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선ㅣ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4년 9월 4일 보건복지부는 정부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보험료율을 현 9%에서 13%로 연령대별로 속도를 달리하여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2%로 하되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개혁안은 8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했던 국정브리핑 내용에 바탕을 둔 것이다. 국정 브리핑 내용과 발표된 연금개혁안 두 가지를 종합해 보면 정부 연금개혁안은 원칙과 내용 사이에 큰 불일치가 존재한다.
대통령은 연금개혁 원칙으로 노후소득보장 원칙을 말하면서 바로 이어서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지금도 낮은 수준인 국민연금을 미래에 큰 폭으로 깎겠다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던진 것이다. 또한 세대 간 형평성 원칙을 말하면서 현 20대, 30대에게 보험료율을 천천히 올리는 방안을 내놓아 형평성을 달성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2007년 연금개혁으로 인한 청년층의 연금삭감을 메우기에는 턱없는 조치이다. 세대 간 차등 보험료율 인상은 물론 국민연금의 기반인 세대 간 연대를 훼손하고 사회보험 재정부담의 기본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정부 개혁안은 대통령이 말한 또 다른 원칙인 재정안정 면에서는 좋은 안일까? 재정 안정은 연금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제어하는 두 가지 방향의 고민을 필요로 하지만 정부는 미래 연금지출을 줄이는 것에 골몰한 채, 연금수입 확충에 관한 국가책임성은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쪽짜리이다. 국민에게 보험료 인상을 요구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국가의 재정책임 강화 방안도 들어가 있어야 정상이다. 물론 정부가 앞으로 아무 비용도 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사적연금에 더 많은 세제 혜택을 주어 개인연금을 더 키우겠다고 한다. 즉, 정부의 재정지원은 국민연금이란 공적연금이 아니라 사적연금을 향해 있다.
정부는 연금개혁에 대해 노후소득보장, 세대 간 형평성, 재정안정성이란 세 원칙을 말했지만, 내용을 보면 이를 균형있게 달성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도대체 정부 연금개혁안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길래 이런 평가를 하는가?
국민연금 인상인가, 삭감인가?
정부 연금개혁안 중 국민연금 수준과 관련된 내용은 소득대체율 42%와 자동조정장치다. 먼저 소득대체율 42%에 대해 살펴보자. 소득대체율은 가입기간과 소득에 따라 연금액을 정하는 기본요소다. 이번에 발표한 ‘연금개혁 추진계획’에서 정부는 소득대체율 42%로의 ‘상향’안이라 기술했다. 사실 소득대체율 42%는 2007년 국민연금 개혁 이래 매해 떨어지고 있는 국민연금의 삭감을 중단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2007년 60%에서 시작해 계속 떨어져 2028년 40%까지 떨어질 예정이다. 그런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2024년 현재 수준인 42%로 유지해서 국민연금 삭감을 중단하자는 것이다. 이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국민연금 수준을 현행 ‘유지’하자는 안이지 복지부가 말한 대로 연금을 ‘상향’하는 안이라 보기 어렵다. 즉 42% 안은 지금의 저연금체제를 유지하자는 아이디어이다.
물론 상향이라 말하든 유지라고 말하든 중요한 것은 소득대체율 42% 안이 대통령이 브리핑에서 제시한 노후소득 보장 강화라는 연금개혁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수준인가 하는 것이다. 불과 몇 달 전에 이뤄진 시민 공론화 과정에서는 보험료를 13%로 인상하되 소득대체율도 50%로 함께 올리는 안이 시민대표단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정부안의 소득대체율 42%는 시민공론화안 소득대체율 50%와 차이가 크다. 생각해 볼 것은 시민대표단 다수가 소득대체율 50%를 선택한 이유이다. 이는 무엇보다 노인빈곤을 예방하는 장치로서 지금 국민연금 급여 수준이 지나치게 낮으며, 이대로 유지되거나 더 떨어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정부 자료에서도 언급하듯이 다른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들, 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임금 소득자가 확보하는 의무연금 소득대체율은 평균 51.8%인데 비해 한국은 31.2%에 불과하다. 차이가 크다. 10년 이상 보험료를 기여해야 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 노령연금액 평균도 2024년 현재 60만 원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지금 국민연금이 노인빈곤을 방지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적연금이 이대로 간다면 약 40년 후에도 노인빈곤율이 25~30%에 달할 것이라는 점이다.
