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서비스와 마을공동체
김형용ㅣ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서론
필자는 얼마 전 사회복지 관련 학회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하였다. 현대사회의 고비용 구조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보편적 복지는 일면 불가피하지만 동시에 불확실성도 증가하는 것이 아닌가? 예컨대 노인들은 장수하지만 더욱 고립되고 건강은 취약해지는 상황에서 오로지 치매관리비용만 1백조 이상이 소요되는 가까운 미래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을 모두 복지대상자로 포섭하는 제도의 방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더구나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복지제도가 내·외부적 위험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과연 더 많은 그리고 더 꼼꼼히 설계된 제도가 복지의 처방전이 될 수 있는지 되돌아 볼 때이다.
지금까지 사회서비스를 둘러싼 정책 프레임을 분석해보면 우려는 더욱 커진다. 사회서비스 정책은 공급체계에 있어 시장기제의 도입과 정부의 관리역할, 즉 화폐와 권력이라는 조정 매체를 통해 사적영역에 머물던 재생산 노동을 규격화하여 소비하는 산업화 방식으로 기획되었다. 돌봄과 보살핌의 위기를 개별적인 욕구로 조작화하고 상품으로 설계하며 이에 따른 합리적 소비를 강조한다. 고령화에 따른 위기가 요양시설, 노후준비, 자산관리, 연금저축, 재무설계 등의 상품 프레임과 연결되듯이, 사회서비스도 동일한 선상에서 기계적 복제와 유사한 방식으로 그리고 개인별 계약관계에 따라 공급되고 있다. 제도의 발전이 가시적인 반면, 개인의 사적 영역이 이렇게 축소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모든 인간이 소비 노예로 전락되고, 사회는 관료주의·전체주의·전문가주의 체제로 변질되었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길에서 질주해 온 결과 일상생활 속에 있는 삶과 죽음이 모두 근대적 획일성 내에 편입되어 버림으로써, 본래의 사회와 인간적 삶의 모습은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섣부른 결론부터 내놓자면, 생활세계 영역에서의 집합적 연대를 지향하는 공동체의 복원이 필요하다. 장애활동가 김주영씨의 화재로 인한 사망을 둘러싸고 장애등급제 폐지와 활동보조인 24시간 지원에 대한 요구가 뜨겁다. 시각을 약간 돌려보면, 화재가 난 상황에서 제도를 탓하기만 하고 옆집의 장애인을 걱정한 이웃이 아무도 없었다는 우리사회의 심각성을 토로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물론 사회보장이라는 공공적 목표를 위하여 사람들이 충분한 자원에 접근하도록 제도화가 수반되어야 하며, 또한 개인들의 차별화된 욕구에 따른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시장기제와의 조화도 필요하다. 문제는 체계-생활세계 프레임을 한 축으로 하고 사회구조-개인행위자 프레임을 다른 한 축으로 할 때, 현재 우리사회의 복지전략이 과도하게 체계 그리고 개인화 프레임에 편향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프레임에서 상호 주관적 경험을 가진 개인들이 대면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사회서비스의 생활세계는 의도적으로 삭제된다. 사람들의 관계가 사물들의 관계가 되고 객체가 주체를 지배하는 현상인 소외가 발생한다. 오래전부터 어린아이들은 동네에서 놀이를 통해서 관계를 배우고, 이웃 어른들을 통해서 직업교육을 받았으며, 옆집 이야기를 통해 사회규범을 보았고, 언니 오빠 역할을 통해서 자존감을 쌓았으며, 삶이 환경과 어우러지는 방법을 체득해 왔다. 지금처럼 놀기 위해서 놀이공원을 가야하고, 진로선택을 위해서 체험교실에 등록해야 하며,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캠프활동에 의존하지 않았다. 놀기 위해서 놀이공원을 가야한다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인가? 복지서비스도 마찬가지이다. 공통적 이해를 가지고 서로 협력하고 상호작용하는 생활단위에서 서로 만나다 보면, 교호성이 생긴다. 등록하고 전화해서 일면식도 없는 돌보미를 파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인연이 만들어지는 곳에서 사회서비스는 공급된다. 아니 공급이라는 말이 우습다. 그냥 생태적 삶의 원리다.
