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남기철 |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노숙(露宿)… 어의적으로는 이슬을 맞으며 자는 것을 의미한다. 노숙인이라는 말은 요즈음은 일반화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리 오래된 말은 아니다. 부랑자, 부랑인이라는 말이 사용되어 왔다. 공히 안정된 주거가 없는 상황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노숙인은 마치 사람의 특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노숙인을 주취자 혹은 ‘비정상적 생활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심지어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같은 공공 영역이 이러한 인식을 부추키는 경우도 많다. 누군가가 집이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잠을 자고 술을 먹으며 사는 생활을 선택해서 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선택한 생활방법이 대다수의 다른 시민들을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이들은 공공장소로부터 쫓아내고 혹은 수용시설에 수용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숙생활이 좋아서 선택한 사람, 멀쩡한 집을 놔두고 술에 빠져 노숙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숙인들도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미쳤다’고 하거나 잘 상대하지 않는다. 노숙인 대부분은 안정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노숙의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사회현상이 그러하듯이 당연히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미시적인 측면에서) 한 개인이 노숙생활에 빠져드는 원인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낮은 소득, 퇴거와 주거박탈, 가족해체, 실직이나 사업실패와 같은 경제적 위기, 교육과 인적자본의 취약성, 정신건강이나 알코올중독의 문제, 가족폭력, 학대에 따른 가출 심지어는 매우 드문 현상이지만 개인적인 삶의 선택이나 퍼스낼리티 특성까지 무척 다양하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는 노숙을 하고 다른 누군가는 노숙을 하지 않기도 한다는 측면에서 노숙생활에는 분명히 개인적 원인요소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눈을 크게 뜨고 거시적인 측면에서 노숙문제를 살펴본다면 구조적인 원인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서구나 국내의 관련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기본적인 노숙문제의 거시적 원인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빈곤문제이다.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유지할만한 소득이 갖추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 사회의 노숙인구는 증가한다. 두 번째는 주거문제이다. 사회전체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주거지가 모자라면 전체적인 노숙인구는 증가한다. 세 번째는 사회복지체계이다. 자신의 경제활동으로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일 때, 사회복지체계가 소득을 보장시켜 주거나 아니면 주거안전망을 보강한다면, 혹은 노숙생활의 위험성이 큰 가족폭력 피해자, 정신장애인, 알코올중독자 등에게 지역사회에서 잘 생활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노숙생활을 피할 수 있다. 반대로 뒤집어 이야기한다면 사회복지체계의 취약성은 노숙인구를 양산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구의 어떤 학자들은 노숙의 원인을 개인적 원인과 구조적 원인으로 크게 구별하고 이를 같은 차원에서 배타적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독특한 조사방법을 통해 ‘개인적 원인에 의한 노숙인’과 ‘사회구조적 원인에 의한 노숙인’을 구별하기도 한다. Ringheim은 미국에는 구조적 원인에 의한 노숙인이 많고 유럽에는 개인적 원인에 의한 노숙인이 더 많다고 이야기한다. 사회복지체계의 적극성, 빈곤과 주택문제의 심각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개인이 노숙생활을 하게되는 과정에는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에 일부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한다면 노숙인들을‘개인적 특성’과 ‘사회구조’ 중 어느 하나의 원인을 가진 집단으로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빈곤과 양극화 상황, 유독 비싼 주거비와 재개발 광풍 속에서 급속도로 사라져가는 저렴주거(affordable housing), 극단적으로 소극적이고 잔여적인 복지체계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대량의 노숙인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거리 노숙인은 1990년대 중후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양극화가 심해지는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노숙의 원인에 대한 연구들의 논의에 비추어볼 때에 우리나라는 노숙인의 발생을 야기하는 구조적 취약성이 매우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노숙인은 얼마나 될까? 대략적인 조사결과를 통해 그 규모를 유추할 수밖에 없다. 정확한 통계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노숙인은 인구학적인 특징이나 고정된 양상이 아니라 역동적인 생활상태에서의 한 국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숙은 행정적으로 포착되기 어려운, 극히 비공식적인 상황이다. 사망이나 이민과 같은 사유가 아닌데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들도 있고, 주민등록상 거주지에서 생활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아예 주민등록이라는 것을 가져보지 못한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의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주민등록상 거주지라는 도구로는 노숙인을 포착할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정해진 주거지 주소에 기반하여 복지서비스의 행정적 요건을 따지는 체계에서 노숙인은 복지서비스를 잘 받기 어렵다.
