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7-18   3089

[심층분석1] 노동계급과 복지정치

제갈현숙 |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한신대 외래교수

신자유주의 체제 10년이 지나면서 비정규 및 불안정 노동, 고용불안정성, 청년실업 등에 따른 노동문제가 증대되었다. 그 결과 개인 및 가계 실질소득 감소, 소득의 양극화 및 빈곤 심화, 사회복지 사각지대 확대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생산적 복지’ 이후 국가복지는 적어도 제도적인 측면에서 팽창되었다. 그러나 팽창된 복지제도만으로 증가되고 심화된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한동안 신자유주의로 인한 폐해는 수용할 수밖에 없는 외적강제로 여겨지다가 중대한 변화가 최근 시작됐다. 바로 복지가 중요한 사회적․정치적 이슈로 부각되었고, 2012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복지정책을 중심으로 정당경쟁과 복지동맹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중산층의 위기와 불만이 ‘보편복지’ 담론으로 응집되면서 복지정치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복지정치의 구도는 크게 보편복지를 매개로 구분된다. 보수 및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보편복지에 반대하면서 이를 정치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는 반면, 일부 부르주아 정치 진영과 진보 진영에서는 보편복지에 커다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주목할 점은 보편복지에 대한 초계급인 공감대와 노동계급의 이해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이다. 즉 민주당 중심의 선거연합 혹은 복지동맹으로 부르주아 정치 개혁의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이를 통해 노동 및 사회문제의 근간인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변화시켜 노동계급의 실질적인 복지가 향상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정권교체’, ‘진보정당통합’,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무조건적인 동맹’ 등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면 희망이 되면서 동시에 희망고문과 같은 양면의 동전처럼 던져지고 있다. 이에 복지정치가 확대되는 국면에서 노동계급에게 복지 및 복지국가의 의미에 대한 역사적, 이론적 재고를 돕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노동계급의 독립적 복지정치의 가능성과 의미를 가늠해 본다.

 

오래된 대립의 유의미성: 혁명인가? 개량인가?

복지국가는 노동계급에게 매우 다양한 얼굴을 취한다. 이는 복지국가의 계급적 성격 때문이고, 이에 대한 논란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된다. 유럽의 많은 복지국가의 기틀은 노동자 계급운동에 기반을 둔 노동자 정당의 건설, 노동조합, 그리고 좌파정당(사민주의당, 사회주의당, 녹색당 등) 등에 의해 다져졌다. 그러므로 19세기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구 복지국가를 구성하는 중요한 주체로서 조직된 노동운동과 정당정치가 언급된다. 그러나 노동계급과 복지국가의 계급성 사이엔 상당한 긴장이 존재한다.

 

맑스주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성은 명확하지만 복지의 성격은 이중적이다. 즉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달성된 복지제도의 경우 사회 변혁적 요소로 분류되지만, 제도 형성의 주체와 지향이 노동계급의 이해보다는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 근본 모순은 ‘체제 자체의 극복’만으로 해체되기 때문에 복지의 기능에 대해 근본적으로 불신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론적 관점에 대해 이견이 제출되면서 19세기 말엽 개량주의와 급진주의로 노동운동은 분화되기 시작했다.

 

베른슈타인(E. Bernsein)은 사회주의라는 최종목표가 아니라 ‘운동 자체’를 전부로 보았다. 이에 그는 사회주의적 ‘현재 활동’에 속하는 것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고, 그 현재 활동으로 임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및 생활조건 향상,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 및 정치적 구조 속에서 경제적으로 기능하면서 적극적인 의회활동이나 지방단체의 활동을 강조했다. 반면 룩셈부르크(R. Luxemburg)는 사회민주주의의 최종 목표인 사회변혁을 포기하면서 사회개혁이 계급투쟁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그녀에게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대변한다. 그러므로 국가가 사회적 발전을 촉진하는 보편적 이해관계를 지닌 다양한 기능을 떠맡는다면, 그것은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에 일치하기 때문이며 동시에 자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한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개량주의의 의회활동을 통한 국가의 사회적 기능 강화에 대한 급진주의의 입장은 매우 단호했다.