지역사회기반 서비스와 마을공동체
지역사회기반 서비스란 근린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당사자들이 조직하고 참여하여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공급되는 서비스를 지칭한다. 공간적으로 지역사회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서 모두 지역사회 기반 조직은 아니다. 그 원칙은 다양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지역사회역량을 유지·증진하고 구성원 집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역사회의 인적자원, 조직자원, 사회자본을 동원하는 비영리 영역의 다양한 조직들이다. 지역사회기반 서비스는 주민들이 함께 의사소통하고 지속적으로 서비스 공급에 참여하는 공급자-이용자의 상호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 예를 들면, 장애인들은 처음에는 서비스를 신청하기 위해서 당사자 조직의 사회서비스기관을 찾아오지만, 그 중 많은 이들이 장애인 사회운동에 눈을 뜨면서 잠재적 활동가로 변화한다. 장애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사회서비스를 일회성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속적인 당면과제로 고민하고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하여 동참하게 된다. 지역사회기반 서비스는 욕구의 판단과 자원의 배분을 전문가에게서 되돌려 받고, 주체적으로 삶을 통제하기 위해서 지역사회의 자원과 기술에 의존하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사회서비스를 창조해 낸다. 예컨대, 우울증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획일적인 상담약물치료가 아니라, 텃밭공동체가 될 수도, 등산모임이 될 수도, 또 다른 정체성의 다양한 열린 결사체가 될 수도 있다. 그 욕구의 정의와 서비스의 기획은 지역사회기반 조직의 창의성에 의존한다. 서비스는 지식과 기술이 전문가가 아닌 지역적인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며, 지역사회 구성원 간에 광범위한 공유를 통해 이루어진다.
반면 전문가가 투입되어 클라이언트에 개별화된 그러나 매뉴얼에 따른 균일적인 처방을 하는 방식에서는 대다수 이용자가 지역사회 참여기회를 박탈당하고 무력화된다. 전문가주의는 전문가들이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의 욕구를 가장 잘 파악한다는 이유로 옹호되어 왔다. 사회서비스는 대체로 비일상적이고, 불확정적이며, 클라이언트 문제나 욕구들은 개별성과 통합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판단, 기술, 재량 등에 상당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클라이언트의 현실에 대해서는 극히 제한된 지식만을 가진다. 또한 이들은 전문가의 주도적 개입의 효과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의 역량과 대처능력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러한 한계는 사회서비스 공급 체계에서도 양심 없는 전문가와 형식적 관리체계를 쉽게 발견하게 한다.
지역사회기반 서비스는 전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전통적으로 돌봄서비스는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져 왔던 사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이 강한 성격의 노동으로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질 좋은 서비스란 특정의 기술과 자격을 요하는 것은 아니었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인격적 관계에서의 상호책임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였다. 가정에서와 같이 누구나 가족구성원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질 좋은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이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부정하거나 사회적 저평가를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돌봄노동을 성별화하고 저임금 노동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제도화된 시장 영역이다. 사적· 비공식부분과 명확한 차별성이 존재하기 어려운 돌봄노동을 상품화하면서 자격과 직무의 표준화를 만들었으며, 일련의 특화된 지식이나 숙련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라는 이유로 돌봄노동에 대한 보상수준을 낮게 형성하였다. 요양보호사와 같은 준전문가들을 대거 양산한 것은 일자리를 위한 것이지, 사회서비스의 보다 나은 전문적 실천을 위한 것은 아니다. 돌봄노동의 사회화는 돌봄공동체를 중심으로 재편될 수도 있다.
이러한 지역사회기반 서비스의 공간적 조건이 마을공동체이다. 우선, 마을은 개별적인 것을 전체 속에서 볼 수 있는 인식론의 출발점이다. 마을은 그동안 국민국가 내에서 포착하지 못하였던 자급자족, 호혜 등 자본축적의 규칙을 이탈하는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단위가 되기도 하며, 경험과 인지 그리고 상상의 공간이 통합적으로 구성되는 단위이다. 모든 구조는 행위자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는 면에서, 마을은 항상 새로운 가능성이 열려져 있는 공간이 된다. 마을은 전체성, 지속가능성, 다양성을 유지하는 ‘사회적 삶’의 영역이다. 또한 마을에서의 복지는 욕구해석의 정치하고도 연결된다. 누가 욕구를 정의하고 또한 무엇을 충족시킬 것인지를 결정하지는 항상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욕구의 대상자가 아니라 주체로서 생활공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도 항상 의문시되어온 지점이다. 일상생활을 과대한 공적 정치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 민주적 인정을 활발히 이끌어내는 것, 즉 다원적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 적극적 복지의 전제라면 마을은 이러한 욕구해석의 정치가 활발히 일어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 된다.
