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10-18   1852

[동향2] 저성장 시대, 지속가능한 보편·생태정의·시민복지로의 전환

저성장 시대, 지속가능한 보편·생태정의·시민복지로의 전환
– 2011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즈음하여

 

김형용│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무상급식으로 시작한 보편적 복지 논쟁은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사퇴 그리고 보궐선거로 이어졌다. 필자도 적극적 또는 역동적 복지사회를 지향하지만, 정치화된 복지가 비민주적 자치에 동원되었던 현실을 돌아보면 우선 씁쓸함이 밀려든다. 미성숙한 지방자치는 복지를 시민의 기본권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조악한 이데올로기로 또는 개인적 치적을 자랑하는 정책도구로 활용하였으며, 복지의 과잉정치화는 오히려 시민들이 서울시 행정에 무관심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이라는 공간적 의미와 시민이라는 주권자가 사라진 상황에서 복지는 단순한 재화와 서비스의 재분배를 둘러싼 통치방식으로만 이해되었고, 시민들의 삶과 생활 관련 의제들은 복지와 무관한 것이 되었다. 이에 새로운 서울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서울시 복지의 비전과 가치를 고민해 볼 때이다. 필자는 그 방향으로 보편, 생태정의, 시민공동체를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복지는 저성장시대를 대비하는 국지적 사회통합 과제로서 중요한 과제이다. 다시 말해 저성장이라는 시대적 조건은 복지를 경제적 복지로만 이해하는 생산성주의 극복을 요구한다. 경제의 장기호황이나 세수의 증대에 기초한 국가복지의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국가가 보호해야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인 것이다. 이에 대한 우리사회의 고민은 매우 일천하다. 오랫동안 잔여적 복지에 익숙한 우리사회의 복지담론은 소득과 일자리에 치우쳐 왔다. 서울형 복지라는 기획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복지란 저소득계층의 의존성을 최소화하고 일자리와 저축을 통한 자립적 복지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의도는 취약계층 및 복지인프라 중심의 기본적 복지예산의 삭감에 대한 정당화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경제와 고용이 더욱 어려운 시대로 진입함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생활안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보육공공성 확보 및 무상급식 등 서민 중산층의 실질적 복지를 실현하는 방향은 전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불가피한 복지예산의 중가와 저성장시대의 재정감소를 그 이유로 들지만, 재정부족의 원인은 복지지출보다는 감세와 토건예산 등 정치적 요소가 매우 강하였다. 한편 세대별 불평등은 계급이 평생경험이 아니라 누구나 일시적으로 경험하는 것으로 전환되고, 특히 청년층은 계급적 지위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이제 복지는 개인과 가족의 불행에 대한 비시장적 보호차원을 넘어선다. 소득의 재분배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기회의 재분배를 강조하고 삶의 정치로서 노동, 교육, 건강, 주거 등에서 발생하는 사회위험을 예방적으로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편적 복지는 불평등 완화와 사회통합을 위한 가장 효과적 수단이다. 그러나 욕구의 다양성과 자원할당의 효율성을 인정하지 않은 일률적 방식은 적합하지 않으며, 더구나 정치적 편가르기에 불과한 논쟁은 매우 소모적이다. 조세제도와 친화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중산층 납세자의 반란도 예견된다. 사실 보편적 복지는 시민들이 직면한 공통의 위험관리에 대응하는 계층·계급·세대간 연대로서, 비정규직·자영업자·여성·청년층의 연대를 포괄하는 것이 우선이다. 따라서 보편적 복지는 생존권과 함께,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고, 자신을 실현할 기회를 주며, 더 광범위한 삶의 관심들과 결합해야 한다. 이를 반영하는 정책과제가 바로 복지기준선 마련이다. 복지는 시민들의 ‘사회적 규범에 따른 욕구’에 기초하는 분배기제로 시장경제에 따른 효율성 위주의 분배방식이 아닌 형평성의 제고와 사회적 통합을 지향하는 재분배를 특성으로 한다. 따라서 사회복지의 특성에 따라 그 사회 내에서 달성해야 하는 복지의 수준이 사회적 합의의 규범으로 제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서울시는 시민들이 누려야 할 복지의 수준을 사회적 기본권으로 제시하고 이에 따른 일정한 책임을 수행할 필요가 있으며, 복지기준선은 법적 규정 혹은 정책이나 행정적 측면에서 목표지향점으로 기능해야 한다. 복지기준선은 시민의 지위와 자존감의 손상 없이 보편적 복지서비스를 경험하는 출발점이 되며, 더 이상 불필요한 보편적 복지-선별적 복지라는 이분법적인 할당논리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또한 실질적인 삶의 질이 개선되는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고, 불평등과 빈곤에 대한 감소에 적극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다. 따라서 복지기준선은 서울시의 지역별 복지격차의 해소, 서울의 특성을 반영한 복지적절성, 복지정책의 목표 및 성과평가 기준으로서 제시되고, 이에 따른 성과가 시민들에게 공표되어 지속적인 개선노력을 가능하게 한다. 

