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26-10-01   156

[중꺾정77화] 정치개혁을 가로막는 300석의 금기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 이 칼럼은 오마이뉴스와 슬로우뉴스에 중복 게재됩니다.

정치개혁을 가로막는 300석의 금기

홍재우(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결국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용혜인 의원의 장관 후보자 지명 이후 벌어진 의원직 사퇴 논란은 한국 정치가 비례대표와 소수정당을 어떻게 대하는지 드러냈다.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은 우리 대통령제에 있는 의회중심제(내각제)의 특징으로 오래도록 시행되어 온 제도이며, 국회법 어디에도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을 달리 취급한다는 규정은 없다. 겸직이 의정활동과 행정부 견제에 부적절하다면 그 제도 자체를 바꿀 일이다. 지역구 의원의 입각에는 적용하지 않는 사퇴 의무를 비례대표 의원에게만 부과하려면, 적어도 두 종류의 대표 사이에 어떤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후순위 후보자가 승계할 수 있다는 편의만으로 선출된 대표에게 물러날 의무가 생기지는 않는다.

논란만 남고, 본질은 빗겨간 ‘용혜인 논란’

더구나 용 의원은 기본소득당의 유일한 국회의원이다. 그가 사퇴하면 같은 당의 다른 후보가 의석을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당 자체가 원외로 밀려난다. 다른 정당의 비례대표 의원이 사퇴했던 선례를 이런 경우에까지 당연한 관례로 들이대는 것은, 정당마다 다른 조건을 지워버린 채 형식적 일관성만을 강요하는 일이다. 사퇴의 정치적 책임은 본인과 소속 정당이 유권자에게 져야 한다. 다른 정당이 그 정당의 원내 존립까지 대신 결정할 권한은 없다. 소수정당의 대표 한 명에게 장관직과 의석 중 하나를 고르라고 압박하면서, 그 요구가 사실상 무엇을 포기하라는 말인지는 돌아보지 않는다.

위성정당을 통해 얻은 의석이니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위성정당이 왜 출현했는지부터 되짚어야 한다. 지역구 의석과 정당 득표를 연동해 대표성의 불균형을 줄이려던 제도는, 지역구 후보를 내는 정당과 비례대표 명부를 내는 정당을 분리하는 순간 무력화될 수 있었다. 이를 겨냥해 먼저 비례대표 전용 정당을 만든 것은 당시 자유한국당 쪽이었다. 상대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의석을 확보하는데도 민주당과 진보정당들만 원칙을 지키며 손실을 감수하라는 요구는, 경쟁의 조건을 외면한 정치적 순결주의에 가깝다. 제도의 취지를 지키자는 주장이 특정 진영의 일방적인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개혁의 설득력도 유지하기 어렵다.

그 안에 소수정당이 참여한 것 역시 주어진 제도에서 대표를 확보하려는 정치적 대응이었다. 정치는 제도적 환경을 읽고 그 안에서 가능한 선택을 조직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유권자 또한 정당의 이름만 보고 기계적으로 표를 던지는 존재가 아니다. 지역구에서는 어느 정당을 지지하고,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어떤 연합에 표를 주어야 자신의 정치적 선호가 의석으로 이어지는지 판단한다. 위성정당은 이 판단에 더 복잡한 정보 처리를 요구했지만, 그렇다고 그 표를 모두 기만당한 유권자의 표로 취급할 수는 없다. 제도에 대한 비판이 그 제도 안에서 이루어진 유권자의 선택과 선출된 대표의 정당성까지 부정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소수정당의 의석 승계가 문제라면 해결할 제도도 만들 수 있다. 선거연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공동 명부의 특정 순위에 어느 참여 정당의 후보가 배정되는지와 함께 그 순위에만 해당하는 정당의 후보·승계 명부를 별도로 등록하도록 하면 된다. 해당 의원의 궐위 때에는 선거 전에 공개된 그 정당의 명부에 따라 승계하도록 설계하자는 것이다. 제도가 복잡해지지만, 중요한 것은 유권자가 연합의 구성과 의석 배분, 승계 방식까지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제도가 처리하지 못한 연합정치의 문제를 군소정당 의원 개인의 도덕성으로 떠넘길 이유가 없다.

