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11-01   9760

[편집인의 글] 2025년도 보건복지 예산안, 재정건전성의 신화 속에서 ‘약한’ 복지로 둔갑한 약자복지

이주하ㅣ복지동향 편집위원장,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매년 3월 영국의 재무장관은 정부청사 집무실인 런던 다우닝 11번가(바로 옆 10번지는 총리 관저)에서 약 170년 전 시작되어 예산안 발표를 알리는 상징이 된 빨간 가방을 들어서 보여준다. 이어서 언론은 수많은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시민들은 정부지출 계획이나 세제 개편안에 따른 각각의 유불리를 꼼꼼히 따져본다. 기실 민주주의의 발전은 ‘한정된 자원’인 재정을 둘러싼 오랜 투쟁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근대 헌법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1217년 영국 대헌장(Magna Charta)은 시민들 혹은 그 대표자들인 의회에 의해 국고와 세금에 대한 왕권을 통제하고, 의회의 입법권에 따라서만 조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었다.

선행학습, 초등 의대반 등과 같이 일찍부터 경쟁 시스템에 내몰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서구 복지선진국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을 강조함으로써 어렸을 때부터 시민의 권리로서 민주주의, 노동, 재정 등에 대해 배우게 된다. 한국의 학생들은 대부분이 노동자가 됨에도 불구하고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등을 생각해 볼 겨를이 없는 반면, 시민교육의 역사가 200년이 넘은 프랑스에서는 노동자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물론 월급명세서의 실수령액을 직접 계산해 보게 한다. 독일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모의 단체교섭’을 교실에서 실시해 보고, 핀란드 초등학생들은 지자체 ‘어린이의회’에 참여하여 아동정책 관련 예산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비록 무한경쟁의 전쟁터인 대한민국에서 먹고살기에 바빠서 예산(안)에 대해 충분히 관심을 두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정치는 희소한 자원과 ‘가치의 권위적인 배분(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이라는 점이 2025년 예산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즉 총론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전방위로 진행된 대규모 부자 감세의 결과 올해도 역시 세수 결손이 있었고, 이는 다시 약자복지조차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는 예산안으로 귀결된 것이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서 매년 실행하는 보건복지 예산안 분석(총평과 기초생활 보장, 보육, 아동·청소년복지,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보건의료 등 7개 분야별 예산)을 통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총평에서는 올해 예산이 건전재정을 이유로 법인세 인하 등 부자 감세를 단행함으로써 국가의 재정책임성을 희생하고도 재정건전성 또한 살리지 못한 현 정부의 이중 과오를 지적하였다. 2025년 총지출 예산 중 물가 상승,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의무 지출 예산 증가가 5.2%인 반면 재량 지출 예산 증가는 0.8%에 불과하였다, 125.7조 원으로 정부 총지출 예산의 18.5%를 차지한 올해 보건복지부 예산은 전년 대비 7.4% 증가하였는데, 2024년(11.8%)과 2023년(12.2%)에 비해 증가 폭은 감소하였다.

2025년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전년 대비 5.0% 증액되었지만, 이 역시 작년의 증가 폭(9.3%)에 미치지 못했는데, 수급자 선정 기준 및 보장수준과 직결되는 기준중위소득 산정에 있어서 산출 공식에 의해 도출된 추가 인상분을 규정대로 반영하지 않아 기준중위소득 인상 폭이 제한된 것과 연관이 깊다. 약자복지를 강조함에도 비수급 빈곤층 발생의 주요 원인인 부양의무자 완전 폐지를 위한 정책 의지는 2025년 예산에서도 확인할 수 없으며, 의료급여의 본인부담금 계산방식을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개편함에 따라 저소득 취약계층의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게 된다는 점도 약자복지의 허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초저출생에도 2025년 보육예산은 오히려 전년 대비 2.38% 감소한 10.6조 원인데, 이는 보육 관련 업무가 교육부로 이관되고 아동의 수가 감소한 것과도 연관이 있다. 그러나 질 높은 보육서비스에 대한 예산이 여전히 부족한데, 전체 어린이집 중 국공립 비중이 23%에 불과하지만,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2024년에 이어 2025년에도 큰 폭으로 감액되었다. 보건복지부 소관 아동·청소년 예산도 전년 대비 3.7% 감소한 2.7조 원이며, 여성가족부와 기획재정부의 아동·청소년 예산을 포괄한 다부처 아동·청소년 예산 역시 전년 대비 0.9% 감소하였다.

보건복지부 사회복지 예산의 25.6%를 차지하는 노인복지 예산은 전년 대비 7.2% 증가한 27.5조 원인데, 이는 주로 노인 인구 증가에 따른 순증분이며, 재량적 예산의 증가는 제한적이다. 또한, 노인복지 전반의 부담은 지자체 및 종사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고, OECD에서 가장 높은 노인빈곤율에도 불구하고 공적 연금 강화를 위한 예산은 미진하였다. 2025년 장애인복지 예산은 5.4조 원으로 전년 대비 7.6% 증가하였지만, 등록장애인 수의 증가, 기능성 장애의 가능성이 큰 노인 인구의 증가를 고려하면 장애인복지 예산의 증가는 정책 대상의 확대라 보기 어렵다.

2025년 보건예산은 18.4조 원으로 전년 대비 5.4% 증가하였으나, 2024년에 이루어진 대규모 삭감을 일부 회복한 것일 뿐 실질적 증가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 공적 의료보험의 보장성은 여전히 OECD 꼴찌 수준을 면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금은 법적으로 정한 금액에 미치지 못하였다. 2026년 돌봄통합지원법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지역사회 보건복지 연계 재가서비스 체계 구축 예산은 겨우 물가상승률 수준의 3.6% 증가에 불과하고,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예산이 감소하는 등 지역사회 통합돌봄과 관련된 전달체계 예산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발전주의 국가의 탄생 때부터 시작된 재정건전성의 신화는 (‘기재부의 나라’라는 용어에서도 잘 드러나는) 경제부처의 강력한 정책결정 권한, 보수언론과 대기업의 견고한 영향력, 경쟁 위주 교육체계에서 재생산되는 주류 경제학의 과잉 등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현 정부의 주장과 달리 낙수효과가 없는 대규모 감세가 그러한 재정건전성조차도 악화시키는 상황 속에서 2025년 예산안은 약자복지의 허약함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평균 실종’ 시대에 우리나라 복지예산이 (최소한) OECD 평균에 도달하기 위한 지난한 여정은 결코 멈출 수 없으며, 정치적 투쟁의 결과인 예산(안)에 쓴소리만이 아닌 박수 쳐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해 본다.

월간<복지동향> 2024년 11월호(제313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