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7년의 결실로 만들어진 권리옹호 인권법이다. 시행 3주년을 맞이하는 2011년, 올해는 100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 국공립ㆍ사립학교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적용대상이 된다. 장애유형별ㆍ장애특성별, ‘정당한 편의’ 제공을 구축해 고용영역과 교육활동에서의 차별적 요소를 시정함으로써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실질적인 권리옹호 인권법으로 자리매김을 돈독히 다져나가는 중요한 한 해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장애인 당사자의 적극적 권리옹호
2009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장애인 당사자의 적극적 권리옹호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초기에는 지체장애인의 ‘장애인의 정당한 편의시설’에 관련된 인권위 진정 등 당사자의 적극적 권리옹호가 많았다. 그러나 시행 2주년으로 접어든 2010년부터는 청각장애인의 의료행위 과정에서 의사소통권리,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 뇌병변장애인의 장애유형별ㆍ장애특성별 ‘정당한 편의’ 제공 등 다양한 차별영역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옹호 움직임이 나타났다.
공공근린시설의 ‘정당한 편의시설’
재활병원 장애인 화장실에 청소도구 집기로 가득차 있는 것을 목격한 장애인 당사자는 병원 측 관계자에게 시정을 요구했으나, 병원 측이 청소도구를 옮길공간이 없다고 하자, 즉각 인권위에 진정을 추진했고, 이를 알게 된 재활병원 측은 곧바로 청소도구를 거둬내고 사과했다.
의료행위 과정에서 ‘의사소통’ 권리
병원 원무과에 분명 ‘청각장애인’임을 알렸으나, 마스크를 쓴 채 이름을 호명하는 바람에, 자신의 차례를 모를 수밖에 없었던 한 청각장애여성이 병원 측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아냈다. 장애인 당사자는 병원 측의 행태가 차별이라는 문제의식을 확인하고 병원 측의 사과를 요구했고, 병원 측은 장애차별 행위였음을 인정했다.
장애유형별ㆍ장애특성별 ‘정당한 편의’ 제공
뇌병변장애인이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산업인력공단에 대필자, 단독실, 1.5배의 시험시간을 요청했다. 시험주관처 담당자가 1.5배의 시험시간은 시각장애인에게만 적용된다며, 정당한 편의제공 요청을 거부했지만, 당사자는 끈질기게 뇌병변장애인 역시 1.5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뇌병변장애인이 민간단체가 주관하는 시험에서 1.2배의 시험시간을 제공받은 점 등을 근거로 대응해 1.5배의 시험시간을 확보했다.
당사자의 적극적 권리옹호,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다
장애인당사자의 적극적 권리옹호는 개인의 권리를 옹호할 뿐만 아니라,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차별적 요소들을 시정하거나, 정책을 통한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은행의 ATM(현금자동인출기) 진정사건
최근 은행의 ATM 경우, 저시력 장애인을 위한 확대문자, 음성인식 기능, 점자메뉴 등의 서비스를 갖춘 ATM의 보급 대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 시각장애인이 평소 은행의 ATM 사용에서 늘 겪는 불편함을 ‘차별’로 인식하고, 인권위에 진정했고, 인권위가 시정권고를 내림으로써 권고 받은 은행 측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생긴 변화다.
이 사례는 장애를 가진 사람은 늘 누군가의 도움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구조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킨 점, 한 개인의 행동이 세상에 도사리고 있는 차별적 구조를 변화시켰다는 다각적 측면에서 권리옹호를 일궈낸 사례다.
지역사회 주민들의 다중 폭력사건 대응
정신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지역주민들이 이사를 강요하거나, 정신병원 입원을 강제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정신장애인 가족이 적극적으로 지역주민의 부당한 횡포에 맞서 대응한 사례다. 장애인당사자 가족의 적극적 권리옹호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공익변호사그룹공감, 지역 인권단체 등이 연대하여 검찰청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정신장애인 인권 및 복지에 관한 법률’ 입법 청원까지 이끌어낸 동력이 되었다.
