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10-08   2143

[기획1] 신자유주의 시대 국가가 설계하는 금융화 : 한국의 연금체계와 연기금의 진화

주은선 | 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노동에 대한 자본의 우위가 뚜렷해진 신자유주의 시대 복지 후퇴의 대표적인 사례가 연금개혁이다. 공적연금 축소와 사연금 확대가 그 경향 중 하나였다면 그 중요한 결과, 혹은 경우에 따라 연금개혁이 추구하는 바는 바로 연금의 금융화이다. 한국 역시 다른 복지 분야에서는 공공복지의 발전과 확대가 주류였던 1990년대 후반 이후에 유독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급격한 삭감이 이루어졌다. 이와 동시에 퇴직연금 도입 및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사연금의 확대가 이루어졌다.

이 글은 이러한 한국 연금제도의 변화를 금융화(financialization)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글이다. 연금제도는 그 지출 규모가 여러 나라에서 GDP의 10%를 상회하는 제도로 ‘적립식’의 재정방식을 활용하는 경우에 조성되는 기금 규모가 다른 어느 사회보장기금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연금제도는 통상 거대한 돈의 흐름을 형성하고, 나아가 재정방식에 따라 자금의 저수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연기금의 금융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것도 연금제도 변화 자체보다는 제도 변화의 결과로서 연기금 부문의 변화이다. 이 글에서는 신자유주의 시기 자본주의와 연기금의 금융화에 대한 이론적 논의와 이에 비춰 바라 본 한국의 경우를 간단히 다룬다.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주의 변화와 연기금 금융화

셰네(Chesnais, 1998)가 말한 ‘연기금의 금융화’ 는 구체적으로는 연기금 팽창과 연기금의 금융시장 투입 확대, 그리고 연기금 운용에 대한 규제 완화 등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변화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러 나라에서는 부과방식 공적연금의 축소와 기업연금이나 개인연금과 같은 사연금제도의 확대, 특히 개인계정 방식의 연금제도 도입, 보험료 인상 및 수급연령 상향 등 지출 축소를 통한 연기금 적립률 제고 등을 들 수 있다.

연기금 금융화는 20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따른 금융 지배적 축적체제로의 전환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연기금 금융화는 이러한 자본의 축적전략 변화의 하나의 요소이다(Chesnais, 1998; Minns, 2001 외). 케인즈주의가 쇠퇴하면서 수요 압박 등으로 인해 생산자본의 투자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자본의 유동성이 높아진 가운데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과잉자본은 국내외 금융부문에서 투기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으로 변화되었다(최원탁, 2004; Chesnais, 1998; 주은선, 2009에서 재인용).

복지국가 위기의 시대에 실물경제 성장 없이, 즉 고용을 창출하는 신규투자 없이, 금융기술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금융자본 위주의 축적 전략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추구되었다.1 금융자본은 상당 기간은 금융시장 팽창 그 자체로부터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주택금융, 신용카드, 사연금, 보험 등이 그 동력이다. 이러한 금융자본의 팽창과 수익률 증가 및 산업자본의 위축은 자본주의의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국면(conjuncture) 변화의 일부였는데, 연기금 금융화는 이와 맞물린 자본의 생존전략 중 하나였다. 이에 연기금 금융화는 ‘금융화’라는 다면적 현상의 하위 범주로 간주되기도 한다(Hassel, Tobias Wiß, 2019; van der Zwan, 2014; Engelen, 2003).

연기금 금융화는 노동소득 일부를 금융시장으로 규칙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입시킴으로써 금융시장 팽창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한다. 연금제도로 인한 금융시장으로의 투자 유입은 그 규칙성뿐만 아니라 양에서도 주목할 만한데, Minns(2001)는 지구적 금융시장 팽창 및 탈규제를 통한 자본주의 전환에 연기금이 여러 요인 중 하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며 연기금 자본주의론(pension fund capitalism)을 전개한 바 있다.

