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10-01   7524

[복지칼럼] 가난한 이들에게 가닿지 못하는 약자복지

전은경ㅣ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팀장

벌써 20년 전 일이다.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할 최소한의 비용’으로 정의되는 최저생계비의 결정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최저생계비로 과연 한 달을 살 수 있을까?”란 질문을 시민들에게 던졌다. 최저생계비에 대해 ‘높다, 낮다’ 식의 공허한 논쟁이 아니라 최저생계비가 보장해 주는 삶의 수준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보자고 제안했다. 참여연대가 ‘체험’이라는 특별한 캠페인을 기획한 이유는 바로 최저생계비 결정 과정 자체가 비합리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최저생계비는 국민의 소득·지출 수준, 생활 실태, 물가상승률 등의 지표를 종합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계측조사 때만으로 한정되고, 비계측연도의 최저생계비는 물가상승률만을 적용해 결정했었다. 또한 최저생계비는 전물량방식으로 결정이 되었는데 이는 생활에 필수적인 품목의 최저한의 수준을 정하고 이를 화폐가치로 환산하여 최저생계비를 구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생활에 필수적인 품목의 최저한의 수준을 정하기 위해 실계측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어떤 품목을 장바구니에 담을 것인가와 관련한 소모적 논쟁이 계속되었다. 2004년의 경우 실태조사 결과는 휴대폰 보유비율이 95%에 달하고, 가구당 보유대수도 2대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휴대폰은 필수 품목에서 제외되었다. 실생활을 반영하지 못하고 예산 범위에 끼워맞추듯 결정되는 최저생계비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이 빈곤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고, 수급자들은 최저생존비에 불과한 급여로 살아야만 했다.

최저생계비로 한 달을 살았던 체험단들은 “우리 체험단처럼 최저생계비만을 가지고 한 달만 살아야 한다면 잠만 자고, 밥만 먹으면서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 벗어날지 모르는 가난의 늪에서 언제까지 부실한 식단과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최저생계비 인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지만, 최저생계비 현실화는 기본이고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2010년에 진행된 최저생계비 캠페인도 다르지 않았다. 체험단들은 체험을 시작하면서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최저생계비로 누려보리라, 정부가 책정한 최저생계비의 비목별 구성대로 살아보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먹고 자는 것 외에 모든 것이 모험이자 사치인 것을 알게 되었다. 물건을 살 때마다 ‘이건 최저생계비를 결정하는 전물량 방식의 장바구니에 들어가 있는 품목일까’를 고민하며 최저생계비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제멋대로 규정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있다는 진실도 알게 되었다.

갑자기 20년 전 기억을 떠올린 건 내년도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다. 수급자 선정 및 급여 기준으로 활용되어 온 최저생계비는 이후 국민 가구소득의 중위값으로 개편되어 ‘기준중위소득’로 변경되었고, 통계청의 가구 경상소득 중간값에 최근 가구소득 평균 증가율을 반영하여 산정하도록 법도 개정되었다. 그러나 기준중위소득은 산출원칙조차 지키지 않고 결정되고 있고,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0년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기준중위소득을 의결할 때 기초가 되는 통계자료를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변경하면서 그간의 격차를 6년간 단계적으로 해소하기로 한 바 있다. 즉,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스스로 정한 기준중위소득 ‘기본증가율’은 최근 3년간 가계금융복지조사 평균 증가율이 원칙이다. 그러나 중앙생활보장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기획재정부는 기본증가율 2%대의 인상안을 제시했다.

세수 부족 등으로 6~7% 인상이 감당하기 어려우니 물가인상률 정도로 기본증가율을 낮추자고 압박한 것이다. 결국 경제상황과 세수 여건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재정 당국의 보수적인 입장으로 산식값보다 낮은 수준으로 기준중위소득이 결정되었다. 이렇게 실제와 달리 낮게 정해진 기준중위소득은 선정기준을 낮춰 수급자조차 되기 어렵게 만들고, 보장 수준을 낮춰 수급자가 되더라도 수급자로 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과다 의료이용 경향을 막고 합리적인 의료이용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의료급여 수급자의 외래 이용 시 자기부담금을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변경하겠다며 의료급여 개편안을 갑작스럽게 발표하였다. 정부는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의료이용 과다에 대한 근거로 의료급여 수급자와 건강보험 가입자의 1인당 진료비와 외래 일수를 제시하였으나, 이는 건강보험 가입자와 비교해 만성, 중증질환 비율이 높은 의료급여 수급자의 특성상 병원 이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현재도 선지출할 비용이 없어서, 비급여로 인해서, 의료이용을 포기하는 미충족 의료를 건강보험 가입자에 비해 높은 비율로 경험하고 있는데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수급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비용지출 통제에 치우쳐 운영되는 의료급여를 수급자의 높은 미충족 의료 경험을 해결하고 제도에 내재된 차별적 요소들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화하는 것은 정녕 어려운 일인가.

2024년 한국 사회는 부자감세, 긴축재정, 물가폭등, 저임금과 내수경기 위축까지 극심한 민생 위기에 처해 있다. 계속되고 있는 물가인상, 교통비와 전기, 가스를 비롯한 공공요금의 인상은 걱정과 우려를 넘어선 삶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빈곤층의 상황은 더욱 취약하다. 소득 1분위(하위 10%) 가구의 적자가구 비율이 지난 3년간 70%에 달해 동기간 전체가구 적자 발생 비율이 25% 이내인 것과 비교할 때 매우 높은 것이 확인된다. 그런데 왜 정부는 가난한 이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면한 채 ‘약자복지’만을 외치고 있는가.

이번 기준중위소득 결정 과정에서도 복지부 장관은 저소득층을 두텁고 촘촘하게 지원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한층 강화해나가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통해 약자복지를 국정운영의 핵심에 두고 생계급여의 대상을 확대하고 지원수준을 인상해서 가장 어려운 분들의 삶을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약자복지는 실현되고 있을까? 가난한 이들에게 가닿지 못하는 ‘약자복지’를 언제까지 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월간 <복지동향> 2024년 10월호(제3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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