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10-01   15627

[기획1] 의료대란의 원인과 전망: 시민사회의 과제를 중심으로

신영전ㅣ한양대 의대 교수

1. 의료대란의 전개와 원인

2023년 10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와 이에 반대하는 의사, 전공의, 의대생들의 조직적인 반대가 시작된 이래 거의 1년이 다 되어 간다. 특별히 전공의의 이탈로 대형 병원의 병상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지는 등 의료제공의 파행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 파행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환자들이다. 특별히 응급환자에 대한 조치나 암 환자의 치료가 지연되면서 많은 비극을 양산하고 있다.

추석날 부산에서 응급실로 이송된 심정지 상태 30대 환자의 상급병원 수용을 위해 119구급대 등이 92차례나 여러 병원에 전화를 돌렸지만, 결국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숨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한겨레, 2024.9.24.).

수술실 가동률 절반 밑으로…”암 전이됐는데 수술 취소됐다’ ‘빅5’ 병원 수술 30∼50% 취소했지만, 다음 주엔 더 늘듯. “항암 치료받으려고 하루 종일 대기”… 환자들, 치료 시기 놓칠까 ‘전전긍긍’. 정부, 피해환자에 ‘법률상담서비스’ 지원한다지만 “감히 병원에 어떻게…”(연합뉴스, 2024.2.22.)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추진과 강경 입장 고수

의대 정원 증원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0년대 16개나 되는 의대가 신설되면서 의대 정원이 급격히 증가했다(1984년 1,820명, 1993년 2,860명).1 2003년에는 당시 의약분업 추진과정에서 정원을 약 350명 줄였고, 2006년 이후 약 20년간 3,058명으로 동결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권에서 지속적인 의대 정원 증원을 시도했다. 가깝게는 문재인 정부가 2018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400명 규모의 의대 정원 증원과 공공의과대학의 신설을 시도했지만, 의사들은 휴진 등 강력하게 저항했고, 결국 정부는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원점에서 증원을 재논의하자’라는 데 합의함으로써 결국 증원에 실패했다.

이러한 경험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왜 다시 의대 정원 증원을 발표하고 더욱이 그 규모가 이전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2,000명의 증원을 발표했을까? 또 의사들의 저항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고통과 민심의 이반에도 불구하고 왜 강경정책을 고수하고 있을까? 그 이유를 명확히 규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현재까지 거론되고 있는 그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치적 상황
2023년 10월 의대 정원 증원 발표 시점으로 돌아가 보면, 당시 윤석열 정부는 당선 시 표방했던 주요 개혁 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언가 성과물을 내야 했다. 특별히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 의료현장에서 들려오는 국민의 불만과 고통 호소에 ‘의대 정원 증원’이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이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는 60~80% 가까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1년까지 의료대란이 지속되면서 제때 치료받지 못해 죽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암과 같은 중증 환자들의 치료 대기 시간이 늘어나는 등 국민들의 고통이 커가면서 이 의료대란을 조기에 수습하지 못하는 윤석열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이 불만이 커지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이미 대학교 수시모집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야 정치권 모두 2025년 의대 정원 조정을 의정 논의에 포함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지난 9월 12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미 수시모집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2025년도 입학정원은 되돌릴 수 없는 사안이라고 다시 못 박았다.

실제 의사 수 확대의 필요성 존재
의대 정원 증원의 배경에는 정치적 이유를 제외하고도 실제로 의사수 증원의 필요성이 존재하고 있다. 그 중요한 논리는 (1)국민 1,000명당 의사 수가 2.6명으로 OECD 국가 평균인 3.7명에 크게 못 미치며, (2)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의사에 대한 수요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의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대비로 7만~8만 명 부족하고, 현 정원을 유지할 경우 2030~2040년에는 1만4천~4만 명까지 부족해질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의료현장에서 의사들을 만나기 힘든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그 해결책은 근본적으로 의사 수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의사 수를 늘리는 것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다수 전문가는 기본적으로 의사 수의 증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도 의사 증원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국민 인식은 다시 정권과 정치가들이 의대 정원 증원을 고수하는 이유로 작동하고 있다.

