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04-01   2977

[편집인의 글] 중독은 개인 책임이 아니고 사회 책임이다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재활의학과 전문의

이번 호 복지동향은 사회적으로 첨예한 시점에 발간된다. 정치적으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시기이며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료 공급의 대혼란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 채 계속되는 시점이다. 우선 이번 총선에서는 정책이 사라졌다. 특히 복지와 관련된 정책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민생·경제 위기와 정치적 양극화 때문이라고 하지만 애초에 국회의원선거의 단골 주제인 포퓰리즘적 복지공약도 거의 없었다. 집권 세력에 대한 심판선거라도 최소한 정책 방향에 대한 구체적 비판은 많이 나왔어야 한다. 그런데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시장주의적 사회서비스정책과 복지 긴축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마련하기보다는 네거티브 공세에만 열을 올렸다. 그리고 사회복지의 공적영역을 확대하겠다는 주장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의대 증원 방안이 촉발한 의료공백도 이상한 논의구조와 분란만 만들고 있다. 우선 중요한 의료 개혁 과제가 아니라 숫자에 매몰된 의사증원안이 블랙홀처럼 모든 의료 개혁 과제를 빨아들였다. 의사 인력이 의료 공급에서 대체 불가 노동이라고 해도 의료 공급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의사 집단이 직역 이기주의를 표명하며 명분 없는 파업에 나선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도리어 한국사회 의료 공급이 시장화되어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는 날로 더 성행한 측면이 크다. 그런데, 이번 의료대란에서도 공적의료 공급을 늘리자는 정치권의 주장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의료를 시장에 맡겨둔 대가가 의사들의 집단행동인데, 의사 증원은 여전히 시장주의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악순환을 반복하겠다고 한다.

이처럼 현재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매우 분절적이고 시장중심적인 접근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시민 개개인은 살길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 부동산으로 각자도생의 재테크를 해내고,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 시장화된 사회서비스를 잘 선택해야 한다. 결국 우리 사회가 가진 수많은 사회적 문제는 총선을 지나서도 여전히 개인 책임으로 환원될 것이다.

이번 복지동향에서 기획으로 다루는 ‘중독사회’ 문제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수많은 언론에서 중독의 문제점은 다루지만, 문제해결책은 대체로 비슷하다. 한 축은‘엄벌주의’다. 2년 전부터 윤석열 정부가 말하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 같은 방식인데, 사법 권력으로 중독자와 중독물질을 공급하는 자들을 엄하게 다스리자는 주장이다. 다른 한 축은 일종의 ‘국민계몽’이다. 중독의 문제를 널리 알리고 그 피해를 공개해 개개인이 중독을 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이 두 가지 대안은 실제로 일부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중독을 개인 책임으로 전가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고, 장기적으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실제로 약물, 술, 담배 같은 물질중독은 오랜 역사적 맥락이 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스마트폰 중독, 게임중독도 새로운 매체나 기술이 발전되면 항시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TV중독을 해결하기 위한 캠페인이 한창이었다. 당시 젊은이들을 바보상자에서 구하자는 운동이 지금 스마트폰으로 옮겨간 것뿐이다. 즉 중독은 우리 생활에 언제나 가까이 있었다. 하지만 중독자가 늘어나는 것은 새로운 매체나 물질에 대한 규제만으로 해결된 적이 없다. 중독과 불평등, 차별, 혐오는 같은 곳에서 일어난다. 다시 말해 중독이 늘어나는 사회는 결국 개인이 고립되고 개인으로 파편화된 곳이다. 이 점을 이번 호 기획에서는 잘 다루고 있다.

김윤영 교수는 중독 현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중독 대응 정책에 포괄적인 접근 방식을 제안하며, 현대 중독 대응에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지훈 교수는 도박중독을 분석하면서, 특히 최근에 논란이 되는 ‘온라인 도박’의 문제를 다루며, 결론적으로 도박 공급을 막기 위한 대응을 요구한다. 경승구 연구원은 스마트폰 중독 현황과 대응 방식을 정리하면서 청소년기의 중독을 방치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끝으로 장창현 전문의는 임상 현장의 경험을 설명하면서 약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처벌보다는 함께하는 의사결정을 요청한다.

결국 중독 권하는 사회의 핵심 해결책은 함께 해결한다는 맥락과 포괄적인 해결책을 사회적으로 찾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공적으로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를 공급하고, 책임지는 사회적 토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중독물질의 공급을 시장에서 맘대로 할 수 없는 공급자 규제가 필요하다. 중독물질의 공급자가 시장 자유를 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독 해결의 첫발이 아닌가 싶다. 이런 논의의 시발점으로 이번 호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월간 <복지동향> 2024년 4월호(제3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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