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07-01   4119

[기획3] 복지국가운동의 어제와 오늘: 무상급식에서 연금개혁까지

남찬섭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무상급식 논쟁과 한국 복지국가 논쟁의 독특성

한국의 복지국가운동은 2010년에 와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1) 한국의 복지국가 운동은 독특하게도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이자 주된 동력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무상급식 논쟁은 2009년 경기도 교육감의 보편적 무상급식 정책에 대해 경기도 의회가 반대하면서 생긴 갈등에서 촉발된 논쟁이다. 이는 2010년부터 대략 2012년까지 한국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범사회적인 복지국가 논쟁으로 화하였다. 이 논쟁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논쟁의 규모가 매우 컸다는 점과 함께 복지국가라는 상징이 그 당시 논의된 대안사회 담론의 핵심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복지는 언제나 후순위였고 정치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 투쟁으로 복지국가 운동의 시초가 나타났고 외환위기 이후 복지개혁으로 복지국가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때조차도 복지/복지국가는 민주화의 부수적 결과 혹은 국정지표의 한 축이었지 그 자체로 대안사회 담론을 대표하는 상징이 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2010년대 초에 벌어진 논쟁은 논쟁의 핵심주제 자체가 복지국가였다. 

둘째,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이자 주된 동력으로 하여 전개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학교급식이나 무상급식을 복지와 관련된 것으로 인식한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이를 복지국가 제도에 전형적으로 속하는 프로그램으로 간주한 경우는 없었다. 따라서 보편적 무상급식의 실현이 한국의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필요한 단계 혹은 과업이라는 인식도 없었다. 실제로 학교급식 운동과 복지국가 운동은 2010년대 초 복지국가 논쟁 이전까지는 상호 공조는커녕 단순 교류조차 한 적이 사실상 없었다(남찬섭, 2017; 남찬섭·이명진, 2013).2)

그러면 어떤 배경으로 인해 무상급식 논쟁이 한국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복지국가 논쟁으로까지 화했는가? 이와 관련하여 논쟁이 발발하던 당시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운동적 요인, 그리고 선거·정치적 요인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사회경제적 배경으로는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를 고려할 수 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의 영향도 있었으므로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는 중요한 배경일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지표상 불평등이나 양극화가 그처럼 큰 복지국가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크게 악화한 것은 아니었다.3)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를 복지국가 논쟁의 기저로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왜 다른 제도가 아니라 하필이면 무상급식을 매개로 한 복지국가 논쟁으로 분출되었는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음으로 운동적 요인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다시 복지국가운동 측 요인과 학교급식운동 측 요인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우선 복지국가운동 측 요인을 보면 무상급식논쟁 발발 전에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 등의 개혁이 있었고 또 2차 연금개혁이 어떻든 일단락되어 건강보험이나 공적연금이 복지국가논쟁의 중심에 다시 등장하기 어려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의료보장 및 연금개혁이 그와 관련된 모든 복지개혁의 완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개혁으로 인해 복지정치가 그 전보다는 그래도 활성화되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처럼 큰 규모의 복지국가 논쟁에서 의료보장이나 공적연금이 중심 의제로 작용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더하여 의료보장 및 연금개혁이 일단락되었다는 것으로 이들이 논쟁의 중심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만 왜 2010년대 초 복지국가 논쟁이 무상급식 논쟁을 매개로 전개되었는지 설명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복지국가운동 측 요인으로 한 가지 더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논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복지국가운동의 역량이 나름대로 축적되어 있었다는 점과 참여정부 말기에 복지국가운동을 명시적으로 표방한 단체가 출범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점(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회, 2007 참조), 그리고 논쟁이 진행되면서 여러 복지국가운동단체가 결성되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그 복지국가운동이 무상급식을 복지국가 확립의 필수단계로 간주해 온 바가 한 번도 없었고 또 무상급식논쟁이 일어나리라고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참여정부 말기에 복지국가운동을 명시적으로 개시한 단체가 펴낸 ‘복지국가 혁명’이라는 책(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회, 2007)에는 무상급식이나 학교급식에 관한 언급이 단 한 마디도 없다. 즉, 이 단체는 복지국가 혁명을 위해 무상급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논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많은 복지국가운동 단체들이 결성되었지만, 이들은 모두 무상급식 논쟁이 복지국가 논쟁으로 전환된 이후에 결성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무상급식 논쟁이 복지국가 논쟁으로 전환됨으로써 생긴 결과이지 그 원인은 아니다. 

