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1-01   73952

[기획5] 제도는 얼마나 힘이 센가 : ‘탈수급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소준철ㅣ전남대학교 역사문화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문을 열며

2024년 자활사업 예산은 7천억 원을 넘어섰다. 참여자도 5만 8천 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탈수급률은 2018년 31.2%에서 2024년 18.7%로 급락했다. 예산과 참여자는 늘어나는데 성과는 떨어지는 역설이 발생했다.1 정부는 25년간 자활지원사업을 확장했고, 정교화해왔다. 근로소득공제, 자산형성지원, 심리상담, AI 맞춤형 교육까지 동원하고 있다. 그렇지만 탈수급 지원 정책의 성과는 기대만큼 높지 않다. 이제 우리는 무얼 해야 할지 답답한 마음이다. 제도를 계속하여 손질해왔고, 이제는 정량적인 것을 넘어 정성적인 것을 아우르는 제도로 발전해왔다. 제도 자체로는 완결성이 꽤 높아졌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도 바뀔 거라는 가능성보다는 어쩔 수 없냐는 참담함이 든다. 나는 25년 간의 탈수급 지원 정책을 검토하며 사회복지정책의 형성 과정과 그 과정에서 제도가 파악하지 못한 지점이 무엇이었는지 검토하고자 한다. 이는 제도가 사회의 어디까지 그 힘을 작동하는 건지, 제도 경계의 사정이 어떤지 정리하려는 시도다. 즉, 제도의 힘을 면밀하게 살피려는 시도다. 

복지동향 기획5: 제도는 얼마나 힘이 센가: '탈수급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먼저 제도의 형성과정을 살펴보자.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은 빈곤에 대한 한국사회의 거대한 단절이자 전환점이었다. 이는 식민지기 조선총독부의 「조선구호령」(1944~1961)과 개발독재기의 「생활보호법」(1962-1999)으로 이어지던 긴 시혜적 역사의 종언이었다. 이전까지의 제도는 대체로 ‘잔여적 복지’의 패러다임 안에 머물러 있었다. 빈곤의 일차적 책임이 개인과 가족에게 귀속되었고, 국가는 가족과 시장이 완전히 실패했을 때만 개입하여 빈민을 돕는 ‘자선’의 주체로 기능했던 체제였다.

이러한 잔여적 체제 하에서 ‘근로능력’의 유무는 국가의 개입 여부를 가르는 결정적 잣대였다. 「생활보호법」체제 아래서 국가는 18세 미만의 청소년·어린이·영유아, 65세 이상의 노인, 장애인, 홀로 된 여성 중심 가족(당시 모자가정) 등을 ‘근로 능력이 없는 자’로 여겼고, 이들만을 생계보호(의료보호, 교육보호, 직업훈련)의 대상으로 삼았다. 반면에 18세 이상 65세 미만의 청·장년은 ‘근로능력이 있는 자’로 간주되었고, 별도의 급여를 받는 게 아니라 공공근로와 같은 취로 사업에 참여하면서 일당을 버는 방식으로 구제되었다. 게다가 압축적 성장기에는 국가가 알선하는 단기적인 일자리로 당장의 배고픔을 해소하고, 개인의 ‘노력’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고성장-저실업 체제를 붕괴시켰고, ‘근로능력자’ 역시 위험해졌다. 문제는 개인의 노력으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처참히 깨져나갔다. 더구나 대량실업 사태 속에서 근로능력이 있는 빈곤층이 급증했다. 이전처럼 단기 일자리를 제공하는 구호 방식은 금세 한계에 봉착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이러한 ‘신빈곤층’의 등장을 배경으로 탄생했다.2 이 법은 국가가 빈곤을 시혜적으로 구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던 관점을 기각하고, 국민이 누려야 할 ‘권리’로서의 생활이 있다는 점을 제시하는 전환점이었다. 단, 이 권리에는 중요한 전제가 붙었다. 바로 ‘생산적 복지(productive welfare)’라는 이념으로, 국가가 빈곤한 개인에게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대신, 그는 의무적으로 자활사업에 참여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는 것이었다. 이 ‘조건부 수급’은 국가가 빈곤한 시민의 생존을 책임지지만, 국가가 개인의 노동력을 관리하고, 개인은 자립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이중적 기획이었다.

