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7-10   44324

[기획2] 존엄의 약속과 소득보장의 현실 : 이재명 정부 1년 소득보장 정책 평가

김성욱 |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I. 서론

이재명 정부는 내란·계엄 사태의 종식과 민주주의의 회복, 그리고 직전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심판이라는 시민적 열망 위에서 출범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를 향한 시민의 기대가 헌정 질서의 회복에만 머물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민주주의의 회복이 그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에는 차별과 불평등으로 얼룩진 일상이 회복되고 삶이 조금이나마 존엄해지기를 바라는 열망이 함께 자리한다. 이러한 ‘존엄한 삶’을 떠받치는 토대가 바로 사회보장이다. 이 글은 그 가운데 소득보장에 주목하여, 시민의 생계를 직접 떠받치는 국민기초생활보장과, 기초연금·국민연금으로 대표되는 노후소득보장이 지난 1년 동안 어떤 방향으로 다루어졌는지를 평가한다.

이 글은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이재명 정부의 소득보장 정책은 과연 시민이 바라는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혁되고 있는가. 이는 단순히 급여가 늘었는지를 따지는 데 그치는 질문이 아니다. 보장이 시민의 실제 생활수준을 반영하는 ‘기준’을 갖추었는지, 그 손길이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까지 닿는지, 나아가 그 방향이 권리로서의 보편적 보장을 향하는지 아니면 선별과 억제로 후퇴하는지를 함께 묻기 때문이다. 이 물음이 절실한 까닭은 한국 사회에서 소득보장의 공백이 단순한 불편을 넘어 죽음으로 이어지는 현실이 거듭되고 있어서다(Ⅱ장). 보장의 방향을 묻는 일은 곧 시민의 생존을 묻는 일이기도 하다.

II. 평가의 출발점 : 느린 죽음의 구조

1. 반복되는 비극, 반복되는 대책

2026년 3월, 열흘 사이에 세 곳에서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전북 임실에서 세 명, 군산에서 두 명, 울산 울주에서 다섯 명이었다. 모두 생활고가 배경이었고, 어느 사건도 복지 체계가 닿지 않아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위기 신호가 포착되었음에도 끝내 보호로 전환되지 못한 것이 세 사건의 공통점이었다.

이는 오늘날 새삼 등장한 현상이 아니다. 경제적 곤궁이 일가족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은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하나의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자리 잡았으며(김명숙, 장창곡, 2022), 부모가 맞닥뜨린 위기를 가족 전체의 위기로, 자녀를 부모의 운명과 분리하기 어려운 존재로 여기는 한국 특유의 가족 관념이 여기에 더해진다(이현정, 2012). 더욱 주목할 대목은 그 대책의 목록이 15년째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1년 화장실 3남매 사건에서 2014년 송파 세 모녀, 2022년 수원 세 모녀, 2026년 울주 사건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대응은 한결같이 ‘발굴’의 강화로 귀결되었고, 처방이 반복되는 동안 비극도 함께 반복되었다.

그림1 반복되는 비극과 반복되는 대책(2011-2026)

같은 처방을 15년째 되풀이하는데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물어야 할 것은 처방의 강도가 아니라 진단의 방향과 보장의 충분성이다. 2025년 3월 서울 강남구의 한 반지하에서 숨진 채 발견된 50대 남성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이미 2024년 6월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으로 선정되어 있었고, 사망 전 두 차례나 동주민센터에 도움을 청했지만, 긴급복지지원 예산이 소진되었다는 이유로 끝내 지원을 받지 못했다(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2026). 발굴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발굴되었음에도 내어 줄 것이 없어 죽음에 이른 것이다. 비극의 원인이 ‘발굴의 실패’가 아니라 ‘보장의 실패’에 있음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2. 발굴의 함정 : 찾아도 보호할 수 없는