 

20세기 이후 개량주의는 ‘현재 활동’에 중요성을 부각시켜 부르주아 정치구조로 내에서 사민주의를 발전시켜왔고, 급진주의는 제도권 정치 내부로 흡수되지 않았다. 복지국가의 성장과 위기는 자본주의 성장과 공항과 밀접하게 관련되었고, 그 결과 사민주의는 지속적으로 우경화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반면 급진주의는 현재의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과 전술의 부재로 지속적인 위기에 직면해 왔다. 이렇게 볼 때 현실 자본주의 국가의 복지는 외형상 부르주아 정치 구조에서 보수 및 자유주의와 사민주의의 경쟁에서 제도적인 발전과 위기를 맞아왔다. 그리고 급진주의는 자본주의 국가로서 복지국가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부르주아 정치 구조 외각에서 제기하면서 정책형성 및 결정과정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쳐왔다고 볼 수 있다.

 

복지국가의 성격과 노동운동

 

복지국가는 국가와 시기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보이면서 발전되어왔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에 대해 공통적인 세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복지국가의 본질은 우선 절대적 빈곤층에 대한 급여 확대, 자조능력이 없는 개인에 대한 국가의 도덕적 의무이다. 둘째, 복지국가의 성립은 본질적으로 노동자 문제에 기인된 것으로 노동법과 사회보장의 확대에서 복지국가 발전의 결정적 동인을 찾는다. 셋째, 모든 국민에 대한 국가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복지국가 발전에서 이미 오랫동안 존재해 온 개인의 자유권에 병행되는 사회권의 확대를 강조한다(Titmuss; Esping-Andersen).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서 ‘국가’는 도덕적이거나 비계급적 혹은 계급중립적인 성격으로 파악된다. 즉 복지는 자본주의 국가를 중립적으로 보이게 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고, 자본주의 체제의 합리화 과정과 함께 발전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자본주의 국가가 중립적인가에 대해 의문은 여전히 제기된다.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의 다양한 단계와 국면상의 조응에 따라 결정되는 국가 형태(form)들 중의 하나다.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국가개입주의는 자본주의 국가의 형태들 중에서 국가의 계획 및 통제가 가장 적극적으로 실현됐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포디즘 축적구조의 위기로 적극적인 국가개입주의는 위기에 봉착했고, 그 결과 ‘국가냐 시장이냐’와 같이 국가는 마치 시장과 반대되는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부르주아 국가는 자본주의적 계급관계의 재생산을 위한 정치적 기능, 경제적 기능, 공공교육이나 사회보장 등과 같은 사회적 기능과 문화․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한다. 부르주아 국가는 권위주의 국가와 다르게 다양한 기능이 국가를 통해 실현되기 때문에 지배계급의 직접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급의 이해가 실제로 대변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국가를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분리된 계급중립적인 것처럼 왜곡시키는 ‘국가물신’이 실제 현실인 것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국가가 자본의 경제적 이해에 반하면서 강력한 복지국가나 광범위한 사회정책을 시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구체적인 세력관계에 따라 특정 피지배계급을 위한 지배계급의 경제적인 양보로 볼 수 있다. 바로 이 구체적인 세력관계가 계급정치와 복지 확대 및 복지국가 건설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복지국가를 매개로 지배계급의 정치권력은 위협되지 않지만 일정 수준의 경제 권력을 불리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복지국가의 분석과 건설에 있어 노동의 계급정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또한 자본에게도 국가는 매우 중요한 정치투쟁의 장이며, 정치권력이 경제 권력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사회복지는 지배계급의 경제적 양보로 확대되지만 자본의 정치권력에 위협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사회복지에 대한 노동계급의 정치투쟁이 배제된다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요구와 필요에 따른 복지정치로 사회복지의 성격이 결정되고 제도의 지향성을 자본가계급의 목적과는 다르게 할 수 있다.

