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연구프로젝트’ 중간발표회에서 재벌정책 현안 뜨거운 논란
최현주 기자 2004-05-23
한국 30대 재벌그룹에 대한 의미 있는 연구결과가 공개됐다. 2002년 8월부터 참여사회연구소와 인하대 산업경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 중인‘재벌연구 프로젝트’의 중간 연구성과로, 1987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 30대 재벌그룹 280여 개 기업에 대한 소유구조, 경영진 구성, 경제력 집중, 사업구조 변화 등이 21일 2차 발표회를 통해 공개되었다.
1, 2부 연구성과 발표에 이어 3부에서는‘재벌정책의 현안’을 둘러싼 원탁토론이 진행되었다. 이병천 강원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의 사회로, 재벌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금융보험사 의결권제한 등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재벌개혁제도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자본의 국적성을 주장해 온 장하준 캠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출자총액제한이나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등을 통해 소액주주의 권한을 보호하는 것은 국내기업을 역차별하는 것”이라며 “경영권의 전횡보다 위기가 문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장 교수는 소액주주의 권한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를 지향할 것이 아니라 한국식 자본주의를 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다른 토론자들은 현 단계 재벌개혁방안으로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시장개혁 로드맵의 기본 취지에 동의를 표했다.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규제는 “소액주주 보호방안을 통해 주식회사의 자금조달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것”이라며, “지금 단계에서는 재벌정책의 목표로 소액주주권한보호를 삼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법경제팀 연구위원은 지금이 과도기라는 점을 강조하며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등의 실효성을 주장했다. 또한 가계부실을 정리하면 소비가 위축되듯 재벌개혁으로 인한 투자위축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며 “거시적인 경제 어려움을 지나치게 증폭시켜 미시적인 법제를 움직이려고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진방 인하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재벌의 문제는 전횡을 하고도 경영권이 안정되었다는 것”이라며, 재벌을 일방적으로 지키자는 주장에는 “재벌변혁을 가져올 수단이 무엇인지는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후 사법구제가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중간과정으로 공법의 엄격한 적용을 통해 판결의 선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말로 공정거래법 등 규제강화와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했다.
이날 토론에는 재벌개혁의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도 참석했다. 이동규 공정거래위원회 정책국장은 재벌개혁을 통한 시장정상화에 대한 정부입장을 설명하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과 계획도 밝혔다.
이 국장은 “현재의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소유구조의 악화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라며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유지를 재확인했다. 동시에 산업자본에 의한 금융자본 지배, 그를 통한 다른 산업자본 지배 등 3각 구도에 대한 우려를 지적하며,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에 대한 기본 입장과 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한도를 현행 30%에서 15%로 축소해야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키로 예정된 전경련 측 인사는 토론 당일 불참을 통고해 왔다.
다음은 이날 토론 내용이다.
사회자(이병천 강원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이하 사회자) : “재벌개혁의 중심의제는 책임-투명경영이다. 경영권의 전횡이 문제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SK그룹의 예를 보듯 경영권의 불안과 위기가 있다. 구조적인 딜레마에 처해 있다고 본다. 한국에 맞는 자본주의가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주어진 화두다. 개혁은 과거의 것을 부수는 동시에 새로운 것을 찾는 것 아닌가. 오늘 토론회에서는 재벌개혁을 보는 시각부터 먼저 논의하고 이어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금융계열사 의결권제한문제 등 재벌개혁의 구체적 제도와 현안에 대해 논의해보기로 하자.”