정부발표나 조사결과에서 나타나는 우리나라 노숙인의 수는 다른 나라 ‘홈리스’ 수치에 비해 적다. 미국 HUD가 연간 기준 300만명 이상의 홈리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늘 수 천명의 수치를 발표한다. 이 규모의 차이는 실제 노숙문제의 규모차이라기보다는 조사방법이나 포함기준의 엄격성에 의한 차이라 할 수 있다. 거리 노숙생활을 피하기 위해 찜질방, PC방, 편의점 등을 전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나라의 노숙인 집계에서는 빠져 있다.
작년에 한국도시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상적인 집에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20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 20만명에는 거리에서 자고 있는 노숙인 약 2,700명도 포함되어 있다. 그나마 거리에서 자는 노숙인 2,700명은 매일 밤마다의 수치이기 때문에 연간으로 따져본다면 잘 곳이 없어 거리에서 노숙을 경험하는 사람의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크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생활하지 못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저렴주거’가 모자라는 주택문제에 기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되었건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노숙생활을 경험하도록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가끔 이런저런 TV 프로그램을 통해 집이 없이 낡은 자동차나 숲속, 공원, 텐트, 화장실 등에서 어렵게 밤을 보내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방송된다. 노숙인 복지 현장에서는 이런 안타까운 사연들은 특별할 것 없는 매우 일상적인 상황이다. 방송에 포착되었다는 점이 특별할 뿐이다. 노숙인 복지현장의 실무자나 노숙인 당사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노숙인은 뭔가 이상한 사람이거나 개인의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개인의 문제’로 희생자를 비난하는 낙인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노숙문제와 관련하여 몇 가지 사항들이 이슈가 되고 있다.
첫째는 작년인 2011년 입법이 이루어져 올 6월 시행하는 ‘노숙인등의복지및자립지원에관한법률’과 관련된 것들이다. 사실 십여 년 전에도 노숙인 관련 법률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나타난 바가 있다. 당시에는 가칭 ‘노숙인복지법’이 오히려 노숙인을 배제하는 상징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관점도 있었다. ‘노숙’ 상황보다는 ‘노숙인’이라는 사람의 문제로 보게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때문에 노숙인이라는 별도의 인구를 특정하는 복지법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도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노숙인에 대한 법률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던 바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2005년 이후 부랑인복지시설과 노숙인쉼터가 각기 중앙정부사업과 지방이양업무로 분리되면서 (사실상 동일한 홈리스에 대한 복지서비스 체계임에도) 양자의 통일성이 전혀 없다는 점, 소위 주거복지 영역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민간의 시범사업 등 활동도 많아지고 있는데 관련된 정부부처(복지부,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소관 단절로 사업의 공적 책임이 확보되지 않는 점, 노숙인 복지를 시설보호중심이 아니라 지역사회 주거지원체계와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많은데 이러한 사업들이 기존 사회복지사업법 내에서 잘 소화되지 않는 점 등이 그 배경이다. 오히려 공공 영역에서 ‘관련 법’이 없어 적절한 사업을 집행하기 어렵다는 호소가 있었다. 때문에 관련 민간영역이 주도적인 노력을 경주하여 법률의 제정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법률의 제정과 향후의 전망에 대해 적잖은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법률의 시행을 목전에 두고 법 제정시 민간과 공공이 합의하였던 주요 원칙들(지방사업과 중앙정부사업의 분리라는 이원적 구조 극복이나 시설 중심이 아닌 주거와 지역사회서비스 중심의 대책 등)은 유보되고 빈 껍데기만 남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민간 현장의 반발이 만만찮다.