이 ‘조건부 수급’과 ‘자활’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 ‘조건부 수급’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 과정에서 가장 문제적이었다. 1998년 7월 참여연대 등의 입법청원으로 “근로 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모든 국민에게 생계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시작이었다. 시민사회가 권리에 의한 복지를 주장하는 반면, 기획예산처는 근로무능력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생계지원은 사회 전반의 근로의욕 저하를 가져올 수 있으니 일단은 당시 실업률을 안정시키고 사회복지전달체계를 구축한 후 시민사회의 주장을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기획예산처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일하지 않는 자에게 급여를 주면 근로 의욕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9년 6월 대통령 김대중이 국민생활기본법 제정을 천명하는 ‘울산 발언’을 했고, 정부의 입장이 ‘조건부 수급’으로 선회했다. 이렇게 그해 9월 7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었다.3 

제도의 논리: 능력, 의욕

1) ‘능력’의 교육과 그 한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체제는 ‘근로능력’을 가진 빈곤층을 정책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였다. 여기서 국가는 중요한 가정을 전제한다. 신체적으로 건강한 ‘근로능력’은 마땅히 노동하고자 하는 ‘근로의욕’과 결합되어야 하며, 이 둘의 결합이 곧 ‘자립’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다. 국가에게 빈곤 탈출은 ‘능력’, ‘의욕’, ‘자립’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공학적인 도식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도식적 사고는 이 법이 기초한 베인과 엘우드(Bane & Ellwood, 1994)의 ‘합리적 선택 모델’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그들은 인간을 철저한 계산적 주체로 상정한다. 그들의 모델에 따르면, 근로능력자가 노동을 거부하는 이유는 단지 복지급여보다 임금이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도는 소득 공제나 장려금이라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투입하여 이 부등호를 뒤집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한 심리적 측면에서 노동 의욕의 부재를 자신감의 결여로 진단하며, 국가는 자활 역량을 강화하고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라는 처방을 내놓는다. 정리하자면, ‘탈수급’을 ‘자활’의 상태로 규정하며, ‘근로능력’이라는 하드웨어에다 인센티브와 교육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입력하여, 설계에 따라 근로의욕을 출력하고, 이를 통해 자립을 완성할 수 있다는 거대한 함수인 셈이다. 이렇게 합리적 선택 모델은 인센티브를 주면 인간이 움직인다고 가정한다. 소득공제를 확대하고, 자산 형성을 지원하면, 수급자는 계산기를 두드려 ‘일하는 쪽이 이득’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이다.4 이러한 바탕에서 정부는 2008년 이후로 합리적 선택 모델 등을 바탕으로 경제적 인센티브를 강조하여 노동으로 유인하며, 통제력 상실과 자신감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심리적이며 사회적인 역량 강화를 시도했다. “급여를 주는 대신 일을 시킨다”는 ‘생산적 복지’의 명분 아래, 자활은 수급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반대급부이자 의무로서 제도화되었다.5 이런 사정은 초기 자활사업이 사회복지전달체계 등의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조건부 수급’이라는 제재형 성격(participation requirement)을 강하게 띄며 공공근로와 유사하게 운영된 것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제는 다수의 기관에서 참여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종류의 교양교육과 기술교육 등이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과 기술의 양적 성장이라는 환경의 측면과 근로능력의 함양이라는 개인적 측면이 갖춰진다고 해서 탈수급 가능성을 확보하는 건 아니었다. 특히 근로능력의 함양은 전반적인 삶의 변화를 갖추는 것보다 자활지원정책 제도를 기능적으로 수행하며 자격요건을 갖추는 수준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제도가 잘 작동한 듯 보이지만, 참여자들이 제도 내부에서만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더 나아가 제도가 기술과 돈뿐만 아니라 신뢰를 주었는지 물어야 한다. 제도가 ‘빈곤’이라는 수치를 다루었지만, ‘가난’이라는 문화와 ‘두려움과 패배감’이라는 마음은 다루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과연 인간의 능력은 제도가 투입하는 자원에 따라 기계적으로 산출되는가? 제도가 그린 이 매끄러운 수식 사이에는 수급자가 매일 마주하는 삶의 균열과 사회에 대한 공포가 누락된 건 아닌가? 즉, 일하는 능력은 갖게 된 새 기술과 늘어난 통장 잔고가 아니라 ‘실패해도 성장할 수 있으며, 대개는 안전하다’는 신뢰가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 