의료민영화를 위한 의대 정원 증원
윤석열 정부가 대규모 의대 정원 증원을 고집하는 데에는 정치적 상황과 현장에서 의사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민영화 정책이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4월 1일 대국민 담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 의사들의 평균 소득은 OECD 국가들 가운데 1위입니다. 20년 후에 의사가 2만 명이 더 늘어서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합니다. 20년 뒤 의사는 2만 명이 더 늘어나지만, 국민소득 증가와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는 그보다 더 어마어마하게 늘어납니다. … 더욱이의료산업 발전에 따라 바이오, 신약, 의료 기기 등 의사들을 필요로 하는 시장도 엄청나게 커질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의료산업도 글로벌마켓으로 더 많이 진출해야 하는데, 의료서비스의 수출과 의료 바이오의 해외 시장 개척 과정에서 의사들에게 더 크고, 더 많은 기회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고령화뿐만 아니라 의료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더 많은 의사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의료민영화론자의 생각과 일치한다. 또한,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추가로 신규 대형병원 설립을 진행 중인 집단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진다. 실제로 현재 9개 대학병원이 수도권에 분원을 짓는 것을 추진 중이다. 연세 세브란스는 인천 송도(800병상), 서울아산병원은 인천 청라(800병상), 서울대병원은 경기 시흥(800병상)에 병원을 짓는 계획을 진행 중이고 가천대 길병원과 인하대 병원 등도 수도권에 신규 병원 신설을 추진 중이다. 이들 대형 병원들은 상대적으로 값싼 인건비의 전공의들에 의존하고 있는 병원들이다. 대형 병원일수록 전체 의사 중 전공의 수가 많은데, 빅5 병원의 전공의 비율은 39%에 달하고 있다(<표 1>). 또한, 의대를 유치함으로써 위상을 높이려는 지역과 대학들이 다수 신규 의과대학의 유치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여기에 더하여 의사 수의 증가는 의사유인수요22)를 자극하여 영리 의료서비스 영역의 확대를 야기함으로써 의료서비스를 차세대 성장동력이라 여기는 영리 의료 산업계의 요구에 이 정부가 화답하고 있는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저항하는 의사, 전공의, 의대생

현재 의료대란은 의대 정원을 증원하려는 정부와 이에 저항하는 의료계의 충돌에 기인한다. 왜 의료계는 이렇게 극렬히 저항할까? 그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규모 의사 수 증가에 대한 불안과 반대
의료계 입장에서 보면, 이번 정부의 2,000명 의대 정원 증원은 다소 갑작스러운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증원 규모가 예상 밖으로 큰 것이었다. 의사 수의 증원은 결국 한정된 의료 수요를 의사들이 나누어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대규모 의대 정원 증원은 의료계가 환영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이 대규모 증원의 직접적인 피해는 약 10년 후에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에, 이 증원에 직접 영향을 받는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에게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정부에 대한 오래된 분노, 왜곡된 자기 서사화
한국의 의료계는 오랫동안 정부에 대한 많은 불만을 가져왔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 의료수가가 너무 낮으며, 비합리적인 심사 등 규제가 많다는 정서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최근 의료계 강경파들은 기존 논의에서 더 나아가 한국 의료의 문제들이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며 의사는 피해자일 뿐이라는 ‘피해자 의식’, 자료의 ‘자기 편의적 왜곡’,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완결이 어려운 부분을 ‘특정 정권’, ‘노동조합’, ‘좌파’ 탓으로 돌리는 자기 완결적 서사를 만들었다. 이중 ‘피해자 의식’은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행위조차 정당화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최근 일부 의사들의 발언과 행동이 거칠어지는 이유다. 문제는 이 서사가 의료계 밖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이없는 것이지만, 폐쇄적인 의료계 내에서는 마치 진실인 양 확대 재생산되어 의료계 다수의 신념으로 전화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집단의 신념 체계는 좀처럼 부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잘못된 서사는 의사들을 추동하기에는 요긴했지만, 정부와의 타협을 불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이것은 정부가 의료계와의 협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논의를 생략한 채 정책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을 제공했다. 무엇보다 이런 왜곡된 논리체계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지난 2018년과 2020년 문재인 정부의 두 차례에 걸친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은 전공의를 포함한 의사단체의 파업으로 사실상 폐기되었다. 이런 경험은 의사단체들에게 이번에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의사단체 내부의 정치 공학
의사단체는 초기에는 친목, 관변 단체적 성격의 유명무실한 전문가 조직이었으나 2000년 의약분업을 겪으면서 점차 정치적 성격을 가지기 시작했다. 또한, 10여 년 전부터는 일부 극단적인 강경 세력의 조직적 움직임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이들 세력은 합리적인 대안의 개발이나 정부와의 정책 조율, 대국민 지지의 확보 등을 위한 노력보다는 의사들의 불만을 증폭시키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해 오고 있었다.

