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1-01   69242

[기획4] 전근대적 가족관에 근거한 부양의무자기준

박영아ㅣ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부양의무자기준이란

부양의무자기준은 수급권자 본인이 아닌 가족의 소득·재산을 기준으로 삼는 수급자격 요건을 말한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이하 “기초생활보장법”)은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 대해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일 것을 수급요건으로 한다(기초생활보장법 제8조 제2항, 제12조 제2항). 교육급여에 대해서도 제12조 제3항에 같은 요건을 두고 있지만, 2014년 12월 신설된 제12조의 2로 부양의무자기준이 없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교육비 지원과의 통합·연계를 위해 소득인정액 기준만을 적용하도록 하는 특례규정을 둠으로써 부양의무자기준을 사실상 폐지하였다. 주거급여에 대해서는 2018년 1월 「주거급여법」 제5조 제2항을 삭제함으로써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였다.

부양의무자기준의 “부양의무자”는 수급권자의 1촌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를 말한다(다만 사망한 1촌의 직계혈족의 배우자는 제외한다1).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보장은 가구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기초생활보장법 제2조 제8호), 여기서 수급권자와 부양의무자는 사실상 “수급권자가구”와 “부양의무자가구”를 말한다. 즉, 부양의무자가 수급권자와 동거하거나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 그의 소득은 바로 수급권자가구의 소득으로 합산되기 때문에 부양의무자기준은 적용될 여지가 없다. 부양의무자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생계를 같이 하지 않는 수급권자가구와 부양의무자가구 간이다. 예를 들어 손자녀와 조부모는 서로 1촌이 아닌 2촌의 직계혈족이라 하더라도, 자녀와 부모로 이루어진 수급권자 가구에 대해 조부모 가구는  부양의무자 가구가 되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자기준은 형식적으로는 민법에 규정된 가족 간 부양의무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당사자 간 협정 또는 가정법원의 결정이 있어야 부양청구권의 내용과 범위가 구체화되는 민법상 부양의무2와 달리, 부양의무자에게 일정한 수준 이상의 소득·재산이 있는 경우 일률적으로 부양능력, 즉 부양청구권자에 대해 기초생활보장 급여에 해당하는 부양을 제공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다고 간주한다.

나아가 성인 부모자녀 간의 부양의무는 부양의무자의 생활과 동일하게 보장해야 하는 부부 간 또는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1차적 부양의무와 달리 “부양의무자가 자기의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생활을 하면서 생활에 여유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부양받을 자가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그의 생활을 지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2차적 부양의무”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대법원 판례3이나,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부양의무자기준은 부양의무자가 일률적으로 정해진 기준중위소득을 제외한 나머지 소득과 재산을 모두 부양을 위해 지원한다고 전제한다.4 요컨대, 부양의무자기준은 관념적으로 민법상 부양의무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구체적 부양청구권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

