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호] 동시대 논점 3_사회적 투쟁현장으로서 조세: 노무현정부 조세정책과 시민운동

1. 머리말: 2003년 말 법인세 인하, 노무현정부 조세철학의 가늠자

빨랐다. 너무 빨랐다. 노무현대통령의 공약파기는 과거 독재정권을 무색케 했다.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한 사실이 밝혀지는 데 걸린 시간은 취임 후 불과 1주일이었다. 국민들 눈치 보는 시간도 아까웠던 모양이다.
정부출범 뒤 첫번째 국무회의 자리. 노무현정부는 법인세를 인하하지 않겠다던 대선공약을 뒤집고 추가 세율인하방침을 밝혔다. 김진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 총대를 맸고, 대통령이 뒤를 받쳤다. 갈지자 정부정책의 서막이 올랐고, 국민들은 당혹스러웠다. 2003년 법인세율 인하 논란은 이렇게 시작됐다. 3월 4일 국무회의를 기점으로 김진표장관은 법인세 인하 연내 입법화를 입에 달고 다닌다. 재경부차관 시절부터 법인세 인하를 앞장서서 반대했던 그였다. 자기부정에 대한 시민단체와 언론의 비난은 매서웠다. 세수결손분은 비과세와 감면사항을 축소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비과세·감면축소라는 세수보전대책이 현실성이 없음이 밝혀진 것이다. 김장관은 다시 말을 뒤집어서 ‘선 세수보전책 확보, 후 세율 인하’로 선회했다. 장관이 뒤늦게 현실인식에 눈뜨고 있을 즈음, 이번엔 대통령이 나섰다. “기업이 법인세율 인하를 원하면 정부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장관의 말을 옹색하게 만들었다. 이는 국가의 조세정책권을 기업에 넘기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로, 충격 그 자체였다. 차관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가을 정기국회에서 연내 입법을 위한 법개정작업을 밟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대통령, 장관, 차관이 따로 노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 집안식구들간에도 손발이 안 맞아 삐걱거리고 있을 때, 정작 이를 가장 적절히 활용한 쪽은 한나라당이었다. 법인세율 추가인하를 줄기차게 주장하던 한나라당으로선 정부의 자중지란은 더할 나위 없는 호기였다. 대통령의 발언에 부응이라도 하듯, 한나라당은 2003년 정기국회 처리를 목표로 작년 8월 초 법인세법중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인세 인하논쟁에 불을 지폈던 재경부가 이젠 세율인하를 추진하는 한나라당을 앞장서서 저지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저지라곤 하지만, 세수보전책이 없어 연내 인하는 힘들다는 원칙적 입장을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정도의 무력한 정부대응이라는 것도, 사실은 정부가 연내 세율인하 통과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법개정이 불러올 세수결손에 대한 책임만큼은 회피하고 싶었다, 마침 대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한나라당이 이런 정부의 분위기를 읽고 적당한 시점에 법개정안을 제출했다, 결국 세율인하는 정부와 한나라당 양쪽의 고도의 전략전술이 맞아떨어져 만들어진 합작품이었다는 정황판단이 단순히 음모론적 억측이라는 최소한의 전제하에서나 가능한 말이다. 12월 9일, 결국 법인세 인하는 가결됐다. 한 해 동안의 논란 끝에 법인세율 인하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은 노무현정부의 조세정책에 대한 철학과 추진의지, 조정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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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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