연기금은 일찍이 1970년대부터 금융시장 팽창을 이끌었으며, 연기금 금융화를 주도한 것은 앵글로색슨계 사연금 기금이었다(Farnetti, 1998). 1990년대 이후 연기금 금융화는 글로벌한 현상으로 확산되었다. OECD 국가 전반에 걸쳐 전체 공·사연금체계에서 적립식 연금의 역할이 커지면서 연기금 규모가 크게 증가하였다. 예를 들면 연금자산의 GDP 대비 비율이 1992년에 스위스 78.2%, 네덜란드 75.5%, 영국이 61.9%이었던 것이(Reisen, 2000), 2020년에는 스위스 173%, 네덜란드 212.7%, 덴마크는 229.4%, 영국은 128.6%로 크게 성장했다(OECD Global Pension Statistics, 2020). 사연금시장의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연기금 금융화가 유럽에서도 진행되었지만, 최근까지도 이러한 현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영미권의 사연금시장이다. 연기금 금융화에서 앵글로색슨계 사적 연기금 팽창 속도와 규모는 주목할 만한데, 전 세계 연기금 적립을 초기에 이끈 것은 앵글로색슨 계열의 연기금, 특히 미국 연기금이었다. 미국 연기금 자산 규모는 1980년 6,667억 달러였던 것이 1990년에는 2조 2,573억 달러, 1995년에는 3조 5,714억 달러로 급증하였다(IMF, 1995, p.166; Farnetti, 1998에서 재인용). 미국 연기금의 GDP 대비 비율 역시 1980년 34.6%에서 1993년 68%로 2배 높아졌다. 이러한 연기금의 증가 리듬은 금융지구화와 동조하였다(Farnetti, 1998). 이러한 대규모 연기금 상당 부분이 뮤추얼펀드, 보험회사, 투자회사 등의 기관투자자를 통해 전 세계 금융시장에 투입되면서, 이미 1990년대 중반에 연금자본은 OECD 국가의 총 주식시장 자산 중 40% 이상을 차지하였다(Minns, 2001).

연기금 금융화를 추구하는 연금개혁

연기금 금융화를 가속화시킨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연기금이 대규모 저축을 형성하여 금융시장 팽창을 뒷받침할 수 있게 되는 계기는 첫째, 공적연금제도의 민영화이다. 부과방식으로 운영되는 공적연금의 축소 및 폐지, 그리고 적립방식의 확정기여연금인 사연금 확대라는 쌍둥이 변화(twin process)로 연기금 적립 확대가 가능해진다(Ebbinghaus, 2017). 특히 기업연금 및 개인연금 확대는 사연금 연금상품 시장 규모를 확대시킨다. 한국 퇴직연금제도의 도입과 확대가 그 예이다. 둘째, 통상 비시장 영역이었던 공적연금에 시장 요소를 도입하는 개혁이다. 정부부처가 관리하는 의무가입연금이지만 적립식 개인계정인 스웨덴의 프리미엄연금이 그 예이다. 그 결과 기존 사연금시장에 공적연금시장이 더해진다. 셋째, 지배구조 및 운용방식 변화를 통해 공적연기금 적립을 늘리고 투자수익 향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캐나다의 1997년 CPP 투자위원회법(Canada Pension Plan Investment Board Act) 제정이다.

많은 나라에서 이루어진 민영화, 시장화를 추구한 연금개혁은 사실상 연기금 금융화를 가져온 장치로 해석된다. 즉, 연금개혁은 노동자들, 특히 저소득 노동자의 복지를 담보로 진행되는 자본시장 개혁이자(Ghilarducci and Liebana, 2000; 송원근, 2002), 사회보장기금을 금융자본화하려는 신자유주의적 재편전략의 일환으로 일컬어진다(최원탁, 2004; 주은선, 2009에서 재인용). 더욱이 연금제도 개혁을 통해 개인별 계정이 도입되는 경우에 기존에 집합적으로 운용된 퇴직연금기금이나 공적연금기금은 개인소유 펀드로 해소되고 집합적 성격마저 벗어나게 된다.

한편 연기금이 지구적 금융시장 팽창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연기금 적립 확대뿐만 아니라 운용 탈규제가 필요하다. 탈규제는 개별 국가의 연기금 투자에 대한 제약 제거와 금융시장 전반의 자유화를 포괄한다.2 전자의 예로 ERISA법 제정과 같은 미국 기업연금 투자자유화 조치를 들 수 있는데,3 De Brunoff(1999)는 ERISA법 제정이 자본축적의 금융화 진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고 평가한 바 있다(주은선, 2009에서 재인용). 연기금 운용에서 자산배분 제한 제거, 위탁투자 확대 등 역시 그 예이다. 후자의 예로는 2000년대 주식 붐이 가라앉은 이후에 미국에서 대출규제를 완화하고 파생상품 구성 규제를 제거한 사례를 들 수 있다.