2) 근로의욕의 부족과 문화적 자립

자활지원사업에서 크게 문제가 제기된 지점은 참여자의 근로의욕 부족이었다. 정부는 ‘빈곤의 함정(poverty trap, 소득 증가 시 급여 삭감으로 인한 실질소득 정체 현상)’이라는 딜레마를 제기했다. 소득이 늘어나면 그만큼 급여가 삭감되는 보충급여의 구조 속에서, 수급자들이 굳이 노동을 유지하며 수급권 박탈의 위험을 감수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근로 능력’과 별개로 ‘근로 의욕’ 함양에 실패하는 상황이 발생했다.6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을 곧바로 제시했다. 2008년 이후 국가는 새로운 정책을 제시한다. 낮은 자활 성공률과 정체된 ‘탈수급’ 지표를 해결하겠다며, 노동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벗어나게 하겠다는 ‘탈수급’을 독자적인 정책 목표로 구체화했다. 이때부터 단순한 근로 의무를 부과하는 자활 정책을 넘어 근로소득공제(EITC)나 자산형성지원(IDA)과 같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통해 수급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하는 정교한 공학적 모델로 변모하기 시작했다.7

이러한 사정에서 가장 큰 고민은 ‘하위문화’라는 문화적 접근이다. 정부는 근로 능력의 함양과 근로 의욕의 함양에 대한 대책을 보다 사회의 근원적인 지점에서 찾았다. 수급자의 개인적 동기를 분석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제도의 모순을 해결하고 실질적인 자립을 지원하는 방식을 찾겠다는 목표였다. 또한 빈곤층의 하위문화가 가진 특수성을 고려한 계급적 이해도 강조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역시나 기술공학적이었다. 2010년 이후 제도 개선을 시도하며, ‘실질적 자립’을 목표로 조건부 수급을 강화하고 자활사업을 전문화했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통합급여에서 맞춤형 급여체계로의 개편이었다. 2023년,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3차 종합계획(2024-2026)”을 내놓았다. 기존 모델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근로 유인’, ‘정서적 지원’, ‘자산 형성’의 세 축을 제기했다.8

이 대책은 효과적이었을까? 오히려 참여자의 근로의욕 부족은 어떤 이유였을지 새로 물어야 하는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참여자의 입장에서 탈수급, 더 나아가 자립은 현실적으로 닥쳐올 의료비 부담, 주거 불안정,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빈곤에 빠졌을 때 재진입이 가능한가’에 대한 불안을 견디는 일이다. 수급자에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단순한 소득 보전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자신을 살게 하는 보호막일 수 있다. 이 보호막을 던지고 노동시장으로 뛰어들라는 요구가 오히려 비합리적인 선택이 아닐까. 그들의 ‘비합리적 선택(수급 유지)’은 사실 가장 안전을 추구하는 ‘합리적 전략’이라는 데서 고민을 새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제도가 보지 못한 것들

1) 근로능력 분류와 그 한계

여기서 문제의 방향을 바꿔보겠다. 정부의 태도를 먼저 살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특히 가장 문제적인 건, 국가가 묻는 건 개인의 성장이 아니라 근로능력을 만들어 낼 환경과 적절한 이를 찾아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질문은 다음의 질문으로 구체화된다. ‘누가 일할 수 있고, 누가 일할 수 없는가?’, ‘누구에게 생계급여를 주고, 누구에게 자활사업 참여를 의무화할 것인가?’ 이 질문은 꽤나 오래된 것으로, 실은 적절한 노동자를 찾기 위해 분류하는 마음이다.

19세기 영국의 구빈법에서 빈민을 두고 ‘가치있는 빈민(deserving poor)’과 ‘가치 없는 빈민(undeserving poor)’으로 구분한 걸 떠올려보자. 노동 능력이 없는 노인·장애인·고아는 구호의 대상이었지만, 건강한 청장년 빈민은 게으름의 결과로 간주되어 작업장(workhouse)에 수용되었다. 지금의 정부가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과 AI 분석 등 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빈곤층을 세분화하고, 그들에게 ‘자격’을 (자동적으로) 부여하거나 박탈하겠다는 언급과 큰 차이는 없다. 과거의 도덕적 판단 구조가 현대에 이르러 ‘과학적’ 용어로 포장되었을 뿐이다. ‘가치 있는/없는’이라는 노골적 표현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근로능력/무능력’이라는 얼핏 중립적으로 보이는 행정적 분류가 들어섰다.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제도는 “일할 수 있는 자는 마땅히 일해야 한다”는 도덕적 명령을 전제한다.