사회서비스 대상으로서의 마을
지역사회기반 서비스는 전문가보다는 지역사회기반 조직들의 서비스 공급역량 구축함으로써 지역사회의 문제해결능력을 높이는 접근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도시화된 사회에서 앞에서 제기한 형태의 지역사회와 주민조직들이 없다면 이러한 형태의 사회서비스가 가능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역사회기반 사회서비스의 과제는 다름 아니라 마을공동체 재조직화, 지역사회개발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회서비스의 개념이 사회구성원의 기능을 정상화시키거나 발달을 지원하는 다양한 영역의 서비스를 포함한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회서비스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마을이라는 집합적 공간이다.
우선 사회복지 조직은 사회서비스 공급에 있어 제도화된 영역에 머물지 말고 활동에 있어 최고수준의 자율성을 보여야 한다. 관리주의 모형을 적용하여, 고객과 공급자의 관계에 머물거나 서비스 전달체계의 효율성에만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 사회복지 조직은 주민들과 사회서비스를 공동생산하기 위해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주민들에게 지역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영향력을 부여할 주민자치형 사회서비스를 촉진할 수도 있다. 소규모 단위의 돌봄공동체를 조직하여 동네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활상의 문제에 보다 관심을 갖고 공유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사회서비스 제도를 활용하는 모델도 가능하다. 최소한 사회복지관의 사회서비스는 여타 사회서비스 공급기관과는 달라야 한다. 이용자 중심 사회서비스의 제도적 규범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시장화되고 개별화된 사회서비스와는 어느 정도의 단절도 필요하다. 그리고 지역사회 주민들과 신뢰관계부터 축적해야 한다. 지역사회기반 조직으로서 사회복지관의 역량은 주민들의 역량을 필요로 한다. 사회복지는 본질적으로 단순한 서비스공급이나 기술적인 활동일 수 없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그 자체에도 가치를 둔다. 민주주의적 참여와 자기결정권 옹호해야 하며 동시에 조직화를 통해 신속하고 탄력적으로 지역사회의 갈등요인과 문제들에 대응해야 한다.
사회서비스는 대인서비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복지 조직은 지역성을 복원하기 위한 공간을 단위로 사회서비스를 설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만남의 공간은 단순한 하드웨어가 아니다. 지역사회역량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일상적으로 사람들을 많이 모일 수 있어야 하며, 마을의 물리적 환경 개선과 공동체성의 회복이라는 문제는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물리적 공간은 항상 인간들의 활동 무대라는 뜻을 지닌다. 공간의 특성은 사회조직의 기능적 상호의존관계, 생활방식, 결사체 모임의 형식과 관련이 있다. 공간은 법칙이 표현되는 곳으로 장소 자체는 본질이 아닌 다른 법칙의 현상일 뿐이다. 마을의 평상 하나가 주민들의 비공식적 만남들을 형성하고 그 곳에 모이는 주민들 간의 상호작용에 따라 평상의 기능도 새롭게 만들어진다. 대부분 아파트 단지의 물리적 구조는 사회적 관계형성을 가로 막는다. 건물과 환경은 인간을 위압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어렵게 만드는데, 이는 설계에서부터 도시인의 익명성, 기피성, 무관심성이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재생과 관련한 사업들은 담장허물기, 마을가꾸기, 공원만들기, 마을도서관이나 박물관, 마을축제나 문화행사 등 다양하다. 이러한 하드웨어가 사회서비스로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은 공간재생 프로그램이 사회관계에 미치는 효과성이다. 개별적인 대인서비스가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복원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는 대인관계의 형성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사회서비스가 생활세계의 전인적 관계로부터 멀어져서 제도에 의존하게 되고, 집단적 소비로부터 이탈하여 개인적 선택이 되는 순간, 사회서비스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동반자적 관계는 무색해지고 규율만 무성히 존재하면서 서비스는 파편화된다. 따라서 사회서비스 본연의 목적과 수단이 일치하게끔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경험을 공동체로 통합시킬 수 있는 장치가 요구되며, 마을공동체는 이러한 측면에서 적절한 전략이 될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2년 12월호(제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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