다음으로 학교급식운동 측 요인으로는 2000년대 초에 본격 조직된 학교급식운동 단체들이 학교급식 조례제정운동을 펼치면서 그 목표로 우리농산물 사용, 직영급식, 무상급식 세 가지를 설정하여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배경을 들 수 있다. 무상급식 논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우리농산물 사용과 직영급식은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하였고 무상급식이 마지막 남은 목표였다는 사실(이빈파, 2011; 정원각, 2007)을 중요한 요인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4) 따라서 무상급식 논쟁은 복지국가운동 측에서 보면 뜻밖의 사안이지만 학교급식운동 측에서 보면 필연적인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또한 학교급식운동이 무상급식의 실현을 의제로 제시한 것까지는 설명할 수 있지만 왜 그것이 무상급식 자체의 논쟁에서 그치지 않고 복지국가 논쟁으로까지 번졌는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실 학교급식운동 진영은 그들이 설정한 세 가지 목표(우리농산물 사용, 직영급식, 무상급식) 중 무상급식을 가장 뒷순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보편적 무상급식은 점진적 단계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실제로 무상급식 논쟁이 그처럼 크게 번질 것 자체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상급식 논쟁이 복지국가 논쟁으로 번진 것은 학교급식운동 진영에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학교급식운동 측 요인에 주목하면서 보편주의 프레임이 가미된 것이 논쟁을 촉발한 요인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즉, 경기도 교육감이 무상급식 방안으로 선별적 무상급식이 아니라 보편적 무상급식이라는 프레임을 제안한 것은 무상급식 논쟁의 전개 및 복지국가 논쟁으로의 확산에 기여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생각도 한계가 있다. 보편적 무상급식은 2009년 하반기 경기도 교육감에 의해 처음 제안된 것이 아니다. 이미 그 이전인 2007년에 경남 교육감이 보편적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교육감 당선 후에는 이를 실천에 옮겼다. 하지만 경남 교육감의 보편적 무상급식은 그 자체로도 큰 논쟁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5) 일부 교육전문가들을 제외하면 경남 이외 지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복지국가 논쟁으로도 확산되지 않았다. 이처럼 경남 교육감의 보편적 무상급식은 논쟁으로 화하지 않은 반면, 경기도 교육감의 보편적 무상급식은 논쟁으로 화했다는 점에 주목하면 이제 이념정치 혹은 선거정치적 요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즉, 경남 교육감은 보수적 인사였던 반면 경기도 교육감은 전교조와 연관이 있는 진보교육감이었던 것이다. 2009년 4월 첫 주민직선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된 경기도 교육감은 당선 후 보편적 무상급식을 위해 경기도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했으나 그 해 6월 도의회는 예산의 절반을 삭감했고 그 해 하반기에 경기도 교육청이 다시 제출한 수정예산안을 또다시 전액 삭감했다. 이로 인해 무상급식 예산을 삭감한 경기도의회에 대한 비난 여론이 크게 비등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해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이념공세를 가하여 보편적 무상급식을 좌절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이 이념공세는 오히려 여론의 더 큰 반발을 초래한 데다, 보수 인사인 경남 교육감이 이미 실시하고 있는 보편적 무상급식에 대해서 당시 여당이 문제 삼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당이 유독 진보교육감의 보편적 무상급식만 문제 삼는다는 비난에 직면하였다. 그러면서 ‘아이들 밥 먹는 문제’에 이념공세를 씌운다는 여론이 조성되었고 보편적 무상급식의 실현은 이념공세에 대항하는 진보 진영의 상징이 되었다. 이로부터 주로 사회복지학자들 사이에서만 논의되던 보편주의 대 선별주의라는 대립이 일반 국민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3무 1반”이라는 정책공약을 발표하고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을 당론으로 채택하였으며6) 이에 대항하여 여당인 한나라당은 이른바 “70% 복지”를 발표하였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2009년 경기도의 주민직선 교육감 선거에서 당시 보수교육감들이 패배한 것에 대한 반발심리 및 진보 교육감에 대한 거부감과 배척심리, 그리고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었다는 사정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2010년대 초 복지국가 논쟁의 독특성을 설명하는 것으로 선거정치적 경쟁이 비교적 유력한 요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설명에 의문이 없지는 않다. 즉 당시의 무상급식 논쟁이 복지국가 논쟁으로 화했다고 해도 실제 무상급식 논쟁 자체는 ‘복지’라기보다는 ‘교육’으로 프레임화되었다. 즉, 의무교육을 실시하므로 급식도 학생 모두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 맞다는 논리가 일반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수용된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 밥 먹는 문제’에 이념공세를 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난은 결국은 의무교육으로 학교에 간 아이들에게 밥을 먹인다는 데에 이념공세를 가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비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보편적 무상급식이 ‘복지’가 아니라 ‘교육’으로 프레임화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복지국가 논쟁으로 화한 것이라 볼 수 있으므로 일반 국민에게 ‘복지’와 ‘복지국가’는 약간 다르게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복지’는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인식되어 온 바와 같이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혜택을 의미하는 반면, ‘복지국가’는 학교급식과 같은 교육정책을 포함하여 보다 넓은 정책 부문에서 실현되는 어떤 체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7) 이런 점에서 복지국가 논쟁이 한창이던 2011년 7월에 402개 단체가 모여 결성한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가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과제로 비정규직 보호, 청년실업해소, 최저임금보장, 중소상인보호, 실업자보호를 노동이 행복한 나라를 위한 과제로 제시하고 나아가 걱정 없는 나라를 위한 과제로 보육비·교육비·집값·의료비·노후의 다섯 가지 걱정을 없애야 한다고 제시한 것(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 2011)은 일반 국민들에게 인식되는 복지국가의 개념에 비추어 나름의 적절성을 가진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와 복지국가운동

