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3 2013-07-15   2190

[기획주제1] 공공병원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한 과제

공공병원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한 과제

이진석 l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공공병원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인식 전환의 필요성

지금까지 공공병원의 주된 역할과 기능을 ‘취약계층’ 진료로 인식하는 경향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 달성 이후, 취약계층 진료를 위한 공공병원의 중요성은 점차 상실되고 있다. 향후 의료급여 수급자가 확대되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면, 저렴한 진료비에 근거한 공공병원의 비교우위는 더욱 위축될 것이다. 취약계층 진료라는 현행 공공병원의 정체성은 취약한 건강보장제도로 인해 한시적으로 부여된 것이다. 물론 장애인, 노숙인, 이주민 등 경제적 문제 이외의 복합적 문제를 가진 취약계층의 건강권 보호는 앞으로도 여전히 공공병원의 중요한 역할과 기능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수익성이 낮아서 적정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필수진료 분야는 앞으로도 공공병원의 중요한 역할과 기능으로 남을 것이다. 분만, 격리병상, 호스피스, 재활, 어린이병원, 응급, 중환자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분야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생명’안전망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이들 진료 분야는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가 커지기 때문에 민간의료기관은 공급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 이들 분야는 건강보험수가를 인상하는 것만으로는 정상적 운영이 불가능하다. 건강보험수가는 환자를 진료해야 수입이 발생하는 재정기전이다. 그런데 이들 분야는 환자가 없거나 턱없이 적어도, 시설·장비·인력을 상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수입이 없더라도 경상운영비를 지속적으로 지출하면서 시설·장비·인력을 유지하고 있어야, 나중에 정작 해당 분야 진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들이닥쳤을 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민간의료기관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짐이다.

건강증진·질병예방·질병관리 등과 같은 국가 보건의료사업과 정책을 수행·지원하는 것도 공공병원이 담당해야 할 역할과 기능이다. 치료 위주의 서비스 제공만으로는 인구 고령화와 이로 인한 국민의료비 증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료비 지출 총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질병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고, 경증질환이 고액 중증질환으로 진행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서비스 제공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민간의료기관도 이런 역할을 수행하도록 적극 유도·지원해야 하지만, 공공병원이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사업 모델을 개발하고 확산시켜야 한다. 이런 서비스 역시 현행 재정기전을 통해서는 경제적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공공병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양질의 적정진료’ 제공은 공공병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과 기능이다. ‘양질의 적정진료’란 과잉진료도 아니고, 과소진료도 아니면서, 질적 수준이 높고, 친절하며, 안전한 진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공공병원만의 역할과 기능은 아니다. 공공병원이든 민간병원이든 병원의 본질적인 기능은 환자 진료이고, 이런 본질적인 기능을 잘 수행하는 병원이야말로 공공성이 높은 병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급여·수가체계의 제약으로 인해 민간병원이 양질의 적정진료를 제공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현행 건강보험 급여항목의 원가보전율은 75% 수준인 반면, 비급여 항목의 원가보전율은 200% 수준이다. 이 때문에 서비스의 양을 늘리고, 적극적인 비급여 진료를 제공해서 건강보험의 낮은 수가로 인한 재정 손실을 메우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개별 민간병원의 노력으로는 피해나갈 수 없는 일종의 구조적 조건이 민간병원의 ‘양질의 적정진료’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질의 적정진료’를 위한 공공병원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공공병원의 역할과 기능

1) 취약계층 진료: 건강보장제도의 취약한 보장성으로 인해 한시적으로 부여된 역할
2) 수익성이 낮아 적정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필수진료 제공
3) 국가 보건의료사업과 정책 지원
4) 양질의 적정진료(표준진료): 공공병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과 기능. 과소진료도 아니고 과잉진료도 아닌, 질 높고, 친절하며, 안전한 진료를 제공하는 것

공공병원의 역할과 기능을 ‘취약계층’ 진료로 인식하는 경향에서 하루속히 탈피해야 한다. 이런 인식이 공공병원을 빈곤층 진료기관으로 국한시키고, 공공병원을 의료의 주류가 아닌, 부차적인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비주류로 주변화시켰다.

