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에 연금개혁을 비롯한 노후소득보장체계 구축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한 축은 고령화 및 경제 상황변화에 따라 국가 경제가 제도에의 재정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고, 제도가 장기적으로 재정적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라는 의미에서의 ‘재정적 지속가능성’(financial sustainability) 이다.
또 다른 축은 제도가 본래적 기능인 소득보장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가, 제도가 현실에 적합하며 국민들에게 수용가능한가라는 의미에서의 ‘사회적 지속가능성’ (social sustainability)이다. 공적연금이 노인의 소득보장제도로 이미 자리잡은 서구 복지국가에서는 재정안정화가 가장 우선적인 개혁 목표일 수 있으나,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이 아직 노후소득보장체계로서
자리잡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수용성 있고 신뢰받는 제도로 정착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사회적 지속가능성의 제고가 절실한 과제가 된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목표에 비추어 보아 우리나라의 노후소득보장체계의 현황은 어떠한가?
외형상 국민연금의 전국민 확대, 퇴직연금제 도입을 통한 다층체계 구축, 그러나 실제 기능은 매우 제한적이다
1999년 수많은 논란 끝에 국민연금이 도시지역 자영자에게 확대되고, 2005년 12월부터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이제 우리나라의 노후소득보장체계는 외형상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연금을 핵심으로 하여 법정 퇴직금제도로부터 전환되는 퇴직연금, 임의 가입의 적격개인연금 등의 다층체계의 형태를 모두 갖추게 되었다(<표 1>).
<표 Ⅲ-1> 우리나라의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 현황 – 생략
그러나 형식상의 제도구축과는 달리, 실제로는 노후소득보장제도의 기능은 상당히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그 양상은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대다수 현세대 노인들이 노후소득보장체계로부터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 중 공적소득보장제도로부터 급여를 받는 대상은 30.8% ‘05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국민연금수급자는 13.2%, 경로연금ㆍ기초생활보장 수급자 14.5%, 특수직역연금 수급자 3.1%이다.
이며, 결과적으로 65세 이상 노인의 28.4%가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가진 빈곤층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의 가구소비실태조사(2000) 자료를 통해 산출한 결과이다.
.
노후소득보장제도에 대한 현 노인세대의 광범위한 배제 현상은 국민연금 도입이라는 외형에 가려 연금제도의 미성숙을 감안한 현 노령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주어지지 못해왔음을 반증한다.
둘째, 제도들의 실질적 포괄범위(coverage)가 협소하다는 점이다. 먼저 경제활동인구 대비 국민연금 가입자는 약 90%에 달하지만, 실제 보험료 납부자는 58.2%에 불과하다(2004년 기준). 물론 한 시점에서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은 계층이 모두 국민연금의 사각지대가 되는 것은 아니며 국민연금연구원에 의하면 납부예외자의 약 22%가 국민연금 비수급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수급자를 기준으로 볼 때 제도의 성숙에 따라 점차 수급자 비율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한 시점에서 실질 가입비율이 낮은 것은 평균가입기간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결국 실질 급여수준이 명목적 보장수준(60%)보다 훨씬 낮아지는 문제를 초래한다. 이처럼 현재 광범위한 국민연금의 급여 사각지대 문제는 장기적으로는 수급권이 있으나 급여가 높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보장 문제로 점차 전환되어 갈 것이다.
그 외에 법정퇴직금 제도의 경우 경제활동인구 대비 적용대상자가 27.7%이며(2001년 기준), 개인연금을 가입한 세대는 전체 세대의 약 25.6%에 불과하다(2000년 기준). 특히 제도의 미성숙도를 감안하면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받는 노령계층, 즉 다층체계를 통해 급여 적절성을 보장받는 노령계층은 상당히 제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현행 노후소득보장체계가 제한적으로만 기능한다는 사실은 국민연금의 외형상 강점-강한 소득재분배 효과와 높은 급여수준(평균소득자 40년 가입기준 소득대체율 60%)을 보장하는 전국민 대상의 연금제도-과 다층체계의 실효성이 높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은 우리나라의 높은 자영자 비율과 불안정고용층 등의 노동시장 여건, 낮은 소득파악력이라는 행정적 여건, 낮은 국민부담능력과 낮은 제도 신뢰도 등 사회경제적 여건들의 결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단기적으로는 현세대 노령계층에 대한 소득보장 대안 마련과, 장기적으로는 전체 노후소득보장체계와의 정합성을 고려하는 기초보장제도 설계가 노후소득보장체계의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핵심 과제가 된다.