소득대체율 42% 안은 현재의 저연금체제를 유지하는 안에 가깝다는 점에서 고령화 국면에서 더욱 심각해질 노인빈곤 문제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지금대로라면 청년세대가 더 오래 연금보험료를 내더라도 2030년대, 40년대, 50년대에 국민연금의 수준은 제대로 올라가지 못한다.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안을 ‘더 받는 안’이라고 포장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이다.
‘자동조정장치=자동삭감장치’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안을 왜 국민연금 유지, 혹은 연금 삭감 중지안이 아니라 사실상의 ‘연금 삭감’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바로 자동조정장치 때문이다. 자동조정장치란 복잡한 용어는 연금액 삭감이란 핵심 내용을 가리고 있다. 자동조정장치란 인구, 경제 등의 사회 변화를 반영하여 연금액, 연금 수급연령 등 제도 내용을 사회적 논의나 입법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당연히 고령화 국면에서 대부분 연금액을 떨어뜨리는 기능을 한다. 정부가 제시한 자동조정장치는 국민연금의 물가연동률을 기대수명, 가입자 수 변화 등 인구 요인을 반영하여 자동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은 매년 물가와 연동해 연금액의 가치, 즉 노인의 구매력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장수 위험에 대처하는 핵심 기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령화 국면에서 자동조정장치가 작동하면 국민연금은 물가인상률보다 낮게 오르거나, 심한 경우 정체된다. 자동조정장치가 작동하면 국민연금의 실질 급여 수준(real benefit level)이 떨어진다. 이 내용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자동조정장치가 작동해도 전년도보다 연금액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올해 70만 원인 국민연금이 10년 후에 70만 원이어도 연금 수준이 유지된 것이라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연 타당한 논리인가? 자동조정장치가 국민연금액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것이 정부 자료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기금 소진 연도를 뒤로 미루는 효과가 있겠는가? 정부가 안으로 예시한 물가 슬라이드 방식을 적용하면 평균소득자 기준 생애 총연금액이 약 20%가량 삭감된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더욱이 정부가 제시한 자동조정은 더 나이가 많은 고령노인의 빈곤 위험을 크게 높인다. 매년 물가연동률을 떨어뜨린다면 결국 시간에 따라 연금액 삭감 효과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연금을 오래 받을수록 연금 삭감 폭, 즉 실질급여 감소 효과는 커지게 된다. 이것이 노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파괴적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고령노인일수록 저령노인보다 빈곤율이 높다. 한국에서 공적연금을 늦게 도입하여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령노인은 저령노인보다 노동소득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자산을 소비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과 같은 사적연금을 국민연금 삭감을 메울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사적연금은 재분배 요소도 없고, 종신지급이 아니며, 제대로 물가연동도 되지 않는다. 즉 장수위험에 별로 소용이 없다. 더욱이 통계청의 ‘2022 연금통계’에 따르면 퇴직연금 수급자는 노인 중 0.2%에 불과하다. 결국, 고령노인은 빈곤 위험에 더 취약하며, 이들에게 국민연금은 실질가치가 유지되는 안전망으로 그 중요성이 크다. 사적연금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국민연금에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는 것은 대표적 약자인 고령노인의 빈곤 위험을 증폭시킨다. 이는 약자복지를 말하는 정부가 내놓을 만한 대안은 아니다.
자동조정장치는 말 그대로 자동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연금액을 깎을 때 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 있어 정부 입장에서는 편리하다. 이는 국민연금이 가져야 할 안정적 보장기능을 크게 훼손시키는 경우에도 정치적 부담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정부가 이런 안을 공식적인 연금개혁안에 포함할 때 더욱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고민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걸까?
자동조정장치를 포함한 정부 연금개혁안은 결국 그렇지 않아도 낮은 국민연금액을 더 깎자는 방안이다. 노인빈곤율이 40%에 이르는 상황에서 아직 국민연금 평균 수준은 생계급여인 71만 원에도 이르지 못하고 수급자 3분의 2의 연금액은 그 이하이다. 이 상황에서 연금삭감안은 보통이라면 내놓을 수 없는 방안이다. 그렇지 않아도 낮은 국민연금을 더 깎자는 정부가 노인 빈곤과 공적 노후소득 보장에 대해, 약자복지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정말 미래세대를 위한 개혁안일까?
