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채완ㅣ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민주주의와 인권
민주주의는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국제인권규범이 추구하는 보편적 이상이다. 국제인권규범은 이상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상호의존적이자 상호보완적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는 171개 국가와 800개 이상의 시민단체가 참여한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회의에서 채택된 ‘비엔나선언 및 행동계획’에서 명시된 문구로, 인권의 보장이 민주주의를 구성 또는 실현하는 요소로 파악한 것이다. 즉, 민주주의를 정의할 때 논의되는 형식적인 요소들(예컨대 다수결의 원리, 대의제의 원리)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기보다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1993년 비엔나선언 및 행동계획에서는 특히 인권의 불가분성, 상호의존성과 상호연관성을 인정했는데, 특히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이하 “자유권”)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및 문화적 권리(이하 “사회권”)를 신장하고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위 선언 및 행동계획은 극빈과 사회적 배척(Social Exclusion)이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여기서 사회적 배척이란 사회적, 경제적 및 문화적 생활의 참여에서의 배제를 의미하는데, 이 개념에는 교육, 건강, 소득, 주거 등 사회권에 대한 접근성 결여, 즉 사회권 미보장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사회권과 민주주의
대한민국 헌법학계에서 주로 논의되는 사회적 기본권 및 사회권 규약이 보장하는 권리들은 과거에 엄격한 구분론에 따라 선언적 권리로만 취급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권은 구속력을 가지는 권리로서 파악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는 확립된 국제인권규범의 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학계와 실무에서는 여전히 사회권이 확립된 권리로서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 그저 국가가 하지 못하면 안 해도 되는 공허한 권리로서 취급받는다.
문제는 사회권의 보장은 오늘날 민주주의 실현의 필수적 요소라는 것이다. 형식적인 다수결에 따라, 또는 위임받은 권력에 의해 이뤄지는 의사결정이 보완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실질적 참여와 토론을 보장할 필요가 있고, 사회권의 보장이 그 기본적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엔 인권 최고 대표는 소득격차의 해소,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 등을 민주주의 실현을 평가하는 지표로 파악하고 있으며, 자유권뿐만 아닌 사회권을 포함한 “모든 인권”의 보장과 취약계층에 대한 차별금지 및 권리보장을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과제라고 보고 있다. 지역규범 차원에서도 사회권은 자유권과 연결되고, 같은 수준의 보장을 받아야 할 동등한 권리로서 파악되고 있다.

비상계엄과 사회권
작년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은 시민들의 적극적 저항으로 비교적 단시간 내 해제되었다. 형식적으로 아무런 권리침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겠으나, 사실은 포고령을 통해 모든 사람의 기본적 인권 전반을 침해한 국가에 의해 자행된 “중대한 인권침해행위”라고 볼 수 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비상계엄과 같은 국가의 비상조치 또는 국가긴급권의 행사를 단순히 자유권을 침해하는 공권력 행사로 파악하고 있지 않는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많은 사례에서 사회권을 중대하게 침해할 수 있는 공권력 행사로 파악하면서 그 부정적 영향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권의 보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12.3 비상계엄 선포는 그 자체로 사회권을 위협하는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였다.
민주주의의 위기, 비상계엄 이전에도 우리는 이미 겪어오고 있었다.
민주주의 위기는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한다. 코로나19와 같이 대규모 재난이 발생한 경우,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 아래 발생하는 각종 국가폭력의 경우,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등으로부터 발생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권을 비롯한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은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평가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대한민국이 마주한 민주주의 위기는 비단 최근에 발생한 코로나19라든지 비상계엄으로 발생한 사안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의 선포는 단순히 온전했던 민주주의에 위기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겪어온 민주주의의 위기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기까지 우리가 목도한 인권 침해는 그저 우리 사회에 표출되지 않았을 뿐 심각한 수준이었다. 빈곤, 소득격차의 문제는 정책의 후순위가 되고, 관련 예산은 축소되거나 확충되지 않았다. 당장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내란 정부에서만 하더라도 빈곤을 외면하고, 노동자·장애인·시민사회를 반국가세력으로 몰아갔다.
퇴행하는 인권을 수호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와 사법부는 사회권을 시혜로 격하시키는 퇴행적 판결과 결정으로 인권 수호 기구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입법은 대통령 한 사람의 거부권으로 좌절되기도 했다.

내란의 청산, 종식의 진정한 의미는 사회권의 보장을 포함한 인권의 위기, 민주주의 위기의 극복이다.
12.3 내란의 본질은 단순히 한 권력자의 멍청한 횡포가 아니다. 그동안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권위주의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며, 시민의 권리가 위임된 권력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드러냈다. 12.3 내란은 민주주의 위기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한 사건이지만, 그 본질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민주주의 위기가 표출된, 중대한 인권침해행위라 보아야 한다.
국제인권법은 피해자의 관점에서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의 의무를 강조한다.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배상, 추모와 더불어 재발방지를 국가의 의무이자 피해자의 권리로서 파악한다. 그리고 재발방지 의무는 군, 사법개혁 등도 있지만 핵심은 중대한 인권침해의 발생의 원인이 된 법률과 제도 개혁을 의미한다.
12.3 내란 이후 내란 청산 또는 내란 종식이 정치권의 화두이다. 청산 또는 종식의 의미를 단순히 12.3 내란에 대한 책임과 재발방지의 좁은 의미로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미 우리가 겪어온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개혁의 일환에는 당연히 사회권 위기의 극복이 포함될 것이다.
| 참고문헌 |
1993년 비엔나선언 및 행동계획(1993) The World Conference on Human Rights, Vienna Declaration and Programme of Action, A/CONF.157/23, UN General Assembly, 12 July 1993
유엔인권이사회, 유엔인권최고대표 보고서(2012): 인권적 관점에서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보장을 위해 당사국들이 마주하는 도전들 UN Human Rights Council, Study on common challenges facing States in their efforts to secure democracy and the rule of law from a human rights perspective : Report of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A/HRC/22/29, 17 December 2012
유엔 사회권위원회, 엘 살바도르의 6차 정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2022) UN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CESCR), Concluding observations on the sixth periodic report of El Salvador, El Salvador, E/C.12/SLV/CO/6, 9 November 2022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 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 행위로 인한 피해자들을 위한 구제 및 배상의 권리에 관한 기본 원칙과 가이드라인(2006) UN General Assembly, Basic Principles and Guidelines on the Right to a Remedy and Reparation for Victims of Gross Violations of International Human Rights Law and Serious Violations of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 : resolution / adopted by the General Assembly, A/RES/60/147, 21 March 2006
월간 <복지동향> 2025년 12월호(제3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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