 그럼에도 정부와 여론의 초점은 ‘발굴’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 위기감지 지표는 45종까지 늘었고 AI 예측 모델까지 도입되었으나, 울주 사건은 발굴과 지원, 안내가 모두 이루어진 상태에서 일어났다. 발굴의 정교화가 그대로 보호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정부는 발굴시스템을 통한 지원 인원이 2015년 2만 명에서 2025년 88만 명으로 늘었다고 강조한다(보건복지부, 2026). 그러나 그 88만 명 가운데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비롯한 공공서비스를 받은 사람은 29.8만 명에 그쳤고(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자는 5.8만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57.9만 명은 후원물품 등 민간서비스로 처리되었다. 발굴 실적은 늘었지만, 그것이 안정적인 공적 보장으로 전환되는 경로는 여전히 좁다. 발굴 시스템이 정교해질수록 오히려 또렷이 드러나는 것은 발굴 이후 보호로 넘어가는 경로의 구조적 부재다.

남찬섭(2025)의 지적은 이 핵심을 정확히 짚는다. 그는 “진짜 잔인한 것은 신청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복지 지출을 억제하려는 기조가 낳은 과도한 관료주의와 선별주의”라고 말한다. 실제로 기초생활보장 사각지대의 가장 큰 원인은 ‘선정기준이 엄격해서’였으며, 송파 세 모녀 또한 급여를 신청했으나 자격을 얻지 못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찾아도 줄 것이 없거나 자격이 되지 않아서’다. 발굴, 즉 신청과 접근의 문제가 아니라 선별주의와 낮은 보장성의 문제인 것이다.

3. 근본적 질문 : 왜 이들은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가

제도의 실패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비극의 반복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왜 이들이 극단적 선택에까지 이르는가’를 물어야 한다. 한국의 자살률은 20년 넘게 OECD 1위로, 2024년 인구 10만 명당 29.1명은 OECD 평균(10.7명)의 2.7배에 달한다. 특히 그해 처음으로 40대에서 자살이 사망원인 1위로 올라섰는데, 이는 이들이 질병보다 절망으로 더 많이 죽고 있음을 뜻한다.

그림2, 한국과 OECD 평균 자살률 비교(2024)


연령별 추이는 한층 더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 15년간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81.9명에서 37.9명으로 54% 감소한 반면, 40~64세 중장년층은 39.1명에서 35.8명으로 8% 줄어드는 데 그쳤다. 2010년만 해도 노인의 자살률이 중장년의 2.1배였으나 2024년에는 그 격차가 1.1배까지 좁혀졌다.

그림3. 노인과 중장년의 자살률 추이(2010-2024)

이 대비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노인 자살률의 급감은 기초연금의 도입과 확대를 비롯한 사회보장 보장성의 확대와 긴밀히 맞물려 있는 반면, 좀처럼 줄지 않는 중장년층의 자살률은 이들을 향한 사회보장의 광범위한 공백과 무관하지 않다. 보장의 확대가 죽음을 줄이고 보장의 공백이 죽음을 방치한다는 사실이 하나의 그래프 안에 나란히 드러나는 셈이다.

자살률의 추이는 경제적 요인과 구조적으로 얽혀 있다. 심리부검 결과 자살사망자의 60.7%가 사망 전 경제적 스트레스를 겪었으며(보건복지부·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2023), 1990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의 지니계수와 자살률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함께 치솟았다가 이후 나란히 떨어지는 동조화 양상을 보였다(여유진 외, 2016).

그림4. 우리나라 소득불평등과 자살률의 장기적 동조현상


이러한 연결은 케이스와 디턴(Case & Deaton, 2015; 2020)이 제시한 ‘절망사(deaths of despair)’ 개념과 맞닿는다. 두 사람은 안정된 일자리와 소득, 사회적 지위가 오랜 기간 침식된 결과가 누적되어 끝내 생명을 위협한다고 보았다. 한국의 중장년이 바로 그러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들은 근로연령대라는 이유로 공공부조의 사각에 놓이고, 노령에 이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후소득보장의 바깥에 머무는 ‘제도의 틈’에 자리한다. 요컨대 소득보장의 공백은 추상적인 빈곤 통계가 아니라 죽음의 문제이며, 보장의 방향은 생존의 방향과 다르지 않다.