정부 개혁안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4%p 올리는 것이다. 이는 시민공론화 과정에서 다수가 선택한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 방안에서 소득대체율 50%는 빼고 보험료율 인상이란 반쪽만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방식이 이상이다.
정부가 제시한 소위 세대 간 형평성을 실현하는 핵심 수단은 바로 보험료율 인상을 연령대별로 차등화시키는 것이다. 사실 세대 간 공평성에 문제가 야기되는 이유는 2007년 이래 계속되는 국민연금 삭감 때문이다. 계속되는 국민연금 삭감의 영향을 크게 받는 후세대일수록 국민연금은 더 낮아진다. 국민연금에 늦게 가입하는 후세대일수록 더 오래 가입해도 더 많이 연금이 줄거나 혹은 정체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60%에서 42%까지 깎여나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이러한 정통의 조치를 피하다 보니, 결국 보험료 인상 속도를 출생연도에 따라 차등화시키는 이상한 방안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정부 안은 현재 9%인 보험료를 13%까지 올리는데, 2025년 기준 20대, 30대, 40대, 50대의 보험료 인상 속도를 각각 다르게 하는 것이다. 연금보험료를 50대는 매년 1%p씩 4년에 걸쳐, 40대는 0.5%p씩 8년에 걸쳐, 30대는 0.33%p씩 12년에 걸쳐, 20대는 0.25%p씩 16년에 걸쳐 올리는 것이다. 이 조치는 2025년에 시작하면 2040년에 완료된다.
이런 식의 보험료 차등 인상은 우선 그 기본 구상에 문제가 있다. 정부 안에 따르면 2025년부터 2039년까지 무려 15년 동안 국민연금은 출생연도에 따라 서로 다른 보험료율을 적용하는 갈기갈기 쪼개진 제도가 된다. 출생연도별로 기여에 이렇게 차등을 두는 것은 세대 간 연대에 기초하는 공적연금의 기본 운영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사회보험료는 소득수준에 따라 부담해야 한다는 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같은 200만 원 소득의 노동자라면 같은 수준의 보험료를 기여해야 하며, 500만 원 소득의 노동자는 그 소득에 비례해 더 많은 보험료를 기여한다는 원칙이다. 하지만 정부안은 소득수준에 따라 부담도 비례한다는 사회보험 원칙을 무너뜨린다. 약간 과장하면 15년 동안 출생연도에 따른 차별대우를 하자는 안에 가깝다.
구체적 작동에서도 정부의 출생연도별 보험료 차등 인상안은 비합리적이다. 정부 안에 따르면 2028년에 1975년생에게는 보험료율 13%를, 1976년생에게는 11%를 적용한다. 출생연도 1년 차이로 75년생과 76년생은 소득이 같아도 매달 내는 국민연금 보험료가 8년 동안 서로 다르다. 85년생과 86년생, 95년생과 96년생은 더 긴 기간 동안 소득이 같아도 매달 내는 국민연금 보험료 차이를 감수해야 한다. 과연 75년생과 76년생은, 85년생과 86년생은, 95년생과 96년생은 서로 다른 세대인가?
이렇게 보면 정부가 제시한 보험료율 차등인상 방안에 ‘세대’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정확히 세대를 기준으로 하는 차등 인상방안도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제도 운영의 복잡성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장기간의 보험료 차별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즉 특정 연도 출생자에게 상당한 기간 보험료 부담이 더 커지면서 생기는 부정적인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누군가의 삶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기본 구상과 구체적 작동의 결함, 불 보듯 뻔한 특정 연생에 대한 고용 패널티라는 부정적 영향까지 수많은 문제점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안을 정부의 공식 연금개혁안에 담은 것은 섣부르다. 여기서 다시 자동안정장치까지 종합해서 보면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미래세대의 노후보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제시한 자동조정장치 발동 시점은 2036년, 2049년, 2054년이다. 정부안대로라면 청년세대가 국민연금 수급자가 되면 자동조정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청년세대의 연금액은 크게 깎일 수 있다.