두 번째는 노숙인에 대한 차별과 공공시설 접근근지 조치와 관련된다. 작년 서울역에서 비롯된 공공장소에서의 노숙인 퇴거조치는 다른 주요 역사 및 공공장소로 파급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야간 노숙행위 금지’라는 초기의 단속방식은 이제 상시적으로 ‘노숙인’을 서울역에서 몰아내는 작업으로 연결되고 있다. ‘노숙인 몰아내기’만을 전담하여 수행할 특수경비용역계약까지 맺고 있다. “일반 시민의 인권이 더 중요하다”며 ‘일반인에게 불편을 끼치는’ 노숙인의 공공장소와 공공서비스 접근을 막는 것은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많다. 술 먹고 서울역 광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규제와 치안확보는 오히려 노숙인이 가장 원하고 있다는 역설 아닌 역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세 번째는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 이후 취약한 거리노숙인에 대한 응급보호와 관련된 일들이다.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추방한 이후 겨울에 동사하는 것을 막겠다며 ‘응급구호소’를 개소한 바 있다. 그리고 알코올 문제나 정신건강이 취약한 노숙인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겠다며 민간에서는 사례관리팀(소위 ACT team – Assertive Community Treatment team)의 거리노숙 현장 아웃리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응급구호소는 동절기가 지났다고 폐쇄되었다. 그리고 민간의 활동으로 전개된 ACT 활동 역시 종결되었는데, 종결 이후 공공은 해당 영역의 활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후속활동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 취약 거리노숙인에 대한 사회복지 서비스의 공백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네 번째로, 작년의 전국적 실태조사 결과를 통해 주거취약계층과 노숙인구 내의 여러 하위집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소위 감춰진 노숙인(Hidden Homeless)의 문제이다. 특히 대표적인 경우가 여성 가족 노숙인이다. 모든 발표수치에서 여성 노숙인은 극소수로 집계되고 있다. 여성 노숙인을 포착할 수 있는 체계 자체가 절대 부족이다. 신체적 성적 착취의 가능성이 여성 노숙인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킨다. 최대한 거리노숙을 피하려는 여성 노숙인의 속성 상 거리노숙을 하고 있는 여성 노숙인은 남성 노숙인에 비해 정신질환의 비율도 높다. 하지만 노숙인에 대한 개입체계는 대개 ‘중장년의 단신 남성 노숙인’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감춰진 노숙인과 여성 노숙인 등 노숙인 중 소수층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번 복지동향의 특집 주제는 앞서 언급한 관심 주제별로 노숙문제 현장의 상황을 살피고 현장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것들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노숙인은 시민이라는 것,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고 권리의 주체라는 인식이다. 노숙인이라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 노숙이라는 상황에 처한 시민이다. 우리나라의 빈곤, 주택, 사회복지의 취약성 정도를 살펴볼 때, 노숙은 ‘상당히’ 많은 시민에게 닥칠 수 있는 상황이다. 그 시민이 노숙을 원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내일의 노숙인은 오늘의 나일수도 있다. 노숙인 대(vs.) 시민이라는 이해관계의 충돌 혹은 대립구조로 사고하는 것은 곤란하다. 특히 행정의 책임을 맡고 있는 공공이 취약계층을 낙인화하면서 일반시민과 이간질하는 방식으로 활동해서는 안된다.
노숙인을 규제할 때는 그렇게 ‘간단히’ 노숙인을 포착하면서 노숙인에게 복지서비스를 주어야 할 때는 ‘서비스 대상자인 노숙인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나라 공공의 태도이다. 노숙인에 대해서 소위 복지급여를 받을 자격이 없는 ‘undeserving poor’의 대표적인 사례로 간주하고 있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대한민국은(특히 정부는) 노숙인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 생각은 얼마나 사실에 가까울까?
월간 <복지동향> 2012년 6월호(제1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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