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 차별 시정문제(장차법)
지성
장애여성공감(was1399@hanmail.net)
*이글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가 제작중인 『장애인차별금지법 백서』에 기고한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 : 가족․가정, 성 영역에 있어 의미와 과제’를 수정 및 보완한 것입니다.
차이?, 차별??
장애여성과 차별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앞서 ‘차별’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차별 없는 완전히 평등한 세상이란 가능한 것인지 등 복잡한 질문을 먼저 하게 된다. 차별은 단일한 ‘인간’이라는 개념을 구성한 비장애/남성/이성애자/성인 등 소위 ‘정상’의 규범이 ‘인간들’ 사이의 다름을 서열화하고 위계화 한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그러한 ‘정상’의 규범으로부터 벗어난 장애인을 차별하는 데 제동을 걸 ‘장애인차별금지및구제등에관한법률(이하 장차법)’의 기본적인 필요성과 의미를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차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당장 현실의 모든 차별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장애인 문제 안에서도 아직 드러나지도 못한 체 사각지대에 놓인 경험과 차별들이 무수히 존재할 것이다. 또한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성애/남성 중심의 사회가 구획해 놓은 폭력은 장애인차별이란 개념 안에서만은 풀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지점들을 안고 있다.
법의 시각 그리고 차별과 법의 문제
‘장차법은 장애인차별에 대해서만 시정하면 되고, 다른 문제들은 다른 법률안에서 해결하면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질문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까지 많은 법률과 제도들이 이를테면 ‘남녀차별금지’, ‘성폭력금지’ 등의 이름으로 각각의 영역에서의 차별/폭력을 시정하려고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법, 제도들이 제정된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이러한 차별/폭력은 사라지기는커녕 다양한 양상으로 심화되고 있음을 여러 가지 사회 현상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최근 KTX승무원들의 여성비정규직투쟁이나 최연희 전 한나라당의원 성추행 사건 등 사례를 꼽자면 무수히 많다).
법, 정책은 누구의 관점에서 어떻게 쓰여지고 해석되는가? 법이 사회를 바꾸는가 혹은 사회가 법을 바꾸는가? 차별적 사회규범 속에서 양산된 다양한 차별의 문제(예를 들어 ‘성별/성’, ‘계급’, ‘장애’ 등)는 하나의 법률 안에서 서로 충돌하고 있는가?…. 법률이나 정책은 이렇듯 그 안에 있지 않은 더 큰 문제를 양산해내고 있음을 우리는 경험해왔다. ‘장애’란 키워드를 가지고 차별을 시정하려고 장차법이 제정됐고, 이제 곧 시행을 앞두고 있는 시점을 맞고 있다. 장차법의 의미와 소중함을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 복잡한 고민을 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제부터 살펴볼 장차법 내 ‘장애여성’, ‘성’ 관련한 조항들을 이러한 맥락에서 독자여러분들이 곰곰이 생각해보고 더 많은 질문을 던지길 바란다.
제28조
모·부성권의 차별금지
1항: 누구든지 장애인의 임신, 출산, 양육 등 모·부성권에 있어 장애를 이유로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2항: 입양기관은 장애인이 입양하고자 할 때 장애를 이유로 입양할 수 있는 자격을 제한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9조
성에서의 차별금지
1항: 모든 장애인의 성에 관한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며, 장애인은 이를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향유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다.