정부 연금개혁 추진계획에서는 세대 간 형평성 제고를 자동조정장치 도입 근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세대 간 형평성을 말하면서 미래세대 급여 삭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달리 표현하면 보험료 인상을 늦추는 방식으로 찔끔찔끔 되로 주고, 자동조정을 통해 말로 뺏어가는 안인데, 이것은 청년세대에 보험료 인상 속도를 늦춰줄 테니 수용하라고 제안할 만한 개혁안이 아니다. 미래세대를 위한 국민연금이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그것뿐일까? 보험료를 출생연도에 따라 차등화시킴으로써 굳이 세대 간 연대 기반을 뒤흔들고 사회보험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국민연금이 세대 간 연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500명의 시민대표단이 다수안으로 선택한 ‘소득대체율 인상을 통한 적정 연금 보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에 더해 1천조가 넘게 쌓인 국민연금기금 일부를 공공주거, 고용 창출, 공공사회서비스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 이를 통해 사회를 통째로 바꿔 청년이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도 우리 사회가 결심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약자복지 면에서는 충분한가?
윤석열 정부는 약자복지를 말한다. 연금개혁안에서도 약자, 즉 저소득노인에 대한 노후보장을 개선하는 두 가지 조치를 내놓긴 했다. 하지만 획기적이지는 않다.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40만 원을 집권 중반을 넘는 2026년에 저소득노인부터 올려 나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사이 물가연동을 통해 기초연금은 현재 33만 4천 원까지 올라왔고 2026년에는 36만 원에 육박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저소득노인에게 기초연금을 40만 원으로 먼저 올려주는 것이 도움은 되겠지만 대선 당시 공약처럼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올려주는 큰 폭의 인상안은 아니다.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를 받는 빈곤노인에게는 기존처럼 생계급여에서 기초연금을 전부 빼고 지급하지 않고 기초연금 일부는 주겠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사실 생계급여에서는 기초연금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같은 다른 사회보장급여도 제외하고 지급한다. 생계급여에서 국민연금 등은 다 제외하고 지급하면서 기초연금만 예외로 다루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적어도 약자복지를 제대로 하려면 사회보장제도 원칙에 맞는 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보수가 책임지고자 하는 약자의 범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빈곤 노인 전체가 생계급여를 받고 있지는 못하다. 빈곤노인 중에서도 선별된 노인인 약 10%만 생계급여를 받는다. 소위 엄격하게 선별된 약자인 빈곤노인에게만 혜택이 있는데 약자복지를 제대로 하고자 한다면 빈곤노인의 범위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는 저소득노인에 대한 소득보장 강화의 필요성도 크다. 요컨대 정부 연금개혁안에서 돌보고자 하는 약자의 범위는 상당히 제한적이며, 소득보장 강화 조치 역시 부분적이다. 나아가 최저보장 기준도 불분명하다.
정부 연금개혁안을 보면 윤석열 정부는 약자의 발생을 막는 복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즉, 빈곤 노인의 양산을 막는 장치, 적정보장으로 빈곤을 예방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을 강화하는 데에는 무심하다. 향후 노인 대다수를 포괄할 소득비례연금인 국민연금의 보장수준은 현행 유지하거나 삭감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종합하면 매우 제한적인 대상에 대해 파편적으로 기초연금을 인상하고 노후보장 기본 틀에서 연금급여를 삭감하는 일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그 결과 기여식 국민연금제도와 생계급여나 기초연금의 보장수준이 충돌한다. 워낙 공적연금 보장수준이 낮은 가운데 기초연금을 어떤 형태로든 강화하는 것은 의미 있다. 하지만 10년 이상 보험료를 내야 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을 떨어뜨리게 되면 국민연금은 다른 비기여 제도와 차별화된 기능을 할 수가 없다. 즉, 노후빈곤 예방을 위한 보장제도로 제역할을 하기 어렵다. 까딱하면 소위 약자복지라는 것이 공적 노후소득보장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대통령은 왜 국회 연금개혁 논의를 종결시켰나?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윤석열 정부가 이전 21대 국회 연금개혁 논의를 중단시켰던 명분은 분명히 구조개혁이었다. 시민 공론화 과정에서 국민연금 보험료 13%-소득대체율 50% 안이 다수의 지지를 받으면서 국회에서 여야가 보험료율 13% 안과 소득대체율 40% 또는 50% 안 사이에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국면에서 대통령은 부분적인 개혁이 아니라 연금구조개혁을 해야 한다며 당시의 여야 협상을 중단시킨 바 있다. 집권 초부터 “연금개혁이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했으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막상 정부 연금개혁안에 포함된 기초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에 관한 내용은 국민연금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조정 문제와 별개로 논의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정부 개혁안에는 자동조정장치를 넣었기 때문에 재정지속성 면에서 이전 국회 논의와 차별성을 가지며 근본적인 대안이 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정부 계획안에서조차도 바로 발동시키자고 주장하고 있지 않다. 이는 지금 2024년의 국민연금개혁 논의 의제에 자동조정장치 도입 문제를 반드시 포함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정부 안 내용 대부분은 지금 국민연금 개혁을 논의할 때 반드시 함께 제시해야 하는 것들이 아니다.