이번 논란에서 더 불편한 것은 비례대표 의석을 당에서 나누어 준 ‘공짜 자리’처럼 취급하는 시선이다. 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에게는 독자적인 정치적 지위를 인정하면서 비례대표 의원에게는 자리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손쉽게 던진다. 여기에 젊은 여성 정치인을 아직 자격을 입증하지 못한 수혜자로 바라보는 편견까지 겹친다면, 그 압박은 통상적인 정치적 비판을 넘어선다. 선출 방식과 성별, 나이를 이유로 대표의 지위를 가볍게 취급하는 것은 정치적 폭력이다. 용혜인을 좋아하느냐와 무관하게, 그에게 적용하는 기준이 다른 의원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는 물어야 한다.

그렇다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위성정당을 통한 우회를 줄일 장치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필요하다. 지역구 후보를 공천하는 정당에는 독자적인 비례대표 명부 제출을, 비례대표 명부를 제출하는 정당에는 지역구 후보 공천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공식적인 선거연합에는 앞서 말한 별도의 규칙을 적용하면 된다. 형식적인 후보 공천이나 명부 제출로 다시 우회할 가능성은 남지만,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제도 설계 자체를 포기한다면 어떤 제도도 설계할 수 없다. 목표는 정당의 진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인위적으로 분리하여 얻는 이익을 줄이는 데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보완으로 선거제도 개혁의 교착이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현재의 300석, 지역구 254석과 비례대표 46석이라는 구성을 그대로 둔 채 실현할 수 있는 개혁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체 의석의 15% 남짓한 비례대표로 지역구 선거에서 발생하는 불균형을 교정하고, 다양한 사회집단의 대표를 진입시키며, 지역주의까지 완화하겠다는 요구는 그 적은 의석에 지나치게 많은 일을 맡기는 것이다. 배분 공식의 정교함으로 의석의 부족을 끝없이 대신할 수는 없다.

정치혐오에 가려진 의원 정수 확대

이 한계를 넘기 위해 1인 선거구를 모두 없애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전환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정당 득표와 의석의 비례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이지만, 그것으로 대표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권역별 의석을 인구에 엄격히 비례하여 배분하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모여 사는 수도권에 전체 의석의 절반 이상이 배정된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은 경제적·사회적 주변화에 이어 정치적 발언권의 축소까지 감당해야 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곧 지역대표성의 소멸을 뜻하지는 않지만, 넓은 권역의 정당 명부가 생활권별 대표와 주민 사이의 관계를 충분히 대신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인구가 적고 지역이 넓을수록 자신의 지역 사정을 구체적으로 알고 책임질 대표의 필요성은 오히려 커진다.

현재의 지역구를 유지하는 쪽도 간단하지 않다. 선거구는 시·도 경계 안에서 획정해야 하고, 시·군·자치구의 일부를 떼어 다른 선거구에 붙이는 데에도 원칙적인 제한이 있다. 여기에 최대·최소 선거구의 인구비가 2 대 1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 생활권과 교통, 농산어촌의 지역대표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각각 이유가 있는 규칙이지만, 인구가 늘어나는 지역의 분구와 줄어드는 지역의 대표성 보존을 동시에 처리하려면 의석 배분의 여유가 필요하다. 그 여유를 허용하지 않으면 지역구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비례대표가 줄어들 압력이 반복된다. 2024년 지역구가 253석에서 254석으로 늘면서 비례대표가 47석에서 46석으로 줄어든 것은 그 구조를 잘 보여준다. 1인 2표제 제도를 유지하는 한 앞으로 지역구가 늘어날 가능성은 있어도, 지역구가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

결국 핵심은 지역 대표성을 지키면서 비례성을 높이고 소수정당의 진입까지 확대하려면 의원 정수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역구를 대폭 줄이는 데에도, 정수를 늘리는 데에도 동의하지 않으면서 비례대표를 확대하겠다는 주장은 실행할 수 있는 선택을 남겨두지 않는다. 300석 안에서도 이론적으로 더 나은 제도를 설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대표 요구와 현역 의원의 이해관계, 정당 간 경쟁을 모두 통과해야 하는 현실의 개혁은 종이 위의 설계와 다르다. 정수 확대는 이 충돌을 완화하고 개혁을 협상할 공간을 만드는 조건이다.

문제는 이것이 가장 인기가 없는 개혁 의제라는 데 있다. 2012년 안철수 의원이 의원 정수 축소를 정치개혁의 방안으로 내세운 이래, 의원을 줄이는 일이 곧 특권을 줄이고 기득권을 해체하는 일이라는 오해가 거듭 재생산되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대표의 수를 줄이자는 결론으로 옮겨가는 동안, 적은 의석이 누구에게 유리한지는 거의 검토되지 않았다. 제한된 의석을 이미 점유한 정당과 정치인에게 정수 동결은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을 막는 유리한 조건이다. 정치혐오가 기득권을 공격한다고 믿으면서 실제로는 그 기득권을 보호하는 셈이다.

