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하ㅣ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를 보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서울이나 수도권을 연고로 한 팀이 항상 우승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과도한 수도권 집중화에서처럼 이들 팀들은 여러 측면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지만, 실제 성적은 반드시 그에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방 연고 팀이 우승을 차지하거나 꾸준히 강팀으로 자리 잡는 경우를 빈번히 볼 수 있다. 여기서 그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으나, 스포츠의 승부는 단순히 자원의 크기가 아니라, 그 자원을 어떻게 조직하고 운영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사실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돌봄, 의료, 주거와 같은 기본적인 삶의 조건 역시 ‘어떻게 설계되고 운영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한국과 같은 중앙집권적 국가도 높은 수준의 지방분권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인 스웨덴은 복지분권에 있어서도 ‘우등생’인데, 지방선거 투표율이 80%를 훌쩍 넘는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관심의 결과라기보다, 지방정부가 실제로 돌봄, 의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핵심주체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지방선거를 통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만큼 선거는 ‘삶의 정치’로 작동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논쟁은 보편적 복지와 국가 책임을 둘러싼 전국적 쟁점으로 확장되었고, 지방선거에서도 복지 의제가 정치적 경쟁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이후는 어떠했는가? 지방선거는 다시 개발 공약과 단기 성과 중심의 경쟁으로 회귀했고, 돌봄·의료·생계·주거와 같은 시민의 일상은 점차 주변으로 밀려났다. 결국 우리는 지금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지방선거는 ‘지역 개발’을 위한 경쟁인가, 아니면 ‘어떤 삶을 보장할 것인가’를 묻는 정치의 장인가?
복지 없는 지방선거는 왜 반복되는가
지방선거에서 복지 의제가 주변화되는 현상은 단순히 후보나 정당의 전략 문제로 설명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 정치의 구조적 특성 및 제도적 유산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지방선거는 여전히 중앙정치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는데, 유권자의 선택은 시민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 기반 정책보다는 정당 지지나 중앙정치 구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고, 이는 곧 정책 중심 경쟁의 부실을 가져왔다. 더욱이 이번 선거는 복지정책이 정당 지지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라 복지 자체가 선거 쟁점으로 부상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서구 케인즈주의보다 훨씬 더 강력한 중앙정부 개입주의로 대변되는 발전주의 국가(developmental state)의 유산 아래 지방정부의 권한과 책임이 불명확한 상황도 중요한 요인이다.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의 맏형 격이었던 일본은 막부시대 이래 봉건영주인 다이묘의 영향력이 강했던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지방분권적 전통이 강한 반면, 한국의 지방정부는 정책의 주체라기보다 중앙정부 정책의 집행자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으며, 복지분권은 여전히 분절적 구조 속에 놓여 있다. 그 결과 지방선거에서 복지 의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할 유인 자체가 약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에서 보건복지정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의 불평등이 단순한 소득 격차를 넘어, 지역 기반의 삶의 격차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초고령사회 진입, 1인 가구 증가, 고용 불안정, 지역 간 격차 확대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시민의 삶이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돌봄은 여전히 가족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고, 공공의료는 지역에 따라 접근성과 보장성에서 큰 차이가 있다. 기초생활보장은 많은 빈곤층을 사각지대에 남겨두고 있으며, 주거는 취약계층에 안정적인 삶의 기반이 되지 못하고 있
다. 특히 이러한 문제들은 지역 단위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동일한 제도 아래에서도 지자체의 재정력과 정책 역량에 따라 돌봄 인프라, 의료 접근성, 기초보장 수준, 주거 지원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으며, 이는 시민의 삶의 기회를 지역에 따라 다르게 만드는 구조적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복지분권의 딜레마와 조건
주지하듯이 복지와 지방선거를 연결하는 핵심은 복지분권이다. 그러나 분권 그 자체가 무조건 바람직하거나 분권화가 곧 복지 향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지방정부 간 재정과 역량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분권은 자칫 지역 간 복지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으며, 때론 중앙의 책임을 지방에 떠넘기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공공돌봄 인프라나 의료 접근성이 크게 부족한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비교적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불균형이 존재한다. 따라서 분권의 확대 여부를 넘어서 어떤 방식의 분권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복지국가의 발전은 단순한 분권화 여부가 아니라, 지방정부의 역량과 중앙정부의 책임 및 조정 능력, 그리고 양자 간의 상호보완적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이 점에서 지방선거는 지방자치, 지방분권, 균형발전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동시에 다루는 정치적 과정이어야 한다.
최근 발표한 ‘참여연대가 제안하는 6.3 지방선거 보건복지분야 정책요구안’에서 강조되었듯이, 지방선거는 지역 간 격차를 줄이고 지역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을 검증하는 기회이자, 지역에서 ‘어떤 삶을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돌봄·의료·소득·주거를 선별적 지원이 아니라 보편적 권리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지방자치단체가 서비스의 기획·집행·평가 전 과정에서 실질적 책임 주체가 되어야 한다. 셋째, 분절된 제도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 기반 통합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넷째, 중앙정부의 역할을 포함한 지역 간 격차 완화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복지분권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자 지방선거를 ‘삶의 정치’로 전환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 것이다.
지방선거, 다시 ‘삶의 정치’로
지방선거는 종종 ‘작은 선거’로 여겨진다. 지방선거는 늘 작게 보이고, 그 결과 역시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순서는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삶을 묻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선거가 작아진 것은 아닐까? 따라서 지방선거는 ‘어떤 삶을 보장할 것인가’를 묻는 선거가 되어야 하며, 복지정책은 지역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정치 의제인 것이다.
참고문헌
· 이주하 (2022) “공공성 강화를 위한 복지분권과 지방선거”, 「월간 복지동향」 5월호(제283호).
·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2026) 「참여연대가 제안하는 6.3 지방선거 보건복지분야 정책요구안 – 돌봄·의료·기초생활보장·주거·청년정책 분야 9대 과제」
월간<복지동향> 2026년 5월호(제3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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