문제는 제도가 끊임없이 정교하고 세세하게 시도한다는 이 분류가 현실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서류 위에 기재된 ‘근로능력’이 현실의 ‘노동 가능성’과 일치하는지는 늘 의문이다. 60세의 만성질환자는 공식적으로 ‘근로능력자’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하루 4시간 이상 일할 수 없을지 모른다. 어떤 이는 진단서 없이는 ‘근로무능력자’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출근길마다 두려움에 계단을 맴돈다. 제도는 신체의 기능만을 묻지, 삶의 맥락은 묻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제도가 규정한 ‘자활’의 경로가 당사자의 삶의 궤적과 충돌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국가가 그려 둔 ‘탈수급’의 경로는 직선으로 뻗어 있지만, 실제 수급자의 삶은 우회와 좌절,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퇴행의 단절적인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제도가 말하는 ‘자활’은 실현가능한 것일까? 정부는 대개 특정한 기간을 설정하고, 선형적인 시간표 안에서 참여자들이 성과를 증명하길 요구한다. 계획을 설계하는 이들은 참여자들이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따고, 취업을 하고, 탈수급을 하는 매끄러운 상승 곡선을 따르길 바란다. 국가의 정책이 ‘회계연도’에 따라 작동하는 탓도 크다. 만약 이 기간 내에 변화가 없으면 시스템은 이를 참여자의 ‘태만’이나 ‘도덕적 해이’로 판정한다. 단계별로 상승하는 계단식의 직선적인 프로세스는 실제로 존재할까? 그렇지 않다. 빈곤의 시간은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만성 질환의 재발, 가족의 부채, 돌봄의 공백 같은 위기로 인해 조금 나아갔다 싶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순환적 시간’이다. 수십 년간 축적된 무기력을 회복하는 데에는 회계연도가 정한 물리적 시간보다 각자의 상처가 요구하는 ‘심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이는 3년 만에 자립할 수 있지만, 어떤 이는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것은 개인의 무능력이 아니라, 각자가 겪어온 상처와 박탈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의 제도는 “빨리 성과를 내라”며 빈곤층의 등을 떠민다. 하지만 삶의 속도가 다른 이에게 속도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필요한 것은 재촉하는 알람 시계가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삶의 경로를 다시 그릴 때까지 제도가 실패를 용인하고 기다려주는 유예와 인내의 시간이다. 자립은 속도전이 아니라 지구전이어야 한다. 

2) ‘감정’의 물적 토대

수급자의 욕구를 검토하며 일하려는 의욕과 정서에 대한 고민과 이를 기반으로 한 정책은 표면적으로 타당해 보이지만, 행정편의주의에 의해 굴절된 결과가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더 자세히 보자면 2008년 이후 기대 모델이 제시한 빈곤의 원인이 수급자의 자신감 결여에 있다는 지적을 적극 반영했고, 이는 ‘정서적 자활’과 ‘사회통합 지표’의 도입 계획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제시하는 방책은 자활역량평가를 개편하여 수급자의 심리적 측면을 측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량과 정서를 계량화하여 관리하겠다는 행정 편의주의가 아닌가 하는 깊은 우려도 든다.

아무래도 수급자의 ‘무력감’이 더 중요한 문제일텐데, 이는 개인의 심리적 결함이나 기술의 부족에서 오는 것만이 아니다. 생애경로 과정에서 오랜 기간 축적된 ‘관계의 단절’과 ‘사회적 모멸감’을 어찌하느냐는 질문도 든다. 특히, 재사회화 교육을 통해 긍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오래된 사회적 믿음에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더구나 무력감은 대개 부정적인 사회경험의 연속과 대면 상호작용의 단절적이며 선택적인 지속 등에 의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말하는 ‘자활준비형’ 프로그램이나 ‘AI 맞춤형 교육’은 기능적 결함과 기능적 결핍을 해소하는 데 집중한다. 자활역량평가, 직업훈련, AI 기반 맞춤형 교육 등 현재의 정책은 ‘기능(Skill)’을 강조한다. 수급자에게 부족한 것은 기술이며, 그 기술을 채워주면 노동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건 기능이 아니라 ‘지지’가 아니냐는 현장에서의 질문에 귀기울여야 한다. 자존감은 프로그램의 이수와 청년내일저축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마련한 통장의 잔고에서 기계적으로 산출되는 건 아니다. 빈곤층의 무기력은 기술 부족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과 ‘사회적 모멸감’에서 온다. 장기 실업 상태에 있는 참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컴퓨터 활용 능력이 아니라, “당신은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타인, 그리고 좋은 일자리이다.