정부의 연금개혁안을 보면 국회의 연금개혁 협상을 중단시킨 이유로 제시한 근본적 구조개혁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점에서 기존의 부분개혁 논의를 중단시킬만한 것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로지 남는 것은 시민공론화 다수안보다 훨씬 못한 소득대체율 42%뿐이다. 정부는 그냥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시민공론화 과정에서 다수가 선택한 대로 제대로 올리는 것이 하기 싫었던 것뿐이었을까?
승자는 누구인가?
큰 틀에서 정부 개혁안을 요약하면 국민연금 축소와 사적연금 확대다.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인 연금개혁 전략이다. 정부가 제시한 방안은 퇴직연금 의무화와 개인연금의 세제 혜택 확대다. 이는 사적연금시장의 규모를 한층 키워줄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사적연금 시장은 정부의 세제 혜택을 통해 성장해왔다. 통계청의 ‘2022년 연금통계 결과’에 따르면 퇴직연금 가입률은 31.1%, 개인연금 가입률은 19.2%이다. 65세 이상 노인 중 이를 받는 사람의 비율은 퇴직연금이 0.2%, 개인연금이 4.2%에 불과하다. 정부의 퇴직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은 가입률이 90%가 넘는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지원 규모인 1조 원을 크게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매해 상당한 세제 혜택을 주었어도 사적연금 가입률과 수급률은 무척 낮다. 사적연금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해도 연금상품 수수료는 지불되며, 이는 금융회사에 중요한 수입원이다. 사적연금이 노후소득 보장기능을 제대로 못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더 많은 세제 혜택으로 국민들을 사연금시장으로 끌어들이겠다고 한다. 사적연금 가입률은 정확히 계층에 따라 나뉜다. 정부의 더 많은 사적연금 세제 혜택은 누구의 노후보장에 도움이 될까?
이에 더해 1천조 원이 넘는 글로벌 연기금인 국민연금기금에서 위험자산 투자 비중을 대폭 늘리겠다는 정부 계획도 금융기관들에는 중요한 뉴스다. 정부는 연기금 수익률을 연평균 1% 높이는 것을 개혁 내용으로 내놓으면서 사모펀드 투자, 부동산 투자 등과 같은 대체투자 비중을 2023년 기준 15.9%에서 더 높여나갈 것이라 밝혔다. 사실 정부 연금개혁 방안에 포함된 연기금 수익률 1%p 향상은 그 자체로 개혁방안이 될 수는 없다. 수익률은 정책이 아니라 정책과 우연이 합쳐진 불확실한 결과의 영역이니 말이다. 여하튼 정부는 이를 명분으로 국민연금기금 투자방향을 바꾸는 조치를 제시했다. 정부가 연금개혁계획안에서 늘리겠다고 밝힌 대체투자, 즉 부동산, 해외자원개발 등 인프라 투자, 사모펀드 투자 등은 투명한 투자가 되기 어렵고, 윤리기준을 지키기 어려운 투자인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깜깜이 투자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국민연금기금은 GDP 대비 비중으로 보면 세계 1위의 공적연기금인 만큼 이러한 연기금 운용의 변화는 대체투자를 주로 하는 투자회사들에게 커다란 기회의 문을 열어 줄 것이다. 정부 연금정책을 통해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위험 수준이 높아질 것은 명확하다. 국민연금기금 운용에서 위험자산 투자비중 확대는 입법사항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권을 가진 영역이다. 이미 연기금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이해당사자 대표들 상당수는 친정부 조직들로 교체되었다. 정부 연금개혁안의 많은 내용이 비판받고 무산되더라도 이것 하나는 남을 수 있다.