 

 

생태와 정의를 추구하는 복지도 향후 지자체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다. 생태복지란 전체성, 지속가능성,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생태적 사고는 복지를 대상별 사업으로 이해하기보다 시민복지라는 전체론적 조망을 통해 공공과 민간 그리고 복지 이외의 다른 시스템들이 효과적으로 연결되며, 사회적·물리적 환경의 자원을 결집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시민의 삶은 언제나 서울이라는 지역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서울이라는 공간은 개인과 가족, 지역조직과 공동체가 공존하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조건이다. 소규모 단위 생활협동조합과 같이 이해를 공유하는 시민구성원들을 중심으로 먹거리, 육아, 방과후, 문화활동, 돌봄, 장례, 의료, 고용 등에서 참여를 통한 지역성을 복원하고 이를 통한 시민들의 지역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울을 보기 좋은 디자인 도시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정주권을 확보하는 곳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또한 복지는 지속가능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는 일정부분 반성장의 목표를 가진다. 복지는 GRDP와 같은 부의 증대나 중산층 확대를 그 자체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질서의 전면적 개혁을 통하여 시민들이 안정된 공공 및 시민일자리를 확보하고 서울이라는 물리적 지역성 안에서 조화롭게 사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 한편 서울시의 복지는 다양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며, 서울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험하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지역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한편, 보편적 복지가 시민의 사회적 기본권에 초점을 맞춘다면, 사회정의 관점은 사회정책이 시민들을 계급 성 지위 등으로 차별하지 않는 것 그 이상이며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소외계층의 능력고취를 위한 활동을 벌이는 것을 요구한다. 즉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기본적인 생활안정 장치의 구축과 함께 현재의 차별적 구조를 제거하는 데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따라서 서울시의 복지정책은 사회정의에 관한 문제제기와 감시를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지역사회단위의 노력이 가장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서울이라는 지역성을 재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지역 및 직장 등에서 공동체적 경험을 상실함으로서 사회갈등은 증폭되고 연대는 해체되었다. 따라서 취약계층에 대한 제도적 보호로서의 복지뿐만 아니라, 계층계급지역별 격차를 줄이고, 각 사회집단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실험적으로 대안을 생산하도록 시민사회동맹을 조직하고 지원해야 한다.

 

 

보편적 그리고 생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시민복지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역단위의 복지는 풀뿌리 시민-지역공동체가 주도하는 복지이어야 한다. 공공의 단순한 복지서비스의 제공은 수혜자의 능력고취나 집단의 역량을 강화하지 못한다. 자발성과 자발적인 조직화를 통해서 시민들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결정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는 보수적이라기보다는 급진적인 방식으로 서울이라는 지역공동체를 조직화하는 사업을 필요로 한다. 시민들은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서울시에게 지역공동체의 복원업무를 위탁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기반 서비스가 스스로 기획되고 공급되는 자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역재단, 주택조합, 마을만들기 실험이 소규모 지역별로 활발하게 시도된다면, 지역을 살맛나는 복지도시로 만들게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공공재정 뒷받침은 필수적이다. 시민사회의 민주적 자발성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지만 이를 담보할 공공의 적극적인 지원은 여러 시민운동들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 조세감면이나 후원 그리고 자원확보를 위한 시민과 서울시의 협약도 좋은 예이다. 지역재단 및 지역개발기금 육성은 기부금, 마을사업, 공공임대조합주택건설 등에 대한 세금혜택 또는 조례를 통한 지역개발기금 조성(예. 미국의 CDFI Fund)등의 방식으로 주민조직의 마을사업을 지원할 수 있다. 특히 자치구 주민들의 지역재단 설립은 지역사회복지에 있어서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를 추구하는 것이다. 물론 관료적 형식주의를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다.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는 활동이 지속가능한 복지라는 인식이 필요하며, 주민들이 저성장의 위기를 극복하고 이에 대항하며 또한 경제적 정치적 기회를 활용하여 복지욕구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지역주민들이 소유한 리더십, 시민정신, 고용기회, 인적자원, 물적자원 등을 인정하는 것, 즉 주민들이 지역사회를 위한 기술과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로, 비영리 시민활동을 가치있는 노동으로 평가하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서울에 기대하는 이상의 내용들은 그리 새롭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왜곡된 지방자치의 복지담론이 시민들에게 복지의 주체로서 활동할 자치의 영역마저 훼손하는 현실에서, 다만 자신의 삶이 근거하고 있는 지역의 운명을 주민에게 되돌려 줄 것을 희망하는 바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1년 10월호(제1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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