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맞이하면서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해 어느 때 보다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는 공정한 룰, 깨끗한 환경, 누구나 문화를 향유하고 일을 통해 보람을 느끼는 풍요로운 삶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일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두드러진 변화로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21세기에 여성이 일을 하는 것은 "일반적이고도 자연스런" 모습으로서, 반드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거나 걸출한 실력을 통한 자아실현과 같은 "특별한" 삶의 모습만은 아니다.
즉, 여성의 고학력화, 인구고령화에 따른 청장년 인력의 부족, 여성의 직업의식변화 등 사회경제적인 변화와 함께 '외벌이'로는 자녀교육비·주거비·문화생활비 등 높아진 생활수준을 더 이상 유지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이제는 여성들도 일을 해야 하는 시대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직장은 남성, 가정은 여성이라는 지금까지의 의식과 생활양식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이에 따라 남녀근로자가 가사와 육아를 공동으로 책임지면서 직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지원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금년 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육아를 위해 휴직하는 남성에게도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정부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에 동의함으로써, 자녀양육은 사회공동의 책임이자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과제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아동학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아이들은 최소 한 돌 또는 두 돌까지의 시기에 변함없는 사랑으로 보살핌을 받음으로써 다른 사람과 사회에 대한 정서적인 유대를 맺고 기본적 신뢰감(basic trust)을 형성하게 된다고 한다.
만일 이 시기에 이러한 기본적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할 경우 아이들은 자신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나 자긍심, 긍정적인 태도 등을 습득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바깥 세상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며, 나아가 심할 경우에는 자폐증 또는 과잉행동증 등 신체적·정신적 이상증세를 보일 수도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물론 엄마가 일터에 가지 않고 집에서 데리고 키운다는 사실만으로 반드시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로 자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근 자폐증과 같은 소아정신질환이 늘어나는 현상은 너무 어린 나이에 하루종일 부모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폭력적'인 상황에 처한 아이들의 '말없는 외침'으로서 사회적 비용을 줄이면서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키워내는 방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와 지혜를 모아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사회마다 시대마다 통용되는 바람직한 아동양육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부모 -특히 엄마-가 돌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나라마다 아동양육 정책의 기본철학, 경제수준, 노동시장의 유연성정도, 보육시설의 확충정도 등 그 나라의 실정에 맞게 영아기의 아동을 부모가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에서는 출산과 양육에 따른 개인의 비용부담을 사회화하는 출산장려책을 적극 시행하고 있으며, 집단양육보다는 개별가정에서 부모가 직접 자녀를 키우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육아휴직 기간을 비교적 길게 부여하고 70∼90%수준의 소득보전과 육아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제도 등을 연계하여 부모가 자기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한편, 미국 뉴질랜드 등은 원칙적으로 시장경제원리에 맡겨두고 있어, 국가의 정책적 개입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 자녀를 일정기간 키워놓은 후에 다시 일자리를 찾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편으로, 자녀를 직접 기를 것인지 보모나 보육시설 등을 이용하여 기를 것인지의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육아휴직제도가 없는 기업이 많고, 있는 경우에도 짧은 기간동안 무급으로 인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88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시 생후 1년 미만의 영아를 가진 근로여성이 육아휴직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도입하였고, '95년 법을 개정하여 남성근로자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육아휴직기간을 근속기간에 포함하고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도록 명문으로 정하고 있다. 나아가 육아휴직을 실시한 사업주에게는 육아휴직장려금을 지급(※근로자 1인당 월 12∼15만원, 2000. 6월말 현재 180개소 5억 5천만원)하고 있으나 실제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근로자는 극히 적은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육아휴직제도는 서유럽의 인구정책적인 접근과는 달리 숙련된 양질의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한다는 인력정책의 성격이 강하다. 만일 육아휴직 기간동안 소득을 지원하고 복직을 보장한다면, 보다 많은 부모들이 육아휴직을 이용하여 직접 자녀를 양육할 것이고, 이는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가장 높은 정서적 만족감을 주면서도, 가장 사회적 비용이 적게 드는 방식으로 심신이 건강한 다음 세대를 기른다는 의미가 된다.
21세기를 맞는 지금, 우리가 확실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은 육아휴직 지원 등 다음 세대에 대한 투자이다. 이는 모든 근로자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동시에 가정과 직장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지름길인 것이다.
또한 일부에서 생각하듯이 자녀양육은 "어떤 여성"근로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근로자" 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미래를 아무리 애써 만들어 놓아도 그 미래를 살아갈 우리의 딸과 아들을 제대로 길러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먹구름에 가려 빛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월간 <복지동향> 2000년 09월호(제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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