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하ㅣ복지동향 편집위원장,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새해의 소망과 다짐은 가지각색인 만큼 개개인들에게 저마다 삶의 소중한 의미를 깨우치게 해준다. 매년 복지동향도 한 해를 알리는 1월호에 그 당시의 주요 관심사 혹은 해결해야 할 난제에 주목하였는데, 2024년 1월호는 “저출생 시대의 대전환”, 2023년 1월호는 “작은 정부의 조직개편과 인원 감축”, 2022년 1월호는 “기로에 선 통합돌봄, 경험과 과제”, 2021년 1월호는 “시민사회 회복과 제3섹터 복지”를 다루었다. 주지하듯이 2025년 새해 벽두의 화두는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이라는 초유의 사태이다. 이에 올해에는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한 방편으로, 동시에 새해맞이 풍경이자 복지‘동향’의 이름에 걸맞게 해외 복지국가의 동향을 톺아보고자 한다.
먼저 김보영 교수는 복지국가 발전 과정에서 ‘제도적 선도성’(전후 현대 복지국가 태동-대처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신노동당의 ‘제3의 길’)을 보여주었던 영국이 노동당의 재집권 이후 새로운 복지국가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2010년 이후 보수당 정부는 뚜렷한 비전이나 체계적 전략이 부재한 채 긴축정책으로만 일관한 결과 NHS 포함 공공서비스는 질적 저하로 위기에 봉착하였으며, GDP 대비 국가부채는 6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였다. 2016년 브렉시트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는데, EU 탈퇴로 인한 경제성장 둔화는 GDP를 4% 감소시켰고, 이는 다시 공공서비스 투자 여력을 더욱 제한하였다. 2021/22년 기준 영국 인구의 22%(1,440만 명)가 빈곤 상태에 있는데, 이는 70년대에 비해 50% 증가한 수치이며, 이 중 극심한 빈곤층은 600만 명에 이르렀다.
13년 만인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한 키어 스타머가 이끄는 노동당은 이전 당대표인 제레미 코빈 시기의 급진적 정책들을 수정하여 실용주의적 노선으로 선회하였으며, 노동의 가치를 회복하고 모든 시민의 기여가 존중받는 새로운 사회계약인 ‘기여 사회(contributory society)’를 비전으로 제시하였다. 신노동당의 제3의 길이 ‘사회 투자’를 통한 간접적 성장전략을 추구하였다면, 스타머 노동당의 전략은 국가의 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공공투자에 기반을 둔 경제성장과 생활 수준 향상인 것이다. 또한 의료, 돌봄, 교육 등 공공서비스 강화를 위한 80억 파운드(약 13조 3천억 원) 규모의 증세를 계획하고 있는데, 결국 이러한 정책들이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지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김진석 교수가 살펴본 스웨덴의 현재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던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전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2021년 스웨덴의 지니계수는 0.333으로 197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고, 2011년부터 노르딕 국가 중에서 빈곤 위험률이 가장 높았으며, 영리 의료서비스 제공자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총기 사용 집단 범죄 조직과 범죄율 증가로 인해 최근 유럽에서 가장 안전하지 않은 나라라는 오명을 쓰기에 이르렀다. 스웨덴 언론과 일부 우익 정치인들은 이를 전체 인구의 25% 수준에 이르는 외국 출생자, 즉 이민자의 문제로 치환하고 있으며, 사회복지 지출의 65%가 이들에게 사용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회민주당이 여전히 의회 내 제1당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2022년 선거의 결과 중도우파 연합(보수당-기독민주당-자유당)이 원내 제2당의 지위에 오른 극우성향 스웨덴민주당의 암묵적 지원 아래 중도우파 연합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보수 연정의 총리 하 스웨덴은 ‘더 풍요롭고 안전한 스웨덴’을 슬로건으로 범죄에 연루된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조기 대응을 강조하고, 난민을 포함한 이민을 적절하게 규제·관리하고 있으며, 복지제도에 대한 어떤 형태의 오남용에 대해서도 무관용의 원칙을 내세웠다. 병원 이용에 있어서 긴 대기시간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의료 연계센터를 운영하는 등 기존 광역 정부가 책임져오던 의료 분야에서 중앙정부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하며, 돌봄 등 사회서비스를 규정하는 기본법의 개정(2025년 7월 시행)을 통해 예방적 접근의 중요성과 접근성 및 지식 기반 성격의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세 번째로 서동민 교수는 이웃 나라 일본 복지국가가 직면한 ‘2025년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2025년은 초고령사회를 넘어 일본인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 5명 중 1명이 75세 이상의 후기고령자가 되는 해이며, 이에 따라 노동인구의 감소와 의료 및 개호(장기 요양) 비용 증가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후생노동성에서 발표한 사회보장제도 개혁 방향인 아동과 육아, 공적 연금제도, 의료와 개호의 3가지 분야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의료‧개호 분야 개혁은 재택의료와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지역의 실정에 따라, 고령자가 가능한 한 정든 지역에서 가진 능력에 따라 자립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의료, 개호, 개호 예방, 주거 및 자립적인 일상생활의 지원이 포괄적으로 확보되는 체계’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도·법 개선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고 현장에서 실현할 인력 및 시설 인프라 확충이 전제되어야 한다. 일본은 개호 인력과 인프라 확충을 복지의 문제만이 아닌 국가 경제 정책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는데,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메커니즘을 만드는 경제정책으로 사회보장의 기반을 강화하여 다시 경제를 강하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관점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기채 교수는 뉴질랜드의 흥미로운 실험인 ‘웰빙 예산’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2018년 말 뉴질랜드 재무부는 예산 수립의 절대적 목표가 ‘GDP가 아니라 웰빙’이라고 선언하였는데, 이는 현대국가의 공식 예산안에서 최초의 명시였다. 웰빙 예산은 경제활동의 양은 GDP로 측정되지만, 경제활동의 질은 GDP로 측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경제활동의 질이란 GDP에 가려져 있는 부정적 측면인 불평등과 환경오염 등을 의미한다. 또한 웰빙을 측정함에 있어서 웰빙의 다차원적 측면, 현재와 미래 세대 동시 고려, 모든 뉴질랜드인의 통합과 다양성 존중을 위한 프레임워크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노동당 정권 아래 5년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립된 웰빙 예산은 2023년 10월 총선 결과 우파 정당들의 보수 연합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폐기되었다.웹툰이 탄생시킨 전설적인 신조어 중 하나이자 얼마 전 방영한 tvN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 ‘엄마친구아들’(엄친아)과 비교는 개인적 입장에서 그리 달갑지 않을 수도 있으나, 현재의 경로를 파악하고 조금이나마 진일보하기 위해서 보다 잘난(혹은 배울 점이 있는) 누군가와 비교는 매우 필요하다. 아무쪼록 이번 호에서 살펴본 다른 복지국가들의 고민과 개혁 과제가 탄핵정국이 만든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 아래 우리 자신의 현 위치를 되돌아보고 한국 복지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데 자양분이 되길 바라본다.
월간<복지동향> 2025년 01월호(제3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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