바로 위에서 말한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는 무상급식 논쟁으로부터 시작된 복지국가 논쟁을 맞아 복지국가 운동의 주체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 중 하나였다(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 2011).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우선 민주노총은 복지국가 운동이 자본주의 체제 내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복지국가라는 명칭 사용에 반대했고 여기에 전교조와 금속노조 등도 가세했다(박영선, 2014; 윤홍식, 2019). 최종적으로는 복지국가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연대운동에 참여하는 주요 노동단체가 복지국가 운동의 성격에 이견을 갖는다는 것은 연석회의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후에도 민주노총은 복지국가 운동이 특정 정당이나 정파적 이해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연석회의의 추진 경로나 정책과제, 의제 설정 등 거의 모든 사안에서 이견을 표명하였다. 여기에는 민주노총이 대안적 사회체제로서 복지국가에 대해 동의하기 힘들다는 근본적인 입장 차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박영선, 2014). 이러한 배경에서 노동진영은 복지국가 건설 경로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부터 복지국가 전망에 대한 공감대와 합의 부족, 복지국가를 둘러싼 정치연합에 대한 불신까지 제기하며 연석회의 활동에 소극적이었다. 그리하여 시민운동단체가 중심이 된 연석회의는 노동조합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민주노조 진영 내의 친복지운동 세력도 견인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시민과 노동을 주체로 내세우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언론과 제도정치권을 상대로 한 상층운동에 제한되었다(박영선, 2014; 윤홍식, 2019). 시민은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시민운동단체는 시민을 조직화하지 못했으며 조직노동은 복지국가 운동에 회의적이었다(윤홍식, 2019). 결국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는 2012년 대선이 끝난 후 개점휴업 상태에 있다가 결국 해산했다. 연석회의의 해산은 무책임한 사회운동의 전례라는 비판도 받았으며 ‘지식기반 자원과 여론 동원을 통한 압력행사’를 통해 의제를 관철해야 하는 시민운동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한겨레신문, 2023.03.21.).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가 실패로 끝나게 된 배경은 위에서 언급했지만, 연석회의 출범의 배경이 된 복지국가 논쟁의 독특성 자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2010년대 초 복지국가 논쟁은 무상급식 논쟁에서 촉발된 것이고 그것을 주된 동력으로 하여 전개된 것이었는데 이것은 이 복지국가 논쟁 자체가 노동과 크게 관련이 없는 의제를 동력으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상급식은 학교급식의 일환이며 따라서 무상급식논쟁은 처음부터 노동 관련성이 약한 사안이었다. 