 

노동의 복지정치에 있어 간과해서 안 될 점은 사회정책의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노동계급의 투쟁이 동반되었다는 점이다. 즉 부르주아 정치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의회제도 내부뿐만 아니라, 계급투쟁의 효과에 의해 좌우되거나, 혹은 투쟁을 사전에 완화시키려는 시도에 의해서도 좌우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복지가 비록 피지배계급의 투쟁에 의해 지배계급에게 강제된 실질적인 경제적 양보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후자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복지국가의 본질은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적 본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사회복지제도나 복지국가에 반자본주의적인 계급적 특징을 부여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자본주의 내에서 경제 및 사회적 수단으로써 자본주의 원리에 반하는 사회정책은 자본소유와 상품질서의 원리를 반대하는 원칙으로 노동계급의 이해가 반영된다. 그러나 이제까지 노동운동에서 이와 같은 원칙을 중심으로 사회복지를 발전시키기보다는 낮은 수준의 자본으로부터의 경제적 양보나 지배계급으로부터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활용해왔다. 또한 의회정치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그야말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 결과 사회복지 투쟁을 둘러싼 급진적인 운동이 전개되기 보다는 피지배계급 내부의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점 역시 노동운동의 한계이기도 하다.

 

계급불평등과 시민권의 양립의 딜레마

 

마샬(T. H. Marshall)의 시민권은 자본주의 국가의 불평등한 계급구조와 평등주의에 입각한 시민권의 양립을 제시했다. 그러나 시민권의 강화가 계급불평등의 약화를 가져오지 않았고, 20세기 이후 부르주아 국가의 발전과정을 보았을 때 민주주의 강화로 시민권의 강화를 가져왔으나 계급불평등은 완화되지 못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후 양극화 및 빈곤의 심화로 계급불평등의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와 복지국가 논의의 기본 전제가 계급불평등 완화나 해소가 아니라  사회권 확대를 중심으로 발전되고 있다.

 

사회적 시민권은 공민권과 정치권을 전제로 달성되는 권리이다. 문제는 사적소유 및 재산권의 자유인 공민권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정치․경제․사회 모두에서 실재하는 유형의 권리로 보호되고 있다. 반면 사회권은 명시적으로는 ‘헌법’적 수준이나 특정시기 정권의 정치담론 수준으로는 보장받지만 구체적 권리로 달성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다. 헌법 수준의 사회권은 국가의 국민에 대한 책임을 최저생활보장이라는 수준으로 제한하였다. 또한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과 효율성 간의 이질성, 경제우선의 원칙과 자립우선의 원칙 등으로 갈등이 야기되어 왔다. 이렇게 볼 때, 사회권은 법률적 수준에서도 공민권, 즉 부르주아지의 자유권 보장보다 낮은 수준으로 제도화됐다고 볼 수 있다.

 

계급구조의 불평등성과 시민권의 양립은 유럽사회의 특수성으로 분석될 수 있다. 자생적인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 19세기 부르주아지의 정치투쟁 및 동시기 노동자 계급의식 형성에 따른 노동자정당 건설, 의회정치제도의 경쟁체제 구축, 냉전체제가 이데올로기적 대립 요소보다는 복지 발전의 경쟁요소로 작용, 중심부 자본주의 국가로서의 국가차원의 잉여가치의 분배 등으로 적어도 신자유주의 체계 구축이전까지 상대적으로 유럽의 사회권은 상당히 확보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구화 경향의 심화는 이 공간에게도 ‘자유권 강화’를 부활시켰고 개인의 책임은 더욱 강화되었다.

 

노동력을 포함한 시장의 모든 가격은 노동자나 소비자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교환은 평등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평등의 문제를 시장외적 환경에서 ‘권리’와 ‘보편성’으로 보완한다는 것의 기본딜레마는 유산계급의 자유권 보호를 위해 무산계급의 자유가 보호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고용형태와 직업에 따라 동일노동은 동일한 가치로 보장되지 못하고, 소유권에 밀려 점유권은 철저하게 부정되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나쁜 일자리 혹은 비공식 영역에서 강제적 성격의 노동을 해야 하는 현실에서 시장의 불평등에 대한 사회권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권에 기반을 둔 보편복지의 수준은 정치 및 경제 권력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즉 사회권 강화를 위해서는 자본 중심의 국가 권력이 약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선거연합이나 복지동맹뿐만 아니라 민중권력(people power)의 실질적인 강화로부터 가능하다.

 

노동계급의 복지정치를 위하여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 세력을 대변하는 국가보다 민중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 더욱이 시장과 소득을 통해 생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현 시점에서 복지에 대한 대중의 열망은 어느 때보다 높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복지국가 수용이라는 복지정치에 대해서 노동은 자신의 지향과 운동을 제시해야 한다.