이 사건은 지역사회 주민들이 정신장애인을 ‘위험한 인물’로 바라보는 편견이 강제입원과 이사 강요 등의 다중 위력으로 이뤄진 폭력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정신장애인이 겪는 차별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주목할 점은 정신장애인 가족이 이러한 부당함에 맞서는 행동을 보여준 점, 장애인가족이 장애인 시민단체들과 적극 연대하여 ‘대책위’를 결성한 점, 나아가서 ‘정신장애인 인권 및 복지에 관한 법률’ 입법 청원을 하는 등 개인의 권리옹호가 입법운동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지적장애인의 ‘본인 동의’ 없이 계약서를 작성한 핸드폰 매장 직원
이 사례는 지적장애를 가진 OOO님이 휴대폰을 구매하러 통신사 대리점에 갔을 때 일이다. 함께 따라간 보조인도 휴대폰을 구입하려 했지만, 요금 납부할 계좌 통장번호가 없었다. 그런데 통신사 직원이 당사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계약서에 OOO님의 계좌번호를 명기하여 자동인출 되도록 했다.
이 사례는 당사자 요청에 따라 마산IL센터가 인권위에 진정하자, 그때까지 수수방관하던 통신사가 ‘당사자의 요구안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최종 협의안’을 공문으로 보냈으며, 통신사 측은 대리점 업무지침서, 정신적 장애인의 의사소통을 조력하기 위한 보조인이 필요한가를 물어보는 등 매뉴얼을 제작 배포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적 이행을 위한 모니터링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살아 있는 법안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실효적으로 이행되고 있는가를 모니터링 하는 것이 중요하다. 2010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결성하여, 민간단체가 중심이 되어 서울지역 공공근린시설 891곳을 대상으로 ‘정당한 편의’ 제공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지체장애 영역은 편의시설 중 경사로와 장애인화장실 설치는 진행 중이었으나, 장애인 전용 컴퓨터 시설 및 대체 입력장치인 볼마우스, 한손키보드, 터치스크린 등 정보접근권에서 정당한 편의가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각장애 영역에서 구청에서는 화상전화기가 부분적으로 설치돼 있으나, 조사한 국공립 병원이나 공공도서관, 경찰서 등의 공공근린시설에는 화상전화기가 설치된 곳이 단 한곳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각장애 영역에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독립보행이 가능하도록 건물 내 점자블록이 설치되어 있는지, 점자서류가 발급되고 있는지, 확대경 설치 및 음성유도장치 설치 등을 모니터링 하였다. 그 결과, 출입문 앞에만 점자블록이 설치 된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점자서류 발급 및 확대경 비치, 음성유도장치 설치 등 정당한 편의는 전혀 제공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발달장애 영역 경우, 발달장애아동 부모들이 모여서 공공근린시설에 반드시 갖춰져야 할 ‘발달장애인의 정당한 편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부터 출발했다. 발달장애 영역 경우 무엇보다 ‘의사소통과 정보접근에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당한 편의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조사 결과, 공공근린시설 종사자들은 ‘발달장애가 무엇인지, 발달장애인이 공공근린시설을 이용할 경우, 어떤 정당한 편의가 필요한지’에 관해 무지한 수준에 처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애관련 이해교육은 지체장애와 청각장애, 시각장애의 특성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발달장애인의 정당한 편의에 관한 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은 전혀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발달장애 이해교육, 발달장애인과 의사소통하는 방법, 발달장애인의 정당한 편의에 관한 가이드라인 등은 보건복지부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수행해야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자신의 책무성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모니터링과 집단진정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적 이행을 위해 모니터링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법에 명시된 권리가 실질적으로 이행될 때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실효적 법안으로서 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당한 편의’ 제공은 장애인의 동등한 권리 확보, 동등한 사회참여, 지역사회에서 소외ㆍ배제ㆍ분리되지 않고 사회구성원으로서 비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실질적 연대를 일궈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니터링 결과를 토대로 정당한 편의 제공이 이행하지 않는 곳을 변화시켜야 하며, 이러한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두 차례 집단진정을 추진했다. 1차 집단진정(2010.6.25)은 지체장애와 시각장애, 청각장애 영역에서 조사한 625곳 중 98%에 해당하는 597곳을 대상으로, 2차 집단진정(2011.1.20)은 발달장애 영역에서 조사한 170곳을 대상으로 ‘정당한 편의제공’ 이행을 촉구했다.