고령화의 비용,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
노후소득보장체계의 문제는 비단 제한적인 소득보장 기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령화 진전에 따른 재정적 지속가능성도 문제시된다. 한편으로는 약속된 급여(소득대체율 60%)에 비해 낮은 기여수준(보험료 9%)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급속한 고령화의 진전으로 인해 현행 국민연금제도는 재정적 불안정성을 내재하고 있다. 현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2047년경 적립기금이 소진되고, 그 이후에는 보험료율을 약 30% 수준까지 인상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됨으로써 재정안정화 문제는 결국 세대간 형평성 문제로 전환된다. 현 가입자에 대한 제도적 혜택은 미래 세대에의 부담 전가로 연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노후소득보장체계 구축의 출발점은 노후소득보장체계의 부담(기여)수준에 대한 국민의 심리적 한계선은 무엇이며 급여를 어느 수준으로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결국 고령화의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라는 점이 노후소득보장체계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고민지점이다.
현실 적합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책임감을 지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국민연금 도입 이후 17년 간 노후소득보장체계의 발전과정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과연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현행 제도의 틀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그러나 현재 노후소득보장체계가 지닌 한계와 문제점들의 원인을 모조리 현행 제도 틀로 돌리고 새로운 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서두르기 전에 먼저 새겨야 할 시사점이 있다.
첫째, 제도의 설계는 현실의 제반 여건과 기존 제도들과의 관계를 감안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소득파악 인프라, 조세구조의 형평성 등 제도의 왜곡과 실효성 잠식을 가져오는 근본적인 정책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한, 그리고 다른 복지 제도들 간의 정합성이 치밀하게 고려되지 않는 한 다른 구조적 개혁 방안들 역시 기대했던 효과를 가져오지 못하거나 또 다른 왜곡을 낳을 수밖에 없다.
현재 노후소득보장체계에서 가장 보완되어야 할 지점, 노인을 위한 기초보장 제도를 제대로 설계하는 일은 그래서 쉽지 않다. 현재의 정책 여건 하에서는 보편적 기초연금, 정액의 노령수당방식, 보충형 최저소득보장제도 등 어떤 제도도 도덕적 해이로 인한 형평성 문제, 근로동기 약화 문제, 연금제도와의 정합성 유지 문제, 다른 욕구 집단과의 형평성 문제 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반면 서구 복지국가에서 비교적 높은 급여수준의 노후 최저소득보장제도가 운영될 수 있는 것은 소득파악력이 높아 도덕적 해이에 의한 보험료 납부 회피가 원천적으로 방지될 수 있고, 생애주기에 걸친 소득보장지원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공적이전 제도에서 광범위하게 배제되어 있는 현세대 노인을 위해 방안을 마련하는 단기적 작업과 향후 연금제도 성숙에 따라 기초보장을 강화하는 중장기적 작업을 구분하여 여건 성숙에 맞춰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둘째, 원하는 보장수준과 그것을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간의 합리적 균형점을 모색하는 책임감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보험료 방식이든 조세 방식이든 부담을 높이지 않고 보장을 강화할 수는 없으며, 부담수준을 높이지 않으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급여수준의 재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더 부담하지도 않으면서도 덜 받지 않을 수 있거나 혹은 더 받을 수 있는 제 3의 대안은 후세대에게 부담을 넘기는 길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 노후소득보장체계 완성을 위한 우리의 비전은 노후의 기초보장을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생애주기(life-cycle)별로 효과적으로 국가의 자원을 배분하고 노동시장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사회정책 영역 전반의 전략적 조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06년 07월호(제93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