장하준 교수, “자본주의 경영은 원래 독재체제, 경영권 불안이 오히려 심각”
장하준 캠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하 장하준) : “경영권의 전횡과 동시에 불안이 겹쳐진 상황이라는 말이 현 재벌문제의 딜레마를 잘 정리하고 있다. 전횡과 불안을 나눠 보면, 우선 전횡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지금은 과거와 같은 전횡이 있기 힘들다. 또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것으로 보는데 그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경영은 독재체제다. 경영하는 동안은 전제군주처럼 하는 것이다. 경영권 세습은 문제삼을 수 있어도 경영할 때의 전횡을 문제삼아서는 안된다. 경영민주화를 말하려면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주장해야지, 1주 1표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경영권 불안이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 주식시장 상장총액은 미국의 100분의 1이다. 이걸 출발점으로 삼아야한다. 자본시장이 개방되어 있고, 적대적 인수합병이 합법적으로 되어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어떤 식으로 헤쳐나갈 수 있느냐가 문제다. 이론상으로는 미국자본 1%만 오면 우리나라 상장기업 모두를 살 수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G7 주식시장에서 떠도는 돈의 0.5%만 들어와도 우리나라 기업 모두를 살 수 있다. 그런데 국내 재벌에게 역차별인 조건으로 경영불안을 야기해 우리에게 생길 것이 무엇인가.
국적없는 자본이란 없다. 자본에 국적이 없다 해도 실제로 봐라. 고부가가치를 가져가고 결정권을 행사하는 이는 결국 본국인이다. 독일기업인 다임러벤츠가 미국기업 크라이슬러를 사면서 이사회에 독일인과 미국인을 같은 비율로 했다. 하지만 합병되고 난 뒤 봐라. 이제 이사 11명 중 미국인은 딱 1명 남았다. 미국도 그런데, 그 100분의 1인 우리나라는 어떻겠나. 기업지배구조를 이야기하는데 미국기업도 부패한 것은 마찬가지다. 개별제도보다는 큰 틀에서의 고민이 필요하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법경제팀 연구위원 (이하 임원혁) : “재벌은 지배구조상으로는 가족이 지배하고 사업-조직구조상으로는 사실상의 지주회사 형태로 개별법인들을 소수자본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한 구조이다. 재벌문제는 근본적으로 가족기업으로서 갖는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그걸 자꾸 피해가려고 하니까 어려움이 커진다.
그동안 재벌은 가족기업이지만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고, 경영권도 외부 경영인들을 확충하되 최고 경영인은 가족에서 배출하는 방법으로 유지해 왔다. 상속증여는 탈법이나 편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세습해 왔는데, 이제 이 3가지 부분에서 다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도 그대로 끌고 가려고 하니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고 있다.
지배구조문제과 관련해서, 기업이 전제군주적 독제체제인 것은 사실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전제군주보다는 입헌군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 맞지 않나. 또한 잘못하면 물러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는 경영을 못해도 그 사람이 어떻게 되느냐하는 것은 없다. 검증이 안된 2세, 3세들에게 경영권이 세습되는 족벌경영도 문제다. 이 점이 중장기적으로 재벌경영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지배구조문제가 계속 논의되어 왔다. 재벌이 가진 정치경제적인 힘 때문에도 계속 논쟁이 되어왔다.
자본의 국적성 논쟁과는 별도로 경영권 방어의 기본은, 경영을 잘 해서 (다른 사람이 그 기업을)인수한다 해도 좋아질게 없다는 인식을 주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수단으로 방어하려는 게 문제다. 또 미국인들이 천성적으로 덜 부패하다는 것이 아니다. 투명하고 건실하게 경영하도록 제도를 어떻게 갖추는지에 대해서는 배울 점이 있다.”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이하 이상승) : “계열사간 출자에서 그 돈은 출자한 회사 주주들의 것인데 의결권은 지배주주가 행사한다. 여기서 실제소유권과 지배주주의 최종지분과의 괴리가 발생해 주식회사에서의 대리인 문제가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의 규제 목적이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지배주주의 전횡이 심해지면 그 기업은 주식시장에서 외면당하게 되고 결국에는 자금조달 방법이 막히게 된다. 정부는 적당한 소액주주 보호방안을 통해 주식회사의 자금조달비용을 줄일 수 있다.
계열사간 출자가 역기능이 있기 때문에, 지배주주가 소액주주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정부가 적절한 방법으로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제도는 필요하다.”