정부안대로라면 우리 국민들의 노동소득 중 훨씬 더 많은 부분이 국민연금기금 운용 변화와 사적연금 시장을 통해 금융시장, 특히 글로벌 대체투자 부문에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연기금이 줄어들지 않는 한 이는 국내외 금융자본에 엄청난 수익원이 될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은 직접적인 운용 수수료를 통해, 그리고 시장 팽창 효과를 통해 상당 기간 금융자본에 먹거리가 될 것이다. 국민연금 지급액을 줄여서라도 연기금을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 그들에게 유용한 이유이다. 다수의 연금이 줄면 금융자본이 살찐다.
윤 정부 개혁안은 보수정부의 개혁안일까?
우리나라는 급속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번 정부 연금개혁안에서는 지금의 노인 빈곤을 빠르게 해소시켜야 한다는 절실함을 찾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미흡한 노후소득 보장, 빈곤, 불평등에 대한 정부 인식이 안일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도 낮은 국민연금을 더 깎는 방안을 내놓을 수는 없다.
정부는 ‘노후소득 보장’ 원칙을 말하면서도 국민 대다수에게 핵심 노후보장 장치인 국민연금의 적정보장 기준과 목표, 이를 보장하는 수단에 대해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말하지 않는다. 원칙은 선언한다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보수주의 정부가 추구할 법한 국민통합과 국가의 적극적 책임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출생연도별 보험료 차등인상 안이 갖는 분할 효과도 그렇지만, 소위 다층연금을 말하면서 상층은 사적연금으로 하층은 기초연금 강화로 대응한다는 구상도 그렇다. 계층분할적인 노후소득보장체계 구상이라 할 만하다. 물론 우리 사회 현실에서 웬만한 상위소득계층이 아니고서는 사적연금으로 제대로 보장받기도 어렵고 하위소득계층도 기초연금으로 충분히 보장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국가가 보호하는 약자의 범위는 너무나 제한적이다.
재정책임으로 드러나는 국가의 책임성은 사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에서만 명확하다. 국가의 연금지급 보장 규정 명문화도 이전에 비하면 일보진전이라 할 만하지만, 이를 자동조정장치와 함께 도입한다면 국가가 구체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은 많지 않다. 고령화 비용은 주로 노인이 연금 삭감으로 부담하게 되니 말이다. 더욱이 연금 지속성에서 가장 큰 부분인 출생, 고용, 주거 및 돌봄 등 연금제도의 사회적 기반을 변화시키기 위한 국가의 리더십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사적연금 시장 확대를 위한 전략과 국민연금기금 운용 변화를 향한 정부의 의지는 뚜렷해 보인다. 이렇게 보면 윤석열 정부는 보수주의 정권에 기대되는 노후보장에 대한 국가책임을 구현하는 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후소득보장, 재정안정, 세대 간 연대라는 면에서 균형 있는 해법을 찾는 것이며, 그 단초가 될 연금개혁을 시작하는 것이다. 십여 년간 진행된 연금개혁 논의에서 2024년 시민에게 주도권을 부여한 시민공론화는 의견 수렴을 촉발시켰다. 개혁을 향한 중요한 진전이었다. 반면에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논의 구조를 더욱 분산시켜 놓은 것이어서 개혁 논의를 퇴행시킬 것이 우려스럽다.
※ 이 글은 대안담론 공론화 플랫폼, 소셜코리아에 게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보완해 게재한 글입니다(윤석열식 파괴적 연금개혁… 이러려고 공론화 합의 무시했나)
월간 <복지동향> 2024년 10월호(제3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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