장애판정 전반의 개편이 요구된다. 즉, 장애유무를 판정하는 장애판정시스템에서 장애서비스를 판정하는 장애판정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런 사항들이 만들어져 보완이 될 때 장애등급제 이후를 대안할 수 있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나오며

하지만 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끝으로 포커스그룹인터뷰의 한 인터뷰어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문제는 국가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ICF를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장애인 당사자의 필요에 적합한 ICF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엉뚱하게 장애인 필요와 상관없이 개인의 (활동과 참여 중 활동영역에서도) 단순 기능에만 집중하는 현상이 생기지요. 그래서 ICF가 활용성이 높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활동영역에서) 단순한 특정 기능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복합적인 활동과 참여 및 환경이 평가에서 반영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월간 <복지동향> 2013년 03월호(제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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