김진방 교수 “경영권 불안보다는, 재벌이 전횡을 하는데도 경영권은 안정되어 있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
이동규 공정거래위원회 정책국장 (이하 이동규) : 공정위가 재벌개혁을 보는 시각은 이거다. 외국에도 가족기업이 많고 이들이 경영성과나 생산성 등을 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소유를 부정하지 않는다.
대기업집단을 구축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45%의 내부지분을 갖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내외부 감시장치가 제대로 안되면 소수주주권 강화, 집단소송법 등 자체가 작동이 안될 가능성이 있다. KDI보고서를 보니, 안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장개혁 로드맵이 이걸 제시한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등이 사전규제적인 측면이 있다. 미국은 사휴규제다. 그런 점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안 맞는다는 항의를 받지만, 공정위의 판단은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또 시장 활성화 등 판단은 정부가 하는데 그 기준이 애매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런 우려를 막기 위해 시장개혁 로드맵으로 지표를 제시해, 3년 후에 시장내부 감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면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폐지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 정부방침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당분간 유지하되, 예외조항을 넣어 소유가 단순해지고 경영투명성이 나아지고 순환출자가 없는 지배구조모범기업은 기업별로 졸업시키겠다는 것이 정부방침이다. 이런 방향이 획기적인 것 아닌가.
지금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제한이 핫 이슈다. 여기에 대한 공정위 입장은 금융기관의 돈은 기본적으로 고객의 것이라는 것. 이익을 늘리기 위해 주식투자를 하는 것은 좋은데, 계열사 주식투자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하는게 맞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소유구조문제는 포기하더라도 지배구조라도 맞으면 졸업을 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다른 나라에는 없고 있었던 일본도 폐지했다고 하는데, 일본은 77년에 도입해 2000년까지 유지했고, 그 전에는 아예 법인출자를 금지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이하 김진방) : “재벌문제는 경영권이 불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횡을 하는데도 경영권은 안정적이라는 데 있다. 전횡을 하면 불안정해야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경영지배권자가 기업가치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 회사가치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전횡을 하는데도 경영권이 안정된다는게 문제다.
한국재벌의 계열사간 출자규모는 45%, 상장회사만 보면 35%다. 35%를 끌어모으려면 주식가격은 엄청나게 오를 것이다. 그걸 감수하고라도 경영권을 차지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혜택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 이익이 뭐겠나. 경영진을 교체하면 기업가치는 엄청나게 오를 것이라는 기대, 현재 재벌이 누리는 엄청난 사익을 누리고픈 기대일 것이다. 이 두가지 혜택를 가져가려면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한다. 여기에 외국인은 한국재벌이 차지하는 사익은 가져갈 수가 없을테니, 기업가치를 올려 돈을 벌어가는 것만이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라도 갖고 싶은 특혜이다. 즉, 우리 기업가치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기업주가 전횡을 하는데도 경영권은 안정적이라는 것에 낮은 기업가치의 이유가 있다. 그래서 개혁이 필요했다. 집단소송법, 대표소송 등으로 전횡을 했을 때 책임과 처벌을 ‘어느 정도’는 요구할 수 있게 됐다. 그래도 경영권을 잃게 하지는 못한다. 망하지 않는 한 경영권은 유지한다. 전횡에 대한 책임과 처벌을 요구하도록 하는 체제변화가 시장의 변화로 이뤄질 수 있나. 이해관계자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적 이익을 높여가야 하는데, 그렇게 기득권자의 손해를 강요할 수 있나. 개별 재벌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기업의 부가가치를 좀더 높이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희생을 요청하고 감수하도록 해야 한다.”
사회자 : “구체적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해 말해보자. 전횡을 생각하면 강화해야 한다. 재계는 투자를 감소시킨다고 반대한다. 경영불안을 야기하고 역차별이라고 항의하는 것이다.”
