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병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
어느 장애여성의 이야기
전남 여수시 46세 여성 K씨는 1급장애인이다. 아니, 1급장애인이었다. 세 살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살았고, 척추가 S자로 휘어 수술도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고, 점점 골반과 갈비뼈가 맞닿아 제대로 앉지 못하고 살가죽이 찢어져 까맣게 타들어가고, 가슴에 통증이 커져간다. 두 다리는 전혀 움직일 수 없으며 손목은 통증으로 바닥을 짚을 수도 없고, 숟가락질도 쉽지 않다. 옷 입는 일, 화장실 가는 일, 휠체어에서 침대로 혹은 방바닥으로 혹은 화장실로 옮겨 앉거나 눕는 일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이다.
그런 K씨에게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가 시작된 것이다. 비록 부족한 예산 탓에 최중증 장애인이라도 한달에 100시간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자신의 몸을 보살피느라 고생하는 가족의 수고도 덜 수가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운 좋게도 직장도 다니게 되었다.
전남 여수시는 활동보조서비스 시간이 부족한 최중증장애인에게 시비로 추가를 하고 있다. K씨도 여수시 추가지원을 신청했다. 혼자서 거동을 못하는 중증장애인으로서는 몇 시간의 활동보조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실함이다.
K씨가 여수시에 추가 활동보조를 신청하자, 여수시는 보건복지부 지침이라면서 장애등급을 다시 판정받으라 하였고, K씨는 어쩔 수 없이 등급재심사를 신청하였다. K씨는 불안했다. 등급심사 결과 무려 36.7%가 등급이 하락되고 있고, 등급심사 비용도 수십만원이나 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을 고민하던 K씨는 본인은 등급재심사 의무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국민연금공단에 등급재심사 신청을 취소를 요구했다. 등급심사의 공포 때문에 추가 활동보조를 포기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국민연금공단은 이를 거절하고 등급심사를 강행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2급으로 등급이 떨어졌다. 오른쪽 세 번째 발가락이 조금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의신청을 해서 다시 심사를 했는데도 2급이 확정되었다. 이제는 어쩔 도리 없이 2급장애인이 된 것이다. 검사 비용만 80만원이 넘게 들었다.
지금 K씨는 활동보조가 끊겨 직장도 휴직한 채 하루 종일 방에 누워서 생활하고 있다. 방안에서 활동보조는 85세 어머니에게 의지한다. 가끔 화장실 갈 때나 휠체어를 타야할 때는 어머니 혼자서 몸을 들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 K씨는 40여년을 장애인으로 살면서 이토록 좌절해본 적이 없다고 호소한다.
통탄스럽게도 K씨와 같은 피해자는 계속 늘어가고 있고,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심사의 전면 확대를 선언하고 있다.
장애인복지는 커녕 장애인에 대한 거대한 공포정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장애등급심사의 확대
장애등급심사란, 의사가 판정한 장애등급이 적절한지 여부를 서류로 심사하여 최종적으로 판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일선 의료기관의 의사가 장애등급을 판정하는 구조에서, 심사기준과 달리 주관적 판단이나 인정에 이끌려 판정을 후하게 해주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사기단까지 동원되어 ‘가짜장애인’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사건들이 있어서 장애등급판정의 형평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애등급심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주장이다.
보건복지부는 2007년 4월부터 중증장애수당 신규신청자를 대상으로 장애등급심사를 진행하였고, 2009년 10월부터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신규로 신청하는 1급 장애인에 대해 장애등급심사를 의무화하였다. 2010년 1월부터는 신규로 1~3급 장애등록을 신청하는 경우에도 장애등급심사를 확대하였고, 신규로 장애수당, 장애연금, 활동보조 등 사회서비스를 신청하는 경우, 그리고 2년 이상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한 장애인도 장애등급심사를 받도록 지침이 개정되었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는 1~6급 전체 장애인에게 등급심사를 확대할 계획을 밝히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2007년 4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총 92,817건의 장애등급심사 결과 장애등급이 유지된 경우는 60%이며, 상향조정된 경우는 고작 0.4%였고, 등급이 하향된 경우는 무려 36.7%인 34,064건이었다.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실로 무시무시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복지행정, 이래도 되는 겁니까?
장애등급심사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전액 장애인이 부담하여야 한다. 의료보험 적용도 안 된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대부분 CT, MRI, 근전도검사 등 수십만 원짜리 검사를 받도록 되어 있는데 그 비용을 장애인에게 내라는 것이다. 수백만 원이나 드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가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닌데 정부의 지침개정으로 그 피해는 장애인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것이다.