2항: 가족·가정 및 복지시설 등의 구성원은 장애인에 대하여 장애를 이유로 성생활을 향유할 공간 및 기타 도구의 사용을 제한하는 등 장애인이 성생활을 향유할 기회를 제한하거나 박탈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32조
괴롭힘 등의 금지
5항: 누구든지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거나 수치심을 자극하는 언어표현, 희롱, 장애 상태를 이용한 추행 및 강간 등을 행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 33조
장애여성 및 장애아동 등
3항: 사용자는 남성근로자 또는 장애인이 아닌 여성근로자에 비하여 장애여성 근로자를 불리하게 대우하여서는 아니 되며, 직장보육서비스 이용 등에 있어서 다음 각 호의 정당한 편의제공을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장애의 유형 및 정도에 따른 원활한 수유 지원
2. 자녀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소통방식의 지원
3. 그 밖에 직장보육서비스 이용 등에 필요한 사항
가족관련 법은 본래 강력한 제재수단을 가지지 않으며 상징적 위상을 지닐 뿐이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간과할 수 없겠다. 특히 최근 수십년간 서구에서부터 가족법이 종교적, 인종적, 정치적 투쟁의 장이었던 것은 그만큼 가족의(실제가 어떠하든) 의미나 형태를 규정하는 법의 위상이 중요함을 증명한다. 하지만 실재하는 가족의 형태는 법과 무관하게 다양하다. 현재 가족․가정을 구성한다고 인식되어지는 중요한 수단인 ‘혼인’은 매우 근대적인 고안물이며, 혼인과 가족은 법 이전의 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가족의 다양성 및 그 기능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과 가족의 경계를 지우는 것, 이 두 가지 범주를 혼동하고 현실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가족들의 출현과 변화를 곧장 ‘가족의 해체’나 ‘위기’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가족법 정책의 원칙을 세웠다고 이야기되는 ‘건강가정기본법’은 바로 이러한 보수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법은 ‘건강가정’으로 특정 가족형태를 들고 있는데,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관계로 정의하고 있다. 또 “가정”은 “가족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생활공동체”로 정의한다. 결국 법의 논리대로라면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구성원이어야 하고, ‘가족’구성원이기 위해서는 ‘혼인/혈연/입양’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법을 통해 특별히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 ‘혼인/혈연/입양’관계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정상(이성애, 비장애, 핵)가족’이며, 그러한 ‘가족’의 범위 바깥에 있거나 그러한 삶의 형태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을 제도적으로 배제하겠다는 의미이다.
한편, 동법 제21조 4항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한부모가족, 노인단독가정, 장애인가정, 미혼모가정, 공동생활가정, 자활공동체 등 사회적 보호를 필요로 하는 가정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장애인 등 ‘정상가족’의 형태를 유지하기 어려운 가정에 대해서 이처럼 명목상으로나마 특별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밝히고 있지만, 이는 기존(이성애, 비장애, 핵)가족의 ‘정상성’의 규범을 위협하지 않는 한에서이다. 진정 요구해야 할 것은 장애유무나 나이, 성별, 성적 지향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택할 수 있을 것, 그리고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차별받지 않고 자신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아야 할 것이라 이겠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장차법의 가족․가정 관련 영역은 한계점을 가진다. 물론 장애인 관련한 제대로 된 정책이 전무한 상태에서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정상가족’의 형태나마 형성․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현실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동법 제28조는 “장애인의 임신, 출산, 양육 등 모부성권에 있어 장애를 이유로 제한, 배제, 분리, 거부하여서는 아니된다”(1항), “입양기관은 장애인이 입양하고자 할 때 장애를 이유로 입양할 수 있는 자격을 제한하여서는 아니된다”(2항)고 함으로써 장애인이 혈연(출산)/입양에 의한 가족구성에 있어 차별당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비단 혈연이나 입양에 있어서의 차별만이 아니라 장애인이 가족을 구성 혹은 선택하고자 할 때 현실에서 벌어지는 제약이나 사회적 지원의 부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장차법이 ‘혈연/입양’에서의 차별금지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기존 ‘정상가족’ 이란 차별적 경계 안에 장애인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포하고 있지 않나 생각게 한다. 같은 맥락에서 기존 ‘정상가족’ 중심주의 안에서 장애인 구성원이 있는 가족들을 위한 지원이 부재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기존 가족 법․정책에 대한 비판 없이 개별 가족 구성원들이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을 것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한편, 법 제28조 1항이 “장애인의 임신, 출산, 양육 등 모부성권”에 있어 차별금지를 명시하고 있으나 장애․비장애인을 막론하고 전반적으로 임신, 출산, 양육에 있어 현실에서 남녀 성별 불평등으로 인한 여성인권침해가 막대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성性 역시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범주가 아니며, 최근 성 관련한 인식과 담론의 수위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어떤 집단에서는 여전히 성과 관련하여 인권을 논하고 있으며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보수기독교계의 반발로 ‘성적지향’ 등 여덟개의 차별사유를 빠뜨린 사회적차별금지법으로 인해 커다란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차법이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성(생활)향유’등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부분적으로 의미 있다 하겠다. 그러나 법 제29조에서와 같이 단지 “장애인의 성에 관한 권리는 존중되어야”(1항) 하고, “장애인이 성생활을 향유할 기회를 제한하거나 박탈하여서는 아니된다”(2항)고 했을 때, 이는 장애인 안에서도 성별, 성정체성 등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 안에서의 차별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하겠다. 특히 장애여성들이 기존 지배적 성문화에 의해 심각한 성폭력 피해에 노출되어 있는데도 장차법에서 이를 특별히 언급하지 않은 체 성에 있어서 ‘제한’, ‘박탈’만을 논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편 “성생활을 향유할 공간 및 기타 도구의 사용”(제29조 2항)이란 말은 성에 대한 도구적 관점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으며 동 조항에서 그 차별의 주체를 “가족․가정 및 복지시설”이라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모호한 대상으로 두고 있다. 이는 구체적 처벌의 대상과 책임입증의 주체가 불명확하다는 우려지점을 낳을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남성/이성애/비장애중심의 지배적 성문화를 지원할 가능성 마저 있다 하겠다.
