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복지학교 2026-09-08   2302

[청년복지학교 후기⑥] 한국 복지의 민낯을 마주하며

[한국 복지의 민낯 : 빈곤은 어떻게 다루어지나] 강의 후기

2026 참여연대 청년복지학교 참가자 박예은

이번 참여연대 청년복지학교에서 진행된 남기철 교수님의 강의,〈한국 복지의 민낯 : 빈곤은 어떻게 다루어지나〉는 연구자이자 실천의 언저리에 서 있는 나 자신에게 깊은 성찰과 서늘한 질문을 안겨준 시간이었다. 한국 빈곤의 통계적 특성이나 현실 자체는 학업을 하며, 또한 정책연구의 현장에서 연구를 진행하며 익히 접해왔던 터라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숫자로만 접했던 데이터의 이면을 복지철학의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았을 때 마주한 현실은 훨씬 무거웠고 참담했으며, 많은 성찰의 화두를 던져주었다.

2026.8.26.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한국 복지의 민낯 : 빈곤은 어떻게 다루어지나> 강의 중인 남기철 교수(사진=참여연대)

처음 사회복지를 배울 때만 해도 당연한 체계처럼 여겼던 ‘전물량 방식’의 최저생계비 측정이, 사실은 전 세계 교과서에 유례없는 사례로 실릴 만큼 이례적인 방식이었다는 점은 새삼 놀라웠다. 과거 신발 켤레 수와 속옷 개수까지 일일이 세어가며 최저생계비를 산출해 내던 수고로움을 떠올려보면, 측정과 합의가 어려워 제도를 손보지 못한다는 식의 변명은 설득력을 잃는다. 더욱 답답했던 지점은 지원 단위와 선정 기준의 모순이었다. 대다수 선진 복지국가가 ‘개인 단위’와 ‘소득 중심’으로 안전망을 구축해 가는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고 엄격한 ‘가구 단위’를 고수하며 가족의 1차적 부양 책임을 제도화하고 있다.

비록 부양의무자 기준이 일부 완화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이 기준은 거대한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장을 들여다보면 제도가 요구하는 과정 자체가 당사자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폭력으로 다가온다. 복지 급여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을 확인하는데, 부모 입장에서는 빠듯하게 살아가는 자식에게 짐을 지우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다. 더 비참한 것은, 지원을 받기 위해선 ‘자녀가 나를 실질적으로 돌보지 않는다’는 가족관계 해체나 단절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자식을 ‘부모를 방치한 파렴치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고, 자녀 역시 행정의 차가운 검증 시선 앞에 서게 된다. 결국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혹은 자녀를 불효자로 낙인찍히게 할 수 없어 수급 신청 자체를 포기하고 국가의 안전망에 들어오길 포기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가족의 1차적 책임을 강조하겠다는 명분으로 설계된 제도가, 역설적으로는 부모와 자식 간의 연락을 끊게 만들고 마지막 남은 존엄한 관계마저 파탄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가족을 지탱하겠다는 제도가 도리어 가족을 해체하고 사각지대로 내모는 현실은 씁쓸함을 넘어 참담함마저 느끼게 했다.

연구 과정에서 늘 품고 있던 의문도 이번 강의를 통해 뼈아프게 풀렸다. 실제로 연구를 진행하며 통계청의 중위소득 데이터와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 안내 책자에 적힌 ‘기준중위소득’을 비교해 보면 늘 상당한 격차가 존재해 의아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정부의 예산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낮게 억눌러 온 ‘의도된 왜곡’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강의 중 직접 마이크를 잡고 “시민사회와 학계의 비판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내세우는 방어 논리는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교수님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허탈하기 이를 데 없었다. 통계 산출의 시차를 핑계로 본질을 회피할 뿐, 실제로는 이렇다 할 논리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자본이나 기업의 세금 문제는 수많은 전문가와 관료들이 치밀한 논리로 제도를 다듬어가는데, 왜 가장 취약하고 목소리를 내기 힘든 빈곤층의 생존 기준은 이토록 허술하고 깜깜이로 방치되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가. 제도의 침묵 속에 갇힌 권력의 불균형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 강의에서 가장 큰 지적 충격을 주었던 화두는 ‘열등처우의 원칙’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근대 구빈법적인 열등처우의 원칙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급자가 비수급자보다 반드시 비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공공 연구의 틀 안에서 제도를 설계하고 검토할 때, 나도 모르게 “지원을 받는 사람이 일하는 비수급자의 수준을 넘어서는 안 된다”, “역전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상한선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기본값처럼 당연하게 전제하고 있었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연구자로서 내 사고 역시 견고한 열등처우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결국 복지 정책의 대원칙은 도덕적 해이나 부정수급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연대성’이어야 하며, 제도의 목표는 인간으로서의 고통이나 욕구에 적절하게 대응하는데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며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를 안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해진 한 가지는, 복지 수준이 비수급자를 기준으로한 상대적 잣대에 종속되어서는 안 되며, 한 인간이 온전히 누려야 할 고유한 권리와 삶의 질, 존엄성에 기초하여 재설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2026.8.26.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한국 복지의 민낯 : 빈곤은 어떻게 다루어지나> 강의 모습(사진=참여연대)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비유하신 ‘의자 뺏기 게임’은 내 연구의 지향점을 근본부터 흔들어 놓았다. 사람 수보다 의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구조 속에서는, 아무리 모두가 최선을 다해 발버둥 쳐도 필연적으로 탈락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노력이 부족했다”, “나태하고 게으르다”며 개인의 도덕적 결함으로 낙인을 찍고 빈곤을 범죄화해 왔다. 의자가 넉넉한데도 게을러서 앉지 않은 것이 아니다. 결국 사회복지 정책과 연구가 바라보아야 할 곳은 ‘탈락자의 심리사회적 결함’이 아니라 ‘왜 의자의 수가 사람보다 적은가’, 그리고 ‘게임의 규칙이 왜 이토록 불공정하게 짜여 있는가’라는 구조적 물음이어야 한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의 고통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의 잔인함에 맞서,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꾸기 위한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 연구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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