기존 등록장애인이 서비스를 신청해도 장애등급재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서비스 신청자격이 인정되지 않는다. 몇 달 동안 등급심사 받고 그 결과를 기다릴 여유가 없는 사람들, 예를 들면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꿈꾸던 사람들에게는 폭력적 행정이다.
등급심사의 과정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 객관성과 형평성을 재고하겠다는 장애등급심사이지만, 일부심사 의사들의 판정이 높은 하향조정률을 보이는 등 등급심사의 객관성도 의심스러우며, 서류가 미비되었다는 이유로 자료보완이 아니라 등급하락을 결정한 사례는 애초에 등급하락을 목적으로 한 등급심사가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장애등급판정기준에 대한 해석도 제각각이고,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어이없는 판정이 잇따르고 있다.
장애등급제는 선별적 복지를 위한 기계장치이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연금제도와 장애인장기요양제도를 설계하면서 장애등급심사를 강화하고 장애등급기준을 재정비했다. 적은 예산에 맞추어 대상자를 잘라내기 위해 의료적 기준을 강화한 것이고, 나아가 예산의 틀 안에 장애인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다.
2008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의하면 활동보조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은 전국적으로 약35만 명으로 2급 또는 3급인 장애인 중에도 활동보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상당히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뇌
병변장애인의 경우에는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타인의 도움에 의존하는 사람을 2급으로 판정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활동보조는 1급장애인만 신청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유는 오직 예산이 적기 때문이고, 그래서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기준을 강화하고 장애등급심사를 강화해서 계속 장애인을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잘라내고 있다.
장애인연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장애로 인해 노동의 기회를 박탈당한, 그래서 빈곤한 절대다수의 장애인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고작 장애인의 13%에 불과한 32만 여명에게 고작 월 최대 15만원의 장애인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그래서 대상자를 잘라내고 또 잘라내는 것이다.
장애인에 관한 상식, 그리고 가려진 진실
“대한민국에 장애인은 몇 명이나 될까요?”
장애인에 관한 정보가 많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 가끔 던져보는 질문이다. 대부분 당혹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왠지 당연히 알고 있어야할 상식 같은데, 전혀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2009년 6월말 현재 등록된 장애인은 240여만 명이고, 장애유형은 15가지이고, 1급부터 6급의 등급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지식을 전달하면, 사람들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 하는 표정들을 지어보인다.
의학적 기준으로 장애정도를 파악하여 등급을 나누고, 그 등급에 따라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상식처럼 생각된다.
그런데 이렇게 장애인을 등급을 매겨 관리하는 장애등급제는 한국과 일본에만 고유한 것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알려져 있지 않다. 장애등급제도에 익숙한 우리들은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는 장애등급도 없이 도대체 어떻게 장애인에게 복지서비스가 제공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라!
장애인복지 예산을 늘여 장애인의 고통을 줄여야할 정부가 오히려 장애인수를 줄여 예산을 절감하고자 하는 지금의 작태는 참으로 어이없는 것이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장애등급제는 단순히 예산절감을 위해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급은 되고 2급은 안 되고, 기초생활수급자는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안 되고 하는 따위의 선별적 복지체계는 장애인의 권리를 철저하게 은폐시켜 예산의 논리 안에 가두어 버린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마땅히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가 있고, 사회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장애인에게 필요한 사회서비스는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한다.
일상생활에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활동보조가 제공되어야 하며, 장애로 인해 소득을 갖지 못하거나 빈곤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장애인연금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장애등급제는 있어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의료적 기준으로 장애인의 몸에 점수를 매기는 행위는 그 자체로 차별이며 장애인에 대한 낙인찍기다.
장애와 장애인은 고정된 것도 개인적인 것도 아니고 사회적 관계에 크게 영향받는 것이고, 장애인이란 결국 사회적으로 어떠어떠한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은 몇점짜리 이하의 몸을 가진 사람이라는 차별적 의식을 유포하여, 장애와 장애인인의 사회적 관계를 은폐한다.
문제는 장애등급의 높낮이 혹은 그 기준의 타당성이 아니다.
사람의 몸에 등급을 매겨 선별적 복지와 차별적 의식을 강화시키는 장애등급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몸의 점수에 따라서가 아니라 개인의 필요에 따라 사회서비스는 제공되어야 하며, 그것이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삶의 필수적인 것이라면 당연한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한다. 장애등급제는 정확히 그 지점을 은폐하고 탄압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9월호(제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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