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연
한국GAMMA연구소
이주와 다문화와 관련된 교육을 해온지 몇 년 되었다. 강연이나 집단 작업 형태의 교육을 요청해온 단체들은 주로 여성단체 부설 상담소, 건강가정지원센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자원봉사센터, 이주민단체들, 지역사회복지관과 학교나 교회들이었다. 주요 내용은 상담, 멘토링, 관계와 의사소통, 자활과 지도력훈련, 프로그램 기획과 진행에 관한 내용과 단체운영과 같은 주제들로서 한국인 주민, 이주민, 혼합 그룹, 이주민과 활동가들로 구성된 집단들이었다. 참가자들의 구성을 보면 부부와 가족이 함께 하는 집단도 있었고, 6개 이상의 다 언어로 구성된 이주여성들만의 그룹도 있었다.
시간배치는 종일 7시간에서 8시간까지였거나 짧게는 3시간정도였다. 주관 단체들의 실무자들은 주로 임파워먼트라는 말을 선호하였고 대개 이주민 여성들의 자존감을 향상 시킨다는 문구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내용을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한 수단들은 역할 극, 그룹 토론과 발표, 그림 그리기와 노래 혹은 드라마와 명상도 활용되었다. 언어는 한국어로 하였다. 다문화라는 용어가 등장하여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를 덮어 버린 것 같은 이후,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다문화와 이주민주제로 와 달라 하면 먼 거리도 가볍게 달려가곤 하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간혹 다른 주제로 갔는데, 그 자리에 이주민 여성들이 참가자의 일원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자활사업단에 참여자 중에서 이주민 여성들이 있다던가 자원봉사자 교육에 이주민 여성들이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현장엔 이주민들이 주민이 되어 자신들의 삶을 고유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일련의 이와 같은 경험을 통하여 생각되는 것은, 다문화관련 프로젝트나 프로그램들은 인기품목인 것 같고, 정부가 되었던 민간 기금이 되었던 기업이던 경쟁적으로 다문화사업에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것만 같아 보였다. 넘치는 프로그램들에 이주여성이라는 고객이 오늘도 비슷비슷한 품질의 상품을 구매하러 어딘가 하나쯤은 다니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특히 2008년 제정된 다문화가족지원법따라 2년도 채 못 된 지금, 전국엔 170여개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동시다발적으로 설치되어 여러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있어 국제결혼으로 입국한 16만명의 이주민 여성들은 결심만 하면 언제든 기초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 센터들은 다문화가족에게만 열린 곳이 아닌가 한다. 그러자니 국제결혼으로 입국한 여성들이 다문화 담론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그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마치 그들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해 줄까를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줄게’ 하거나 ‘이런게 좋을거야’하는 연극 배우들 같아 보인다. 나를 포함해서. 그래도 생각을 계속 발전 시켜 나가야 하기에 사례 한 두개를 소개 한다.
아래는 교육중에 만난 여성들로부터 듣게 된 그들의 이야기다.
사례 1. 2008년 봄, 경기남부지역의 한 소도시에 자리한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다문화가족을 위한 한국어 방문지도사’를 양성하기 위함이 목적이라는 3시간의 강연을 끝내려고 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한국정부가 우리에게 이렇게 잘 해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확한 한국어로 질문을 한 이 그 여성은 인도네시아가 고향으로,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둔 전형적인 다문화가정의 이주민이었다. 참가자들은 순간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그녀가 말한 ‘한국정부’라 함은 운영주체를 불문하고 ‘다문화’사업을 하고 있는 ‘각종 기관’들을 말하며, ‘잘 해 준다’라는 것은 그 기관들이 쏟아내는 다문화관련 프로그램과 서비스의 양적인 것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누군가 ‘저출산 고령화’가 배경이 아닐까 하는 말을 하자 ‘그럼 우린 아이를 많이 낳아야 이 나라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겠네요’하였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우리에게 집중하는 것일까’ ‘두렵다’고 하였다.