탈수급에 성공한 케이스들의 이면에는 항상 기계적인 매뉴얼을 넘어선 실무자의 ‘관계 맺기’와 ‘지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무자 개인의 헌신이나 ‘좋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실무자가 그러한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만드는 구조를 돌아보아야 한다. 현재 사회복지 현장의 실무자들은 과도한 행정 업무와 더 많은 사례 관리의 부담 속에서 일하고 있다. 사회복지사와 관련 행위자에게 ‘더 따뜻하게, 더 헌신적으로’를 요구하는 건 폭력에 가깝다. ‘개인의 선의’가 아니라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적 여건’이 주어졌는지에 대한 요구는 따로 보기 어렵다. 즉, 안정적인 사업의 수행, 적정한 사례 수, 충분한 시간, 자율적인 판단권이 필요하다. 정책의 성패를 제도의 힘(감시, 발굴, 분류, 부정수급 방지, 전산망 고도화 등)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만큼 실무자의 노동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는 실적 평가 지표를 강화하고, 행정 보고를 늘리며, 실무자를 관리·감독의 대상으로 만든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실무자는 수급자와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대신, 서류를 채우고 실적을 올리는 데 급급해진다. 탈수급 지원 정책 자체뿐만 아니라 실무자가 수급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실무자 1인당 사례 관리 수의 상한 설정, 실적 중심 평가 지표를 전면 재검토하며, 행정 업무 경감을 위한 인력 확충과 같은 구조적 개입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제도를 중심으로 수급자와 실무자가 관계를 맺고, 탈수급을 고민하며 함께 관계를 만드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근로능력’과 ‘근로의욕’, 그리고 튼튼한 지지자를 갖추는 데서 멈추면 안된다. 그들은 ‘좋은 일자리’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제도는 수급자의 ‘능력’을 문제 삼지만, 정작 현실에서의 문제는 노동시장의 ‘구조’에 있다. 현재 빈곤층에게 열려 있는 일자리의 대부분은 플랫폼 노동, 단기 계약직, 영세 하청업체의 육체노동 등 소위 ‘불안정 노동’이 이뤄지는 ‘나쁜 일자리’이다. 대개는 고용 안정성도, 사회보험도, 미래의 전망도 없다. 자활사업 참여자의 취업률은 통계상 30~40%에 달하지만, 1년 후 유지율은 절반으로 떨어진다. 정부는 수급자들을 훈련시켜 이 시장으로 내보내지만, 그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건강을 잃거나 임금 체불을 겪고 다시 수급자로 돌아온다. 이것은 자활이 아니라 ‘회전문 빈곤(revolving door poverty)’이다. 근로능력이 없어서 빈곤한 것일까? 오히려 빈곤을 벗어날 수 있는 노동이 사라진 사회가 된 게 아닐까 묻게 된다. 제도는 공급의 측면에서 수급자의 태도, 기술, 의욕 만을 문제 삼지만, 정작 그들을 받아줄 양질의 일자리인 수요의 측면은 외면한다. 근로능력을 아무리 키워도 그들이 일하며 성장할 수 없다면, 탈수급자가 늘어나는 걸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제도의 경계 어딘가에서 