이동규 국장,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소유구조 악화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
장하준 : “재벌이 유별난 제도고 우리가 규제해야 한다고 하지만, 유럽과 비교해도 우리 재벌이 그렇게 희한한 존재는 아니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는 과거 부채비율이 우리보다 높았다. 가족지배도 각 나라에 퍼져있다. 문어발식 지배라고 비난받는 비관련 다각화도 많이 발견된다. 노키아도 한국재벌식 기업이다. 벌목업을 하다가 전선과 전화교환기 사업을 했고 이후 전자산업에 진출했다. 과연 재벌이 그렇게 유별난가. 왜 자꾸 미국과 비교하는가. 옳은 기업제도에는 정답이 없다. 그런데도 정답이 있다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깔려있다.
정부가 시장이 잘 작동하면 규제를 풀어준다고 하는데, 시장이 잘 작동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또한 그런 틀에 맞춰서 보는 것이 우리나라에 좋은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출자총액제한제도도 그런 틀에서 봐야한다. 이상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우기는데, 재벌은 꼭 없애야 한다고 한다. 선악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지만, 주식소유지분과 위험부담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
임원혁 : “이상승 교수가 지적한대로 재벌구조가 과거 우리나라의 미발달된 시장에 대한 적극적 대응인 측면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재벌의 발전이 시장의 발전을 저해한 면도 있다. 재벌구조의 효율성을 정당화하는 이론들을 보면 몇가지 간과되는 지점이 있다. 우리나라 재벌들의 계열사간 출자형태를 합리화시키려면, 이론적 근거로 제시되는 몇몇 경제학 이론에서 상당히 무리한 가정을 해야한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실효성은 있다. 재벌들이 소액자본으로 거대자본을 통제하는 것에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에 더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이다.
이동규 : “왜 출자총액제한제도만 문제삼는지 모르겠다. 특정한 정책목적으로 타회사 주식취득을 총량적으로 제한하는 데는 은행법, 보험법 등 여러 제도가 있다. 구체적 기업으로 가장 논란이 되는 삼성도 총량적으로는 별로 문제가 안된다.
우리나라 많은 법이 일본과 유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법에 대해서도 일본의 경우를 참조할 수 있다. 일본은 최근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했다. 폐지하면서 논란이 많았는데, 그 논란 중에 ‘투자제한 우려’는 없었다. 외국은 사후적 제한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기업분할명령 등 우리에게 없는 강력한 권한을 통해 기업집중으로 인한 경쟁제한을 규제하고 있다.
이번에 제출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오히려 완화해주는 내용이 많아 참여연대와 경실련, KDI 등의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의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소유구조의 악화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
김진방 :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실제로 어떤 실효성을 거두는가를 봐야한다. 2003년 10월자 공정위 보도자료를 보면, 규제 대상인 13개 기업집단 280개 중 의미 있는 경고 이상의 규제를 받은 회사는 11개 뿐이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1조원이 넘는 분식회계를 하면서 SK(주) 주식을 엄청 사들인 SK해운, 3개사가 꼬리를 무는 출자를 한 두산건설 등 누가봐도 상식에 맞지 않는 출자를 한 회사들이다. 현재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겨우 이런 것들을 규제하는 수준이다. 이런 출자를 제한한다고 투자가 제한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뿐이 아니다. 출자비율 계산도 허술하다. 분자도 분모도 일관성 있게 장부가로 계산하면 25% 출자규모가 6-70%로 급증하기도 한다.”
이상승 :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재벌규제정책의 중추적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전과 후를 구분해야 한다. 부채비율이나 동반부실화 문제도 많이 해소되었다. 사전적으로 규제할 만큼은 아니라고 본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목적이 무엇인가. 문어발 다각화를 하건 말건 그것은 전적으로 기업이 결정할 문제다. 다만 외환위기 전에는 대마불사 의식이 워낙 강했기 때무에, 출자총액을 규제하는 것이 의미 있었지만 이제는 사전규제의 정당성은 상당히 약화되었다.