사실 보편적 무상급식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 이해관계 간의 갈등을 내포했다고 보기 어렵다. 앞에서 무상급식 논쟁이 복지국가 논쟁으로 화하게 된 배경과 관련하여 몇 가지 요인들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그 요인에는 사실상 노동이 빠져있다. 결국 무상급식은 소프트한 재료였던 것이다. 소프트한 재료였기 때문에 큰 논쟁으로 번질 수 있었고 또 소프트한 재료였기 때문에 선거·정치적 경쟁에 동원되기 용이했다. 그래서 당시 여당과 야당이 선거를 앞두고 복지국가를 공약으로 적극 채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상급식 논쟁이 교육으로 프레임화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교육의 중핵인 입시제도가 주된 의제였다면 그것은 무상급식처럼 큰 논쟁으로 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소프트한 재료였기 때문에 선거·정치적 경쟁이 끝나자 곧바로 논쟁이 종식되었고 무상급식 논쟁에서 실현된 보편주의가 무상보육 정도를 제외하면 복지국가의 다른 중핵적인 제도로 확산되지 못했다. 선거가 끝나면서 복지국가 논쟁이 매우 급하게 종료된 것과 무상급식 논쟁에서 관철된 보편주의가 다른 분야로 확산되지 못한 것도 2010년대 초 복지국가 논쟁이 가진 독특한 점이다. 정리하자면 무상급식은 노동이 직접적으로 관여된 사안이 아니어서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선거정치적 재료로 동원되어 복지국가 논쟁으로 화할 수 있었으며 보편주의가 관철되는 성과를 얻었지만, 그 ‘보편주의’는 무상급식에서 끝나버렸고 그런 점에서 무상급식 논쟁의 성과는 한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 이후의 복지국가운동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에서 시민은 기존의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시민운동단체는 시민을 조직할 수 없었으며 조직노동은 복지국가운동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여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상황이 연출되었는데 이런 흐름은 2016년 촛불항쟁에 와서 크게 달라졌다. 즉, 2016년 촛불항쟁은 다양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한 점에서는 2008년 촛불집회와 유사했지만 촛불항쟁을 실질적으로 지도했던 지도부가 구성되었다는 점이 2008년 촛불집회와 달랐다. 또 조직노동도 이전처럼 계급적 이해관계를 관철하려 하는 대신 뒤에서 촛불항쟁을 지원하여 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윤홍식, 2019).

하지만 달라진 모습은 이면의 사회경제적 이슈를 모두 밀어내는 희생을 대가로 한 것이다. 사회경제적 문제 제기를 억압하고 비폭력과 준법투쟁을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었고 대통령의 퇴진이라는 성과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생존을 건 투쟁의 목소리를 배제해 버렸다는 한계를 가진 것이다(임미리, 2019). 다시 말해서 2016년 촛불항쟁은 박근혜 1인의 퇴진이라는 결과만 받아들였을 뿐 노동과 생존권을 건 하층민의 목소리도 배제하였다. 그런 점에서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의 본질을 비껴갔다. 이는 2010년대 초 복지국가 논쟁을 촉발한 무상급식이라는 의제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 것이다. 

촛불항쟁이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의 본질을 비껴간 것은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 이후 혹은 그 직전부터 나타난 다양한 복지국가운동 단체들의 명칭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2010년대 초 복지국가 논쟁이 진행되면서 복지국가운동을 표방하는 다양한 단체가 출현했다. 대표적으로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청년유니온, 노년유니온,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등을 들 수 있다(이중 복지국소사이어티는 복지국가 논쟁 이전에 이미 출범했다). 이 단체들은 세대 담론을 반영하여 ‘청년’ 혹은 ‘노년’을 명칭에 사용하거나 노동자와 같은 사회경제적 이해를 반영한 주체가 아니라 막연하게 ‘나’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는 공급자운동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복지국가운동이 사회 내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포괄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연석회의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 노동과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운동의 주체가 매우 취약해진다. 