기초생활보장법은 이처럼 추상적 부양의무와 일률적으로 정한 부양능력만을 근거로 “부양을 받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수급권자로 하여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양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한다. 나아가 부양의무자가 자신의 판단 또는 가정법원의 결정으로 구체화된 부양의무에 따라 생활비 일부만 지원하는 경우에는 “부양을 받을 수 있다”고 간주하여 지원금이 기초생활보장급여에 이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족한 부분에 대한 수급자격이 부정된다(기초생활보장법 제3조 제2항 단서 참조). 부양의무자가 부양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도 “부양을 받을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을 입증해야 수급자격이 인정된다. 심지어 부양의무자의 소득·재산이 기준중위소득을 초과하지만 “부양을 받을 수 있다”고 간주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도, 부양의무자가 일정한 부양비를 지원한다고 가정한 가상소득을 수급권자의 소득인정액에 포함시킴(이른바 “간주부양비 부과”)으로써 급여를 삭감하거나 선정기준 초과로 수급에서 탈락시킨다. 부양의무자기준은 이처럼 수급권자가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부양의무자의 소득·재산을 수급요건으로 삼고, “부양을 받지 못하는” 책임을 수급권자에게 전가시키는 점에서 근대법사상의 근저를 이루는 자기책임의 원칙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민법에 규정된 가족간 부양의무는 본디 부양의무자의 부양청구권자에 대한 사적(私的) 의무로, 국가가 부양청구권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부양의무 이행을 강제하거나 부양청구권을 행사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지 않다. 부양청구권의 내용과 범위를 정함에 있어 당사자간 협정을 우선하도록 하고 있다(민법 제977조). 기초생활보장법은 부양의무자에 의한 부양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공적 부양을 사적 부양보다 후순위에 두고, 사적 부양의무의 이행을 공적 부양을 최소화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이는 사적 관계에 대한 국가의 간섭과 개입을 수반하므로 그 정당성과 타당성에 대한 근본적 평가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특히 그러한 개입이 국가가 부담하는 헌법상 의무를 사인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엄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공공부조를 포함한 사회보장제도의 역할은 노령을 비롯한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비를 친족이라는 소집단이 아닌 보다 큰 사회집단에 맡겨 개인의 부담이나 어려움을 분산 및 경감시키는 데 있는바, 사적 부양 우선이 적용된다면 그 제도는 다른 사회보장제도와 전혀 다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5 게다가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부양의무자기준은 부양의무 (불)이행의 책임을 부양의무자가 아닌 수급권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적 부양을 공적 부양에 우선시키는 가장 극단적 형태에 해당함과 동시에 최소한의 논리적 근거마저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하기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직후부터 부양의무자기준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다.6 2010년대부터 반빈곤단체와 장애인인권단체를 중심으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요구하는 운동이 본격화하였다. 2012년 시작하여 5년간 지속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의 광화문 농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활동은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포함한 주요 후보들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8년이 지난 현재까지 부양의무자기준은 여전히 그 위력을 유지하고 있다.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한 장벽은 그대로 둔 채 구멍을 내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구멍을 찾아가는 것, 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는 것은 여전히 수급권자의 몫이다.