일률적이고 사전적인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답이냐. 눈에 보이지 않는 폐해가 크다고 본다. 조직구성은 전적으로 경영진이 판단할 문제인데, 출자총액제한제도로 조직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예외를 보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또한 정부가 정하는 것이라 정부가 투자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것일 수 있다. 그로 인한 그룹간의 형평성 문제가 심각하다. 가장 규제를 많이 받은 재벌이 SK다.
공정위의 시장개혁 로드맵에서 시장기능이 강화되면 사전규제는 폐지하겠다고 했다. 시장기능 강화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10대 차세대성장동력산업에 예외 인정을 해 주겠다는 방침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고 본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유명무실한 측면이 많다. 실효는 없고 문제가 많은 이 제도를 주장하기보다는 차라리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집중하는 편이 낫겠다.”
사회자 : “재벌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문제를 이야기해보자. 어떻게 산업과 금융자본의 분리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임원혁 연구위원, “사전규제가 근본적인 해법 아니지만 과도기에서는 필요한 처방”
장하준 : “산업과 금융자본의 분리를 정설이라고 하지만 그게 꼭 맞나. 또 정부는 둘간의 분리를 말하지만 자세히 보면 금융에 의한 산업자본의 지배보다 산업자본에 의한 금융자본 지배를 더 강력히 막고 있다. 독일은 은행이 기업을 지배하는 형태인데 후자의 상황과 꼭 배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재벌이 금융권을 소유한다고 해도, 부작용을 막을 여러 방어책을 만들 수 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가 근본적인 문제다. 절대선이거나 절대악인 제도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임원혁 : “출자총액제한이나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모두 사전규제인 측면이 있다. 이것들이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나는 점은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과도기인 현재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배임도 집단소송의 대상이 되고 사적인 구제시설이 대폭 만들어져 사법과 금융감독 당국이 이를 보호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문제는 과도기고, 차례와 순위설정의 문제다.
이런 상황을 비유하는 것이 독사론인데, 독사에게 물렸을때 온몸으로 독이 퍼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압박붕대로 꽉 묶었다고 치자. 독이 퍼지는데 제한적인 역할 밖에 못하더라도 필요한 것 아닌가. 물론 독사라는 환경을 제거하는 것이 근본적인 처방일 것이다.
산업과 금융자본의 분리문제는 논란이 있지만, 영미는 정부보증을 받는 은행의 경우에 산업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느냐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예금보호와 도덕적 해이 방지 등을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사업행위에 대해 감독당국이 개입해야하는데 이 또한 경영침해인 측면이 있어 아예 분리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거평, 종금사 부실화 등 금융과 산업자본의 결합으로 파생된 문제가 컸다. 대우도 급해지니 제일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만일 그랬다면 부실규모가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이 안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나 대책이 없다. 금융계열사의결권 제한은 과도기적 제한조치로 옳다. 여기에도 제2금융권에 대한 조치가 추가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하는 상황은 차단해야한다.”
이상승 : “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제한과 제2금융권을 포함한 출자총액을 제한하는 것은 똑같다고 본다. 지배주주가 최종지분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계열사의 소액주주권한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삼성전자의 예를 가상적으로 들어보자. 삼성생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투자와 삼성전자의 지배권 유지를 위한 주식보유는 상충하는 부분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생명이 최적의 포트폴리오대로 투자를 안하면 소액주주의 이익이 침해되는 것은 맞는데, 그것 때문에 계열금융사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접근이 맞나. 최적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면 파산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이를 확률적으로 봐야하는데 그러기가 상당히 어렵다. 또 소액주주와 보험가입자 보호는 완전히 다르다. 보험사가 망하지 않는 한, 가입자의 이해침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보험가입자의 이익 보호를 위해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상당한 비약이 있다”
임원혁 : “대한생명과 한화의 경우를 떠올려 보자. 파산되기 전까지는 손해를 안 볼 수도 있겠지만, 실적에 따르면 손해를 볼 수 있다.”