집단진정 이후, 언론과 매스컴에서 장애인의 편의시설, 정보접근권, 문화향유권 등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옹호에 관한 보도 및 취재요청이 증가했으며, 서울시 버스정류장에 ‘전자문자안내판’과 ‘음성안내’ 등 편의시설 설치가 확대 보급되고 있다. 또한 장애인 편의시설 종사자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정당한 편의’에 관한 교육 요청이 들어왔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정당한 편의시설’ 지침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집단진정의 궁극적 목적은, 공공근린시설에 장애유형별ㆍ장애특성별 정당한 편의제공 구축에 있다. 하지만, 인권위는 집단진정을 한 지, 11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조사 진행 중에 있다. 장애인차별금지 추진연대가 세 차례의 집단진정(방송 3사 홈페이지 웹 접근성 보장 집단진정 포함)을 한 이후, 인권위 장애 차별 조사과에 특별조사팀을 신설했고, 조사관 증원이 이뤄졌지만 인권위는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옹호를 위한 집단진정 건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개정 입법활동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 ‘정보접근 및 의사소통에 관한 권리’에 명시된 법안으로는 시청각장애인의 출판물에 대한 접근(교육권) 및 영상물에 대한 접근(문화향유, 문화접근)권을 온전히 담보해낼 수 없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 제4항과 제5항을 변경, 신설하는 개정을 추진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문광부의 출판, 영상, 저작권 담당 부처와 끈질긴 면담 요청을 지속적으로 추진했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안을 전달했고, 개정안 통과를 위한 문광부의 적극적 지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문광부는 출판업자와 영상업자의 논리와 같은 입장을 표명했고, 장애인의 정보접근권에 관한 어떠한 로드맵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회, 복지부 담당부처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안을 전달했고, 문광부 장관 면담요청 기자회견을 열어 제21조 개정 추진을 위한 집단진정도 추진했다. 그리고 2010년 2월 22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법안 심사소위원회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이 의결됐고,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됐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 개정운동은 장애인차별 금지법이 미완의 인권법에서 탄탄한 인권을 담은 법률로 거듭나기 위한 힘찬 발걸음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권리옹호를 향한 향후 과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명시된 권리들이 세상에 나와 생명력을 갖고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차별영역별 권리옹호 과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ㆍ개정 입법활동, P&A 권리옹호 체계구축 등의 향후 과제들을 일궈낼 때 세상에 도사리고 있는 차별적 요소들, 차별적 장벽들이 제거되는 변화를 이끌게 될 것이다.
모니터링을 통한 권리옹호
올해 2011년에는 서울지역의 학교를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추진하고 있다. 모니터링 조사대상 학교는 국공립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방송통신대, 사이버대학 포함), 그리고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학교이다.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학생부모가 조사원이 되어 장애유형별ㆍ장애특성별 교육활동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당한 편의’ 제공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이번 학교 모니터링은 서울시교육청과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추진하고 있으며, 모니터링의 궁극적 목적은 장애유형별ㆍ장애특성별 장애학생에게 필요한 정당한 편의의 이행 여부를 조사하고, ‘차별 없는 학교 만들기’, ‘교육에서의 동등한 권리옹호’를 구축하는 것이다.
차별영역별 권리옹호 과제
장애 차별은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차별은 사회구조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차별을 발생시키는 요인이 쉽게 시정되거나 제거되지 않는다. 또한 장애인 시민단체와 중앙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정책을 연동하지 않으면 차별적 요소를 해소하고, 제거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장애인차별상담전화에 문의한 상담 사례를 분석한 내용과 서울지역 공공근린시설 모니터링 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차별영역별 권리옹호 향후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교육 차별금지
장애인차별금지법 기념 3주년 토론회에서 교과부는 고등학교 이하에 재학하는 장애학생의 교육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특수교육보조원의 증가, 장애대학생 지원 보조 인력인 도우미 배치에 필요한 예산을 증액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전학을 강요하는 교사,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명시된 장애아동 6명당 특수학급 1배치(초등학교의 경우)를 위반한 학교, 특수교사 1인으로 운영되기 어려운 중증 장애아동으로 구성된 특수 학급의 취약함을 개선하지 않고 수수방관만 하는 학교, 자신을 조력하거나 옹호하는 힘이 약한 지적장애 아동을 집단 폭행하는 또래 아동들의 괴롭힘 등 교육 활동에서의 차별 등을 시정하기 위한 산적한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또한 대학의 경우, 교육보조 도우미제도가 정착되고 있지만 타 전공학생들이 교육보조 도우미를 하는 경우, 강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한계가 뒤따르기 때문에 대학원 학생들을 교육보조 도우미로 활용하는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
고용 차별금지
고용에서 차별 양상을 살펴보면, 후천적 중도장애를 가진 이후 직장에서 ‘업무부적격자’로 자진 퇴사를 강요당하는 경우, 장애를 이유로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배제당하는 경우, 중증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직업교육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 등 고용에서 차별은 ‘철저한 자본의 논리, 즉 효율성’의 측면에서 장애를 바라보고, 장애인 고용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거나 차단시키고 있다.