연석회의 이후 복지국가운동에서 제기된 이슈들도 복지국가를 대안사회 담론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하지 못했고 오히려 운동 진영을 분열시키는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줬다 뺏는 기초연금’은 그야말로 오류로서 문제해결이 불가능한 프레임을 짜놓고 그 프레임에 스스로를 몰아넣었다. 이 프레임이 말하는 것은 결국 기초보장수급자가 기초연금을 받는 경우 그 기초연금을 자산조사 시 소득으로 간주하지 말아 달라는 것인데, 이 요구가 실현될 경우 다른 모든 현급급여제도의 정합성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는 요구이다. 이는 국민연금으로 간단한 사고실험을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국민연금 수급자 중에도 기초보장제도의 생계급여를 신청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자산조사에서 국민연금으로 받는 노령연금을 소득에 포함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포함해야 할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포함해야 한다. 이걸 소득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국민연금 급여는 다른 급여와 적절한 관계를 갖지 못하게 된다. 또 하나 사고실험을 해보자. 이번에는 기본소득이다. 만일 우리 사회가 기본소득을 실시한다고 해보자. 그 경우 아마도 빈곤선을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기본소득을 곧바로 지급하지는 못할 것이다.8) 예컨대 기본소득으로 월 30만 원을 지급하는 부분기본소득부터 실시한다고 가정해보자. 기본소득이므로 이는 현재 기초보장제도 수급자들에게도 지급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 경우 기초보장수급자들이 매월 받는 30만 원은 자산조사에서 소득으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소득인정 해야 한다. 이를 두고서 ‘줬다 뺏는 기본소득’이라는 프레임을 짜놓고 기초보장수급자들에게 지급되는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소득인정하지 말아달라고 한다면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기본소득은 다른 제도와의 관계를 적절히 정립할 수 없게 된다. 기초보장수급자에 대해 기본소득을 소득으로 인정하지 않고 운영한다면 그것은 기본소득을 실시하지 않은 채 기초보장제도를 운용하는 것과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지의 여부를 제외하고 아무런 차이가 없다.

‘줬다 뺏는’ 프레임은 보충성 원칙에 대해 잘못된 접근을 하고 있다. 보충성 원칙은 원래 자본주의 시장을 통한 소득확보를 일차적인 수단으로 그 수단에 의해서도 최저생활에 도달하기 부족한 경우 그 부족분을 국가가 보충해주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가 구성원들에게 부과하는 자조원칙이 복지국가제도에 적용된 것이며 개인책임원칙 혹은 가족책임원칙(부양의무자 기준) 등으로 표현되어왔다. 따라서 원래 의미의 보충성 원칙은 시장소득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줬다 뺏는’ 프레임은 시장소득과 복지급여의 관계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복지급여들 간의 관계에 관련된 것이다. 즉, 이 프레임이 기초보장수급자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에 적용될 경우 그것은 기초연금과 기초보장제도의 생계급여의 관계에 관련된 것이 된다. 즉, 준보편적으로 지급되는 기초연금과 공공부조인 기초보장 생계급여 중 어느 것을 더 우선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관련되는 것이다. 국민연금이나 기본소득에 적용된다면 사회보험방식인 국민연금급여 및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과 기초보장 생계급여 중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관련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초보장제도는 최후의 안전망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이런 경우 준보편적인 기초연금과 사회보험방식인 국민연금, 그리고 만일 시행한다면 보편적인 기본소득이 기초보장 생계급여보다 우선되어야 하고 이를 기초보장의 제도적 운영에 비추어 말하면 자산조사에서 이들을 소득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는 기초연금이든 국민연금이든 기본소득이든 그런 제도들이 자조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배분 원리를 수정하고자 하지만 당장은 자본주의의 배분 원리 내에서 작동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줬다 뺏는’ 프레임은 이러한 사정을 무시하고서 자본주의적 배분 원리가 근본적으로 혁파되어야 가능할 수도 있는 해결책을 자본주의 배분 원리 내에서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격이다. 그렇다고 ‘줬다 뺏는’ 프레임이 자본주의적 배분 원리가 가진 근본적 문제로부터 무언가의 해결책을 사고하거나 자본주의적 배분 원리의 근본적 혁파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기초연금이나 국민연금, 기본소득 등의 급여들이 당장은 자본주의 배분 원리 내에서 작동될 수밖에 없다는 사정을 감안하면, 또한 자본주의의 배분 원리를 수정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임을 감안하면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리더라도 기초연금의 급여액 상향이 올바른 운동방향이다(‘줬다 뺏는’ 프레임으로는 오래 걸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해결이 불가능하다).9)