지난 25년간 탈수급 지원 정책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이유는 제도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제도가 너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과신했기 때문이다. 제도는 근로능력을 측정하고, 의욕을 진단하며, 자립의 경로를 설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제는 AI까지 동원하여 수급자의 마음을 읽고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제도가 정교해질수록 탈수급률은 떨어졌다. 이 역설이 드러내는 진실은 명확하다. 제도의 힘에는 ‘경계’가 있다. 제도는 근로능력을 ‘분류’해냈지만, 출근길의 두려움까지 읽어낼 수는 없었다. 제도는 의욕을 ‘측정’할 수 있었지만, 수십 년간 생애과정에서 경험한 모멸감과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는 없었다. 제도는 자립의 경로를 ‘설계’했지만, 각자의 삶이 흐르는 서로 다른 시간의 속도를 통제할 수는 없었다. 제도는 인센티브를 ‘투입’할 수 있었지만, “다시 빈곤에 빠지면 어쩌지”라는 깊은 공포를 지울 수는 없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가 묻는 질문 자체였다. “누가 일할 수 있는가”라는 분류의 질문은 19세기 영국 구빈법의 ‘가치 있는 빈민’과 ‘가치 없는 빈민’을 나누던 이분법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도덕적 판단이 ‘과학적 용어’로 포장되었을 뿐, 제도는 여전히 개인을 심문하고 자격을 검사하는 권력의 기술로 작동했다. “왜 탈수급하지 않는가?”라는 추궁은 정작 “왜 이 사회에는 빈곤을 벗어날 수 있는 일자리가 사라지는가?”라는 구조적인 질문을 은폐했다. 이처럼 제도가 숫자에 매몰되는 동안, 우리는 ‘감정’뿐만 아니라 그 ‘물적 토대’를 간과했다. 자신감은 교육 프로그램의 이수증에서 오는 게 아니라, 실패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안전감에서 나온다. 근로의욕은 저축 통장의 잔고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관계 속에서 자란다. 그런데 제도는 관계를 기능적으로만 이해한다. 제도는 참여자를 만나는 실무자에게 성공의 실적을 요구하며 더 많은 사례와 서류를 떠넘겼고 관계를 위한 시간을 무시했다. 제도는 수급자의 능력을 문제 삼았지만, 정작 그들이 일하며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은 남의 일인 양 생각했다.

우리가 확인한 건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 제도의 ‘한계’였다. 제도는 물질적인 조건을 마련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인간의 존엄을 회복시킬 수는 없었다. 기회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공포를 지울 수는 없었다. 수치를 관리할 수는 있어도 가난의 문화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돌보지는 못했다. 이제 제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더 정교한 평가 도구와 예산을 투입하는 방식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25년의 시행착오는 제도의 완결성을 높이는 것만으로 답을 찾을 수 없음을 증명했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도를 고치자거나 제도를 넘어서자는 이분법은 잘못되었다. 제도는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제도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의존을 재조정해야 한다. “어떻게 수급자를 탈수급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난의 공포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를 물어야 한다. 제도를 폐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제도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제도 너머의 영역, 그러니까 관계, 신뢰, 시간, 존엄과 같은 것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제도의 힘은 우리가 믿었던 것보다 약했다. 그러나 이 ‘약함’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변화를 시작하는 가장 단단한 지점이다. 25년의 시간이 증명한 것은 제도의 무능이 아니라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제도가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제도 안에서 제도를 넘어서는 실천을 시작할 수 있다. 실무자가 매뉴얼 너머 수급자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정책 입안자가 통계표를 덮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우리는 제도의 경계 어딘가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도가 요구하는 실적과 현장이 필요로 하는 시간 사이에서, 정책이 측정하는 성과와 당사자가 느끼는 변화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갈등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갈등 속에서만 새로운 복지의 가능성이 열린다. 제도를 완전히 신뢰하지도, 완전히 불신하지도 않으면서, 제도의 틈 사이로 스며드는 관계와 연대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25년의 시도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다. 