 

실직되거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의 문제가 여전한데 무상급식으로 성취될 행복은 매우 제한적이다. 실질임금과 가계소득 하락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뒤로 한 채 사회적 급여가 어떤 경로로 확대될 수 있으며, 확대된다고 해도 지불되지 않는 임금을 복지로 제공하는 수준이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즉 사회복지와 복지국가로 해결 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한국의 신자유주의 복지체제의 특징은 첫째, 국가의 재정 및 정책 권한의 절대성, 둘째, 사회보장체계 상의 다양한 사각지대, 셋째, 노동시장의 분절화와 유연화로 발생한 소득격차 및 고용불안정에 대응할만한 소득지원 및 고용지원 정책의 부재, 넷째, 사회복지 공급체계를 공적 영역이 아닌 시장에서 형성, 다섯째, 정부 주도의 나쁜 일자리 확대가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의 핵심 목표가 되었다는 점 등으로 대표될 수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복지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생산 영역뿐만 아니라 생산영역부분까지 포괄하는 ‘경제-노동-사회’ 정책에 대한 종합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생산영역과 재분배 영역의 분리가 아닌 통합적인 접근에서 시장임금과 사회복지에 대한 구상이 필요하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자본축적 구조의 변화와 모순에 대해 노동만큼은 계급적 이해가 충분히 반영된 운동을 지속시켜야 할 것이다.

노동이 주목해야 할 복지정치의 중요한 대상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따라 사회적 위험이 높은 계층에 대한 실질적인 사회보장이다. 이러한 접근은 보편주의를 반대하는 선별주의가 아니라, 계급모순에 심각하게 노출되어있는 계층에 대한 불평등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소위 사회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가처분소득인 낮기 때문에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비 자원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미래소득이자 노후소득의 기능을 하는 연금제도에서 상당수 배제되어 있다. 사회보험은 사회적 위험이 더 많이 노출된 계층에게 더욱더 예방적인 기능을 수행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회적 위험이 더 큰 집단일수록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사회보험 중심의 소득보장체제에 대한 체제전환에 대한 요구는 복지국가 건설 이상의 노동정치의 의미를 가진다.

 

복지 확대와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재정확충은 선결요건이기도 하다. 이에 증세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들이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증세나 사회보험료 인상과 같은 재원 확충 방안을 과연 노동계급이 주장해야 할 의제인지에 대해서는 고려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복지 확대나 복지국가 건설의 향방이 합리적 정책대결로 가능성 유무가 결정되는 식의 오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책대결은 선거과정에서 중요한 비교 요소이기 때문에 각 정당의 과제가 된다. 이러한 정책 형성에 시민진영과 노동계의 목소리가 담길 수 도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정치는 정당정치와는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어져야 한다. 한 가지 예로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 제공은 자본의 새로운 이윤축적 전략과 노동통제 전략에 기인된다. 그러므로 비정규직의 소득보장을 위해 노동계급의 정치는 계급내부의 사회연대전략과 같은 상호부조보다는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더욱이 최근 자본의 전략은 해고를 빌미로 ‘산자와 죽은 자’로 노동내부를 분열시키고 있다. 보편적인 계급문제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노동자의 단결을 추동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노동자의 보편성은 파편화된 현실에서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러한 다층적인 노동문제가 보편복지로 포괄될 수 있는 영역은 명확하다. 그러므로 반자본적인 계급적 전망을 노동의 복지정치에 투영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책임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의 복지정치는 어떻게 재원을 만들고, 확충해서 복지국가를 달성하느냐의 방법보다는 신자유주의 근본모순을 노동의 영역과 사회의 영역에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자이자 시민이다. 노동권이 발전되지 않은 사회나 한 사회의 발전 단계에서 사회권의 확대는 어렵거나 매우 형식적인 수준에서 머문다. 노동이 자본과 국가를 상대로 투쟁하지 않은 채, 제도화된 사회복지로 삶의 질 향상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쌍용자동차, 유성, 한진 등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심각한 노동문제와 노동권 침해 문제와 복지와 복지국가 문제에 대해 노동계급은 분리된 접근이 아니라 통합적 전술로서 복지정치를 세워가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2011년도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노동자계급과 복지국가”의 일부 내용이 재구성 되었다.

월간 <복지동향> 2011년 07월호(제153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