2. 현 상황, ‘교착’

어떤 상태가 굳어 조금도 변동이나 진전이 없이 머무는 상태를 ‘교착’이라고 하고 지금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도 그러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교착상태는 기본적으로 한쪽도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른바, ‘정부 실패’와 ‘의사 실패’가 함께 발생하고 있다.

정부 실패

의사 증원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의 상당한 지지에 더하여 국민이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분노가 커지고 있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강경책을 고수할 수 있는 중요한 뒷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대란 문제를 완전히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의사의 전문성을 다른 인력으로 대체하기 어렵다는 기본적인 이유도 있지만, 외교,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대통령 주변 문제까지 겹쳐 지지수준이 20%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의대 정원 증원의 철회는 레임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 정원 증원 결정의 완전철회 이외에는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전공의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더욱이 의료계 내부에서도 단일 협상안을 만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판단은 의·정 협상으로 문제의 해결 여지를 줄이고 있다. 한편 간호법의 통과, 개원면허 신설 가능성 검토 등의 채찍과 수가 인상, 교육예산 지원이라는 당근 정책 등을 구사하고 있지만, 적어도 1년의 휴직으로 이미 마음을 굳힌 전공의의 결정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의사 실패

이런 정부 실패는 역으로 의사들에게는 정부의 증원안을 철회시키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여기에 더하여, 의사협회는 거대한 예산과 몸통에 비해 변화하는 현 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개발하거나, 정부와의 타협을 이룰만한 리더십도 구축하지 못했다. 더욱이 개원의 위주의 협회 운영은 대학병원과 병원의 의사, 특히 전공의들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해 왔다. 의사협회에 실망하여 회비를 내지 않는 의사들이 많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비를 내는 회원만 회장 투표권을 부여하는 현행 방식 때문에 현 의사협회장도 11만 5천 명의 활동 의사 중 겨우 18.8%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더욱이 현 회장의 품위 없는 발언과 행동 등으로 인해 현재에도 탄핵이 추진되고 있고, 전공의 협의회에서는 그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의협 지도부 이외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등 다른 어떤 조직도 충분한 대표성과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현 상황의 주요한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전공의나 의대생 내부 사정도 복잡하다. 소수 극렬 행동파들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으나, 사실 대다수 전공의나 의대생들의 이해나 정서와는 멀어진 지 오래고 다수는 소극적 관망파로 남아 있는 상황이기에 소수 강경파의 결정을 전체 전공의나 의대생이 따를 가능성도 크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조율은 불가능하고, 설명 조정안을 만들어도 전체 구성원의 동의를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외부에서 보기에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의대 정원 증원의 완전 철회’만을 주장하고 있다.3

여기에 더하여, 환자나 시민들을 “견민”, “개돼지”, “조센징” 등으로 부르며 조롱하거나, “(환자들이) 응급실을 돌다 죽어도 아무 감흥이 없다”, “더 죽어서 뉴스에 나왔으면 하는 마음뿐”이라는 등 패륜적 글을 올리거나44), 의사협회 회장이 판사에게 “이 여자 제정신인가”란 막말을 하고, 부회장이 다른 집단에 대해 “장기 말 주제에, 건방진 것들” 같은 저질 발언은 의사들이 국민을 설득하는데 결정적인 장애 요인으로 작동하고 결국 ‘의사 실패’로 이어지고 있다.

3. 전망과 과제

전망

언제쯤 이 교착상태에 변화가 생길까? 한국 사회만큼 예측하기 어려운 사회가 없지만, 현재 많은 이들은 새로운 전공의 과정 시작, 신입생 입학, 강의 시작 등의 절차가 진행되고 최종적으로 퇴직, 유급, 자퇴 등의 결정을 해야 하는 내년 3월 전후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현재 정부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전망을 근거로 향후 5~6개월 정도의 시간을 버티는 다양한 위험관리 체계를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기간 동안 국민 특히 환자들이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나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상황적으로만 보면 윤석열 정부와 정치가들이 다른 대응 방식을 택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한편 의사나 전공의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극단적이고 더욱 광범위한 진료 거부를 시도할 수도 있겠지만(부디 그런 상황이 일어나선 안 된다.), 그것은 환자들에게 큰 피해를 야기하여 거대한 국민적 분노에 봉착하게 될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 주는 타격은 작은 반면, 의사들은 지금보다 더 크고 직접적인 피해를 받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통해 의대정원 증원의 완전철폐를 이끌어낼 가능성은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한 예측은 종종 틀린다. 그 예측이 상황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몰락 속도와 수준은 늘 합리적인 예측을 넘어선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도 열어 놓고 있어야 한다.