올해부터 상시 100인 이상 30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은 ‘정당한 편의’ 제공의 적용대상이 된다. 그러나 현재 민간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2.19%에 머물고 있으며, 중앙행정기관 공무원의 경우 장애인 고용률은 3.01%, 준정부기관은 3.33% 수준에 그치고 있다.
고용에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장애차별을 발생시키는 사회구조와 정부의 적극적 정책, 장애인식개선을 함께 변화해야 한다. 즉 기업체, 고용주, 정부기관, 정부정책, 실효성 있는 고용정책 프로그램 등 다각적 측면에서의 접근이 뒤따라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장애인 민간단체의 향후 과제는 고용에서의 차별을 발생시키는 사회구조적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적극적 대응과 모색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의 정당한 편의제공 구축
영국의 체인지피플(change people)은 지적장애인 권리옹호단체이다. 이 단체의 캠페인 팸플릿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정보접근권을 갖는다는 것은, 지적장애인의 삶에 중요한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그들에게 힘과 자유를 주는 것이며, 이것은 그들의 권리이다.”
발달장애인이 부모 뒤에 가려진 그림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사회구조를 일궈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공근린시설이 롤모델(role model)이 되어 발달장애인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매뉴얼 비치, 종사자들의 발달장애특성 이해교육 및 의사소통 교육, 발달장애인을 위한 정보자료집 비치 등 정당한 편의 제공이 마련돼야 한다. 발달장애인의 정당한 편의 구축은 이상이 아닌 현실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향후 과제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변화시키기
우리 사회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변화시키기 위한 방안이 활발하게 모색,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영국 마인드의 정신장애인 인권단체의 운동 방식은 향후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변화시키기 위한 롤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영국의 마인드 정신장애인 인권단체는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경험한 차별 사례를 담은 팸플릿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그 팸플릿에는 ‘we can’t win the fight without you(우리는 당신 없이는 이길 수 없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마인드는 이사회 50% 이상을 정신장애인 당사자로 구성하는 것이 원칙으로 정해져 있으며, 당사자의 힘으로 정신장애인의 권리를 옹호해내는 힘이 있다.
마인드는 2007년부터 2천만 파운드의 기금을 받아 4년 동안 35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Time to change’ 캠페인의 목표는 사람들의 태도변화를 측정해서 태도와 생각의 변화를 알아보는 것,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힘을 키워주어 스스로의 도전을 통한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Time to change 캠페인의 특징 중 하나가 음악, 드라마, 예술분야에서 정신장애 차별문제를 알리고 있다. 그리고 정신장애인이 사회적 접촉을 많이 하면 비장애인이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접촉을 많이 할 수 있는 이벤트’를 많이 만든다.
정신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강제이사와 강제입원을 강요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의 현실이지만, 향후 우리 과제는 영국의 마인드가 펼치고 있는 정신 장애인의 사회적 통념을 깨트리기 위한 다양한 권리옹호 운동방식을 한국 사회에 접목 운용하는 데 있다.
금융 차별금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금융상품 및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의 차별금지’에서는 ‘금융상품 및 서비스의 제공자는 금전대출, 신용카드 발급, 보험가입 등 각종 금융상품과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제한ㆍ배제ㆍ분리ㆍ거부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회사 측은 상법 제732조를 확대 적용해 모든 장애인의 보험가입 거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신용카드사 측은 카드발급 시 ‘본인의 서명 날인 없이는 카드발급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앞세워서 ‘장애특성상’ 본인이 서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서명 날인만을 원칙으로 강요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인인증서 발급 과정’에서 ‘동일한 이유로’ 공인인증서 발급이 거부당하는 차별 사례가 있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현재 보험차별구제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보험차별구제청구소송은 상법 제732조 삭제운동과 더불어 장애인의 보험차별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본인 서명이 없이는 카드발급이 어렵다’는 근거가 되고 있는 여신전문금융업법의 개정운동을 준비, 추진해나갈 것이다.
