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0 2010-07-10   1772

[심층4] 건강보험 통합 성과와 한계, 그리고 향후과제

1. 건강보험 통합의 성과

건강보험 통합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통합 이전까지 수백 개로 나누어져 운영되던 조합 방식에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재정 상태가 열악한 조합에 맞춰 건강보험의 급여 수준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조합은 막대한 누적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으면서도 조합원들에게 충분한 급여 혜택을 주지 못하는가 하면, 또 다른 조합은 최소한의 급여 혜택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열악한 재정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물론 각 조합 간의 재정 위험을 분산하는 기전을 갖추고는 있었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건강보험 통합은 보장성 강화의 중요한 걸림돌이었던 조합 간의 재정 격차를 일시에 해소하는 제도적 변혁이었다. 통합 건강보험체계라는 제도적 기반이 없었다면, 참여정부 시기의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보험료 부과체계의 형평성 제고 역시 건강보험 통합을 빠뜨릴 수 없는 성과이다. 과거 조합 방식에서는 재정 상태가 열악한 농어촌 지역조합의 보험료는 상대적으로 비싸고, 재정 상태가 양호한 직장조합과 서울 강남과 같은 부유한 지역조합의 보험료는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각 조합이 독립채산 방식으로 운영된 데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이 같은 보험료 부담의 부조리를 해소하고, 전국 어디에 거주하든, 어떤 직장에 근무하든 간에 동일한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건강보험 통합의 성과이다. 물론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부과체계가 완전 통합되지 못한 점은 한계로 지적할 수 있지만, 이는 건강보험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조세체계 전반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흔히 간과되는 성과 중의 하나가 건강보험 관리운영체계의 투명성과 책임성 향상이다. 과거에는 수백 명의 의료보험 조합장과 그 몇 곱절되는 임원들이 있었다. 이들로부터 비롯되는 비리와 부패가 심각했으나, 수백 개에 이르는 조합들을 일일이 감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실정이었다. 게다가 직장의료보험 조합의 누적 적립금은 마치 해당 기업의 사금고인 양 간주되었다. 수많은 직장의료보험 조합의 조합장과 간부들, 그리고 기업들이 건강보험 통합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이면에는 이런 이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통합으로 수백 명에 이르던 조합장은 1명의 공단 이사장으로, 수천 명의 임원들은 십수 명의 임원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정부와 국민의 실질적인 감시와 감독이 가능하게 되었다.

국민의 사회 연대 의식을 제고한 점도 중요한 성과이다. 건강보험 통합으로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제외한 모든 국민은 하나의 보험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가지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는 작지 않다. 과거 조합 방식에서는 사회 연대의 범위가 특정 지역과 직장에 국한되었지만, 통합 건강보험체계에서는 사회 연대의 범위가 전 지역과 전 국민을 아우르게 된 것이다. 통합 건강보험체계에 이르러서야, 국민의 건강권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헌법 정신이 온전히 구현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마지막 성과는 시장주의 세력의 의료민영화 공세에 맞설 수 있는 버팀목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조합 방식을 유지했었다면, 시장주의 세력의 의료민영화 공세에 맞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의료보험조합 몇 개를 떼어내는 방식으로 미국식 의료체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예컨대, 삼성과 현대그룹의 직장의료보험조합과 서울삼성병원, 서울아산병원을 직접 연결하는 네트워킹이 진즉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10년 전의 건강보험 통합이 작금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가로막는 중요한 버팀목이 된 셈이다.


2. 건강보험 통합의 한계

이상에서 열거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의 한계는 여전하다. 첫째는 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성이다. 2007년 65% 대까지 이르렀던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2007년 62% 수준으로 다시 주저앉았다. 참여정부 기간 동안 암, 일부 심장질환과 뇌혈관계질환의 보장률은 가파르게 향상되었지만, 평균적인 보장률은 정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OECD 국가들의 평균적인 보장률 수준이 80%대, 이 중에서도 입원 진료비는 90%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못 미치는 열악한 수준이다.