4. II장의 함의 : 평가의 잣대

이상의 논의는 이후의 평가에 두 가지 잣대를 제공한다. 하나는 정부의 정책이 선별·억제로 향하는가 아니면 보편·확대로 향하는가이다. 비극의 근본 원인이 선별주의와 낮은 보장성에 있고, 보장성의 확대가 실제로 죽음을 줄여 온 만큼, 보장 수준의 후퇴나 정체는 그 자체로 생명의 문제가 된다. 다른 하나는 보장이 시민의 실제 생활수준을 반영하는 ‘기준’을 갖추고 있는가이다. 이제 이를 잣대로 삼아, 이재명 정부의 소득보장 정책이 실제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III. 이재명 정부 소득보장 국정과제의 평가

평가의 출발점은 정부가 스스로 내놓은 청사진, 즉 국정과제다. 2025년 9월 이재명 정부는 123대 국정과제를 발표하였다. 이 장에서는 그 가운데 소득보장과 직결되는 기초생활보장과 노후소득보장을 앞의 두 잣대, 즉 보장의 방향과 보장의 기준에 비추어 평가한다. 정부는 출범 1주년을 맞아 기준중위소득의 역대 최대 인상(4인 가구 6.51%), 생계급여 인상, 의료급여 부양비 폐지, 국민연금 군복무·출산 크레딧 확대 등을 성과로 내세웠다(보건복지부, 2026). 이러한 조치들이 일정한 진전임은 분명하나, 표방된 ‘안전망 구축’과 실제 보장의 내실 사이에는 간과하기 어려운 거리가 있다.

1. 기초생활보장 : 후퇴한 개혁, 지연된 약속

기초생활보장 분야에서는 대선 공약마저 온전히 수용되지 못한 채, 세 가지 쟁점에서 후퇴와 지연이 확인된다(김성욱, 2025c). 첫째,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또다시 미뤄졌다. 국정과제는 생계급여에 대해서만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추진하고 의료급여는 기준을 존치하는 쪽으로 후퇴하였다. 보건복지부 스스로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 66만 명의 주된 원인을 이 기준으로 지목한 바 있어 그 존치는 문제가 크다. 정부가 1주년 성과로 내세운 ‘의료급여 부양비 폐지’(수혜 약 5천 명)는 부양비 부과를 없앤 조치일 뿐, 부양의무자 ‘기준’ 자체의 폐지와는 전혀 다른 사안이다. 둘째, 의료급여 정률제—1종 외래 정액제를 진료비의 4~8% 정률 부담으로 전환하는 방안—는 2025년 7월 잠정 중단되었으나, 정부는 그 폐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셋째, 보장의 기준인 기준중위소득이 실제 생활수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의 균등화 중위소득 대비 기준중위소득(1인 가구) 비율은 2019년 70.5%에서 2023년 66.4%로 해마다 낮아져 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2026년까지 이 격차(2023년 기준 33.6%)를 보정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기로 하였고, 급여별 선정기준마저 동결하였다. ‘역대 최대 인상’이라는 외형과 ‘벌어지는 격차’라는 실질이 공존하는 것이다.

2. 노후소득보장

노후소득보장의 두 축인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에 대해서도 국정과제는 뚜렷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특히 국민연금에 대해 주은선(2025)은 정부의 연금정책을 “불분명한 노후보장 비전, 불투명한 연기금 정책”으로 요약한다. 국정과제가 공적연금의 체계적 강화보다 논쟁적이지 않은 이슈에 머무르고, 퇴직연금 의무화는 일시금 중심으로 수급되는 현실에서 노후보장으로 이어지기 어려우며, 연기금의 금융시장 활용에 무게가 실린다는 것이다.