공공병원의 역할과 기능 재정립을 위한 과제

공공병원 운영의 목표와 수행기능 확립

현행 법률에서는 공공병원의 역할과 기능을 매우 포괄적이고 선언적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공공병원의 명시적 목표와 수행기능에 대한 규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보니, 개별 병원의 관심과 여건, 그리고 역량에 따라 공공병원의 활동 내용과 성과가 매우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개별 병원마다 활동 내용과 성과가 천차만별이다 보니, 성과 관리 역시 ‘경영수지’와 ‘취약계층 진료실적’에 초점을 맞추어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공공병원 운영의 목표와 수행기능이 확립되지 못한 점은 공공병원에 대한 투자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전략적인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병원 측의 산발적인 요구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예산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7조(공공보건의료기관의 의무) ① 공공보건의료기관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보건의료를 우선적으로 제공하여야 한다.
1. 의료급여환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의료
2. 아동과 모성, 장애인, 정신질환, 감염병, 응급진료 등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부족한 보건의료
3.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에 관련된 보건의료
4. 교육·훈련 및 인력 지원을 통한 지역적 균형을 확보하기 위한 보건의료
5. 그 밖에 보건의료기본법 제15조에 따른 보건의료발전계획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보건의료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7조(사업) ① 지방의료원은 다음 각 호의 사업을 한다.
1. 지역주민의 진료사업
2. 감염병 및 주요 질병의 관리 및 예방 사업
3. 민간 의료기관이 담당하기 곤란한 보건의료사업
4. 의료인·의료기사 및 지역주민의 보건교육사업
5. 의료지식과 치료기술의 보급 등에 관한 사항
6.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공공보건의료 시책의 수행
7. 그 밖에 보건복지부장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보건의료사업의 수행 및 관리

공공병원의 위기를 야기한 원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부의 책임성 있는 관리 부실’이다.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서 건립하고, 국민의 세금을 지원하여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이런 공공병원이 국민 건강을 위해 제 역할을 하도록 잘 관리하지 못하고, 제각각 알아서 운영하도록 방치했다. 정부가 공공병원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공공병원 운영의 목표와 수행기능을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병원 운영의 목표와 수행기능을 명시한 ‘(가칭) 공공병원 표준운영지침’을 제정하고, 지침에 근거해서 공공병원의 성과를 관리하고,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물론, 지역의 상황과 요구를 반영한 진료·사업은 지자체 재량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공공병원 표준운영지침

① 양질의 적정진료 표준지침: (예) 병원의 외래/입원 100대 다빈도 질병을 진료하는 역량을 갖추도록 명시, 이들 질병에 대한 표준진료지침 개발·적용
② 공익적 필수진료·사업 표준지침: 해당 진료·사업의 목표·대상·내용을 명시, 이를 근거로 개별 병원별 성과 목표를 설정하여 평가
③ 교육훈련 및 공공병원의 공익적·효율적 운영을 위한 기본사항

공공병원 거버넌스의 통합성과 전문성 강화

공공병원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유기적 협력이 어려운 점 역시 공공병원의 위기를 자초한 원인 중 하나이다. 중앙정부는 지방 공공병원에 대한 개입 권한과 수단이 취약하다. 지방자치단체가 도심에 있던 공공병원을 환자가 도저히 찾아올 수 없는 외진 곳으로 옮겨 신축해도 이를 제어할 수단이 없다. 공공의료에 대한 소명의식과 병원 운영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인물이 낙하산 인사로 원장에 임명되어도 이 역시 마땅히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보건복지부, 교육부, 노동부, 경찰청 등 공공병원의 소관부처가 분산되어 있지만, 부처 간 협력과 연계 수단 역시 없다. 지방정부로 내려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전문적인 조직인 병원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전문성이 없다. 게다가 공공병원이 없는 지역 출신의 도의회 의원들은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에 무관심하거나 비협조적이다. 공공병원의 실질적 수혜자인 기초자치단체의 책임성도 전무하다. 임기제 원장과 직원의 역량 부족으로 인한 병원 운영의 취약성을 보완할 수 있는 지원체계도 사실상 부재하다. 『공공보건의료에관한법률』에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와 공공보건의료교육훈련센터를 설치하도록 명시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이들 센터는 설치되어 있지 않은 채, 국립중앙의료원 내 1개 팀이 각종 사업비 관리와 평가에 국한된 활동만을 수행 중이다.
중앙정부-광역자치단체-기초자치단체의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표준운영지침에 따른 진료·사업에 대한 지원 및 관리책임을 져야 한다. 광역-기초자치단체는 지자체 필요에 따른 진료·사업에 대한 지원 및 관리책임을 지고, 경상운영 부문의 건강한 적자에 대해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공공병원의 입지 선정과 원장 선임에 대한 사전 개입 혹은 실효성 있는 사후 평가·관리 기전을 갖추어야 한다.
공공보건의료 네트워크는 공공병원의 구조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공공보건의료체계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반이 된다. 인력지원, 기술지원, 교육훈련, 진료연계를 위한 권역 국립대병원의 지원 기능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국립대병원의 소관부처 이전을 추진해야 한다. 국립대병원의 소관부처를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것은 국립대병원의 공공적 기능 강화 뿐 아니라, 전체 공공의료의 강화와 체질 개선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 보건소와의 협력과 역할 분담을 통한 지역 주민의 건강·질병관리, 사회복지 서비스와의 연계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 이와 함께 법률에서 명시한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 공공보건의료교육훈련센터를 조속히 설치하여,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관리 기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공공병원의 정상적 운영을 위한 재정 기전 구축