이상승 : “회사를 경영해 남는 이익은 주주의 것이다. 의결권도 주주의 것이다. 의결권 제한은 상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동규 : “금융회사는 출자총액제한제도로 규제할 수 없다. 현재 법규는 재벌소속 비금융권은 출자총액제한제도로, 금융회사는 의결권 제한제도로 규제하도록 되어있다. 원래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아예 금지했다가 2002년 완화되면서 상장계열사에 대해 30%만 제한하도록 했다. 공정거래법 개정 입법안은 이걸 15%로 축소하려는 것인데 다음주 조율을 거쳐 최종 입장이 발표된다. 지금까지 논의된 것은 15%, 대신 유예기간 3년이다. 시장개혁 로드맵은 단계적으로 시행한다고 되어있다.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로드맵의 취지와 상충되지 않는다. 논란이 되는 삼성생명의 경우는 16%다.”
김진방 : “임원혁 교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공정위의 입법안대로 15%로 하면, 삼성생명과 화재, 그리고 전자와의 관계가 문제가 될 것이다. 이게 핫이슈다. 그런데 단계적 적용 방침은 하지 않겠다는 사인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에 대해서는 찬성한다. 분리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크게 소유는 허가하되 의결권제한 등으로 규제를 두는 것과 아예 소유자체를 막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어느 것이 규제비용이 덜 들까. 소유를 막는 방법이 비용이 절감될 것이다. 의결권이 아니라 소유권 제한으로 가야한다.”
이상승 교수, “부의 세습에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으로 접근해야”
사회자: 이번에는 재벌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 또 대안적 방안은 무엇이 있겠나.
객석 의견1 : “한국식 지배구조에 맞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투명성 요구를 위한 제도개혁이 한국식 지배구조를 만드는 것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것과 그 반대의 폐해가 같지 않다고 본다. 비금융산업이 금융자본을 통해 다른 비금융산업을 지배하는 3단 구조가 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그리고 보험사가 파산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입자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유배당상품 계약자의 경우에는 계열사에 대한 출자로 영향을 받는다. 또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를 포트폴리오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나. 아무리 수익이 난다고 해도 팔겠냐. 그런 점에서 이상승 교수의 의견은 현실적으로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객석 의견2 : “의결권 제한을 우려하는 측은 공통적으로 경영권 방어를 말한다. 그렇다면 아예 그 부분을 근본적으로 생각해야하는 거 아니냐. 정서상으로 보면 자본의 국정성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데, 근본적으로 국가가 개별기업의 소유문제를 왜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객석의견3: “장하준 교수의 의견을 듣자면, 어떠한 재벌규제도 필요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럼 재벌형태가 어떻게 가야한다고 보나.”
장하준 : “투명성을 높이는 것은 맞는데 외국기업에게도 같은 기준을 요구하라는 것이다. 자본시장 개방이 재벌에게 큰 이슈가 되는 것은 재벌의 입장으로 보면 사회적 계약이 파기된 것이기 떄문이다. 그동안 재벌에게 경영권은 보장해 줄테니 마음껏 투자하고 성장시키라고 하면서 자본시장을 통제하고 적대적 인수합병 등을 막아줬는데, 갑자기 급격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결국 정부가 진짜 풀어야 할 것은 자본시장 개방문제다.
또 정부가 왜 신경을 써야하느냐 하는 질문에 답하자면, 재벌은 순수한 민간기업이 아니다. 그동안 국민들 희생으로 키운 기업이다. 국민의 기업인 셈이다. 주주가 팔면 외국에 넘어가도 된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가 봐야할 것은 구체적인 정책보다 원칙이다. 재벌과 금융체계, 정부산업정책을 통해 기술발전과 그 과정에서 얼마나 성장과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느냐가 기준이 되어야한다. 지금 주주의 이익이 개혁의 기준이 된 것은 문제다. 이런 소액주주권한보호 정책으로 가는 것이 맞느냐.