그림5. 균등화 중위소득 대비 기준중위소득 비율의 추이(2019-2023)


기초연금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노인빈곤율이 OECD 최고 수준이고, 기초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의 핵심 축임에도 불구하고, 국정과제에는 그 개편 방향이 담기지 않았다. 그 공백은 국정과제 발표 이후인 2026년 3월 대통령의 ‘하후상박’ 제안에서 비롯되어, 충분한 비전이나 사회적 논의 없이 재정 논리와 정치적 계기에 떠밀려 정책으로 굳어졌다. 이 전개는 다음 장에서 본격적으로 분석한다.

3. 소결: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방향인가

 종합하면 정부는 ‘기본사회’와 안전망 구축을 표방하지만, 보장의 수준과 방향을 시민의 실제 생활수준에 맞추어 세우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기초생활보장에서는 공약이 후퇴·지연되고 기준중위소득이 현실에서 멀어졌으며, 노후소득보장에서는 국민연금의 방향이 불분명한 가운데 기초연금의 공백이 재정 논리에 따른 개편으로 메워지고 있다. Ⅱ장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후퇴는 단순한 정책적 미비에 그치지 않고 시민의 생존과 직결되며, 그것의 가장 위험한 형태가 다음 장에서 다룰 기초연금 하후상박 개편이다.

IV. 기초연금 ‘하후상박’ 개편 : 보장 후퇴의 실행

기초연금 하후상박 개편은 앞의 두 진단이 하나의 정책으로 수렴하여 실행되는 장면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보편적 사회수당을 소득별 선별·차등으로 되돌리는 시도로서 Ⅱ장에서 지목한 ‘선별주의로의 회귀’를 노후소득보장에서 실행하며, 다른 한편으로 재정 당국의 지출 억제 논리가 법 개정을 전제로 한 입법의 형태로 추진되는, Ⅲ장에서 진단한 ‘재정에 맞춘 보장 억제’가 가장 분명하게 관철되는 지점이다.

1. 기초연금의 성격과 제도적 연계의 해체

하후상박을 평가하려면 먼저 기초연금이 어떤 제도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이층체계의 한 축으로 설계된 준보편적 수당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단계적으로 낮추면서 그 보상으로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여 A값(국민연금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의 일정 비율을 소득하위 70% 노인에게 정액으로 보장하도록 하였고, 부칙에 ‘2028년까지 A값의 10%로 인상’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2007년 합의는 두 차례에 걸쳐 약화되었다. ‘A값 10% 인상’은 이행되지 못한 채 6년간 5% 수준에 머물렀고, 이어 박근혜 정부 시기 기초노령연금법을 대체하여 제정된 기초연금법(2014년)은 급여를 20만 원으로 올리면서도 급여 산정 기준을 A값 연동에서 물가 연동으로 바꾸었다. 일반적으로 소득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상회하므로, 이 전환으로 기초연금의 상대적 가치는 점진적으로 하락하고, 사회적 표준과의 준거도 끊겼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축소론은 정치적 불이행이 빚은 이 약화된 연계를 거꾸로 제도 변경의 근거로 전용한다.