또 한 가지 사안은 기초보장제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른바 통합급여 대 개별급여 논쟁이었다. 개별급여론자들은 기초보장제도가 수급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급여를 주지만(통합급여) 그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어떠한 급여도 주지 않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식의 운영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주로 자활사업에 중점을 두는 사람들에게서 제기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기초보장제도로 대표되는 공공부조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흔히 기초보장제도를 최후의 안전망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기초보장제도에 대해 최저생활에 필요한 모든 급여를 제공하는 마지막 제도로 작동하게끔 임무를 부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는 기초보장제도에 대해 그 수급자에게 ‘통합급여’를 하라고 과업을 준 것이다. 기초보장수급자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아무런 급여를 주지 않은 것은 기초보장제도의 잘못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위한 급여를 하나도 만들지 않은 우리 사회의 잘못이다. 그런데 개별급여론자들은 당장 자활수급자들이 기초보장제도에서 빠져나가 자활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원인이 기초보장제도의 통합급여에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들의 주장이 결국 관철되어 2014년에 기초보장제도는 개별급여방식(그들의 용어로는 맞춤형 급여방식)으로 전환되었지만, 기초보장제도의 통합급여는 그대로 남아 있고 통합급여가 작동하는 소득수준만 하락하였다.10) ‘줬다 뺏는 기초연금’과 개별급여론은 당장의 문제해결에 집착한 프레임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해결을 가로막은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제도와 관련된 이러한 잘못된 프레임 외에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 이후의 복지국가운동은 보편복지국가가 가져야 할 대안사회의 모습보다는 복지급여의 제공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 주목하여 복지국가운동을 좁은 시야에 갇히게 하였다. 복지국가에 있어 재원은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안사회로서 복지국가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관한 청사진과 결합해 논의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돈’ 문제 자체로만 논의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재원을 ‘돈’ 문제로만 접근한 오류는 특히 연금개혁과 관련하여 극명하게 드러났다. 공적연금을 돈 문제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나 강고하게 유포된 탓에 한때 복지국가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과 단체도 연금을 돈 문제로만 바라보는 재정론의 시각에 빠져들었다. 예컨대 국민연금이 가입자가 매달 낸 보험료를 원금으로 하고 거기에 이자수익을 붙여 퇴직 후에 되돌려 받는 것처럼 간주하는 저축프레임으로 접근한 것과 비슷하다. 그리하여 국민연금이 마치 근본적인 재정불균형을 내장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거기에 세대 담론을 뒤섞어 지금 당장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 것은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것이라는 보수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였다.

이것은 공적연금의 역사적 등장 과정과도 맞지 않는 잘못된 주장이다. 공적연금은 퇴직의 보편화와 함께 등장한 제도이다. 퇴직은 자본주의 이전까지 극소수의 귀족계급 외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퇴직이 보편화하기 전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자녀가 그 부모를 돌보고 부양하는 사적부양을 행해왔다. 그러다가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전환하면서 자본은 이윤추구를 위해 기계의 작동속도를 높이고 싶어 했고, 따라서 동작이 느린 고령노동자들을 내보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고령노동자들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는 나가려 하지 않았고 자본도 함부로 내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19세기 후반에 일부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기업연금과 직역연금이 도입되었고 일반노동자들은 계속 사적 부양에 의존했다. 서구사회에서 퇴직은 2차 대전 후에 와서야 보편화했다. 그러면서 일반노동자들도 퇴직하게 되자 그 전까지의 사적부양은 물론이고 기업연금과 직역연금으로는 노후소득보장이 어렵게 되었다. 즉 다시 말해서 자본은 퇴직을 통해 이윤을 사유화하고 퇴직 후 소득보장비용은 사회화한 것이며 이 사회화된 비용을 제도화한 것이 공적연금인 것이다. 그런데 유럽 국가들은 노동의 힘이 그래도 강한 편이어서 자본에 대해서도 퇴직 후 소득보장비용을 부담시키게 되었는데 이것이 퇴직하지 않는 자본이 공적연금에 비용을 부담하게 된 배경이다. 따라서 개인 차원에서 보면 공적연금은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라는 원금에 이자수익을 붙여 퇴직 후 되돌려 받는 저축처럼 보이지만 사회 전체 차원에서 보면 매기(每期)에 산출된 GDP를 퇴직세대와 생산세대가 나누어 갖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는 것이 본질이다(제갈현숙 외, 2024; Barr and Diamond, 2008).11) 이것은 마치 퇴직이 보편화하기 전에 인류가 자식으로 하여금 그 부모를 부양하게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만 자식은 전체 자식세대로 확대되었고 부모는 전체 부모세대 즉 전체 퇴직세대로 확대되었다는 데 차이가 있다. 즉, 퇴직의 보편화에 따라 사적부양을 사회화하여 집합적 부양으로 전환한 것이 다를 뿐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시스템은 동일하다. 따라서 공적연금에서 중요한 것은 기금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매기(每期)에 얼마만큼의 GDP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이다. 즉 기금이 아니라 생산성이 중요한 것이다. 