반복되는 금융위기의 근저에는 자본의 이윤율 하락을 금융자본의 이윤율 상승을 통해 극복하려는 이러한 자본의 전략이 존재한다. 연기금 운용의 탈규제와 고수익 추구는 자산 배분에서 연기금의 채권투자 감소와 국내외 주식시장 투입 및 파생상품투자 증가를 가져온다. 연기금 입장에서 주식투자는 매입한 주식을 지불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고, 기관투자가들에게 고수익을 가져다주는 투기활동에 적합하다. 사실상 대부분 연기금은 뮤추얼펀드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기관투자가들에게 위탁되어 자유롭게 투자되는 금융자본으로 전환되어 이윤을 추구하게 된다.

종합하면 연기금 금융화는 금융자본 중심의 새로운 축적체제를 구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였고, 이는 연금제도의 민영화 및 시장화를 추구하는 연금개혁을 통해 촉발되었다. 연기금 금융화는 연기금 적립 및 연금시장의 확대, 연기금 운영의 탈규제, 직간접 투자를 통한 연기금의 금융시장 투입 확대, 위험자산투자 확대 등으로 나타난다.

연금과 금융시장의 결합이 가져오는 결과들

문제는 연금과 금융시장의 결합이 가져오는 결과이다. 첫째, 금융시장의 성장이 금융기업을 승자로 만든 대신 노후소득보장은 지구화된 금융시장 변동에 직접 의존하게 된다. 기업연금의 경우 고용주와 연금상품 판매자들은 금융시장 위험을 개인화시키는 확정기여형 상품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확정기여형에서 금융화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바로 가입자이기 때문이다. 기업연금기금의 단기적 주식거래 증가와 고위험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 증가는 연금수급자가 감수해야 하는 노후소득 위험을 증가시키는 반면, 투자위험 증가는 금융기관과 펀드매니저에게는 이익을 가져온다. 예컨대 2008년 대규모 금융위기 당시 전 세계 연금기금 규모가 약 20%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미국 캘퍼스도 2009년 6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기금규모가 23.4% 감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금제도가 성숙하여 연금급여 지출 부담이 커질수록, 연기금의 유동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기 때문에 연기금의 단기적 투자 경향은 더욱 강화된다. 이는 금융기관의 몫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둘째, 연기금 금융화를 추구하는 연금개혁의 결과는 연금제도의 소득재분배 효과의 감소 및 중간층과 저소득층에 대한 보장성 약화이다. 기여와 투자 성과에 따른 연금급여액이 결정되는 사연금의 역할이 커질 때 연금보장의 계층 차이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노동시장 이력이 짧고 임금이 낮은 사람들이 위험하다. 더욱이 ‘투자’라는 급여 결정 메커니즘 역시 자산과 투자 경험이 일천한 이들에게 불리하여 연금의 계층 차이를 확대시킨다. 달리 말하면 연금제도의 노인빈곤 예방 및 해소기능이 떨어진다.

셋째, 금융시장과 연금이 결합되면서 금융위기는 연금제도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멀게는 대공황기 미국의 소규모 연기금들이 파산한 사례부터 2008년 금융위기, 가깝게는 2022년에도 연기금의 불안정성은 크게 증가했다. 2000년대 초 네덜란드 기업연금들은 금융위기로 인해 기금 규모가 1/3 가량 줄어들면서 노사협상을 통해 기업의 기여금 인상과 노동자들의 기여금 부담을 관철시켰다. 2022년 주요 연기금 수익률이 일본 GPIF –4.8%, 캐나다 CPPIB –5%, 한국 국민연금이 –8.3%, 노르웨이 석유기금(GPFG) –14.1%, 네덜란드 ABP –17.6%였다(보건복지부, 2023).

넷째, 복지국가 발전의 기반이 사회연대였다고 한다면 기존에 전 국민을 포괄하는 공적연금은 다수에게 중심 노후보장제도로 역할을 함으로써 이를 구현하였다. 하지만 금융화된 연금제도는 노후소득보장 수단을 계층별, 개인별로 쪼개놓음으로써 복지국가의 정치적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

다섯째, 금융시장을 통한 노후소득보장이 강조되면서 노후대비를 위해 요구되는 행동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는 개인의 존재방식과 정체성을 변화시킨다. 동일한 공적연금제도 안에서 세대, 계층 간 소득재분배가 이루어지는 제도에 기여하고 보장받는 존재는 위험분산 공동체의 일원이다. 하지만 기여의 상당 부분이 개인 단위 노후보장제도인 사연금에 투입되어 투자자금이 될 때 각자는 연금시장의 소비자, 금융시장 투자자로서 정체성을 갖는다. 이 경우 개인은 노동자이기보다는 투자자로서 금융자본과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해고와 구조조정을 통한 효율성 제고를 옹호하게 된다. 즉, 대중이 현대 자본주의의 노동배제적 성격을 용인하게 만드는 것은 노동배제적인 금융자본주의가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는 주요한 기제가 될 수 있다.