사례 2. 같은 해 가을, 전라도 덕유산자락에 위치한 지역자활센터에서 주관하는 ‘간병사업단’에 참여하는 여성들을 위한 강연에 참가한 한 여성이 진지하게 말을 던졌다. ‘선생님, 다음에는 컬쳐 쇼크(culture shock)를 해결할 수 있는 교육을 해 주세요’. ‘아니 뭐가 그렇게 충격을 주던가요?’ 라고 물으니 그녀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어머니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시달림을 받고 살아왔다’고 했다. 일본이 고향인 그 여성은 단순한 스트레스 정도가 아니라 문화충격이 주는 내적인 갈등으로 겪고 있는 마음이 상태를 전문적으로 다루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례 3. 작년에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전국의 농어촌 지역의 중소도시에서 비영리 단체들이 하고 있는 사업평가를 위하여 담당자들과 워크샵을 가진바 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작업을 하였는데 이주여성 활동가들에게는 ‘다문화사업 프로그램을 통하여 어떤 유익한 점을 발견하였는가?’라는 질문을 갖고 가치 카드 작업을 하였다. 한국인 활동가들은 많은 의미를 주고 있다고 한 반면, 이주여성들은 ‘일자리’와 ‘돈을 버는 것’ 그리고 ‘소속감’을 골랐다.
사례 1,2,3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입국한지 5년에서 10년 이상으로 이미 한국의 주민이 되어 살고 있다. 이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은 한국어 기초 교육이 아닌, 고급 한국어 교실이 필요하다 하였고, 상담도 기초정보를 제공하는 상담이 아닌, 전문적인 상담을 받길 원했고,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일을 갖기를 원했다. 그리고 가족간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싶어 하였으며 안심하고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하였다. 속마음으로 원하는 것은 일인데, 그들에게 자존감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가 하라 하니, 일면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숙고해 보아야할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다문화가족지원사업에 관한 정부의 정책 내용을 보면, ‘글로벌 코리아를 향한 열린 다문화사회’를 비전으로 하여 다문화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포괄적인 정책을 추진할 것이며, 가족 생애 주기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민과 관이 협력하여 효율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그런데 아직 맞춤형 서비스가 현장에서 실현되기엔 요원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신생 센터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의 호소를 듣자면, 적은 예산과 적은 규모의 인원, 요구되는 사업은 백화점과 같이 많은 일들이고, 해야 할 행정 업무는 대단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사회복지를 전공한 실무자라 하더라도 이주와 다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관련 정보를 충분히 읽고 당사자들이 요구하는 어떤 것을 하기엔 이미 주어진 일 속에 묻혀버린다고 한다.
이주여성들에게 멘토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여성들도 힘겨워 하긴 마찬가지다. 그들은 하나 같이 내가 ‘어디까지’ 해 줄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을 안고 있었다. 능력 부족으로 혹은 가진 것이 없기에 최소한의 도움으로 그치는 자신의 현실을 한탄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사회복지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 이주여성들의 낮은 자존감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은 생각을 좀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필리핀 여성 노동자들 20여명과 집단 프로그램을 가진 바 있다. 주로 여성들에게 성폭력이나 직장 내 성희롱을 예방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교육이었다. 그 교육을 준비하고 진행하게 된 나와 동료는 아주 열심히 1366 긴급 전화부터 쉼터들과 상담소들을 소개하였고, 직장 내 성희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설명하였다. 그리고 나서 상담 전문가인 강사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집단 심리 상담을 하게 되었다. 열심히 듣고 있던 노동자들이 질문 시간이 되자 하나 같이 ‘어떻게 하면 현재의 낮은 임금을 올릴 수 있는가’ ‘연장근로를 더 하더라도 월급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하였고, ‘가족들에게 제때에 송금을 하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불행하지 않으며 노동 조건만 조금 개선되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한국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회사와 잘 협상하여 나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지 알려 달라고 하였다.
그 여성들 중에는 이미 한국인과 결혼한 여성도 있었고, 다른 국적의 이주노동자들과 사실혼 관계에 있거나 필리핀 노동자들과 사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이 더 늘었다. 다문화권이었다.
결론적으로 이런 질문들이 나온다.
한국정부나 다문화사업을 하고 있는 기관들과 단체들은 물론 시민으로서 ‘우리에게 과연 다문화 사회에 대한 그림이 있는가?’라는 것이다.
다문화 사회로 가기 위하여 각자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와 ‘타자’와의 관계성 안에서 상호 존중의 행동양식이 이미 충분히 지배적인가? 즉 나 자신의 생각이나 말과 행동이 수용되고 있고 서로 다름이 인정 되고 있는가?
차이로 발생하는 것들이 오히려 풍요로운 구속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정부 정책 프로그램들이 낮은 기준으로 실행되고 있는 현장의 실태는 과연 지금만의 문제인가? 미래에는 개선될 수 있는 것인가?
충분히 숙고하고 성찰할 시간 없이 사업을 실행하기에 급급하고, 성과를 내야만 하고,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 요구에만 부응하다보면, 자칫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집단으로 이주민들을 대상화 시키는 것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 맺기와 소통을 위한 자기문화 분석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떨까 제안하면서 글을 마친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4월호(제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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