공공병원이 본연의 바람직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적자는 ‘건강한 적자’로 인정되어야 한다. 공공병원이 적자를 냈다고 덮어놓고 야단을 치면, 공공병원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바람직한 역할 수행을 등한시 하면서 수익성 위주의 진료를 하거나, 인력을 줄이거나 비정규직을 채용하여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민간병원과 다를 바 없어지는 것이다. 공급 과잉 상태에서 이런 식의 공공병원이라면, 굳이 국민의 세금을 들여서 운영할 이유가 없다. 진료수익을 늘려서, 공공병원 적자를 해소하자는 발상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과잉진료와 비급여 진료를 통해 얻은 의료수익은 어디에도 없던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과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공공병원이 적정진료를 하느라 적자를 보면, 그 만큼 건강보험재정을 아끼고, 지역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준 것이다. 공공병원의 모든 적자가 ‘건강한 적자’는 아니다. 의료서비스의 질적 낙후성으로 인한 환자 감소와 수익 하락은 그냥 적자이지, ‘건강한 적자’는 아니다. 내부의 비효율과 운영능력·투명성 부족으로 인한 적자 역시 ‘건강한 적자’는 아니다. 오히려 이런 ‘불건강한 적자’는 적자액의 과소에 상관없이 더욱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건강한 적자’에 대한 지원 역시 사회적으로 수용되기 힘들다.
건강보험은 기본적으로 병원의 경상운영비용을 조달하는 재정기전이다. 공공보건의료사업 비용과 자본투자비용은 별도의 예산을 통해 충당되어야 한다. 경상운영비용을 조달하는 건강보험 수입을 통해 공공보건의료사업 비용과 자본투자비용을 마련해야 한다면, 수익성 위주의 진료가 불가피하고, 이것은 ‘양질의 적정진료’라는 ‘의료의 공공성’의 본질을 훼손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된다. 공공병원에 대한 자본투자를 지역개발기금 차입 형태로 지원하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예산으로 지원해야 할 자본투자를 기금 차입 형태로 지원하면서, 공공병원은 진료수입을 늘려 원리금 상환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공공병원의 안정적인 유지(경상운영비)/공공적 사업(사업예산)/발전(자본투자)을 위한 재정 기전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공공병원의 바람직한 역할 수행은 불가능하다.

노사관계의 합리화와 병원 운영의 투명성 강화

적지 않은 수의 공공병원은 ‘책임 – 권한 – 건전한 감시’의 공백상태에서 ‘주인 없는 병원’의 부작용을 노정하고 있다. 역량/책임/권한이 없는 임기제 원장에 역량이 부족하고 동기가 결여된 직원, 그리고 시민 감시와 참여 부재가 더해지면서, 비효율과 관료주의, 투명성과 책임성 부족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흔히 ‘공공성’과 ‘효율성’을 상충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건립되고,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는 공공병원은 훨씬 더 효율적이고, 투명하고, 책임성이 커야 한다.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공공병원은 본연의 바람직한 역할과 기능도 수행할 수 없다. 

공공병원에 대한 책임경영체계가 보장되어야 한다. 현재의 공공병원은 책임과 권한의 공백상태에 있다. 책임과 권한을 가진 명확한 주체가 없는 조직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 경영진의 합당한 경영권을 보장하면서, 그 책임을 엄중하게 묻는 방식으로 공공병원의 책임과 권한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경영진에 대한 노동조합, 지역 언론, 지역 주민의 감시와 견제 기능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공공병원 운영의 투명성과 지역 주민 참여를 강화해야 한다. 수많은 공공병원 중에서 지역 주민이 주인 행세하는 병원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공공병원 운영의 투명성과 지역 주민 참여 강화는 공공병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하고, 부당한 내외부의 압력으로부터 공공병원을 보호하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이사회 회의록, 경영현황, 단체협약 등 공공병원 운영 관련 모든 정보를 지역 주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지역 언론과 주민이 이사회를 방청할 수 있도록 전면 허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이 노·사·정을 감시하고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

공공병원의 성과를 개별 병원의 수익성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지한 접근이다. 공공병원의 성과는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거시적 효과성, 효율성, 형평성에 대한 기여 수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정책수단으로 공공병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국가의 책임이고, 능력이다.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를 공공병원의 역할과 기능을 재인식하고, 공공병원을 둘러싼 문제를 혁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는 공공병원 발전의 쓴 보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주의료원 사태를 경험하면서도 공공병원의 역할과 기능을 재인식하지 못하고, 공공병원의 혁신도 이루지 못한다면, 진주의료원 사태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3년 07월호(제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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