집합적 노후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공적연금기금도 다른 금융자본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희생시키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인수합병 등에 의한 주식가치 상승을 추구한다. 즉, 공적연기금이 투기적 행태를 보이는 다른 금융자본과 다를 바 없어지면서 스스로의 존립기반을 무너뜨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에 이러한 변화는 정작 기여를 꾸준히 하여 연기금을 조성하는 노동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상시적 인수합병을 통한 주식가치 증대, 노동시장 유연화를 노동자가 옹호하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한국: 국가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국가가 주도하는 연기금 금융화

OECD 전체 연기금 자산을 살펴보면, 사연금기금 비중이 훨씬 높으며 공적연기금의 규모나 비중이 의미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나라가 흔하다. 공적연기금 규모가 사연금기금보다 큰 나라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이에 연기금 금융화에 관한 기존 논의들은 시장 팽창의 원동력으로 주로 기업연금, 개인연금과 같은 사연금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Hassel and Wiß, 2019). 그러나 집합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공적연기금의 팽창과 성격 변화도 전 세계 연금자산의 빠른 증가와 밀접하다. 특히 한국은 최근 국민연금기금 규모만 보아도 최근 1,700조 원이 넘었고, 경제규모 대비 공적연기금의 크기가 독보적이다.

한국은 1997년 말 경제위기 이후 구제금융을 계기로 세계은행의 권고를 수용하여 국민연금기금을 공공자금관리기금에 강제예탁하는 규정을 삭제하였다(문현경 외, 2020). 국민연금기금의 운영구조는 변경되었고, 절대액으로는 세계 3위, GDP대비 비율로는 세계 1위 규모의 공적연기금으로 성장하였다. 국민연금기금 대부분 금융시장에 투자되고 있는데, 국민연금기금에서는 2000년대 내내 대체투자, 주식투자, 해외투자 비중은 늘어났고 감수하는 위험 수준은 높아졌다. 수차례 금융위기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주식시장 변동은 채권시장의 그것보다 훨씬 크며,4 연금급여 변동성도 커진다.

국민연금기금은 위탁투자 역시 활성화되었는데 해외채권이나 해외주식은 물론 국내주식, 국내채권 영역에서 그 비중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21년 6월 말 기준 국내주식 투자액 184.3조 원 중 직접운용 비중은 52%이며, 나머지 거의 절반은 위탁투자로 이루어진다(원종현, 2022). 위탁투자는 국민연금기금의 투자결정에서 민간금융기관들의 영향력을 확대시킨다. 정부는 계속 국민연금기금의 탈규제와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였는데 해외주식투자와 대체투자 비중을 대폭 증가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수익률 제고를 명분으로 공적연기금 지배구조에서 가입자 대표성을 약화시키는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공적연기금의 금융화는 집합적인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국민연금기금의 금융화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공적연금 위주의, 기금운용 규제 완화로 인해 이루어진 이 변화는 국가가 직접 주도하여 조절하는 형태의 연기금 금융화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와 구분된다. 예컨대 2025년 국민연금 개혁의 보험료 인상은 앞으로 상당한 기간의 기금규모 증가를 가져온다.