2. 축소·전환론의 대두와 한계

최근의 논의는 기초연금을 보편적 수당에서 저소득층 대상의 선별적 제도로 바꾸려는 축소·전환론이 주도한다. 그 논거는 대체로 셋이다. 노인인구가 급증하여 현행 수준의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재정론, ‘65세 이상 70%’라는 대상 기준의 근거가 약하고 선정기준액이 이미 기준중위소득에 육박한다는 제도론, 그리고 기초연금을 보편 수당이 아니라 저소득층을 위한 최저소득보장으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규범론이다. 그러나 세 논거는 결국 ‘대상을 줄여 저소득층에 집중하자’라는 하나의 처방으로 수렴한다. 그리고 이 처방을 실질적으로 밀어붙이는 동력은 재정 당국의 지출 억제 논리다. 실제로 2026년 들어 기획예산처가 지출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기초연금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개편의 성과가 빈곤 완화가 아니라 재정 절감액으로 먼저 제시되는 구도가 자리 잡았다. 다만 이러한 축소론이 학계의 합의는 아니다. 개편의 핵심은 오히려 급여 인상에 있다는 견해(이원진, 2026)나 보편적 중층보장으로 나아가자는 구상(김원섭, 2026)도 제시되어 있어, 축소는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축소·전환론은 몇 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 첫째, 차등지급은 빈곤율을 거의 바꾸지 못한다. 기초연금을 두 배로 올리는 경우에도 차등지급과 정액인상의 상대 빈곤율 완화효과 차이는 0.1%p에 불과하였다(김연명, 한신실, 2017). 둘째, 차등화는 보편 지급일 때 가장 효과적인 빈곤 ‘예방’ 기능을 약화시킨다(허수정, 박희란, 2018; 김성욱, 2025a; 2025b). 보편 수당은 빈곤에 빠지기 전 단계의 노인까지 포괄하여 빈곤으로의 진입 자체를 늦추는데, 선별·차등은 이미 빈곤한 이들에 대한 사후 대응으로 그 성격을 좁히기 때문이다. 셋째, 급여의 삭감은 노인을 불안정한 노동시장으로 내모는 충격을 주며, 그 충격이 저소득층에서 더 크게 나타나 정책이 역진적으로 작동한다(김성욱, 2025b). 넷째, 상위 10%를 배제해도 절감액은 전체 지출의 2.62%에 그치는 반면(김성욱, 한신실, 2014), 그 대가로 정액 수당을 선별 부조로 바꾸는 ‘트로이 목마’가 된다. 실제로 3월의 ‘증액분 차등화’ 제안은 석 달 만에 ‘고액 자산가 배제’ 검토로 확대되었다. 다섯째, 국민연금은 아직 미성숙하다. 실제 평균 노령연금은 A값의 22.1%에 그치며, 신규 수급자의 급여가 A값의 29.1%에 이르는 것은 2060년에야 가능하다(남찬섭, 2026). 여섯째, 축소의 근거로 제시되는 KDI(김도헌·이승희, 2025)의 추계는 아무런 정책 개입이 없다는 전제에 기대고 있으며, 그 결과액(2070년 GDP 대비 1.54%)도 OECD 최저 수준인 한국의 공적연금 지출에 비추어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라 보기 어렵다. 일곱째, 기초연금이 국민연금 가입유인을 저해한다는 논거 역시 이를 본격 검토한 최옥금(2020)에서 뚜렷한 근거가 확인되지 않아, 실증의 기반이 약하다.

3. 하후상박의 역설: 작은 빈곤 완화, 큰 성격 변화

이러한 배경에서 하후상박은 대통령의 제안을 거쳐 정부의 정책 방향으로 굳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3월 “월수입 수백만 원 노인과 수입이 없는 노인의 기초연금액이 똑같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증액분을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하후상박을 제안하였고,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하반기 중 개편 확정과 선정기준의 기준중위소득 방식 전환을 예고하였다. 그러나 하후상박은 그것이 내세우는 명분과 달리, 빈곤 완화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하면서 제도의 성격만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이 절은 그 역설을 세 측면에서 검토한다.

첫째, 빈곤 완화 효과 자체가 미미하다. 앞서 보았듯 차등지급과 정액인상의 빈곤완화 효과 차이는 0.1%p에 그칠 만큼(김연명, 한신실, 2017) 미미한 데다, ‘하후’의 주된 수혜자여야 할 최저소득 노인의 다수가 생계급여 수급자여서 기초연금이 늘면 그만큼 생계급여에서 차감되어(정해식, 2026) 실질 소득의 순증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정작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서 ‘하후’의 실효가 가장 약하게 나타나는 역설이다.