둘째는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적 확충을 위한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보장성 강화를 위해서는 재정이 안정적으로 확충되어야 한다. 사회보험 방식의 건강보장체계에서 주된 재원은 ‘보험료’이다. 그러나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과 기업의 거부감이 만만치 않다. 정부의 국고지원도 마찬가지이다. 현행법에서는 예상 보험료 수입의 20%를 국고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재정 당국은 예상 보험료 수입을 보수적으로 추계하는 방식을 통해 실제로는 보험료 수입의 16~17%에 불과한 금액만을 지원하고 있다. 그 외의 세원 발굴도 여의치 않다. 게다가 조세체계의 비합리성으로 인해 또 다른 세원 발굴이 자칫하면 소득 역진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셋째는 지출 구조의 합리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 중에서 우리나라처럼 전적으로 행위별 수가제에 의존하는 국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료공급자 측의 강력한 반발에 가로막혀 보수지불제도의 합리적 개편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민의료비 비율’은 OECD 평균에 비해 여전히 2~3%p가 낮은 편이다. 그러나 ‘GDP 대비 국민의료비 비율 증가세’는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따라서 지출 구조의 합리화는 지금 당장의 의료비 지출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향후 예상되는 의료비 지출 급증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할 과제이다.

이 같은 한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건강보험은 중대 기로에 처해 있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그리고 아직까지는 상대적으로 의료부문의 지출 규모가 작은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급증은 ‘정해진 수순’이다. 국민의료비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재정으로 대표되는 공적 의료재정의 증가세는 국민의료비 증가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이 사적으로 부담해야 할 비중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 틈새를 민간의료보험이 급속도로 채워가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수 년 내에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의 지위가 역전될 수도 있다. 이것은 국민 건강권의 파국을 의미한다. 건강보험 재정으로 대표되는 공적 의료재정의 덩치를 키우는 것을 최우선적인 과제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3.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기 위한 제2의 건강보험 대개혁

10년 전 건강보험 통합의 정신을 잇는 제2의 건강보험 대개혁의 목표는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충분히 보호하는 것은 건강보험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이 외에도 획기적인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민간의료보험의 확산을 가로막는 가장 근본적인 대응이다. 현행 민간의료보험이 숱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시장을 급속하게 팽창하는 이유는 바로 취약한 건강보험의 보장성 때문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지 않는다면, 민간의료보험의 증가세를 막을 수가 없다.

둘째, 불필요한 낭비적 지출을 막기 위해서도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필수적이다. 이미 성인 인구의 60% 이상, 가구 기준으로는 70% 이상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상태이다. 이들에게는 이미 사실상의 무상의료가 실현되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실현되어 있는 무상의료는 사회적으로 전혀 관리되지 않은 무상의료이다. 치료비가 수 백 만원 수준인 복강경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가 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은 천만 원 이상의 로봇수술을 선택하고 있으며, 병원에서도 그렇게 하도록 강권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행태에 대한 사회적 관리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로봇수술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보험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만약,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어서, 로봇수술까지도 건강보험 적용 대상으로 포함된다면, 현재와 같은 무분별한 남용은 막을 수 있다. 건강보험에서는 로봇수술을 적용할 수 있는 대상 기준과 절차를 정하고, 이를 근거로 관리를 하기 때문이다. 낭비적 지출의 상당 부분은 사회적 관리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의 적용 영역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면, 낭비적 지출의 상당 부분이 관리 가능한 영역으로 인입된다.

제2의 건강보험 대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측면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이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이를 실현하는데 주체가 되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재정을 확충하는 것도, 행위별 수가제를 대안적인 지불방식으로 바꾸는 것도 국민적 요구와 동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수의 국민은 무상의료 혹은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지난 6월 9일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7월 17일 공식 출범할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는 건강보험 대개혁을 시민의 생활의제로 만들고, 시민이 앞장서서 이를 실현하자는 취지로 시작하는 풀뿌리 시민운동이다. ‘1만 1천원의 기적’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시민들이 인식하는 순간, 건강보험 대개혁의 중요한 모멘텀이 만들어질 것이다.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도록 건강보험 대개혁을 이루는 것은 보편적 복지국가 운동의 확산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건강보험은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보편적 복지의 외양을 갖춘 제도이다. 또한 상당한 수준의 국민적 지지 기반을 갖추고 있는 제도이다. 국민들이 ‘고도로 확장된 공적 복지’를 체험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제도인 셈이다. 이런 건강보험을 통해 사적 방식이 아니라 공적 방식, 사회 연대적 방식으로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사실을 국민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건강보험 개혁 운동이 ‘보건의료 분야’의 운동이 아니라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전 부문의 운동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제2의 건강보험 대개혁은 시민의 자각과 참여를 통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민의 자각과 참여를 통해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민의 자각과 참여를 통해 성취된 건강보험 대개혁이라야, 보편적 복지국가 운동의 맹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알기 원하시면, 다음 블로그를 방문해 주십시오. http://blog.daum.net/healthhanaro)


– 이진석 (서울의대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7월호(제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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