공적연금이 도입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는 다시 변화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등 인구고령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공적연금을 저축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재정론자들은 이러한 인구고령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현세대가 하루라도 빨리 보험료를 더 올려 기금을 쌓아야 하고 또 연금급여는 이대로 동결하든지 아니면 추가로 더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접근이 올바른 접근인가? 미래의 공적연금에 대해 우리는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퇴직이 거의 없던 시절 인류는 사적부양을 택했고 퇴직이 보편화한 후 인류는 공적연금을 매개로 하여 집합적 부양을 만들어냈다. 이제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등 인구문제가 심화하는 미래에 우리는 어떤 부양방식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평균수명이 늘어나기 때문에 퇴직은 오히려 더 필요하고 따라서 퇴직 후 소득보장은 더 필요하고 더 중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늘어나기 때문에 퇴직 시점은 조정될 수 있다. 퇴직 시점이 조정될 수 있다는 것은 현재와 같은 생애주기가 전체적으로 재편될 수 있고 재편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인간의 생애주기를 크게 교육기(성장기), 경제활동기, 퇴직기로 나누면 이 세 단계의 기간이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교육제도와 노동시장제도, 정년제도가 모두 근본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미래 고령사회에 우리가 가질 생산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때 향상시켜야 할 생산성과 그렇지 않은 생산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현재 생산세대가 만들어내는 노동소득에서만 노후소득보장 비용을 징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재원에서 노후소득보장 비용을 마련할 필요가 있고 그것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조세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래의 공적연금은 세대 간 부양만이 아니라 계층 간 부양까지 가미된 제도가 될 것이다. 미래의 공적연금을 위해 우리는 생애주기의 전반적 조정과 함께 부양방식을 세대 간 부양과 계층 간 부양을 결합한 부양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이를 집합적 부양에 대비하여 총체적 부양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 연금개혁에서 우리 사회는 아마도 세계 최초로 공론조사 방식을 적용했다. 그리고 이 공론조사 방식에서 시민대표단은 오차범위를 벗어나는 큰 격차로 보장성강화 안을 지지했다. 그리고 이 공론조사를 포함한 연금개혁의 전 과정에서 보장성강화론 측에서는 시민운동단체와 노동단체가 함께 모여 보험료 인상과 소득대체율 인상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를 포함하여 그 이후의 복지국가운동에서도 시민단체와 노동조직 간의 공조는 많지 않았다. 비록 단일 사안이긴 하지만 연금개혁에서는 두 진영의 공조가 비교적 잘 이루어졌다. 이러한 공조는 공론조사에서 보장성강화론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던 배경이다. 

단기적인 제도적 해결책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장기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지향할 수 있게끔 개념적·이론적 무장을 철저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과 시민의 연대를 지속적으로 모색하여 이 땅에서 반드시 복지국가를 이룩하게끔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미주 |

1) 복지국가운동이 2010년 이전에는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 투쟁과 함께 복지국가운동이 맹아적 형태로 등장했고 199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태수·윤홍식 (2014), 이영환 (2005) 참조.

