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3당이 국민의 ‘혈세’인 국고보조금을 정당법 등 현행법을 위반해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허위로 회계보고를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치개혁위원회(이하 정치개혁위원회. 위원장 지하은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6월 20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2000년 정당 국고보조금’ 실사 결과를 발표하고, “정당이 국고보조금을 용도에 맞지 않게 사용하고, 회계장부 조작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며 “정당 장부가 친목모임의 회계장부보다 못하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정책개발비를 정당 당직자 임금으로 ‘편법’ 지급”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치개혁위원회가 지난 4월 중순부터 3개월에 걸쳐 5명의 자원활동가를 동원해 중앙당 국고보조금 회계자료를 필사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경우 국고보조금 중 20% 이상을 의무 사용해야 하는 정책개발비 12억원을 사무처 당직자 임금으로 ‘편법’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또 “민주당의 경우 중앙당 유급사무원수 제한을 피하기 위해 사무처 당직자 49명을 정책 전문위원으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선거법 위반 소송 관련 변호사 선임비용 1500만원을 국고보조금에서 지급했다”며 “자민련 역시 국고보조금으로 김종필 명예총재의 휘호·달력·화첩 등을 제작하는데 8천8백여만원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손혁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실사결과를 발표한 뒤 “국고보조금에 대한 회계감사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당은 현행법을 위반하여 국민의 혈세를 지출하고 있고, 그 증빙서류 또한 부실하다”고 지적하고, “국고보조금에 대한 철저한 회계감사와 위법 사항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치개혁위원회에서 발표한 실사결과에 따르면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3당이 모두 국고보조금 20% 이상 정책개발비 의무 사용조항(정치자금법 19조)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개혁위원회는 “한나라당의 경우, 정책개발비로 신고한 ‘사무처 당직자 정책 활동비’ 12억원을 사무처 당직자에게 편법적으로 매달 지급해 왔다”며 “한나라당 회계보고서 중 인건비 항목에 나와 있는 당직자의 급여가 단순 사무직 40만원에서 국장은 100만원 선으로 지나치게 낮은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사실상의 인건비를 지급하고 있다는 의혹을 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재정국 봉종근 부장은 “정당의 특성상 전 당직자가 정책활동을 해야 한다는 판단하에 기본급을 제외한 당직자 급여를 정책활동비로 지급하고 있다”며 “당직자들에게 민원, 독자투고, 여론조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직자들이 정책활동에 따른 보고서 등을 제출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봉종근 부장은 “의무적으로 내게 하고는 있지만 잘 안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답했다.
“민주당, 사무처 직원을 정책전문위원으로 둔갑”
정치개혁위원회는 또 “작년 2월 정당법 개정으로 ‘중앙당의 유급사무원수 150명 제한 규정’이 도입되었는데, 민주당은 유급당직자수 제한 규정을 지키기 위해 사무처 직원을 대폭 정책전문위원으로 둔갑시켜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민주당이 신고한 7월 현재 정책전문위원은 정OO 외 47명이었으나, 유급당직자제한규정이 적용된 8월에 이르러서는 원래 인원에 김OO 외 48명이 추가되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한 “추가된 49명은 그 전달인 7월까지 사무처 당직자 급여명세서 상에 유급사무원으로 신고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현재까지 당직자로서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이와 관련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소명자료에서 “8월부터 실시된 유급당직자 제한 규정과 관련 없이 당의 정책기능 강화 지침에 의한 당 규정에 의한 인사 명령”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또 “현재 당직자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일시적인 파견업무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고보조금 회계보고에 있어서도 국고보조금의 지급취지에 맞지 않는 용도로 지출된 사례가 적지 않다.
정치개혁위원회는 “민주당의 경우 ‘선거법 위반 소송 관련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 국고보조금에서 1500만원을 지급하였는가 하면, 자민련은 명예총재 휘호제작비 6000만원, 명예총재 화첩 달력제작비 2000만원, 총재 권한대행 휘호 인쇄비 200여만원 등을 국고보조금에서 지급했다”고 지적했다.
“자민련, 김 명예총재 화첩 제작비를 국고보조금으로 지불”
이에 대해 자민련 재정부 최진현 간사는 “명예총재 화첩 달력 등은 국고보조금에서 지출된 것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실사에 참가했던 자원활동가 김태우씨는 “우리가 실사한 장부는 정당 국고보조금 내역뿐이었는데 분명 그 장부에 명예총재 화첩 달력 등이 명시돼 있었다”며 “만일 이를 국고보조금으로 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명백한 장부위조가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또한 각 정당이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회계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증빙서류의 75.5%가 부실한 증빙서류였으며, 각 정당별 부실 비율은 한나라당 81.6%, 민주당 73.7%, 자민련 60.8%로 나타났다. 특히 부실 증빙서류의 61.1%가 각 정당이 당직자에게 지급한 급여에 대한 부분이다.
참여연대 이강준 간사는 “급여에 대한 온라인 입금이 용이하고 일반적으로 널리 이용되는 상황에서, 정당은 은행의 ‘입금전표’ 등이 아닌 임의조작이 가능한 ‘지급명세서’를 선관위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정치개혁위원회는 국고보조금 실사 결과 발표에 이어 △정당 국고보조금 열람제한 및 복사금지 조항 폐지 △정치자금의 철저한 회계감사와 위법사항에 대한 엄정 대처 △정치자금 수입내역 공개 △국고보조금 계상과 배분방식 개혁 등을 요구했다.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급은 정당의 공적인 활동을 지원하고 음성 정치자금 수수를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1981년 도입됐다. 특히 매년 국가예산으로 각 정당에 지원해 오던 국가보조금이 내년에는 천억원을 넘어 사상 최대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현행 보조금제도는 그 도입취지와는 달리 나누어 먹기 식으로 지급될 뿐 아니라 불투명하게 사용됨으로써 도리어 왜곡된 정치관행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특히 환경운동연합 서주원 사무처장은 “이번 실사를 벌이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지난 21년 동안 선관위가 정당 국고보조금 사용에 대해 형식적인 지적만 했을 뿐 단 한차례도 위법사항에 대한 법적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정당 국고보조금 실사 결과 공개는 정당 스스로가 개선하기 힘든 정치자금운용에 있어 시민단체가 다양한 압력을 가해 실질적인 정치자금법 개정운동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치개혁위원회는 이번 중앙당 국고보조금 사용내역에 이어 오는 25일 서울지역 전 지구당의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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