둘째, 정부가 개편의 근거로 내세우는 ‘선정기준이 기준중위소득의 96%로 지나치게 높다’라는 논거는 인과를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선정기준액이 기준중위소득에 수렴한 까닭은 그것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져서가 아니라, 비교의 잣대가 되는 기준중위소득 자체가 실제 생활수준만큼 오르지 못하고 억제되어 왔기 때문이다(Ⅲ-1). 또 다른 원인인 자산가격 상승 역시 개별 수급자가 통제할 수 없는 외생적 요인이다. 따라서 올바른 대응은 기준중위소득이 실제 생활수준을 반영하도록 정상화하는 것이지, 정체된 기준에 맞추어 수급 대상을 좁히는 것이 아니다.

셋째, 빈곤 완화 효과가 작은 것과 달리 하후상박이 제도에 남기는 변화는 크다. 그 핵심은 정액 지급이라는 수당의 원리를 소득별 차등이라는 부조의 원리로 바꾼다는 데 있다. 그 결과 국민연금 연계감액과 맞물려 같은 기여에도 더 많이 깎이는 이중 불이익, ‘하후’와 ‘상박’의 경계 부근에서 나타나는 소득역전, 그리고 선별 강화에 따른 수급 낙인과 정치적 지지 기반의 약화(‘재분배의 역설’, Korpi·Palme, 1998)와 같은 부작용이 뒤따른다.

4. 소결: 하후상박은 존엄한 삶을 위협한다

요컨대 하후상박은 급여를 직접 삭감하는 대신 제도의 운영 원리를 바꾸어 장기적으로 보편성과 지지 기반을 잠식하는 체계적 축소(Pierson, 1994)에 가깝다. 이는 기준중위소득 격차의 미보정,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지연과 더불어 ‘재정에 맞춘 보장 억제’의 한 양상이며, 노인 자살률의 급감을 이끌어 온 보편적 보장성을 되돌려 가장 취약한 노인을 다시 빈곤과 절망으로 밀어 넣을 위험을 안고 있다. 결국 하후상박은 단순한 급여 조정이 아니라 시민의 존엄한 삶을 받쳐 온 보장의 후퇴다. 그렇다면 한국의 소득보장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V.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선별·억제에서 보편·확대로

앞의 진단은 하나의 원칙을 가리킨다. 보장의 수준을 재정 여건이 아니라 시민의 실제 생활수준에 맞추는 것, 즉 빈곤을 면하게 하는 최저선을 넘어 적정한 생활수준을 받치는 기준선을 함께 세우는 것이다. 이를 기초생활보장·국민연금·기초연금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제시한다.

1. 기초생활보장 : 미뤄 둔 약속의 이행

먼저 공약대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생계급여뿐 아니라 의료급여까지 포함하여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 66만 명의 상당수가 이 기준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보건복지부 스스로 인정한 바이므로(Ⅲ-1), 그 폐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다음으로 잠정 중단에 머물러 있는 의료급여 정률제에 대해 그 폐지 방침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끝으로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소득과 벌어진 격차(2023년 기준 33.6%)를 보정하여, 기준중위소득이 시민의 실제 생활수준을 온전히 반영하도록 정비해야 한다.

2. 국민연금 : 보장성 제고

기초연금을 비롯한 소득보장이 짊어진 재정 부담의 근본 원인은 국민연금의 불충분한 보장에 있다. 따라서 노후소득보장 강화의 출발점은 사각지대의 해소와 실질 급여의 상향, 즉 국민연금 보장성의 제고에 두어야 한다. 다만 그 성숙에 이르는 이행기 동안 노후소득의 공백을 메우는 일차적 장치는 여전히 기초연금이므로, 두 제도는 분리하여 다룰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기초연금·기초생활보장제도가 맞물려 작동하는 체계 전체를 함께 조정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3. 기초연금 : 공공부조화 중단과 제도정합성 확립