지역에서도 모순은 반복된다. 인구 감소로 유권자 자신의 선거구가 사라지거나 이웃 지역에 통합되는 일에는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지역대표를 유지할 여지를 만드는 전체 정수 확대에는 반대한다. 인구가 늘어나는 지역의 대표를 줄일 수도 없고 자기 지역의 의석도 내놓을 수 없다면, 남은 것은 비례대표를 덜어내는 일이다. 그렇게 줄어든 비례대표로 다시 대표성과 다양성을 높이겠다는 논의가 시작된다. 이 순환을 끊으려면 지역의 정치적 소외를 걱정하는 사람들부터 의원 정수 확대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의석 증원의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역구 조정의 충격을 완화하면서 비례대표를 늘릴 수 있고, 지지가 전국에 분산되어 지역구 당선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정치세력에도 대표를 확보할 기회를 넓힐 수 있다. 정당이 공천을 개방한다는 조건 아래 새로운 세대와 사회집단의 진입 여지도 커진다. 상임위원회의 입법·예산 심사와 행정부 감시를 더 많은 의원이 분담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국가가 처리하는 사무는 복잡해지고 행정부의 정보와 전문성은 커지는데, 이를 통제할 대표기관의 규모만 고정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증원이 저절로 좋은 국회를 만들지는 않지만, 국회가 해야 할 일을 더 충실히 수행할 조건은 제공할 수 있다.

물론 비용이 든다. 그렇다면 늘어나는 비용과 그에 상응하는 대표성·감시 역량을 놓고 토론하면 된다. 의원 개인의 처우와 특권은 별도로 엄격히 통제하고, 공천과 의정활동의 책임성도 높여야 한다. 그러나 대표기관의 규모를 줄이는 것으로 이 과제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 소수의 의원에게 더 많은 권한과 업무를 몰아준다고 그들이 자동으로 유능해지거나 청렴해지는 것은 아니다. 의원을 늘리자는 주장에 국민이 반대한다는 말만 반복하는 정치권과 시민사회도, 그 반대를 설득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단번의 증원이 어렵다면 의원 한 명이 대표할 적정 인구를 기준으로 정수를 조정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보다 낮은 대표인구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따른 목표 정수까지 몇 차례 선거에 걸쳐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이후에는 인구 변화에 따라 정수가 조정되도록 하되 비례대표의 몫은 일정 비율로 보장할 수 있다. 이미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이므로 단순히 인구에 연동한다고 의석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적정한 대표의 밀도를 정하고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증원을 정치인의 끝없는 자기 확대처럼 받아들이는 불신에도 구체적인 답을 제시할 수 있다.

먼저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까지 늘려보자

이제 선거제도 개혁의 우선순위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연동형은 정당 지지에 상응하는 대표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다. 적은 비례 의석을 남겨둔 채 위성정당과 제도적 우회가 반복되는 준연동형을 이름만으로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병립형으로의 회귀 압력은 커지고, 비례대표는 거대 정당이 나누어 주는 부수적인 자리라는 취급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선거제도의 명칭은 남아도 그것을 도입한 목적은 사라질 수 있다.

당장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까지 늘릴 수 있다면, 연동 방식의 정교화는 다음 단계의 과제로 두는 선택도 배제할 필요가 없다. 지역구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를 100석 또는 그 이상으로 늘리는 변화는 병립형 아래에서도 정당투표가 국회 구성에 미치는 비중을 크게 높인다. 그것만으로 지역구의 불비례가 교정되지는 않지만, 더 많은 시민의 정치적 선호가 독자적인 대표를 얻을 공간은 확실히 넓어진다. 지켜야 할 것은 특정 배분 공식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대표성을 실제로 확장하는 개혁의 방향이다.

용혜인 논란은 한 정치인에게 자리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소수정당의 유일한 대표를 국회 밖으로 밀어내면서 정치적 다양성을 말할 수는 없으며, 비례대표의 지위를 낮추면서 비례대표제의 발전을 주장할 수도 없다. 개인에게 제도의 모순을 감당하라고 요구하는 대신, 그 모순을 해소할 규칙과 의석을 마련해야 한다. 의원 정수 확대를 논의에서 제외하는 한, 선거제도 개혁은 앞으로도 같은 이해관계와 같은 산술 앞에서 멈추게 될 것이다.

▶ 중꺾정 필자의 견해는 참여연대 공식입장이 아니며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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