문화ㆍ예술활동 차별금지
연극이나 영화를 감상할 때, 연극과 영화의 줄거리를 해설하는 ‘화면해설 서비스’는 시각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을 보장해준다. 또한 연극이나 영화를 감상할 때, 연극과 영화의 줄거리를 알려주는 ‘자막서비스’는 청각장애인의 문화향유권을 보장해준다. 그러나 2009년 9월 기준 전국 320개 극장의 2,179개 스크린 중 시청각 장애인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설은 16개 극장 16개 스크린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영화관 한 곳에 한 개의 상영관에만 자막 및 화면 해설장비가 설치돼 있고, 시간 역시 주 3회 등으로 한정돼 있어 영화 및 시간 선택권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영화를 선택하여 온전히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권리는 특권이 아니라 보편적 권리이지만, 이러한 보편적 권리는 정부, 기업, 사회적 인식 등 다양한 차별적 요소들에 가로막혀 있다.
향후 문화ㆍ예술 활동에서 차별을 해소하고, 차별적 요소들을 점진적으로 시정해 나가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체육활동 차별금지
2010년 서울지역 공공근린시설을 모니터링 하였을 때, 장애인 당사자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운동하고 난 후, 옷을 갈아입을 때 주변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샤워실 샤워커튼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옷을 갈아입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 시선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불편한 시선이 곧 차별이다. 이러한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발달장애아동의 경우, 국공립 체육시설에서 ‘보조인 배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명시된 권리이지만, 발달장애부모에게 ‘보조인 담당’을 조건으로 내세워서 장애아동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체육활동에서 차별행위를 시정하는 것 또한 향후 과제로 남아 있다.
이 외에도 정보접근에서 차별금지, 사법행정절차에서 서비스 제공, 여성장애인 인권 등에서 권리옹호 과제가 남아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인권 교육
지적장애를 가진 여학생의 성폭행 사건을 가해자들의 범행과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 지적장애인 특성에 의한 피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재판부는 가정법원 소년부로 넘겨 형사처벌을 면하게 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적장애여성의 장애특성을 악용하여, 지적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범죄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사법부는 ‘피해자와 합의했고, 가해자 학생들이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워서 상습적인 성폭행을 저지른 집단을 구제해주고 있다. 만약, 재판부가 ‘장애이해교육’을 가슴을 열어놓고 교감하는 경험을 했다면, 이러한 판결문은 도저히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인권교육 필수 교육 대상자는 공공기관 종사자, 공무원, 특히 경찰과 법조계 인사들이다. 장애인 시민단체가 경찰, 사법부, 공공기관 종사자 대상의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인권교육을 담당하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P&A 권리옹호 체계 구축
차별 상담을 접하다 보면, 긴급하게 조사권을 가지고 차별이 발생하고 있는 현장에 가야 하는 상황,지금 당장 인권을 침해당하는 사람을 임시 피난소로 옮기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정서적 안정과 향후 대응방안 등 다각적 측면에서 접근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장애인 민간단체는 이러한 지원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차별 상담에 대응하고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
최근 지체장애와 지적장애, ADHD장애를 가진 여성이 마트에 불을 지른 사건이 있었다. 장애여성은 “사람들이 장애인이라고 무시하고,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무시하고, 돈 주고 음식을 사먹으려고 해도, 음식을 팔지 않아 불을 냈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20여년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장애여성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훈련받은 적이 없었다. 지적장애를 가진 장애여성이 20여 년 동안 거리에서 노숙하면서 지내는 동안, 우리 사회와 정부는 철저한 무관심과 방임으로 방치했다. 또 한편으로 는 불을 낸 것에 대한 책임 추궁과 더불어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일만큼은 발 빠르게 진행했다.
이 사건에 개입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20여 년 동안 거리에서 성폭행과 구걸 등 갈취와 사람들에게서 차별과 무시를 당하면서 살아온 장애여성에게, 이후 어떠한 삶을 지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해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안, 그 방안을 찾아가는 것, 그 과정에 P&A권리옹호 체계 구축이 매개체로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장애 차별을 발생시키는 사회적 구조를 시정하기 위한 향후의 과제들을 대략적으로 살펴봤다. 우리에게 주어진 향후 과제의 최종 지향점은 ‘장애인의 동등한 권리, 지역사회에 참여, 사회구성원으로서 권리옹호’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1년 05월호(제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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