기초연금에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하후상박 추진의 중단이다. 그러나 그 대안이 기초연금의 보편성 위에 저소득 노인을 위한 부조식 보충급여를 얹는 ‘보편적 중층보장’(김원섭, 2026; 정해식, 2026)이 될 수는 없다. 이 방안은 선별주의를 비판하면서 또 다른 선별 장치를 들이는 자기모순일 뿐 아니라, 실효성의 측면에서도 한계가 뚜렷하다. 보충급여가 생계급여에서 차감되어 최저소득 노인에게는 실익이 없고, 두 제도의 소득인정액 산식이 서로 달라 ‘저소득층’을 식별하는 기준조차 어긋나기 때문이다. 요컨대 연계된 제도를 함께 조정하지 않는 한, 어느 한 제도만의 변경은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는다.

이 문제의 해법은 제도 간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하는 데 있다. 노인의 심층적 빈곤은 빈곤에 대응하도록 설계된 공공부조, 곧 앞서 제시한 기초생활보장의 정비가 맡고, 기초연금은 모든 노인을 포괄하는 보편적 수당으로서의 성격을 유지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러한 역할 분담 위에서 기초연금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명목 급여의 단발적 인상에 못지않게 급여의 상대적 가치를 유지하는 연동 방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준연금액은 이미 A값의 11.3%에 이르러 2007년 합의가 설정한 10% 목표를 넘어섰으나, 물가에만 연동하는 현행 방식 아래에서는 노인의 생활수준에 견준 그 가치가 점차 낮아질 수 있다. 이 점에서 급여를 노인의 생활수준과 연동하는 A값 방식의 회복은 기초연금의 실질을 지키는 한 가지 방안으로 검토될 만하다.

VI. 종합 평가 : 존엄의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가

이 글의 답은 절반의 긍정과 절반의 우려다. 정부가 노인빈곤의 완화를 국정과제로 천명하고 기준중위소득 인상, 의료급여 부양비 폐지, 국민연금 크레딧 확대 등 보장을 넓히려 한 것은 분명한 진전이다. 그러나 그 해법의 설계와 추진 방식은 세 층위에서 일관되게 우려를 남긴다. 기초생활보장에서는 공약이 후퇴하고 보장의 기준이 현실에서 멀어졌으며, 국민연금에서는 노후보장의 비전과 기준이 분명하지 않고, 기초연금에서는 하후상박이라는 이름 아래 실효는 작으면서 보편 수당을 선별 부조로 후퇴시킬 개편이 추진되고 있다. 이 세 층위를 관통하는 것은 ‘확대’를 표방하면서도 재정 논리에 따라 선별과 억제로 기우는 지향이다.

이러한 기조는 예산 편성에서도 드러난다. 기획예산처는 2027년도 예산편성지침에서 재량지출 15%와 의무지출 10% 감축을 예고하였는데, 빈곤이 심화되는 국면에서 빈곤층 복지를 향한 감축 압력은 사각지대를 넓힐 우려가 있다. 특히 재량지출로 운영되는 긴급복지지원제도가 이러한 압력에 취약하며, 앞서 본 강남 반지하 사망 사건이 그 비극적 귀결이다. 이 경향이 위험한 까닭은 보장의 후퇴가 그대로 생명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15년간 노인 자살률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 기초연금을 비롯한 보편적 보장성의 확대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상기하면, 그 후퇴가 무엇을 되돌리게 될지는 자명하다.

따라서 개혁은 논의의 출발점을 ‘지출을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에서 ‘시민의 존엄한 삶을 받치는 기준선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로 옮겨야 한다. 그 방향은 보장의 축소가 아니라, 모든 시민을 빈곤과 절망으로부터 지키는 보편적 보장의 확대여야 한다. 올해 안에 수립될 제4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7~2029)은 현 정부 복지정책의 성과를 가늠할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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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복지동향> 2026년 7월호(제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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