물론 한국에서는 공적연기금뿐만 아니라 사연금에 다양한 세제혜택 제공으로 인해 사연금시장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퇴직연금 시장 규모는 500조 원이 넘었다. 퇴직연금 도입 당시 정부, 특히 경제부처는 금융시장 활성화 효과에 주목하여 이를 적극 추진하였다. 예컨대 2001년 주가지수가 500선 이하로 무너졌을 때, 10월 11일 정부부처는 공동으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장기안정적인 주식수요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기관투자자 육성을 위해” 기업연금법 도입을 추진하였다. 2001년 10월 노사정위원회에서 퇴직연금제 도입 논의가 시작되었다. 당시 퇴직연금시장 전망치는 다양했는데, 대체로 2010년 경에는 퇴직연금시장 규모가 약 50~60조 원 가량 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법정복지 영역의 일부인 퇴직연금이 사연금시장 및 기금 팽창의 중심이라는 점에서 국가의 강제력 역시 연기금 금융화의 이면에서 계속 작동하고 있다. 또한 사연금시장 성장에 대한 조세지원은 보장하는 연금수준을 낮게 유지하는 공적연금정책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지원받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의 사연금 부문의 연기금 금융화 역시 국가의 개입과 무관하지 않다. 요컨대 한국의 연기금 금융화는 국민연금기금이라는 공적연기금이 이끌며, 국가의 세제, 법적 지원, 공적연금 급여 억제 등에 의해 사적연금시장의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국가주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2005년 퇴직연금제도 도입 이후 퇴직연금은 아직 완전히 의무화되지 않았고, 퇴직금과 퇴직연금의 공존 형태로 정책이 계속되고 있다.

연기금 금융화에 대해 한국의 국가는 정보제공이나 관리운영비 조정과 같은 소극적 역할이 아니라 연기금의 정체성 형성과 운영방식의 세부까지 결정하는 매우 적극적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금융화의 시대, 한국 국민연금기금의 집합적 특성과 가입자의 민주적 참여를 포함하는 지배구조 구성은 더욱 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나가며

흔히 시장은 자연스럽게, 국가 개입 없이 형성되는 것으로 상상되곤 한다. 하지만 연금시장의 형성과 연금과 금융부문의 결합은 국가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은 연금제도 개혁과 연기금 운용의 변화를 통해 공적연기금에게 1990년대 말 이후 국내외 금융시장의 팽창 및 금융자본의 이윤창출 영역을 넓히는 역할을 부여했다. 역설적이게도 소위 경쟁과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연금시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국가는 강제력을 동원하여 국민에게 연금상품에 대한 기여와 연금자산 적립 및 투자 의무를 직접 부과하였다. 예컨대 한국 퇴직연금은 공적연금의 일부는 아니지만 법정제도로 결국 제도를 통해 대중에게 투자 의무를 강제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또한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거대 규모의 공적연금기금이 핵심인데 최근 연기금 운용에서는 집합성이 약화되고 있다. 최근 공적연기금 위탁투자가 늘고 있는데 위탁투자는 연기금의 투자를 광범위하게 분산시키기 때문에 일일이 투자처를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즉각적인 고수익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다른 펀드들과 구분하기 어렵다. 나아가 공적연금기금은 작게 분산되어 ‘인내심 없는 금융자본’으로 거듭남으로써 금융자본주의를 지속시키는 물질적, 정서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 미주 |

  1. Dumenil과 Levy(2005)는 자본주의의 구조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의 장기 역사적 국면(conjuncture) 변화를 통해 1966년 이후 미국 산업자본 이윤율이 꾸준히 하락하고 이후 금융자본의 이윤율 증감이 이루어지는 흐름을 실증한 바 있다. ↩︎
  2. 영국, 미국, 이후 유럽까지 금융자본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금융거래 및 투자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약화되었다. 글래스-스티걸법은 1930년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금융부문 통제를 위해 입안된 것으로 은행업과 증권업의 여러 차원 분리를 주 내용으로 하는데, 대공황기에 도입된 글래스-스티걸법의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사이의 구분 조항들이 1999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을 통해 변화된 것이 대표적이다(전창환, 2010). ↩︎
  3. 1974년에 제정된 ERISA법(Employee Retirement Income Security Act)은 기업연금 수탁자들에게 연금재정 책임을 강화시켰고, 동시에 기업연금기금의 주식투자 한도와 같은 연금자산 운용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였다. 이에 기업연금기금은 주식, 정크본드, 벤처 등 위험도가 높은 주식과 채권에 포트폴리오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였다. ↩︎
  4.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주식시장을 볼 때 주식 수익률은 1910년부터 2000년까지 평균 7%로 채권의 1.6%에 비해 높지만, 주식수익률 표준편차는 18.7%로 채권의 3.8%보다 훨씬 크다. 일례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동일한 기여액을 동일한 포트폴리오로 운영한 경우에도 1969년 퇴직 시에는 근로기간 소득의 거의 100%를 연금으로 받게 되는 반면에 1975년 퇴직 시에는 42%만을 받게 된다. 이는 주식수익률 변동에 따른 연금급여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Burtless, 2000).
    ↩︎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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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복지동향> 2026년 10월호(제3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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