성폭력에 대하여 법 제32조 5항에서 “누구든지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거나 수치심을 자극하는 언어표현, 희롱, 장애 상태를 이용한 추행 및 강간 등을 행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부분적으로 기존 성폭력 관련 법률 및 인식의 한계를 간과한 체 그것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며, 특히 장애인 성폭력의 특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법체계에서 구조화되는 데에 있어서 성별 권력의 영향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성별 권력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성적 욕망에 대한 사회적 정의에서 남성중심적 해석틀을 만들기 때문에 성적 자기결정권의 실현은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현행 성폭력특별법의 장애인 조항은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인 장애여성에게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성폭력 현실을 감안해 이를 규제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지만, 동시에 대단히 모순적인 지점을 가지고 있다. 성폭력특별법의 장애인관련 조항은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인해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한 자’에 대하여 처벌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법체계에서 장애인이 성폭력피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그녀가 장애로 인해 무력한 사람임을 입증해야 하는, 다시 말해 ‘장애=항거불능’이라는 도식을 낳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장애=항거불능을 긍정하게 될 때 장애는 무력함을 나타내주는 것이 되고, 장애여성은 무력하기 때문에 타인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는 또 다른 억압의 차원을 강화하는 면과 맞닿는다. 게다가 이러한 논의 내에서는 장애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존재할 여지도 없다.
성폭력관련 현행법은 비단 장애인 관련 조항에서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성폭력을 폭행이나 협박과 같은 강제력의 행사에 의해서만 수반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음으로써 성적자기결정권침해를 매우 제한적인 틀에서만 보고 있다.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될 때에만 성폭력이 성립한다고 규정한 법은 성에대한 지극히 가부장적 인식의 반영으로, 성폭력피해 상황에서 피해자(여성)가 사력을 다하여 반항하지 않으면 소위 ‘꽃뱀’으로 몰리게 한다. 실제로 강간상해․치상과 같이 피해자의 증명 없이도 피해에 대한 확실한 물증이 잡히는 사건의 기소율은 매우 높은 반면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단순 강간․준강간의 기소율은 그것의 절반 선에도 못 미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성폭력에 대한 비장애/남성중심의 지배담론을 넘어서고자 할 때 성적자기결정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논의 역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장애여성조항(33조)에서는 장애여성근로자의 모성보호를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모성정책은 독립적인 정책, 법으로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으며, 한 국가의 (남녀 모두의)복지 혹은 가족정책과 연동하여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최근 모성정책은 주로 근로여성의 노동조건 관점에서 정책의제가 되었고 근로여성들의 모성에 대한 국가적 지원으로 국한되었다. 그 결과 전업주부, 계약직, 시간제, 비공식 부분의 여성노동자의 모성은 정책대상에서 제외될 소지가 크다. 또한 모성정책상의 ‘모성’개념이 임신, 출산에 국한하는 생물학적 활동에 국한되고, 대신 양육활동으로서의 모성개념은 삭제됐다. 이는 현실적으로 여성 어머니들이 가족에서 행하는 모성의 자녀양육 측면에 대한 사회적․경제적 가치 부분을 외면하거나 삭제하는 효과를 내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차법의 장애여성조항은 우리나라 기존 모성정책의 한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하겠다. 또한 근본적으로는 노동시장 진출에 있어 장애인 접근권 뿐 아니라 장애인 내에서의 양성평등이 보장되어야 하겠다.
참고문헌
-섹슈얼리티강의2(한국성폭력상담소, 2006, 동녘)
-페미니즘의 도전(정희진, 2005, 교양인)
-성적소수자의 인권(한인섭 등, 2002, 사람생각)
-소수성의 정치학(‘연구공간 수유+너머’ 등, 2007, 그린비)
월간 <복지동향> 2008년 04월호(제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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