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이재명 정부는 AI·반도체 재벌 지배구조 특혜 시도 즉각 중단하라
‘보수정부는 복지정책을 도입하고, 민주정부는 친재벌 규제완화 정책을 펼친다.’ 이러한 일이 매 정권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AI 우선 정책, 한미협상에서 재벌대기업들의 대미투자 확대로 이재명 정부의 친재벌 규제완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어제(11/16)는 재벌총수들을 만나 규제완화 관련 의견을 청취하기도 했습니다.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반도체, AI 기업에 대한 금산분리 원칙 예외 인정,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100% 의무지분보유 원칙을 훼손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비판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재벌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공정거래법 상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보유 제한을 완화하는 방안을 유력 검토 중이라고 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소유할 경우 지분을 100% 소유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 원칙을 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른바 첨단산업 육성을 핑계로 일부 재벌대기업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그 대상이 되는 증손회사의 경우 지주회사나 손자회사에 비해 비교적 규모가 작아 지분을 100% 소유하지 않도록 예외를 인정할 명분이 적을 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이 향후 비첨단산업에 대한 차별을 근거로 그 대상을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면 재벌대기업의 문어발 증손회사 난립과 이를 통한 편법승계 시도를 막을 수 없게 된다. 오죽하면 ‘SK 하이닉스 맞춤특혜’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이재명 정부와 국회는 AI·반도체 재벌기업에게 지배구조의 특혜를 제공하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원칙을 무너뜨리는 쉬운 길 보다는 조금 돌아가더라도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함께 성장하는 경제질서를 만드는 것이 지난 겨울 내란의 광장에서 시민들이 요구한 사회대개혁의 길임을 잊지 말라.
인공지능과 반도체 기업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한번 무너뜨리면 되돌리기 어려운 경제정책의 대원칙을 무너뜨릴 만큼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지배구조 원칙 훼손이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활성화라는 의도한 목적에 부합하는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금산분리, 지배구조 투명성 등의 원칙을 훼손한다고 해서 투자가 자동으로 늘어나는 것도 아닌 데다, 되려 투자활성화라는 목적에는 부합하지 못하고 재벌대기업의 문어발 증손회사 난립, 이를 통한 시장지배력의 확대, 증손회사를 통한 편법승계 시도 등을 우려만 크다. 투자활성화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재벌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를 위해 알짜회사를 물적분할하거나 분식회계를 동원한 부당한 합병비율로 계열사간 합병을 강행하여 투자자들의 투자 의욕을 꺾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것이 먼저다.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시장 신뢰를 높이는 것이야말로 투자 확대의 가장 확실한 길이다.
현재도 SK나 삼성 등 재벌대기업들은 기업형 벤처캐피털 등을 통해 투자를 확대할 수 있으나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AI·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위해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일반지주회사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보유하도록 금산분리 원칙에 구멍을 내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12.3 내란의 혼란을 전후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반도체 기업 등에 감세 특혜를 제공하는 ‘K칩스법’을 처리하는 등 지속적인 특혜 정책을 펼쳐왔다. 이미 여러 차례 예외를 인정해 금산분리 원칙이 약해진 상황에서, 향후 비첨단산업의 기업들이 차별을 이유로 추가 규제 완화를 요구한다면 대체 무슨 명분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한번 무너진 원칙은 더 이상 원칙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그 누구보다 원칙을 강조해왔다. 2019년 계곡 불법시설 철거 간담회 당시 했던 “예외를 하나 두면 계속 늘어나게 된다”, “법을 안 지키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는 발언은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지금 이재명 정부는 어떠한가. 앞으로도 인공지능과 반도체를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그때마다 재벌대기업들은 이미 뚫린 원칙의 구멍을 더욱 넓혀나갈 것을 요구할 것이다. 금산분리와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100% 지분보유 의무화라는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정부가 과연 이를 막을 수 있겠는가. 지금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기업형 벤처캐피털 규제 추가 완화와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지분 의무보유 원칙 훼손은 혁신성장만을 앞세운 채 경제민주화와 지속가능한 동반성장이라는 가치를 저버리는 것이다. 이미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서 구멍낸 금산분리 원칙과 반도체 세제 특례 조치로 경제정책의 대원칙들이 무너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않으면서 규제완화만 외치는 재벌대기업들에게 끌려다녀서는 안된다.
가뜩이나 인공지능·반도체 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글로벌 영향력이 커지는 시대다. 이들에게 제공된 특혜는 멀지 않아 정반대의 형태로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는 더 큰 특혜요구로 돌아올 것이다. 급할수록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제 경쟁력이고, 공정한 시장질서가 곧 지속가능한 산업정책이다. 정부는 쉬운 길처럼 보이는 규제완화가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키는 지름길임을 직시해야 한다. 급할 때일수록 쉬운 길이 아닌 제대로 된 길을 찾아야 하며,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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