또한, 2025년 3월 이후 교착의 상당 부분이 풀린다고 해도 갈등이 낳은 후유증과 함께 급속한 의대 증원 관련 문제들이 속출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지역 간, 전공 간 의료인력의 불균형으로 인한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사회문제화될 것이다. 무엇보다, 현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 초안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이 정부는 환자 정보를 민간보험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민간보험이 일부 심사기능을 직접 할 수 있게 허용5하는 등 국민건강보험이 담당하던 중요한 영역을 영리 민간보험에 넘기는 것을 허용하는 소위 의료민영화 정책의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의대 정원 증원 못지않은, 또는 그를 능가하는 다양한 제2, 제3의 사회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과제: 시민사회의 역할을 중심으로

시민사회가 중재와 견인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했다면, 작금의 혼란은 없거나 조기에 종식되었을 것이다. 최근 여러 가지 상황변화로 시민사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6 최근 시민사회의 위축이 현재 민심을 배반한 정권과 전문가의 전횡을 야기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민주적 시민사회의 재정비와 재도약만이 현재와 앞으로 닥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확인시켜 준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시민들의 요구와 분노가 없었다면 의사들은 더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크고 윤석열 정부는 의사들의 저항에 지금처럼 버티지 못하고 굴복하거나 국민의 이해와는 무관한 의·정 담합을 시도했을 것이다.

이렇게 제한적이나마 시민사회가 역할을 하고 있지만, 현재 의료대란으로 인한 국민의 고통이 더욱 확대되거나 장기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향후 조정 과정에서 과거 의약분업 때처럼 의·정 담합으로 끝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의사와 정부 둘만의 담합구조인 의·정협의체가 아니라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합의체를 구성하여 투명하고 민주적인 결정을 내리고, 그 약속이 제대로 집행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정부는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5조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으나, 그 주된 재원은 국민건강보험으로 국민이 낸 보험료이다. 향후 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결정이 충분한 국민의 동의에 의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국민건강보험재정을 대통령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의로 사용할 수 없도록 사회보험 기금 사용 결정 과정에 국민의 권리가 더 강력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의료계 역시, 극단적인 강경 세력에 휘둘리지 말고, 민주적 선거와 운영원칙을 제도화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합리적인 의료개혁안들을 개발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고, 시민사회는 이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의 힘은 언제나 조직화된 행동을 통해 나오고 그것은 개개 시민의 열정과 헌신에 기반을 둔다. 개개인과 시민조직들이 직접적인 발언, 댓글, 민원, ‘환자 샤우팅’, 글쓰기, 고발 등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작금의 의료대란으로 인한 현장의 고통, 비극, 잘못된 행위, 구체적인 피해 사례들을 찾아 고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특별히, 여기에는 “(환자들이) 응급실을 돌다 죽어도 아무 감흥이 없다”와 같은 일탈된 발언과 행동을 하는 일부 의사들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료인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격하는 ‘나쁜 세력들’을 찾아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하고, 반대로 선의를 가지고 헌신하는 의료인들을 보호하는 노력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미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개개인들의 이러한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여 정당, 정부, 의사집단에 보다 강력한 방식의 압박을 가해야 한다. 이번 의료대란의 실제적인 이유 중의 하나인 실비보험의 파행적 운영의 중단, 충분한 규모와 질을 확보한 공공의료체계의 구축을 위한 노력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최근 정부는 이 의료대란을 빌미로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우선, 환자 정보의 유출, 대형 병원이 환자들을 독점하는 문제,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 등을 이유로 다수의 시민사회와 개원의들이 반대하고 있는 ‘원격 의료’를 충분한 국민적 합의와 안전장치 없이 ‘비대면 진료’라 이름만 바꾸어 시행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최근 국민건강보험을 무력화하고 영리 민간보험을 활성화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의료개혁안을 발표하고 이를 추진하려 하고 있다. 이 안이 가시화될 경우,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증가시키고 의료시장을 더욱 영리화시킬 것이며 결국 고통은 환자가, 부담은 국민이 감당하게 될 것이다. 시민사회는 이러한 정부의 부적절한 정책 시행에 대한 감시와 대응도 함께 진행해야 할 것이다.