2) 이런 관계로 당시에도 일부 논자들 사이에서는 공적연금이나 건강보험, 노동시장 정책 등 대상자의 규모로 보나 사회경제적 중요성으로 보나 복지국가와의 관련성으로 보나 무상급식보다 훨씬 비중 있는 제도들이 많고 또 그 제도들의 개혁과제가 산적한 마당에 딱히 진보적이라 하기도 어려운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복지국가 논쟁이 전개되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는 견해가 표출되기도 했다(예컨대, 김진석, 2010 참조). 실제로 서구의 경우 학교급식이 복지국가 프로그램의 하나로 포함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복지국가를 둘러싼 담론경쟁이나 정책경쟁의 중핵을 구성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예컨대, Gustafsson, 2002; Harper, et al., 2008 참조). 

3) 통계청의 지니계수 추이를 보면 2007년 0.312, 2009년 0.314로 약간 악화했지만 2010년 0.310으로 다시 내려갔고 2011년 0.311, 2012년 0.307로 큰 변동이 없다(통계청, 2024).

4) 이와 관련하여 이명박 정부 초기에 벌어진 촛불집회도 무상급식논쟁의 배경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무상급식논쟁과 관련하여 주로 학교급식운동 측 요인을 중시하는 쪽에서 거론하는 경향이 있다. 

5) 물론 전혀 논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경남에서 있었던 논쟁은 2010년 무상급식 논쟁과는 진영이 정반대였다. 경남 교육감이 2007년에 제시한 보편적 무상급식에 대해 당시 경남의 진보진영은 학교급식은 국가의 책임인데 그 국가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류가 있고 또 지자체가 부족한 예산으로 보편적 무상급식을 실시할 경우 급식의 질이 저하할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반대하였다(남찬섭·이명진, 2013). 

6) 3무 1반이란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그리고 반값 등록금을 의미한다. 

7) 만일 이것이 맞다면 이는 일하는 사람들을 노동자가 아니라 ‘근로자’로 지칭하면서 그들의 근로조건을 총괄하는 정부부처의 수장은 근로부장관이 아니라 노동부장관이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8) 2024년도 1인 가구 생계급여기준선이 71만 원인데 기본소득으로 빈곤선을 벗어나게 하려면 1인당 월 71만 원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는 기본소득을 실시한다 해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9) 또 ‘줬다 뺏는’ 프레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초보장수급자들이 받는 기초연금을 소득인정함에 따라 기초연금 수령 후 최종소득에서 기초보장수급자들은 차상위계층보다 기초연금액만큼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다고도 주장한다. 이 주장은 기초연금의 소득인정 여부가 쟁점인데 이 쟁점을 처음부터 기초연금 소득불인정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전제해놓고 소득인정된 기초연금을 비교하는 것이어서 논리적으로 오류이다. 

10) 개별급여방식으로 전환되면서 빈곤선도 최저생계비에서 기준중위소득으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2015년에 기준중위소득은 중위소득의 76.6% 수준이었지만 점점 하락하여 2022년에는 67.6%로 내려갔다. 과거 개별급여론자들은 기초보장제도가 통합급여방식을 채택한 관계로 최저생계비에 지나치게 많은 부담이 집중되어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이 하락했다고 주장했는데 똑같은 현상이 개별급여방식으로 바뀌 뒤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1) 미성년세대와 생산세대가 GDP를 나누어갖는 제도가 가족제도(아동수당도 포함해서)인 것처럼 공적연금은 퇴직세대와 생산세대가 GDP를 나누어갖는 제도이다.

|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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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윤홍식. 2014. “한국복지국가운동의 평가와 과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한국 복지국가운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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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현숙·주은선·이은주. 2024. 『국민연금 가치선언: 불안을 넘어 연대와 공존으로』, 서울: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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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23.03.21. ‘‘거대한 후퇴’의 시대, 시민단체가 위기인 이유 있는 이유’, 이창곤의 정담19-시민단체1. 

Barr, N. and Diamond, P. 2008. Reforming Pensions: Principles and Policy Choices.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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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per, C., Wood, L., and Mitchell, C. 2008. The Provision of School Food in 18 Countries. School Food Trust.

월간<복지동향> 2024년 07월호(제3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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