투자가 매우 떨어졌고 잠재성장률도 떨어졌다. 이런 문제를 앞에 두고, 소액주주권한보호의 모델을 끌고 가는데 온 국력을 집중해야하는지 의문이다. 자본시장 개방, 성장과 고용증대 문제를 고민해야한다. 소액주주보호 등이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체제가 기능을 멈추고 있는 상황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고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임원혁 : “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문제에 대해 재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유예기간을 3년으로 잡는다고 한다. 보통 유예기간을 두는 이유는 현실과 목표치와의 상당한 거리가 있어 원활하게 조정하기 위해 시간을 주는 것인데, 이 경우에 3년이나 둘 필요가 있나. 애초에 의결권을 전면 금지했다가 30%로 늘린 것이 문제라고 본다.
그리고 왜 3년인가. 경제개혁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2가지 변수가 관련 이해집단의 저항과 선거주기다. 지금이 참여정부 2년차다. 3년 후면 정권 말기인데 그때 유예기간이 만료되서 제도를 적용할 수 있겠나. 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취지도 맞고 현실과의 괴리도 적은데 바로 적용하는 것이 맞다.
장하준 교수의 의견 중 재벌이 공기업과 비슷하게 성장해 왔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논리대로라면 재벌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적인 지배권은 주식에서 나온다.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면 사회소유로 가야하는데, 그것도 폐해가 있지 않나. 지금 단계에서는 주주권한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사법수단을 통해 효율성을 만들고 이후 새로운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또 투자위축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지금에 와서 과거로 돌아가 정부가 보증하는 것도 문제다. 가계부실을 털어내면서 소비가 위축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금은 이 두가지가 겹친 상황이다. 하지만 거시적인 경제어려움을 지나치게 증폭시켜 미시적인 법제를 움직이려고 하는 것은 문제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업진입 규제 등에 문제가 있다.”
이상승 : “주주자본주의가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재벌정책의 목표로 소액주주권한보호를 삼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게 갖춰지면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장하준 교수의 말처럼 재벌은 성장과정에서 정부지원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국민기업이냐. 만약 그 논리를 따르면 삼성생명이나 전자가 이익에 대해 국민들에게 주식으로 나눠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사유재산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지금은 부의 세습에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으로 접근해야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세운 시장개혁 로드맵의 기본정책에는 찬동한다.”
이동규 :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더 확장하는 것을 막는 효과는 있다. 전경련이나 제계에서 반대하는 것이 효과에 대한 반증이다.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의 3년 유예기간 문제는 부칙에 명시해 법에 담아 진행할 계획이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에 대해서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통해 추가로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시장개혁 로드맵 대로 추진할 계획이다.
좋은 기업지배구조는 분명히 있다. 그래서 OECD 등에서 발표하고 S&P도 이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는 등 기업지배구조가 국제표준화 되는 것 아니겠냐. 좋은 기업지배구조의 열매는 주주, 노동자, 지역주민에게 갈 것이다.”
김진방 : “외국자본으로부터 재벌경영권을 지켜주자고 하거나, 재벌은 국민기업이니 그에 맞는 역할 즉 국민적 이익을 위해 가도록 하자는 주장에는 한가지 빠진 것이 있다. 재벌을 현 상태 그대로 두고 가자는 것인지 아니면 변화시켜 가야할 것인지는 빠진 채, 재벌을 지키자는 것만 초점이 되어 있다. 재벌변혁을 가져올 수단은 무엇인지 생각해야한다.
사법규제가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쳐야할 중간과정이 있다. 보다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정거래법이 검찰을 통해 규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공정거래법 등을 위반한 것에 대한 유죄판결을 쌓아 이들 판결의 선례를 통해 이후 사법규제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사회자 : “오늘 토론에서는 한국자본주의가 제대로 되어가는지, 현재의 개혁이 주주자본주의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해 중대한 의견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동시에 선진화로 가기 위해 해결해야할 지점들이 많이 짚어졌다고 본다. 긴 시간 함께 한 토론자와 객석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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