현재 교착상태에 머물러 있는 의료대란으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이들을 하루바삐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의료 분야 대혼란은 이제 시작이다. 초고속 고령화와 함께 3~4년 후부터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적자로 돌아서면 어떤 정권이냐에 상관없이 의사 증원보다 더 큰 파도인 지불방식 개편, 병·의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의료 관련 조직과 기관들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 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더욱이 지금 추세로 민간 보험의 힘이 계속 커지면, 의사뿐만 아니라 약사, 간호사 등 다양한 의료인력은 정부보다 훨씬 혹독한 대자본과 시장에 의해 더 심하게 분열되고 시달리는 혼란을 겪을 것이다. 무엇보다 민간보험회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의료체계가 재편될 경우, 의료체계는 더이상 사회안전망이란 기능을 잃고, 이것은 결국 국민의 고통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로 생겨난 사회적 관심과 요구의 물줄기를 민간 부문 의료의 공공성 강화, 공공의료의 양적 질적 확대, 보다 포괄적이고 공적인 돌봄체계의 구축,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와 지속가능성 확보 등과 같은 시대적 과제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해야 할 것이다.

4. 맺는말: ‘다층적 시민연대’를 향하여

이번 의대 정원 증원으로 인한 의료대란은 많은 고통을 양산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병폐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이 대란을 계기로 어떤 정권이든, 의료계 등 전문가 집단이든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쪽은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민사회의 역할과 노력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할 것이다. 더욱이 이번 의료대란 이후 다가올 더 많은 큰 위기들은 일개 개인이나 단체의 힘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고 전면적이다.

따라서 개개 시민의 헌신에 더해 현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돌봄 운동, 공공병원 만들기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각자의 운동을 계속 하면서도 일반 시민, 환자, 가족, 간병인, 사회적 대의에 동의하는 의료인들의 조직으로 구성된 상위의 연대체, ‘(가칭)시민건강연대’를 재조직해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개별 사안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의료대란의 근저를 이루는 정권의 거대한 의료민영화 시도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시민사회의 조직화된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다층적 시민연대’가 그것이다. 일부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사회적 대타협/협의 기구’의 구성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이 시민 연대체가 일정한 규모와 세를 갖출 때만, 그 협의가 실효성을 갖고 국민이 그저 들러리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의대 정원 증원 관련 문제에 더하여 앞으로 핵심 사회 문제로 부상할 의료부문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은 단지 일 개 분야의 사안이 아니라 몰려올 돌봄 위기와 의료민영화의 다양한 폐해, 더 나아가 환경 및 기후 위기 등과 같은 인류사적 위기들과 그 본질을 공유하는 중요한 사건이며 우리 사회의 생존 여부는 이 대규모 복합위기에 대응하는 ‘다층적 시민연대’의 성공적인 작동 여부에 달려있을 것이다. ‘다층적 시민연대’를 향해 나아가자.

| 미주 |

  1. 나중열, 최삼섭, 최보율, 정명현, 1994, “의과대학 학생현황에 대한 고찰: 1984년과 1993년간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의학교육』, 제5권, 제2호, 37-40. ↩︎
  2. ‘의사유인수요’란 의사와 같은 전문가들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서비스 이용을 권하여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
  3. 실제로, 지난 9월 13일 대한의사협회는 여야의정협의체 참여 관련 의료계 입장을 밝혔는데, 이때 참여한 단체는 의협 대의원회, 대한의학회, 대한개원의협의회,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경기도의사회 제외),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등이다. 이렇게 관련 단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의사조직 내 다양한 조직이 있으며, 의사협회가 이들 모두를 대변하고 있지 못하다는 객관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더욱이 현시점에서 상황 전환에 결정적인 주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과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이 과정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
  4. “‘응급실서 죽어 나가길’…의사 커뮤니티의 참담한 글귀”, 국민일보, 2024년 9월 12일,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26041839. ↩︎
  5. 이 경우 민간보험회사는 환자 정보를 합법적으로 보유하여 향후 마케팅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
  6. 현재 시민사회 활동이 예전에 비해 위축되었다는 비판은 역설적으로 그간 시민사회의 활동이 이루어 낸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진전에 따라, 과거 시민사회의 활동가와 활동영역이 제도권 정치권으로 흡수된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일시적인 위축은 불가피하지만, 향후 제도권 정치인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고 또는 여전히 제도권 정치가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시민사회가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고 활동하여야 하며, 그런 점에서 시민사회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

월간 <복지동향> 2024년 10월호(제3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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