폐지되다 만 부양의무자기준의 자기모순

아래 <표 1>7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생계급여에 대해서만 부양의무자기준이 연소득 1억 원, 일반재산 9억 원으로 완화되면서 2022년부터 소득인정액 선정기준이 더 낮은 생계급여 수급자 수가 의료급여 수급자 수를 넘어서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했다. 이 숫자가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더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낳는 것은 과연 합리적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양의무자기준에 관한 정부의 태도 역시 자기모순적이다. 한편으로는 부양의무자기준을 “사각지대”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정책목표로 내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동거하지 않는 가족이라도 의식주 전반을 책임져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전제한다. 이러한 자기모순은 보건복지부 지침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부양의무자가 소득·재산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수급권자가 실제 부양을 받는지 여부를 반드시 조사하도록 하고, 지방생활보장위원회 심의를 실시하여 보장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면서도 실제 부양여부와 상관없이 “부 또는 모가 이혼 후 재혼하여 전 배우자와의 자녀에 대해 실질적으로 부양하지 않고 있는 경우”, “과거 가족 간의 관계 해체 사유(이혼, 폭력, 상해, 유기, 가출, 학대, 약물중독 등)의 이유로 가족관계가 해체되어 부양의무자로부터 실질적으로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 “수급권자 가구가 미혼모·부 및 한부모가 되는 과정에서 부양의무자인 직계존속과 갈등(자녀입양 강요, 임신중절 강요 등)으로 가족관계가 해체되어 실질적인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 “수급권자의 1촌의 직계비속인 부양의무자가 19세 미만인 미성년 자녀로 그의 보호자인 이혼한 전 배우자가 조사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에 부양을 받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매우 구체적 시나리오를 열거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부양의무자와 가족관계 해체상태로 정상적인 가족기능을 상실하여 정서적·경제적 부양을 받을 수 없다”고 수급권자가 소명하여 시장·군수·구청장으로부터 인정받은 경우에 한하여 지방생활보장위원회 심의·의결로 보장 가능한 경우로 제시하고 있다. 즉 여전히 위와 같은 사정이 없다면 당연히 부양을 받을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급을 받기 위해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가정사를 낱낱이 밝혀야 하는 것도, 그러한 사정이 없음에도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처지를 해명하지 못해 결국 수급을 받지 못하는 것도 비인간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근본적 문제는 부양의무자기준이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한국의 가족기능 및 사회구조는 산업화 이후 급격히 변화하여 더 이상 당연히 가족의 부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제할 수 없게 되었다. 여러 세대와 방계가족까지 함께 살며 서로 부양하던 대가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맞벌이가 보편화되면서 부모의 부양은 부부 중 일방이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게 되었다. 부모의 부양을 분담할 수 있는 자녀 또한 줄었다. 사회보장제도가 사회구조를 따라가지 못하면 당연히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한 “사각지대”를 사각지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왜 실질적 변화에 소극적인 것일까? 사회적 인식이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이미 가족 간 부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된 지 오래다.8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소극적인 당국의 태도는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위기가구를 “발굴”하겠다며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호들갑을 떠는 모습과도 대조적이다. 발굴이 사회보장급여 전달체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실제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학계9나 현장에서 끊임없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빈곤으로 인한 사망사건이 뉴스에서 보도될 때마다 충분히 많은 정보가 수집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며 수집대상 정보항목을 추가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되는 것은 전달체계의 시작은 바로 수급요건이라는 점이다. 당국의 입장에서 벼랑 끝까지 다다를 때까지 방치하다가 벼랑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비용 절약적인 방법이라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구상은 구명줄이나 던져주겠다는 것으로 사회안전망이나 사회보장제도에 해당하거나 이들을 대체할 수 없다.

부양의무자기준은 처음부터 일관된 논리나 근거가 결여된 수급요건이었지만, 정부가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하고 “폐지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서10 논리가 있다는 외관마저 상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순적 상황이 유지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재정논리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재정논리 역시 재정을 쓸 수 없다는 이상의 어떠한 논리가 없다. 기초생활수급자의 규모를 요건으로 인위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헌법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기초생활수급자의 규모를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적절한 사회보장, 노동, 일자리 및 경제정책으로 사람들이 빈곤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 미주 |

  1. 사망한 직계혈족의 배우자는 민법 제974조 제3호에 의해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만 부양의무가 있으나(대구지법 가정지원 2008. 7. 29. 선고 자2008느단801 등), 단서규정은 2014년에야 신설되었다. ↩︎
  2. 민법 제977조, 대법원 2025. 9. 11. 선고 2023므11758 등 참조 ↩︎
  3. 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1다96932 판결 등 참조 ↩︎
  4.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22년부터 생계급여의 경우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해서 적용하고 있으나 본인이 아닌 가족의 소득·재산을 수급자격 요건으로 삼는 근본적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
  5. 이명현, 2002,  일본의 부양의무자 기준, 월간 복지동향(42), 12-16. ↩︎
  6. 에이블뉴스. (2012, 3). 거꾸로 가는 기초법, 무엇이 문제인가? (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302)
    ↩︎
  7. 기초생활보장 자격별 수급자 수(한국사회보장정보원) ↩︎
  8. 동아일보. (2022, 11). “부모 부양은 사회·국가가” 62%…‘가족책임’은 첫 10%대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21116/116504035/1) ↩︎
  9. 함영진 · 이현주 · 어유경 · 김가희 · 박성준 · 조용찬 · 이영글 · 문용필 · 오민수, 2023, 「복지 전달체계 혁신을 위한 대안적 고찰 – 취약계층 발굴정책 개선을 중심으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10.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2021, 9).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60년 만에 폐지 ↩︎

월간<복지동향> 2026년 1월호(제3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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