| 미주 |

  1. 2024년 예산이 증가했고 참여자 수도 증가하면서 활성화되고 있으나 탈수급률은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8년 이후 자활사업에 참여한 생계급여 수급자 가운데 탈수급하거나 취·창업에 성공한 ‘자활성공’과 자활사업 참여 생계급여 수급자 가운데 탈수급한 ‘탈수급자’의 비율이 모두 낮아졌다. 그 이유는 자활사업의 임금수준이 월 161만 원 수준으로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점과 자활사업의 범위가 참여자의 수요와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는 단순 일자리 및 노동에 머물러 있다는 점 때문이며, 자활사례관리사의 부족과 수도권 집중 문제도 있었다. 「수급자 빈곤탈출을 위한 자활지원사업 탈수급은 4명 중 1명에 불과, 효율성 높여야」, 2024. 10. 7., 이개호 국회의원실. ↩︎
  2. 신빈곤층은 ‘근로빈곤층’으로도 불렸고,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어 취업 상태에 있거나 구직 중임에도 불구하고, 저임금과 고용불안으로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집단이다. ↩︎
  3. 강신욱 외, 2004,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과정 분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4. Ellwood, D., and M.J.Bane. 1994. Understanding welfare dynamics. Welfare Realities From Rhetoric to Reform. M.J. Bane and D.Ellwood, ed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김미곤 외, 2008, 『근로능력 수급자의 탈수급에 관한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5. ‘근로 능력’은 교육될 수 있으며, 제도를 통해 갖출 수 있을까.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이전에도 ‘자활’은 존재했다. 이승만 정권에서 전쟁의 여파로 발생한 상이군인·고아·미망인 등의 구호사업, 박정희 정권·전두환 정권에서 급증한 고아·부랑아/부랑인 등의 시설수용사업에서도 사용됐다. 특히, 자활은 정부의 사회복지 정책과 시설사업을 연결하는 통로였으며, 국가의 정책적 지원과 시설의 사업을 기반으로 수용자들이 퇴소 후 경제적 자립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며, 기술을 습득하는 하나의 레짐(regime)이었다. 사회복지학계에서는 이때까지의 자활을 ‘행정’의 영역으로 두고,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이후의 자활을 사회복지의 영역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본질적인 변화는 자활의 공간과 조건의 이동에 있다. 2000년 이후 등장한 ‘새로운 자활’은 더 이상 수용시설이라는 격리된 공간에서의 규율 체득이 아니었다. 또한 ‘자활’을 요구하는 대상이 이전처럼 문제적인 대상도 아니었고, IMF 외환위기로 인한 신빈곤층으로 넓어졌다. 이 신빈곤층 가운데 극심한 가난에 처한 이들은 지역사회 내에서 생계급여를 수급하는 대신, 노동 의무를 수행하는 ‘계약’의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소준철, 2020, 「정부의 ‘자활정책’과 형제복지원 내 사업의 변화」, 『사회와역사』125; 조경식, 2011, 「한국의 시대별 자활복지행정에 관한 연구: 자활사업 제도화 이전을 중심으로」, 『한국행정사학지』28; 조경식, 2019, 「한국의 자활사업 제도화에 관한 연구」, 『한국행정사학지』45; 노대명, 2010, 「자활사업 10년의 평가 및 전망」, 『보건복지포럼』2010. ↩︎
  6. 김미곤 외, 2008, 『근로능력 수급자의 탈수급에 관한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7. 김윤민, 2016,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담론과 제도의 친화성」, 『한국사회정책』23(4). ↩︎
  8. 대표적인 정책은 30세 미만 청년을 대상으로 근로소득 공제를 확대하고 공제율을 차등 적용한 근로 유인 강화 정책이 있다. 자활역량평가에 정서적 지표를 도입하며, 자활준비형과 자립도전형으로 그 유형을 세분화했고, 심리적 자립을 지원함으로써 빈곤 완화와 사회 통합을 추구하겠다는 목표를 제기했다. 또한 청년내일저축 등에 가입하고 유지하게 함으로써 탈수급 이후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물적 자산의 토대를 만들게 했다. 보건복지부, 2023, 『제3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4~2026)』, 보건복지부. ↩︎

| 참고문헌 |

 ·  이개호 국회의원실, 「수급자 빈곤탈출을 위한 자활지원사업 탈수급은 4명 중 1명에 불과, 효율성 높여야」, 2024. 10. 7., 이개호 국회의원실.
·  강신욱 외, 2004,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과정 분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김미곤 외, 2008, 『근로능력 수급자의 탈수급에 관한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김윤민, 2016,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담론과 제도의 친화성」, 『한국사회정책』23(4).
 ·  노대명, 2010, 「자활사업 10년의 평가 및 전망」, 『보건복지포럼』2010.
 ·  보건복지부, 2023, 『제3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4~2026)』, 보건복지부.
 ·  소준철, 2020, 「정부의 ‘자활정책’과 형제복지원 내 사업의 변화」, 『사회와역사』125.
 ·  조경식, 2011, 「한국의 시대별 자활복지행정에 관한 연구: 자활사업 제도화 이전을 중심으로」, 『한국행정사학지』28.
 ·  ______, 2019, 「한국의 자활사업 제도화에 관한 연구」, 『한국행정사학지』45.
 ·  Ellwood, D., and M.J.Bane. 1994. Understanding welfare dynamics. Welfare Realities From Rhetoric to Reform. M.J. Bane and D.Ellwood, ed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월간<복지동향> 2026년 1월호(제327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